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너무 늦게 찾아온 독스입니다!
날이 갈수록 나이가 드는 지, 체력이 정말 말이 아니네요
어쩜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잠만 자는지
제 스스로를 반성해봅니다.
오늘 메인 사진으로는 지민이를 걸어 놓고 싶어졌어요
오늘 지민이는 거의 남주급이라서 메인 사진으로 걸릴 자격이 있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글이 전개되면서 왜 자꾸 호석이의 지분률은 우주로 가버리는 지...(ㅁ7ㅁ8)
쨌든 지민이는 사랑입니다
지민이는 그 정도로 매력 있는 애 잖아요 (스포)
이제는 진도 좀 쭉쭉 빼렵니다
7화까지 오는 동안 런닝머신마냥 제자리걸음을 한 것 같아요
오늘 분량도 자신 합니다!
늦는 대신 들고 올건 뚠뚠한 분량뿐(울컥)
그럼 보시죠!
어젯밤 꿈엔 박지민이 나왔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보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컴컴한 물속을 헤집고 내게 다가오던 박지민은 울고 있었다. 물에 잠겨 그것이 눈물인지 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박지민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은빛 유리구슬 같은 것들이 후드득 쏟아졌다. 내 팔을 낚아채는 박지민의 큰 손에 이끌려 물 밖으로 건져졌다. 심장을 토할 듯 쿨럭이고 있는 나를 품안으로 가두어 안던 박지민의 넓은 가슴도 울고 있었다. 그 품에 안겨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몰아쉬던 나는 의외로 평안한 얼굴이었다. 아무 걱정도 두려움도 없는 그런 얼굴.
꿈에서 깨 찢어질 듯 아픈 배를 움켜쥐었다. 한 달에 한번 돌아오는 그날이었다. 이불 안에 파묻혀 뜨거운 숨을 몇 번 쏟아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은 고요하기가 그지없었고, 혼자임을 알려주듯 휑한 집안에는 엄마가 외출 전 돌려놓고 나간 세탁기만 작동하고 있었다. 발밑에 틀어진 선풍기가 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불어왔다. 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이불 안에 파묻혀 있는 난 무척이나 모순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꿈속의 박지민을 떠올리며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나도 참 이상했다.
“으으…….”
한 달에 한 번, 그날이 돌아오면 여자들은 이전에 있던 모든 우울한 기억들을 끄집어내기가 일쑤였다. 필요 이상으로 울적한 기분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극도로 예민해져 주변의 모든 것들을 혐오하기도 했다. 오늘 내 기분은 아무래도 전자에 속하는지, 꿈속의 박지민의 얼굴에 괜히 마음이 불편해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찌르르하게 아픈 배 때문에 마음 편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찝찝한 기분들만 느끼고 있었다. 박지민이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왜 박지민의 모든 것들에 신경을 써가면서 야릇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지, 나 스스로를 이해 할 수 없었다.
“……….”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는 너무 습하고 무거웠다. 삐질 흘러나온 땀방울이 옆머리를 타고 베개로 스며들어갔다. 이불 안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빼꼼 꺼내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꿈속에서 봤던 박지민의 우는 얼굴이 눈앞에서 잔상으로 아른대서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초인종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반사적으로 떠진 눈이 몇 번 끔벅대기만 했을 때, 초인종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울렸다.
“아… 누구야.”
축축 늘어지는 몸을 겨우 일으키며 붕 뜬 옆머리를 쭉쭉 잡아 내렸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쏟아질 것 같은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아프고 무거웠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또 한 번 알싸하게 퍼지는 통증에 배를 움켜쥐고 어렵사리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아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목을 가다듬으며 구부정했던 허리를 펴고 일어났고, 벌어지는 열린 문틈으로 모습을 보인 건.
“……….”
다름 아닌 어젯밤 내 꿈에 나와 울던, 박지민이었다.
Love Like Sugar
W. 독스
07
“너 그날이지.”
박지민은 무턱대고 내게 말했다. 온전치 못한 정신에 내 머리는 박지민의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흘려보내 버렸다. 멍한 내 눈을 보던 박지민은 웃으며 내 앞으로 들고 왔던 하얀 편의점 봉지를 내밀었다. 무의식적으로 받아든 봉지 안에는 온갖 초콜릿 가공품과 과자들이 들어있었다. 탁한 눈으로 올려다본 박지민은 그렇게까지 밝지는 않은 얼굴로 내 삐져나온 머리카락들을 정리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사거리에서 너희 어머님 만났어.”
“엄마가 나 그날이라고 너한테 말했어?”
“내가 너 뭐하냐고 물어봤지.”
“그러니까 나 그날이래?”
“아니, 어머님께서 너 아파서 누워있다길래 그냥 그날인가 보구나했지. 잘 짚은 것 같네.”
뿌듯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던 박지민은 내 눈에 낀 눈곱도 떼어줬다. 하지 말라며 손을 쳐내는 나를 무시한 채 가만있으라며 내 얼굴을 붙잡던 박지민은 더러운 눈곱을 기어이 떼어냈다. 손등으로 눈을 벅벅 비비는 나를 보며 ‘아무리 집이래도 눈곱은 좀 떼고 있어라.’ 하고 답지 않은 잔소리를 하는 그가 낯설면서 낯설지가 않았다.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는데 나는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이 상황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편한 내 얼굴을 발견한 박지민은 웃던 얼굴에 미소를 거둬냈고, 못내 멋쩍은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급격히 굳어진 얼굴을 줄곧 바라보고 있던 나는 봉지를 받아들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박지민은 그런 내 행동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주말에 골골대고 있어서 어떡하냐.’ 문 앞에 우두커니 선채로 말했다. 나는 그런 박지민에게 미처 안으로 들어오란 소리도 하지 못하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박지민도 딱히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생각은 없는 듯해 보였지만, 전과 같았음 두말없이 나를 밀쳐내고 안으로 들어왔을 박지민이 떠올라 입 안이 까끌해졌다. 괜찮다며 웃어보였지만 그 웃음이 전혀 자연스럽지 못했음을 느꼈다. 박지민은 나를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에도 그 얼굴은 퍽 웃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저 얼굴에 그동안 박지민이 웃고 있었다고 착각을 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떠오르면서 회의가 들었다. 박지민은 입맛을 쩝 하고 다시다 말문을 열었다.
“안에 진통제도 들어 있어. 많이 아프면 참지 말고 약 먹는 게 더 좋대.”
“……….”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냐. 사온 사람 서운하게.”
“…고마워.”
“시켜서 듣는 말 참 듣기 좋다.”
휘어지는 눈매가 부메랑처럼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았다. 저 눈으로 눈물을 흘렸었지. 꿈 속의 박지민이 내 눈 앞에서 그 얼굴로 아른아른하게 겹쳐 떠올랐다. 나를 한참이나 눈에 담고 있던 박지민은 큰 한숨과 함께 문고리를 잡았다. 그 손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문고리를 잡은 손. 나를 물 밖으로 꺼내줬던 그 큰 손.
“혹시라도.”
“……….”
“고민이 있다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
“나한테 말해. …우리 원래 그런 사이였잖아.”
무거운 목소리가 내 머리위로 끼얹어졌다. ‘오래 안 붙잡고 있을게. 들어가서 쉬어. 나도 이제 갈게.’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이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문이 점점 닫히고 보이던 박지민의 모습도 점차 가려졌다. 회색 문에 사라지던 박지민의 모습이 아주 끝나버리기 전에 서둘러 문틈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닫히던 문은 내 발에 걸려 미처 닫히지 못했다. 어깨로 문을 밀어 열었다. 박지민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잘 먹을게.”
“……….”
“챙겨줘서 고마워.”
잘 하지 않던 고맙단 소리가 다급하게도 나왔다.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던 박지민은 내 목소리에 입 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그동안 너무 고마운 것들이 많았는데, 아니 대부분의 것들을 그에게서 도움을 얻었었는데. 정말 난 고맙단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이제와 미안했다. 이제와 미안해져, 코끝이 찡하고 매워졌다.
“난 또 뭐라고. 됐어, 오글거리게.”
박지민은 내 기름진 머리를 스스럼없이 헝클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엘리베이터의 철문이 닫히는 사이로 박지민은 내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그를 실은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갔다.
“……….”
박지민의 모습은 떨어지는 것 같아 보였다. 충동적으로 문을 잡아 열었던 내 기분도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들은 낙하하고 있었다. 박지민을 실은 엘리베이터도, 내 손에 들려있던 하얀 비닐봉지도.
그리고 그렁그렁 내 눈에 맺혀있던, 떨어지면 깨어져버릴 그를 담은 내 유리구슬도.
*
박지민이 사다준 진통제를 먹고 한숨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다 저물어가는 저녁때였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확인한 나는 화면에 빛이 떠오르자마자 보이는 문자에 입을 떡하고 벌렸다. 내가 잠든 사이, 민윤기가 내게 보낸 문자가 다섯 통이었다.
“헐, 미쳤어.”
내 답장을 기다린다던 민윤기의 목소리가 멀리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다급하게 문자 답장을 하려다 전화를 거는 게 낫겠다싶었다. 그런 내 급한 마음과는 달리 내 손은 통화버튼 위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거는 전화는 처음이었기에.
결국 전화를 걸었다. 무미건조한 컬러링 끝에 민윤기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여보세요?’ 흔하디흔한 그 말 한마디에도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그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면서 부쩍 가까워진 나와 민윤기의 사이가 느껴졌다. 전화를 걸어놓고 아무 말이 없는 나를 민윤기는 웃는 목소리로 불렀다.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지.
목을 가다듬었다. 잠에 취한 목소리를 들키고 싶진 않았다. 작게 헛기침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아, 문자 이제야 봤어.’ 그 말에 민윤기는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그걸 이제야 보면 어떡해.’ 라고 서운한 목소리를 냈다.
-내가 답장 기다린다고 했었잖아.
“미안. 자고 있었거든.”
-어디 아파?
“응? 왜?”
-목소리가 기운이 없어서.
민윤기의 말에 내가 아프면 티가 잘 나는 편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목소리만 듣고서 내가 아픈 걸 알아차리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조금.’ 소심하게 대답했더니 민윤기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생각해보니 정호석이나 박지민도 내가 아픈 걸 꽤 잘 알아차리곤 했었는데.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핸드폰을 고쳐들었다. ‘아파서 잤구나.’ 다정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지고, 그에 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광대를 한껏 들어올렸다.
-아프면 더 쉬지. 왜 일어났어.
“눈이 떠져서. 많이 잤어.”
-문자 답장 안 오길래 살짝 서운하려고 했었어.
“미안해. 내가 잠들면 소리를 잘 못 들어서.”
-뭐가 미안해. 아파서 그런 건데. 나 그 정도로 매달리는 사람은 아니야.
말 끝에 민윤기는 웃으면서 크흠― 하는 헛기침을 했다. 사소한 농담이나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기분이 좋아서 고개를 흔들었다. 바보처럼 민윤기라면 그저 좋은 사람이 되어버린 듯, 정신이 나가버린 듯 행복해졌다. 그러다 내 이름을 부르는 민윤기의 목소리에 콧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아픈데 보자고 하면 너무 매너 없겠지.
“왜?”
-그냥. 보고도 싶고, 할 말도 있고.
요즘의 민윤기는 전에 알던 민윤기가 아닌 것 같았다. 다정한 말들을 꽤 서슴지 않고 해대는 것이,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나에게만 보여주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인건지 가늠 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있다던 민윤기의 말에 그럼 만나자고 하고 싶었지만 아픈 배가 나를 붙잡았다. 끄응― 하고 아무 대답도 없는 내가 곤란한 처지라는 걸 안다는 듯, 민윤기는 웃는 목소리로 ‘힘들면 다음에 해도 돼.’ 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래도 아쉬웠다. 매일 봐도 매일 보고 싶은 그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데,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못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떡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때려 맞은 듯 온몸이 무거웠다. 침대에서 내려와 텅 빈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건지, 집안엔 여전히 나 혼자였다. 해가 저물어가도 날은 더웠다. 발끝으로 선풍기 스위치를 눌러 그 앞에 멈춰 섰다.
-너도 나 보고 싶지.
“……어?”
-그런 거 아냐? 다음에 봐도 된다는 데 아무 말이 없는 거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귀신도 이런 귀신이 없다고. 피식 웃고 말았더니 민윤기는 너무 애쓰진 말라고 했다. 나가고 싶은 마음과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이 머릿속에서 서로 싸우고 있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식탁위에 놓인 하얀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으로 굴러다니는 진통제의 포장지가 있었고, 넘어진 비닐 옆으로 초콜릿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미친 사람처럼 왜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지. ‘있잖아, 윤기야.’ 봉지를 건네던 박지민과 내 앞에서 어색하게 웃어주던 박지민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멋대로 입이 움직였다.
“오늘은 좀 힘들 것 같고, 다음 주 주말엔 괜찮을 거 같아.”
눈은 여전히 하얀 비닐봉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 그럼. 그땐 아프면 혼낼 거니까, 아프지도 말고 있어.’ 민윤기는 자상하게 대답했다. 나는 민윤기의 목소리에 오롯하게 집중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고민이 있다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우리 원래 그런 사이였잖아.’
박지민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모레 학교에서 보자. 쉬어.
민윤기와의 통화는 끊어졌다. 그러기가 무섭게 나는 박지민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얼마 울리지 않아 박지민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집에 들어갔는지, 주변이 고요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응.
박지민은 전처럼 수다스럽지 못했다. 나만큼이나 분명 박지민도 달라졌음을 느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나를 대하는 행동도 말투도. 전부 달라져 있었다. 전과 같은 편안함을 찾아보기가 힘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몰라도, 적어도 난 편하지가 않았다. 정말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게 더욱 힘이 들었다. 나의 어떤 잘못이 우리의 사이를 이렇게 틀어 놓았는지 되짚어도 알 수가 없어서 더욱 답답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박지민 때문에 허튼 웃음이 났다.
“나 고민이 생긴 거 같아서.”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박지민에게 갖고 있는 이 감정이 뭔지는 몰라도, 적어도 박지민의 나를 향한 그 마음이 비단 우정 뿐만은 아니라는 걸 이젠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와 민윤기의 관계는 점점 호전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박지민 또한 모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내게서 듣는 편이 조금 더 낫진 않을까. 어차피 알고 있었던 내 마음이니까, 내 입으로 민윤기와의 나아진 관계를 듣는 편이 그래도 덜 아프진 않을까. 미련하게도 나는 박지민을 배려한답시고 모진 말을 하려하고 있었다.
“만날래?”
-……….
“잠깐 만나고 싶은데.”
-내가 갈게.
딱히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박지민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심하게 끊긴 전화지만, 머지않아 박지민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식탁 앞으로 다가가 초콜릿 하나를 까서 물었다. 달콤한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졌다. 그와 동시에 진득하게 녹아버린 초콜릿이 지저분하게 입술에 묻었다. 반드시,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치러야 하는 대가가 존재했다.
“……….”
그리고 나는, 그 대가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
문을 열어주자 박지민은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차분해진 머리와 정돈된 얼굴을 보며 박지민은 ‘나 온다고 씻었어?’ 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닌 건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의외라는 듯, 또 귀엽다는 듯 내 머리를 헝클이는 것 마저 나는 편하지가 않았다.
“어머니는?”
“아직.”
“아픈 건 좀 어때?”
“많이 괜찮아졌어.”
연달아 질문을 하면서 소파로 내려앉은 박지민은 분명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나는 박지민의 맞은편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눈을 굴리던 박지민은 식탁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곳엔 아마 자기가 내게 건네 줬었던 하얀 봉지가 있을 테지.
“고민이 뭔데?”
박지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곤 꼭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린 사람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박지민의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하나씩 훑고 내려왔다. 나를 보지 못하는 밋밋한 눈이,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두툼한 입술이. 내 말에 어떤 대답을 해올지가 궁금했다.
“내가 윤기 좋아하는 거, 너도 잘 알지.”
일종의 승부수였다. 인연이 끊어질지, 아니면 가늘게라도 이어질지. 알 수가 없는 미래였다. 내 말에 박지민은 아주 늦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정하기 싫은 걸까 듣기가 싫은 걸까. 한 번도 민윤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제 속내를 드러내 보았던 적이 없으니 알기가 쉽지 않은 건 당연지사일 거라고 합리화를 시켰다.
“나 요즘 윤기랑 연락하고 지낸다. 신기하지.”
“……….”
“멀리서 보기만하고 말도 못 걸고. 나 혼자 끙끙대기만 했었는데, 이젠 연락도 잘 주고받고 가끔 만나기도 해.”
박지민은 그제야 나를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가 나를 빨아들일 듯 강렬했다. 그러나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숨길게 없다고 생각한 나는 더욱 떳떳하게 어깨를 펴고 앉아서 다음 할 말을 곱씹었다. 사실 어떤 정신도 없었다. 내말에 박지민이 상처를 입게 될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고 나와 저를 친구라는 선으로 반듯하게 그어놓을지. 그건 박지민의 선택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어 놓은 창문 밖에서 자동차의 클락션이 세게 울렸다. 그 소리가 시발탄이 되어 나는 입을 다시 열었다.
"언젠간 윤기가 나도 좋아하는 건 아닌지 느끼기도 했어. 그만큼 윤기가 나한테 다정하게 대해주거든.”
“……….”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뭘 어떻게 해.”
“계속 윤기를 좋아해도 될까? 정말 윤기도 나를 좋아하는 게 맞을까?”
내 물음에 박지민은 입을 다물며 침묵을 지켰다. 그를 다그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내 느낌이 맞다면, 정말 박지민이 나를 좋아하고 있는 거라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다. 박지민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시점에서 행여나 박지민이 나에게 고백을 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게 참 야비하지 싶었다. 상대방에게 잔뜩 난처한 입장을 줘놓고는, 나는 그 입장을 겪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보면.
입술이 마르는지 박지민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시선을 떨군 박지민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너무 힘든 대답을 끌어내고 있는 걸까 걱정했지만 이제와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래를 향했던 박지민의 시선이 내 얼굴로 올라오고, 그는 큰 한숨을 연거푸 쉬었다. 속이 먹먹해 지는 게, 나도 한숨을 쉬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마음 앞에서는 이기적으로 굴어.”
“……….”
“이러면 어쩌나, 저러면 어쩌나. 걱정하지 말고 좋아하면 좋아한다, 아니면 아니다. 그냥 이기적으로 너만 생각하고 행동해. 인간은 원래 일인칭으로 살아가는 동물이잖아. 아무리 남을 배려한다 해도 어차피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거라고. 결국엔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너도 그냥 그렇게 살아. 민윤기를 좋아하면 좋아하면서 살면 되는 거야. 민윤기 걱정하지 말고. …그 누구도 걱정하지 말고.”
박지민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말을 하는 데 가빠지는 숨을 헉헉대면서 박지민은 흥분했다. 파르르 떨리는 박지민의 손끝이 우는 것 같았다. 나를 단호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 눈도 우는 것 같았다.
“안 그럼 후회할걸.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그냥 좋아한다 말할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걸.”
“……….”
“네 선택이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
“축하해. 민윤기랑 가까워졌다니, 행복하겠네.”
“…응.”
생각보다 잔인한 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좋아하는 티 하나 내지 않고, 나와 민윤기의 사이를 박수쳐줄 수 있는 게 과연 넓은 아량인지 아니면 저를 죽이고야 마는 그 잔인함인지 쉽게 속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박지민을 참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내가 알았던 박지민의 모습들은 과연 빙산의 일각이었는지. 자꾸만 처음만나는 박지민의 새로운 얼굴들에 당황을 해버리는 내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제와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박지민을 우리 집으로 내가 불러놓고, 이젠 가버리라고 말 하고 싶었다.
“됐어?”
“……어?”
“고민 해결이 좀 됐냐고.”
“……….”
“계속 만나. 계속 연락하고 기회가 된다면 좋아한다고도 먼저 말해.”
“……….”
“너 그 정도로 매력 있는 애니까.”
박지민은 웃었다. 그 웃음이 참 씁쓸해서, 난 입맛을 쩝―하고 다셨다.
“할 말 끝난 거 같으면 나는 가 볼게. 라면 먹으려고 집에 냄비 올려놓은 거 같아서.”
소파에서 일어난 박지민은 현관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제 운동화에 발을 끼워 넣었다. 나는 그런 박지민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문을 열기 전, 박지민은 아직 앉아있는 나를 돌아봤다. 그리곤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손을 흔드는 걸 대신했는지, 그리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쾅하고 닫힌 문과 순식간에 찾아온 적막이 현실을 깨닫게 했다.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끝난 걸까.
“친구가 끝나버린 걸까.”
참아왔던 한숨을 토해냈다. 승부를 뒀는데,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박지민은 단단하고 견고했다. 물러터진 내가 때린다고 해서 깨어질 벽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 걸음 물러나야 했다. 너무 그를 다그치지도 재촉하지도 않고. 그냥 멀리서 두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드니 민윤기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보고 싶다.]
박지민의 목소리가 윙윙대고 귓가를 울렸다. ‘이기적으로 굴어.’ 박지민의 한숨소리도 귓가에 울려 퍼졌다. ‘너 그 정도로 매력 있는 애니까.’ 눈을 감고 숨을 참았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박지민의 말대로 그렇게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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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랬어
처음 보던 그 순간부터 널 좋아하게 될거라고 짐작 했었어
그래 그랬어
지금의 내가 지금의 너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할 거란걸 알고 있었어
* 혹시 암호닉 빠지신 분은 댓글로 저를 때려주세요! 몹시 심하게 쳐주세요!
* 너무 늦어서 전편 다시 보고 오실 분들이 많아질 것 같은건, 제 기분 탓일까요?(눈치없음)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쪽) 오타나 탈자는 애교로(찡긋) 댓글로 알려주시면 더욱 좋아요
* 암호닉 신청 방법은 따로 없어요. 그냥 던지고 도망가시면 쫓아가서 뽀뽀해드립니다. 지구 끝까지(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