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주의함과 안일함의 사이에서
변백현이 오늘 찬열이 체육관 임시휴관이라 찬열이도 놀게됬다며 야자를 째자고 팔에 매달리며 질질짰다.며칠 전 부터 계속 야자째자고, 당구치러 가자고, 못 놀다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놀러가자며 애원을 해댔다.
앞으로 시합있을 찬열이와는 다신 놀 수 없는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제발 놀러가자고 백개가 넘는 갠톡테러와
점심시간 축구에서 계속 내 공을 뺏어보이며 방해하는 탓에 성질이 나서 가겠다고 말해버려 어쩔 수 없이 반에서 가방을 들고 나오려했다.
이래저래 짐을 챙기느라 수선스러운 모습에 00이가 써내려가는 손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야자 안해?"
말수가 적은건지 아니면 성격이 나쁜건지 하다 못해 나를 탐탁치 않아하는 것 같았는데
갑작스레 말을 거니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며칠 전 부터 수학문제 알려준 것때문에 그런가.
응. 짧게 대답하며 의자를 책상아래로 밀어 넣었다.
허락 맡은거야? 라며 물어보는 00이한테 아니, 그냥 째는건데 라고 말하기에 굉장히 뭐해서
일이 있어서라고 아무렇게나 말해버렸다. 학교 분위기가 원체 자유로운 분위기라
보통 야자하기 싫으면 그냥 마음대로 째버리고 마는데.
00이는 교칙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준수하는 것 같았다.
규정이 심한 학교에 다녔었나. 아, 세림예고랬지.
"야자 열심히 해."
"응. 잘 가."
라며 손을 작게 흔들고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작은 손으로 샤프를 잡아
적분식을 연습장에 써내려가며 사각사각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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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시간에 종대가 풀 때는 쉽게쉽게 풀리더니 내가 푸니까 왜 안 되는건지. 골머리를 썩히는 마지막 문제때문에 머리가
폭팔할 지경이다. 골머리를 썩히는 문제면 그냥 골머리를 썩히고 내일 종대나 선생님께 물어보면 될 걸, 오늘 안에 풀어보겠다고
호기를 부린게 잘못이였다. 집에 가자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서는 교실에 계속 남아 문제를 푼 게 화근이였다.
집에 안가냐는 당번의 말에 그 때라도 가방을 싸서 학교에서 나와야했는데, 교실 문은 내가 잠그겠다라고 말한 것도 큰 잘못이였다.
겨우 야자종료시간 삼십분 후인데도, 이미 모두들 봉고나 버스를 타고 집에 가버린 탓인지 교문을 나와서는 굉장히 한산했다.
그래도 학교 앞인지라 가로등은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스산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버스타고 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버스카드 충전도 깜빡해서 500원 정도 남은게 다고, 현금도 아까 매점에서 써버리느라 200원 밖에 없었다.
가슴품에 체크카드는 있었지만 인출기가 없는 이상 그저 플라스틱에 불과했다.
늦게라도 돌아서 집에 갈까, 아니면 그냥 원래가던 길로 갈까 하고 고민하다가
티비에서 한창 떠들어대는 인신매매뉴스가 생각나서 소름이 끼쳤다. 그냥 조금 돌아가자.
라는 마음이 들어서 나는 꽤 먼길을 돌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오히려 원래 가던 길로 집에 갔으면 좋았을 것을, 안전하다라고 생각했던 길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바로 옆의 밝게 빛나는 편의점의 빛이 새어드는 어두운 골목에서 교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는 남자애들이 보였다.
분명 이런 애들때문에 오히려 편의점에 손님이 안 올것 같은데도, 꽤나 질이 안 좋은 학생들인지 편의점 알바생도 제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쫄아서 쭈구리마냥 두 손으로 들쳐맨 가방끈을 꽉 잡고 얼른 지나가려 하는데 쭈구리같은 모양이 오히려 부작용이였는지
담배를 피던 한 키가 큰 남자애가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교복을 보니 분명 우리학교였다.
설마 나 우리학교 학생한테 삥 뜯기는 건가.
"명찰도 안 달고 다니네, 이년이. 야, 돈 좀 있냐?"
평소같았으면 무서워서 지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주고는 얼른 뛰쳐나왔겠지만 아까 그 이백원이 다다.
치마주머니에 손을 넣자 차가운 금속면이 닿았다. 꺼내서 주면 오히려 더 화를 낼까? 없다고 하면 또 시비걸텐데.
나는 무서워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는 아무말도 못했다. 계속 말이 없자 화가 난듯 남자는 웃으며
상스러운 욕설을 입에 담아가며 내게 화를 낸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서는 내 숙인 얼굴을 굳이 확인하려
내 눈을 맞추려 한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버렸다. 야이 씨발년아 라는 소리가 들린다. 짜증난다, 이런 상황.
"아!"
큰 손이 내 어깨에 위에 올려졌고, 우악스럽게 잡아댔다. 점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건지 어깨가 아파온다.
"사람 말하는거 안 들리냐!"
말하면 말할수록 매캐한 담배냄새가 숨을 타고 흘러든다. 기관지도 약한데 이렇게 맡아버리면.
나는 연신 콜록콜록 대고 손을 들어 코 주위의 공기를 저어보지만 오히려 도발이 되어버렸는지 잡힌 어깨가 더 조여왔다.
"뭐하냐. 개새끼야."
차가운 손이 내 손목을 덥썩 잡았고 낮은 목소리가 위에서 흘러내렸다. 나는 따가운 눈을 겨우 떠보며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회색 자켓 차림의 키가 큰 사람이였다. 개새끼라는 말에 발끈한 남자는
넌 누군데 지랄이야라는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목 끝에서 끌어올린 듯한 더러운 소리가 나더니 침을 카악하고 뱉는다.
"나? 알면 뭐할건데."
도와준 사람의 주먹이 크게 휘둘러지더니 불량학생의 얼굴을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어깨를 잡던 우악스러운 손이
떨어져 나갔고 불량학생은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고꾸라졌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도와준 남자를 쳐다봤다.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있는 찬열이였다.
자신의 친구가 갑자기 나타난 찬열이의 주먹에 고꾸라진 것에 열이라도 받았는지 담배를 피고있던 남자애들이 찬열이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달려드는 아이들때문에 어떡하지라며 발을 동동구르다가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덜덜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앞으로 돌려 핸드폰을 빼내는데 뒤에서 크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불량패거리에게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해대는것을 보니 찬열이의 편인 듯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예전에 명찰없다고 뭐라 하던 백현이도 보였고, 일전에 내 자리에 앉아있던 키 큰애도 보였다.
순식간에 패싸움이 되버린 이 난장판은 서로 몸이 엉키고 힘 센 발길질에 거친 욕설의 무아지경이 되어 버렸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불량학생들의 패배로 끝나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 어처구니 없고 당황스러웠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고 말았는지 바닥에 철푸덕 앉아버렸다.
시멘트 바닥인 탓인지 맨 다리에 생긴 생채기도 생기고 긁힌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눈치채지도 못했다.
"니 새끼들 이름 뭐야!? 몇학년 몇반인지 다 말해. 선도부가 병신호구같은가봐? 근교에서 담배에, 여자애 삥에, 패싸움질?"
언성을 크게 높여가며 화를 내고 있는 백현이는 분을 아직도 삭히지 못하는 패거리들에게 하나하나 신상정보를 캐고 있었다.
"학폭위열리는 꼴 보고 싶지? 그렇지? 어디서 사람 하나에 여댓명이 덤벼들어? 정학이라도 당해봐야 정신 차릴래?"
이 문제 절대로 가만 두지는 않을 거라며 목에 핏줄까지 세우며 화를 내고 있는 백현이는 아직도 분이 삭히지 않는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번에 그 키가 큰 남자애는 백현이의 옆에서서
체구가 작은 백현에게 혹시라도 누군가 다시 덤벼들까봐 매서운 눈빛으로 하나하나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찬열이는 내 어깨를 잡고 화를 내던 덩치 큰 학생에게 계속 발길질을 해대며 분이 안 풀린 듯
무표정한 얼굴로 말 없이 꾹꾹 밟고 있었다.
아… 이제 그만해. 라고 말하려 했지만 갑자기 놀란 탓인지 목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에 뭐라도 걸린 것 마냥
켁켁댈뿐이였고, 갑작스러운 긴장탓에 목은 사막의 건열같이 쩍쩍 갈라진 것 같았다.
기가 죽어 어깨를 축 내리고 있는데 무언가가 내 어깨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고, 고개를 내려 확인해보니 회색의 교복 자켓이였다.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니 종대가 내 뒤에 무릎을 세워앉아 눈 높이를 맞추며 나를 보고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으응. 이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바닥에 잠겨버려 나오지 않는 말때문에 나는 당황했다가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종대의 말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대충 상황이 정리된 것 같고 백현이 경찰에 신고한다며 난리를 치는 걸 키가 큰 남자애가 겨우 말렸다.
찬열이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고 가로등 탓인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림자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긴장했고
찬열이가 내 어깨를 잡더니 소리를 질렀다.
"밤길 조심하라고 했잖아!"
여자애가 왜 조심성도 없게 이런 길을 걸어다녀! 너 티비나 신문도 안 봐? 혼자 다니는게 얼마나 위험한데 열한시가 다 되가는 시간에
돌아다녀, 돌아다니길!! 아까 불량학생의 우악스러운 손보다 더 세게 죄여들어가는 통증에 나는 입술을 깨물어 참아갔다.
"어디서 소리야? 얘 충분히 놀랐어. 나중에 해라."
종대가 어깨에 올려진 손을 세게 쳐냈고 찬열이에게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였지로 타박하듯 말했다.
찬열은 말할게 더 남은 것 같이 보였지만 알았다며 눈을 내리깔고서는 입을 닫았다.
패거리들은 가버린 듯 상황을 정리한 백현과 키가 큰 남자애가 이 쪽으로 오며 내 상태를 확인했다.
여전히 불 같이 화를 내며 씩씩대는 백현이가 괜찮냐며 물었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 대답했다.
"괜찮기는, 하얗게 질렸구만."
키가 큰 남자애가 무심하게 말한 후에 힘이 풀려버린 다리로 눈을 돌리더니 안되겠네, 하며 벽에 기대고서는
조금 있다가 가자 라고 낮은 목소리를 말했다.
어깨에 올려졌던 찬열이의 손을 쳐낸 종대는 여전히 무릎을 세워 앉아 내게 자켓을 감싸주고 어깨를 잡아주고 있었다.
분명 건장한 체구의 아이들이 찬열이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는데도 얼굴에 가벼운 생채기만 났을 뿐 멀쩡한 얼굴이였다.
찬열이는 생채기가 난 턱을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며 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종대보고 손을 들어 등을 때렸다.
"김종대 개새끼야, 누구는 피터지게 싸우는데 안 돕지?"
"나 평화주의자야. 패싸움 안해."
분명 신경질적인 말투였지만 웃고있는 얼굴로 찬열이 타박하자 종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키가 큰 남자애는 조용히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당구장이 어떻고 다음에는 니가 치킨을 쏘라는 등의 또래 남자아이들의 잡담사이에서 주변의 소리는 조용히 지워져갔고
가만히 자켓 위로 느껴지는 손이 공허함을 감싸고 있었다.
이전 편과는 다르게 전형적인 인소ST...인 편이네요..ㅋㅋ
원제인 그 늦은 시간에는 음^^; 나름 고충이 있습니다. 원래 2부작 단편으로 내려고 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등장인물이라고는 꼴랑 주인공과 종대 밖에 없어서 작품에 부합하는 제목이였는데
편 수가 길어지니 조금은 의미가 퇴색된 부분이기도 해서 안타깝습니다.
어차피 자급자족하는데에 의의를 둔 소설이라 제목을 바꾸는 건 상관이 없었는데
이렇게 웹사이트에 올려지니까 바꾸기도 곤란하고 ^^;
하지만 제목을 제외한 플랫은 이전의 계획과 동일합니다.
살만 더 붙여졌을 뿐이지 몇 개를 제외한 변경되는 내용은 없고 다만 늘어지지 않을까가 문제^^;
이런 얘기는 나중에 작품 끝나고 들고오면 참 좋을텐데 이 놈의 입이 방정이라^▽^
그리고 1편의 회원열람 해제했습니다. 비회원분들 편의를 제가 생각 못했네요. 뎨덩.
여튼 1편부터 끝까지 함께 해주신다면 눈에 불키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