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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했던 그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

두근두근거리는 게 너무 이상했다. 수줍게 다가서면서 선물을 내미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고, 은근히 스킨쉽을 하는 그 손이 싫지 않았다.
내 머리를 매만지던 손이 내 어깨로 내려가고, 어깨를 만지던 손이 천천히 허리로 내려가면서 엄청난 두근거림을 느꼈었다.
애인은 아니었지만 친구는 더더욱 아니였다.

'뽀뽀해줘.'

가위바위보를 했었다. 진 사람이 소원 들어주자는 유치한 약속을 내걸고서. 그리고 졌다.
'나중에 말할게' 라는 말을 하고서 그 사람은 나와 계속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취미가 나오고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것에 웃음 지었고, 나중에는 자신을 빼다 박은 것처럼 취향이 비슷해 좋아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뽀뽀해줘.' 내가 말했다. '소원이에요?' 쑥쓰러운지 약간 몸을 비틀며 그 사람이 말했다. '응'
싱글싱글 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나 용기내서 한 말이야.' 정말 쑥쓰러운지 조금씩 멀어졌다.
그게 귀여워서 웃었다. 그리고는 '이리 와봐요.' 하며 얼굴을 잡고 쪽, 가볍게 뽀뽀했다.
푸흐흐, 하며 웃음이 터졌고. 그 사람은 민망한 지 일어나 담배를 태웠다.

'문 열어 줘.'

집 청소를 했더니 우리 집을 온다고 했었다. 밥도 해달라고 했었는데, 내 요리 실력으로 무엇을 할까.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 했었다.
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음악을 틀었다. 좋아하는 음악들을 고르고, 소리를 조절하고 그 모든게 그저 두근두근 거렸다.
전화가 걸려왔다. 특별한 벨소리,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여보세요?', '문 열어 줘 집 앞이야.'
집에 와서는 잠시 쇼파에 앉았다가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이 깔려 있는 걸 보더니 거기에 누워서는 '졸려..'라고 했었다.
'자요, 그럼' 조금은... 애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었다.
그 사람은 누워서 팔을 내밀곤 툭툭 쳤다. '여기 누워, 같이 자자.' 키득키득 웃으며 누우니 꼭 안아준다.
따뜻한 게 좋았다. 이래서 사람이 좋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렇게 꼭 안아주더니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하고선 날 꽉 끌어 안았다. 아,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워서 그러죠?' 그러니 미묘하게 끄덕끄덕,
안겨서 한참을 말했다. 따뜻한 품이 좋았고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손이 좋았다. '뽀뽀.' 그렇게 말하니 그 사람은 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귀여웠다. 정말 귀여워서 어떻게 할 지를 모를 정도로 그렇게 귀여웠다. 그래서 내가 해버렸다. 쪽 하고 살포시.

'좋아해.'

우리 집 근처 등나무 아래에 앉아 옆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두근두근 떨렸을 때, 내가 처음으로 첫사랑을 잊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늘 그렇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좋아해.' 두근두근, 뛰는 심장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침을 꼴딱 삼키고 말했다.
'그런 농담 말아요, 가슴 떨려요.' 그러니 언니는 그랬다. '진짜 너 좋아해.' 내가 대답했다. '나도 언니 좋아해요.' 얼굴이 달아올랐다.
집에 들어가려 일어나니 약간의 스킨쉽을 했다. 안을 듯 말 듯. 그래서 말했다. '나 백허그 좋아해요.' 언니가 웃었다. '아 진짜?'
그리고 안아줬다. 뒤에서 꼭.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서 제일 작은 거 같아.' 장난기 어린 말투에 식 웃었다. '그래요, 나 작아.'
놀리는 것 같았지만 놀리지 않는 것 같은 말투. '아니, 전체적으로 말이야.' 그리고 잠시 있다가 '죄책감 든다. 너 너무 어려서' 내가 웃었다.
'그래놓고 나중에 너무 어려서 안돼, 뭐 이런 말하면 엄마한테 이를거야!' 어린 마음에 하는 장난스러운 말이었다.

'지금 보고 싶어.'

어버이 날이라고 잠깐 전주에 와 엄마와 함께 외가댁에 들렸다.
언니 얼굴이라도 잠시 볼까해서 여러번 문자와 전화를 했지만 자는 건지 받지를 않아 조금은 실망했다.
엄마 일을 도와주고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할머니를 찾아 뵈었다. 오다가 산 카네이션도 드리니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제야 문자가 왔다. '나 이제 일어났어ㅋㅋ' 조금은 황당하고, 조금은 고마웠다. 그래도 내 생각은 해주는 것 같아서..
이런 저런 얘기로 문자를 보내다가 '자고 올 거야?'라는 말에 '응'이라고 답했다. 분위기를 봐서는 자고 갈 것 같았었다.
그러니 그랬다. '보고 싶어.' 푸흐흐, 웃음이 나왔다. '내일 보면 되죠~' 아이 달래는 듯이 보낸 문자. '지금 보고 싶어.'
두근두근 또 심장이 사정없이 뛰었다.
예상과는 달리 자고 가지 않았으며, 집에 도착한 시각은 열 두시가 조금 넘는 시각이었다. 언니에게 문자를 했지만 또다시 자는 듯 했다.

'우리 집 올래?'

아침이 되어 눈을 뜨자마자 문자를 보냈다. '일어 났어요?' 잠시 뒤 진동이 울리며 문자가 왔다. '응. 한 열두시간 잔거 같아ㅋㅋ 어디야?'
집이라고 짧게 보내니 그랬다. '우리 집 올래?' 씩, 웃음이 번졌다. '응. 샤워 하구 갈게요.' 비록 구름이 꼈지만 따뜻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이 잊혀지지 않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좋았다. 참, 좋았다.

'언닌 귀여운 타입 좋아하나보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이렇게 내 기분이 좋은 날, 이렇게... 모든 게 좋아 보이던 날.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다 똑같았다. 언니 집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고, 중간중간 언니가 배란다에 나가 담배를 태울 때마다 나는 언니 방 침대에 앉아 언니를 기다렸다.
그러다 언니가 TV를 틀었다. 그리고 물었다. '언제 갈거야?' 내가 대답했다. '언니 나갈 때 같이 나가죠 뭐.'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었다.
오늘따라 이상했다. 무언가 안절부절 못하는 느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언니를 대했지만 나까지 불안해져만 갔다. 인정하기 싫었다.
잠깐의 침묵이 있고, TV에서는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만 왕창 울려 퍼져갔다. .... 아무 말 없는 게 어색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언니가 말을 꺼냈다. '저번에 만난.. 걔 알지?' 누군지 어렴풋하게 기억 날 것 같았다. '그.. 기니피그 닮았다는?'
그러니 고개를 끄덕인다. '응. 왜요?' 망설이는 건지 어쩌는 건지, 달달 떠는 다리가 신경쓰였지만 무시했다. '나 걔 좋아했었어.' 살풋 웃었다.
첫사랑 이야기도 들었고, 그간 있었던 연애사 이야기는 다 들어왔던 지라, 아무것도 아닌 줄 만 알았다.
'근데 걔가 나한테 되게 못되게 굴었어. 친구들이 걔만 보면 나보고 왜 좋아하냐 물었을 정도로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언니의 머리를 만졌다.
매만지다가 손을 내렸다. 떨려서 만지지를 못하겠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언니가 내 머리를 헝클이며 쓰다듬었다.
'나 걔 예전에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 또 한 번 머리를 헝클었다. 나는 벙 쪄 있었다. 이해 할 수 없는.. 모순된 말과 행동.
'그러니까 나 좋아하지 마. 말 안하면 너한테 거짓말 하는 것 같아서...'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구분이 안 갈정도로 다정한 말투.
거기서 나는 바보같이 씩 웃었다. '언닌 귀여운 타입 좋아하나보다. 그 언니 귀엽게 생겼잖아요.' 생긋 웃었다,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TV로 시선을 돌리며 손톱을 깨물었다. 똑똑, 손톱이 이 사이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는 내 손을 잡아 내리며 '왜그래..' 그렇게 물었다.

'넌 너무 어려.'

참으려고 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어른스러워 지려고 했다.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는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도피를 하 듯이 급하게. 나는 계속 TV를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가끔 헛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한계에 달았다고 생각했을 때. 가방을 챙겨들고 언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나 갈게요.'라는 말을 했다.
언니는 '어, 가게?' 라는 말과 함께 날 배웅하려는 건지 문 앞까지 나왔다. 화가 났다. 나 자신에게, 언니에게 화가 나버렸다.
'언니.' 덤덤하게 부르려 했는 데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 같다. '왜?' 그러면서 멋적게 웃었다. 속에서 끓어 오르는 것을 누르고 간신히 말했다.
'언니는 나한테 그 말은 했으면 안됐어요.' 목소리가 마구 떨렸지만 언니를 올려보며 색 웃었다. 눈물이 고여 눈이 빨개졌겠지만.
웃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아닌 엉망인 얼굴이겠지만. 그렇게 웃었다. 그리고 문을 열으려 돌아섰지만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아, 바로 나가야 하는데. 그 생각만이 머리 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어찌어찌 문을 열고 나와서는 달리 듯이 빠져나왔다.
문이 다시 잠기는 건지, 아니면 열리는 건지 구분 안가는 소리를 냈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엉엉, 한참을 걸으며 울었던 것 같다. 사귀지도 않았는데 차인 기분이었다. 막 돋아나는 새싹을 다 짖밟아 버렸다 언니는...
문자를 보냈다. '나 가지고 놀았어요? 나랑 장난해요?' 화가 난 걸 그대로 들어내고야 말았다. '넌 너무 어려.' 그 문자에 벙쪘다.
개새끼. 욕을 했다. 풀리지가 않았다. 쓰레기. 또 욕을 했다. 눈물만 더욱 차올랐다. '다신 연락하지 마요.' 그래서 끊었다.

'날 울렸어.'

보고싶어 졌다. 라고 하면 허무할지도 모른다. 습관적으로 그리웠다고 하면 더 우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피곤에 지쳐 쓰러지 듯이 이불에 누우니 언니 생각이 났다.
화가 났다. 나한테 왜 그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왜 여기에 누워 나를 안아 줬는지, 왜왜왜! 대체 내게 왜 그랬는지!
내게 그랬으면 안됐다. 첫사랑도 다 못잊어 그 것에 벗어나려 간신히 할딱거리고 있던 내게 그랬으면 안됐다!
핸드폰을 집었다. 놓았다. 다시 집었다. 놓았다. 그러다 진동이 울려 급하게 확인했다. 아, 친구...
무언가 하나씩 비틀어져 갔다. 하나씩 엇나갔고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이 변해갔다. 결심을 하고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지워서 남아있지도 않은 번호였지만. 어찌 그리도 기억이 잘 나는지, 익숙하게 번호를 누르고 문자를 보냈다.
'날 울렸어. 달래주지도 않을 거면서.' 그걸 시작으로 다시 펑펑 울었다. 엉엉 우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올 것만 같아 입을 틀어 막았다.
이렇게 쉽게 끝날 줄 알았으면,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았으면.. 좋아한다고 그렇게 한 번이라도 더 말해볼 걸.
차마 전해주지 못한 책과 함께 내 못다한 마음이 방 안에 뒹굴었다.

그리고, 정말, 다시는, 연락하지, 않기로, 결심.... 했다.

 
 
-
 
 
정말 연락을 안하니 점차 잊혀져가고 언니는 이제 좋은 추억으로 남았네요.
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언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났어요.
그래요.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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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ㅠㅠ너무 좋아요ㅠㅠ글 잘읽었습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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