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는 너로 가득해
2015 06 15 구름 조금
여주야 오늘은 괜히 짜증이 많이 난다. 너가 나 말고 도경수랑 얘기해서 그렇다는 건 아냐, 그런 걸로 삐지는 쪼잔한 새끼는 아니야. 그런데 내일은 도경수 말고 나랑 더 많이 얘기 해줬음 좋겠다. 지우개도 도경수 꺼보다 내꺼가 더 잘지워지고 비싼건데 너는 왜 도경수 지우개 빌리냐? 내꺼 빌려 쓰라고.. 에어컨 때문에 추우면 내 가디건 빌리지 왜 도경수 옷 빌리냐? 걔 그거 몇일 동안 안 빤거야. 내 가디건은 세탁도 꼬박꼬박 해서 깨끗하고 좋은 냄새도 나는데,, 니가 좋아하는 향수도 뿌렸는데.. 앞으로는 내 가디건 빌려 니가 내 지우개 안빌리고 내 가디건 안빌려서 짜증난다는 건 아니야. 오늘 급식으로 오이무침 나와서 그런거야. 다음주 금요일에도 오이무침 나온다는데 그땐 니가 나대신 내 오이무침 먹어줘 대신 내 돈까스 너 줄게..
기말고사가 한창인 요즘 내 관심사는 곧 고3이 된다는 스트레스도, 시험 성적도 아닌 김여주다.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김여주 였지만 요즘처럼 신경이 쓰인적도 없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내가 김여주를 신경 쓰는 것 만큼 나와 김여주는 친하지 않다.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서로 얼굴,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일 뿐 따로 둘만의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을뿐더러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던가의 사이도 아니다. 2분단 맨 앞자리와 1분단 맨 뒷자리 그게 우리 사이의 거리였다. 쉽게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자리.
더 더욱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사실 나는 김여주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고 있다. 그 애가 좋아하는 과목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과목이 무엇인지, 어떤 시간에 가장 졸려하는지, 더불어 그 애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차피 대학은 어릴 때부터 쭉 해오던 검도를 살려 체대 쪽으로 갈 생각이다. 고등학교에 진학 한 후로 내게 있어 수업시간은 그저 내 숙면에 도움이 되는 자장가 정도 였다. 김여주에게 온 정신이 팔려있는 지금 내게 수업시간은 그 아이를 어떤 방해 없이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의외로 흥미로웠다. 김여주는 호불호를 숨기지 못하는 애였다. 한 껏 집중해 열심히 수업을 듣다가도 선생님이 재미없는 드립을 치면 곧바로 바로 뒤에 있는 도경수를 향해 고개를 돌려 저게 뭐야 하는 듯이 이상한 표정을 해 보이곤 했다. 나는 그 표정을 좋아했다. 내가 김여주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한게 그 표정을 본 이후 부터였다.
‘더 찌그러져봐 어디’ 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완강하게 찌그러진 표정을 보며 왜일까, 못생겨 보이기 보단 귀엽게 느껴졌다.
그 귀여움은 나만 느낀게 아니였는지 김여주 바로 뒤에 앉은 도경수 역시 김여주가 자신을 향해 그 표정을 지어보일 때 매번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싶어했지만 보고싶지 않았다. 김여주가 귀여웠지만 곧 김여주의 머리를 쓰다듬을 도경수의 손을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질투가 많은 남자였다. 이건 내가 김여주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나는 아주아주 질투가 많은 남자였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박찬열 이 새끼는 내가 김여주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아는 유일한 새끼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내새끼...
“야 김여주 또 도경수 옷 빌려입었다”
“뭐라고? 니 입냄새 때문에 못들었어”
입냄새 어택을 정통으로 맞은 찬열이가 토라져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엎드렸다. 차라리 잘됐다. 한동안은 조용할 것 같다. 남자 여자가 한 반이다 보니 끌어넘치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남자아이들은 초 여름부터 에어컨을 빡세게 틀어댔고 여자아이들은 이 여름에 담요와 가디건이 필수품이었다. 김여주도 담요가 있다. 예쁜 펄 그레이 색깔. 그 담요는 어째서 인지 매번 도경수 어깨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김여주가 도경수에게 담요를 돌려달라 말하면 도경수는 자신의 후드집업을 김여주에게 덮어주었다. 괜히 자리탓을 해본다. 만약 니 뒤에 앉은게 도경수가 아닌 나였으면 너는 나와 더 친했을까?
징글징글하게 김여주 뒷통수를 바라보다 뒤를 돌아보는 도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금방 눈을 피해버렸다.. 괜히 진 것 같다. 다시 그 쪽을 보면 도경수가 아직 날 보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눈을 돌리니 애석하게도 도경수는 김여주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억울했다. 이건 도경수에게 쫀거 같은 느낌이잖아. 다시한번 내쪽을 봐줬으면 좋겠는데 도경수는 이 날 다시 내쪽을 보지 않았다.
김여주가 뒤돌았다. 나를 2초쯤 보다 도경수에게 지우개를 빌렸다. 나에겐 후배 여자애들한테 선물받은 비싼 지우개가 있다. 그것을 빌려주고 싶다. 도경수 지우개는 딱봐도 500원짜리다. 내 껄 빌려주고 싶다. 쪼다같은 나는 그저 자리 탓만 한다.
오늘 급식엔 오이무침이 나왔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너는 오이무침을 좋아한다. 그에 반해 나는 오이무침을 싫어한다. 매일 너와 같이 급식을 먹는 도경수 역시 오이무침을 좋아한다. 너와 도경수는 서로 오이무침을 뺏고 뺏는다. 내 오이 무침을 김여주에게 다 주고 싶다. 도경수의 오이무침은 결국 김여주가 먹었다. 내꺼나 먹어주지.. 오이들을 숟가락으로 아작내고 있는 나를 보며 박찬열은 쯧쯧하고 혀를 찼다.
“야, 너 입맛 없으면 돈까스 나 먹어도 되냐?”
“뭐라고? 니 못생김 때문에 못들었어”
찬열이는 숟가락으로 내 이마를 까곤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아팠지만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박찬열 새끼 놀리는 건 어떤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즐거움이다.
김여주를 좋아한다. 나 혼자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관심을 넘어 김여주를 좋아하고 있다. 김여주에게 호감을 가진 이후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 안에선 우리는 친구사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너에게 말한다. 내가 오늘 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모두를. 우리는 일기 안에서만 친구 인 것처럼 보인다.
+청량감쩌는 달달한 글 쓰고 싶었어요
고등학생들의 파릇파릇한 ... 저 고등학교에 대해서 쥐뿔몰라여 ㅜㅜ 이상한 부분은 둥글게 댓글 해주시면 고칠께여 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