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pire kiss
기묘한 일이었다. 요 근래 매일을 거르지 않고 같은 꿈을 꾸었다. 꿈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궁전이 연상될 만큼 눈이 부시고 화려했고, 동시에 번잡했다.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높은 돔 형태의 천장, 그 천 장 위에 그려진 쏟아 질 듯한 천장화들. 모차르트 교향곡 25번의 연주, 창백한 사람들….
종인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앞에 놓인 상황을 피해가고 싶었다. 아니, 잘 피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도 채 인식하지 못한 사이 종인을 태운 마차의 바퀴는 이미 비탈면을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마치 종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모든 이야기의 발단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00. 그대의 이름은 불멸.
하얀 달이 떴다. 어둠이 무겁게 침전한 거리엔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커튼을 치고 문을 걸어 잠근 채 호흡을 아꼈다. 달무리를 제외한 완전한 암전. 불과 세 시간 전까지만 해도 활기를 띄던 도시는 달이 뜨자 완벽하게 죽어버렸다. 이 이상 정확히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종인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초행의 길을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단단하게 당겼음에도 생존의 대한 갈급함은 모든 욕구를 이길 만큼 강했다.
누군가, 내 뒤를, 쫓아오고, 있다.
발걸음 소리 따위의 인식이 아니었다. ‘본능’ 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태의 무언가였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위치한 짐승들의 본능 같은 것들 말이다. 태초의 맡아 본 적 없는 죽음의 냄새가 났다. 영혼까지 태운다는 지옥불구덩이의 소름끼치는 냄새는 거짓말 같은 지금 상황이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임을 종인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땀에 젖은 몸뚱이에 끈덕지게도 들러붙었다. 종인은 더 빨리 발을 놀려야 했다.
‘도망쳐야해! 조금 더 빨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를 꽉 붙들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부디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주시옵고… 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
빛. 자신의 눈이 잘 못 되지 않은 이상 저건 분명한 빛이었다. 사실 그것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대저택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었다. 흔한 분수대와 잘 가꿔진 정원조차 딸리지 않은 대저택은 누군가 부러 그곳에 만들어낸 것처럼 위화감을 띄었으나 종인은 자잘한 요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벽면으로는 세월의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초록의 넝쿨들이 기어가고 있었다. 종인은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짜낸다고 여기며 자신의 정면에 보이는 사치스럽게 조각된 문을 향해 힘껏 내달렸고, 동시에 굳게 닫혀있었던 문이 마치 종인이 오길 기다려 온 것처럼 양 옆으로 활짝 열리며 시야를 차단하는 엄청난 양의 빛이 쏟아져 나왔다. 종인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말 그대로 ‘쏟아지는’ 환한 빛을 향해 몸을 날렸다.
***
2013년 11월 28일.
같은 꿈을 꾼 지도 벌써 이주일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쫓기며
빛을 향해 달려들고, 맞닥뜨린 불멸의 존재들과 함께 호흡한다.
조작의 가까운 그들의 공포스러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들은 조금은 신사적이고, 조금은 여유로우며, 조금은 우습고, 또 조금은…
“언제부터 여기가 네 일기장을 끼적이는 침실이 되었지? 대답해.”
조금은 개뿔. 존나 싸가지가 없다. 씨발.
***
몸을 던진 여파로 바닥에 철퍼덕 엎어진 종인의 눈앞에 놓은 건 하얗고 창백한 손이었다. 이명이 돌던 귀엔 모차르트 교향곡 25번의 선율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문예창작 과제를 할 적에도 써본 적이 없던 상투적인 문장이 복잡한 머릿속을 나다녔다. 멍청히 두 눈을 바닥으로 향한 채 끔뻑이고 있는데 선율 외에 다른 음성이 종인을 간신히 현실로 끌어 올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거죠? 팔이 꽤 아픈데.”
젠틀 하고 깔끔한 톤. 그제 서야 종인은 내민 손을 따라, 조금 더 위에 블랙 수트를 입은 팔을 따라 손의 주인공을 시선했다.
“…….”
신사와 시선을 얽게 된 종인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린 모습이 얼마나 멍청해 보일 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뒤로 펼쳐진 배경을 보며 이번엔 죄 없는 눈을 둥근 원처럼 크게 떴다.
“하하하. 놀라지 말아요. 당신뿐만 아니라 우리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그런 반응을 보일 테니까. 하지만 해치지 않는 다구요. 하하하.”
아마도? 유쾌하게 웃는 신사를 보면서도 종인은 조금도 웃을 수가 없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신사의 눈은 비정상적으로 붉었다. 현실 어디서도 그런 눈동자를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가 더 끔찍한 사실은 신사가 등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같은 형상이라는 거였다. 종인은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앉은 상태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매달리다 시피 꾹 잡았다. 기도, 기도를 해야 해.
“주, 주, 주님 부, 부, 부, 부디 저를 가엾게 여기시어….”
신사는 그런 종인의 모습을 보며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은 채 겁에 질린 종인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십자가 목걸이가 아닌, 십자가를 쥔 종인의 손을 다정하게 그러쥐었다. 그리곤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부디 이 가엾은 소년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
“우리 꼬맹이는 B급 뱀파이어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보구나.”
“…….”
“이딴 걸로 죽을 거였으면 우리에게 불멸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과연.”
나에겐 죽음이란 사치인데. 바랜 종이처럼 쓸쓸하게 웃은 신사가 종인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수트를 정리한 그가 가벼운 동작으로 손뼉을 마주쳤다. ‘짝’ 경쾌한 소리가 저택의 내부를 울림과 동시에 모든 뱀파이어들이 그의 뒤로 일제히 집결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동이었다. 그 위압감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모든 붉은 눈이 저로 향해있었기에, 종인은 딱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꼬맹이 네가 잠들어있던 우리를 깨운 거야.”
“…네? ㅈ, 제가요?”
“그래. 금박장식이 된 파란 커버의 책. 그게 네 소유잖아.”
‘금박 장식이 된 파란 커버의 책’ 이라면 종인이 저번 주 일요일에 광화문 근처를 돌다가 골목 구석의 위치한 헌책방에 들러 우연치 않게 발견하고 사게 된 책을 말하는 것임에 분명했다.
“제 책이 맞기는 한데요. 저는… 아니 그전에, 제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그는 더듬거리는 종인의 말의 허리를 잘라내고 덤덤하게 덧붙였다.
“벌써부터 궁금해 할 필요는 없어. 무슨 일이 발생할 때는 항상 ‘인과 관계의 법칙’이 따르는 법이지. 그러니까 네가 여기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거다. 이 세상에서 인과의 관계를 거스른 건 우리뿐이니까. 아무튼 네가 책의 주인임에 틀림없으니 이제부터 네가 우리의 ‘새로운 주인’ 이야.”
“예?!”
잠깐만.
뭐요? 새로운 주인이요? 그게 뭐죠? 먹는 건가여.
바람이 몰아치는 수면 같은 눈을 한 종인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국 신사는 언제나처럼 담백한 목소리로 하하하 웃은 후에 넋이 빠진 종인이 빼도 박도 하지 못하도록 카운터펀치를 날리고야 말았다.
“우리의 주인이 된 것을 기꺼이 환영해. Master. "
……헐?
“아 시발 꿈.”
침대 위에서 거의 반동으로 몸을 벌떡 일으킨 종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긴팔 소매로 톡톡 닦았다. 어제 밤에 본 뱀파이어 관련 영화가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런 개꿈을 꾸게 만들 줄이야. 지금 당장 지워버려야지. 한 편으로는 현실이 아닌 꿈이라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했다.
“아니 근데 나도 참. 무슨 그런 이상한 꿈을 꾸냐. Master 라니. 소름 돋았어.”
종인이 몸을 부르르 떨며 손으로 닭살이 돋은 팔을 세게 문지르고 있는데, 불현듯 입고 있는 후드 가슴팍 쪽에서 침대로 작은 물체가 톡 떨어졌다. 응? 뭐지? 기다란 손이 물체를 집어 들었다.
“…….”
이럴 수가. 목 뒤로 자잘한 소름이 돋았다. 종인은 이것이 꿈이라면 어서 깨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울상을 지었다. 뱉어낸 음성까지 떨리고 있었다. 이건 정말… 정말…
“말도 안 돼.”
물체는 다름 아닌 바로 어젯밤 신사가 종인의 가슴팍에 달아준 브로치였다.
이 모든 이야기의 발단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도 돌아온 사춘기입니다. 원래는 이고나 였는데 필명을 사춘기로 바꿨습니다! 하... 갑자기, 완전, 뜬금없이, 청춘예찬을 팽개치고 (사실 팽개치지는 않았어요ㅠㅠ) 뱀파이어물을 가져오셨냐고 하시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청춘예찬이....너무 안써져서......올릴수가 없어서... 땜빵용으로 아주 오래전에 끄적여 놨던 망한 조각을 대신....올린다고...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없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손으로 썼는지, 발로 썼는지 알 수 없는 허접한 글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참고로 구독료가 점점 쎄지는 이유는.... 글이 너무 망글이라... 흑흑.... 저 포인트 벌려고 그러는거 진짜 아니에요. 진심으로. 아마 맥시멈이 30이고 그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을꺼에요.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