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새하얀 날개에 소복소복 내리던 눈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나비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날갯짓을 했지만,
그를 지켜보며 나비와 닮은 새하얀 결정체를 내리던 하늘은 나비의 몸부림을,
아름다운 춤사위라 생각하고 더 많은 눈을 내려주었고,
나비는 하늘을 원망하며 죽어갔어요.
당신은, 내게 하늘과도 같아요. 알아 들어요?
[효신X홍빈] 나비의 겨울6
by. 진라면
넓고 반질반질한 무대 위로 발을 딛은 홍빈은 아찔한 마음에 깊이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목에 무언가가 턱 걸린 기분이었다.
런웨이때는 이렇게 떨리진 않았는데.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홍빈이 천천히 스탠드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마이크를 붙잡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져가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그래서 눈을 꾹 감은 채 제 첫 타이틀곡의 첫소절을 내뱉었다.
어떤 정신으로 노래를 끝마쳤는지도 모르겠었다.
어디가 틀렸고 어디가 잘했고 가사는 맞게 불렀는지 음정이나 박자가 불안하진 않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채로 함성소리 속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곧이어 제 팔을 끌어당기는 원식의 모습에 끌려가다시피 대기실로 들어간 홍빈이 제 등을 두드려주거나, 대박이었다며 환호성을 지르거나, SNS에서 반응을 확인하는 소속사 직원들과 코디를 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채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홍빈의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야 있었다.
[디자이너 박 효신, 결국 이 홍빈도 버리나?]
[이 홍빈의 미국 가수 데뷔, 모델 활동은 그만 둔 것으로 보여]
[박 효신과 이 홍빈, 환상의 파트너 깨지나?]
[2013 박 효신 겨울 콜렉션의 메인 모델이었던 강철웅, 그는 누구?]
평소부터 홍빈을 고깝게 봤던 사람들의 항의전화나 악플, 억측이 가득한 모욕성의 글이나 기사 따위는 회사나 홍빈의 이미지에 크게 문제가 되질 않았다.
다만 제일 큰 문제는 홍빈이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
그 덕에 무대에도 오르질 못 하고 있는 홍빈은 티는 내지 않지만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첫 앨범을 내밀었을 때부터 조금 밝아졌던 표정은 다시 굳어버렸다.
멍하게 허공을 보는 횟수도 늘었고 침대 옆 테이블에 고이 모셔두었던, 제가 나왔어야할, 효신이 디자인한 옷들로 가득한 알록달록한 색감의 잡지를 껴안고 있거나 한참을 들여다보는 횟수도 갓 유학길에 올랐을 때 만큼 많아졌다.
빈아.
침대 헤드에 기댄 채 발 끝만 까딱거리고 있는 홍빈의 옆에 다가가 앉은 원식이 엉망으로 헝크러진 홍빈의 머리를 쓸어넘겨준다.
사르르 다시 이마 위로 내려오는 앞머리가 홍빈의 눈을 가린다.
원식의 어깨에 툭, 힘 없이 머리를 기댄 홍빈이 작게 헛웃음을 짓는다.
원식아.
응.
나는 여기 오면 다 될 줄 알았어.
덤덤한 척 이어나가는 홍빈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홍빈은 지쳐있었다, 몸도 마음도.
그가 안쓰러워 원식은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런데 식아, 다 잃었어.
홍빈아.
하겠다던 음악도 잃었고, 하고싶은 건 아니었지만 나름 재미있게 했던 모델 생활도 잃어버렸어.
이홍빈.
그리고 효신이형도.
뒷 말을 삼킨 홍빈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원식의 시선을 마주했다.
홍빈의 눈이 조금은 멍해있었다.
원식이 홍빈의 뒷통수를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거칠고 강제적인 움직임 속에서 홍빈은 효신을 떠올렸다.
성당에서, 달콤한 그의 체취에 취한 채로 했던 따뜻했던 입맞춤.
홍빈의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에 원식은 눈을 꾹 감았다.
그 어떠한 반항이나 거부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저에 대한 동정을 느꼈기에.
차에 대충 틀어놓은 라디오에선 한국어로 또박또박 전해지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타지에서 들으니 한국어가 반갑긴 했는데, 뉴스 내용이라고는 가관이다.
이 홍빈, 박 효신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으로 보여..
디자이너 박 효신과 모델 강 철웅이 새로운 파트너를 맺는가에 대해..
이 홍빈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찌 될 것인지 궁금증이 일고있는 가운데..
짜증스럽게 라디오를 꺼 버린 손길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는다.
곧 이어 입술 새로 담배연기가 새어나온다.
멈춘 차에서는 열린 창문으로 거의 다 타버린 담배꽁초가 튕겨져나오고, 차 문이 열리고 부드럽게 나오는 신발 끝이 꽁초를 비벼 끈다.
한국과는 다른 느낌을 가진 미국의 파란 하늘로부터 내리는 햇빛이 백금발의 머리칼을 반짝인다.
정원이 넓은 주택들이 양쪽으로 펼쳐진 곳.
종이 쪽지에 또박또박 써져있는 주소를 들여다보던 효신이 어디론가 걸음을 옮긴다.
화려한 반지를 낀 손 끝으로 초인종을 누른다.
두 세번 쯤 눌렀을 때에야 누구세요, 하며 문이 열린다.
활짝 열린 문을 잡고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효신을 발견한 홍빈이 눈을 크게 뜬 채 굳어버린다.
입술을 깨문 모습이 위태롭기까지 하다.
웃으며 홍빈의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춘 효신이 마른 홍빈의 볼을 쓰다듬는다.
말랐네, 김원식이 굶겨?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효신과 눈만 맞추던 홍빈이 효신의 목을 끌어안는다.
단 내. 달콤한 체취가 코 끝을 간질여온다.
급하게 효신의 입술을 찾은 홍빈이 몇 번이고 입을 맞춰대다가 울음을 터트린다.
그의 뒷통수를 당겨 제 어깨에 얼굴을 가져다놓은 효신이 홍빈의 등을 토닥였다.
둘은 한참동안 움직이질 못 하고 그대로 서로를 확인한 채 서 있었다.
이 분이 위에 기사에서 잠깐잠깐 언급된 모델 강철웅님이에요.
87년생에 키 187 몸무게 64라고 하는데..
와.. 내, 내 다리 눈감아.. 이 분이 중요할지 안 중요할지는 비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