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퓨터퓨터
W.별모양곰돌이
고물 같은 컴퓨터가 드디어 고장이 났다.
“이럴 줄 알았어!!!”
며칠 전부터 상태가 이상하다 싶더니 결국 이런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과 특성상 컴퓨터로 작업해야 할 게 많은 데 그게 고장이 나고 만 것이다. 자료 날려 먹은 게 한 두 번이 아니라서 외장하드에 따로 저장하긴 했지만 컴퓨터 고치느라 든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거기다 가난한 자취생에게 컴퓨터를 새로 산다는 건 또 다시 할부의 노예가 되라는 소리! 그럴 순 없지. 아직 핸드폰 할부도 안 끝났는데...
어휴, 한 숨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수리를 부르면 기본으로 출장비 나가고. 부품 필요하면 돈 또 들어가고... 컴퓨터학과 친구도 없고. 왜 나는 컴퓨터학과를 가지 않고 신방과를 온 겁니까, 하늘이시여!
결국 수리를 불렀다. 수리하시는 분들은 다 친절하시다만 처음 본 사람과 낯을 많이 가려서 사람을 대하는 건 조금 힘들다. 그것도 하필 왜 저녁에 오는 건지. 컴퓨터가 고장이 나니 핸드폰 게임만 주구장창 했다. 핸드폰을 잡고 있는 손이 뜨거워서 몇 번을 옷에 문질렀는지 모르겠다. 근데 이것도 자세가 힘들어서 얼마 가지 않아 포기. 운동을 해야겠다.
친절하게도 도착 전에 전화가 먼저 왔다.
“2층이고 건물 비번은 0609요.”
-네, 십분 뒤에 도착합니다.
뭔 사내 놈 목소리가 이렇게 부들거려? 여자들이 딱 좋아할 목소리네. 전화를 끊고 다시 침대에서 뒹굴... 전기세 때문에 에어컨도 마음대로 못 키는 나는야 자취생. 하지만 곧 땀에 쩔어 올 불쌍한 기사님을 위해 에어컨을 틀기로 한다. 시원한 바람이 가장 직빵으로 오는 곳에 앉아 바람을 느꼈다. 바람의 요정이 된 것 마냥 고개를 꺾어 바람을 맞고 있으니 땀이 식어 기분이 좋다.
띵동~
“아, 네... 나가요!”
낯설음에 천천히 문을 여니 웬 강아지 같은 녀석이 양복을 빼 입고 있었다. 옆에는 공구 통을 들고. 안 어울리는데 묘하게 어울려.
“안녕하세요, 출장 부르셨죠?”
“아, 네...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뭐야? 왜 이렇게 상큼해? 기사를 따라서 내 방인데도 내 방 아닌 것처럼 들어갔다.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소매를 걷는다. 오. 마이. 갓. 팔뚝 겁나 성실하게 생겼네. 난 물렁물렁 물렁살인데... 내 팔이 뭔가 부끄러워서 옆에 팽개쳐 있는 가디건을 걸쳤다. 에어컨을 틀어 놨으니 나름의 변명을 되시겠다.
본체를 켰다가 껐다가. 여기저기를 보더니 흠... 한다. 왠지 저 다음에는 ‘고객님~ 수리비 꽤 나오시겠어요~ 33만 7천원 되시겠습니다~’ 라고만 할 것 같아...
“고객님~”
왔구나! 돈 뜯어먹는 그 때가...
“본체에 먼지가 좀 껴서 스파크가 일어 났어요. 다행히 제가 부품을 가지고 있는 게 있어서 그냥 이걸로 고쳐 드릴게요.”
“아, 네...”
“금방 하니까 그렇게 안 서 계셔도 돼요.”
아, 상냥해...
“저기 물이라도 한 잔...”
“네?”
“아니... 물이라도 한 잔...”
“아, 네. 감사합니다.”
냉장고를 여니 커다란 주전자가 나를 반긴다. 아, 맞다. 유리병에 옮기기 귀찮아서 주전자 채로 그냥 집어넣었지... 뭔가 민망했다. 상냥한 기사님은 본체를 고치시느라 정신이 없으니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물을 따랐다.
“여기...”
“감사합니다.”
단숨에 물을 들이키는 그 목젖이 너무 섹시하다. 와, 피부도 은근히 구릿빛이야. 왜 이렇게 물 넘기는 목소리가 야하지? 나는 침을 저절로 침을 삼켰다. 침 삼키는 소리가 너무 컸나? 혼자 쫄아 있는 데 상냥한 기사님이 다 마신 물 컵을 나에게 줬다. 나는 무슨 금덩어리라도 된 것 마냥 두 손으로 받았다. 아, 나 왜 이렇게 바보 같지. 울고 싶다...
싱크대 앞으로 가서 곁눈질로 상냥한 기사님을 봤다. 열중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이렇게 섹시할 수 있다니. 이래서 여자들이... 어라? 나 지금... 게이 된 건가? 헐?!!!!!!!!!!!!!!!!!!
**
하루에 몇 번을 한숨과 함께 지내는 건지... 컴퓨터는 정상적으로 아주 잘 돌아갔고 그 상냥한 기사님은 ‘남우현’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남긴 채 가졌다. 출장비 3만원과 함께... 부품비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그게 끝 이여야 하는 데 왜!!!!! 왜 김성규는!!!!!!!!! 왜 때문에!!!!!!!!!! 남우현하고 같이 그, 그... 헬렐레~ 하는 꿈을 꾼 거죠?
이럴 때는 다시 보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확인을 해 보는 거야. 컴퓨터야 미안하다. 사실 본체를 깨볼까... 하다가 이번에는 진짜 부품비 제대로 나올 것 같아서 소심하게 키보드에 라면 국물을 쪼르르- 부었다. 이거야 뭐 키보드 새로 사서 갈아 끼우면 되는 거지만... 에잇, 몰라. 내 목적은 상냥한 남우현님을 보는 거니까.
내 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셨다. 또 보니까 반가워요.
“고객님~ 키보드 고장 나셨다고 하셨죠?”
“네... 키보드가 안 먹어요.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원래 이런 건 잘 안 봐드리는데... 특별히 왔어요.”
“아, 감사합니다.”
저기요, 날 그냥 지나치고 그렇게 키보드만 보시깁니까? 나 오늘 되게 야한 옷 입었는데. 나를 보고 긴장하는 척이라도 좀... 제발 좀... 나는 일부러 에어컨을 껐다. 이놈의 집은 금방 더워지는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날 정도였다. 나는 최대한 많이 파인 나시를 입고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수염 깎는 면도기로 다리털도 밀었다고! 내 다리를 봐 예쁘잖아! 짧은 바지 입었잖아!
키보드를 고치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렸다. 좀 야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데 저 상냥한 남우현씨는 제 일에만 열중이다.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는 섹시하다더니 그 꼴이 지금 이 꼴이다. 힝... 날 안 봐줘도 멋있어.
“네, 이제 됐어요. 건조하니까 제대로 되네요.”
“네...”
젠장, 실력도 좋아. 금방 끝나네.
“출장비 드려야 하죠?”
“아, 괜찮아요. 안 받을게요.”
“왜요?”
“집이 이 근처예요. 오는 길에 들린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괜찮습니다. 갈게요.”
나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대는 나쁜 남자... 근데 그 모습도 너무 섹시해.
또 어떻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고민을 했다. 명함은 받았지만 개인 전화로 연락하기엔 이제 두 번 본 사인데... 그래도 나름 전화번호 저장은 했다. 카톡에 뜬 남우현님이 계시긴 하다. 보통 카톡 프로필은 셀카로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남우현님은 카톡 사진도 없어... 어쩔 수 없다. 컴퓨터야, 너가 희생을 좀 하거라.
**
“고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지 않습니다만. 나의 남우현님은 어디가시고 키 작은 아저씨가 오셨나요. 저기요,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 아니, 아니. 남우현님은 어디 있나요?
“원래 오시던 분은 안 바쁘신가 봐요?”
“아, 전에 여기 담당하던 분은 그만 두셨어요.”
“...네?”
아아... 그대는 왜 컴퓨터 기사인 건가요. 그대가 원한다면 나의 이름도, 성도 다 바꿀 수 있건만... 멘붕이다. 나의 멘탈은 기사 아저씨와 출장비 3만원과 부품비 7만원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겨우 두 번의 만남이었던 것뿐인데... 왜 이렇게 아쉽지. 힝. 오늘 예뻐 보이고 싶어서 머리에 젤도 바르고 옷도 제일 예쁜 걸로 입었는데... 뭔가 슬프고 억울해.
찌발, 나 오늘 마실거야!!!!!!
**
“엉엉~ 동우야아~ 엉엉, 어어어엉~”
“규형, 뭐가 문제야, 응? 말은 하고 울어!!!”
“어어어허어엉~ 어허헝~ 그대는 왜!!! 왜 내 컴퓨터를 고치셨나요!!!! 차라리 고장을 냈으면 내가 멱살이라도 잡지이~ 잡고 나를 때린 놈은 니가 처음이야!!!! 하고 뺨을 치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좋겠다! 니들은... 짝이 있어서... 엉엉... 나는... 나는... 어허허헝~ 허허헝~ 으어허헝!!!!”
내 눈 앞에 있는 장동우나 이호원이나 꼴 보기 싫어! 남우현님보다 못 생긴 주제에. 섹시하지도 않은 주제에. 힝... 아흠... 그나저나 나... 눈이 왜 이러지? 동우가 세 명이 되고 호원이가 네 명이 되고... 으아? 되게 웃긴다. 크하하하. 괴물 같아 괴물, 캬하하항~
**
아... 아침인데. 잠은 깼는 데. 눈이 안 떠져. 눈이... 나... 나... 실명 인 가요...
“규형, 괜찮아?”
“누구세요...”
“나야, 동우. 형 지금 되게 못생겼어. 크하하하하”
“동우야... 나 앞이 안 보여... 나... 혹시...”
“안 그래도 눈 작은 데 우니까 부어서 아예 앞이 안 보이는 거지.”
“푸하하하!!!!!!”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이호원 장동우 이 바퀴벌레 커플!!!!!!!
“아웅... 나 화장실... 쉬마려.”
“에이, 진짜 이 형 안 되겠네.”
“나 진짜 앞이 안 보여, 눈도 못 뜨겠어.”
“형 진짜 볼 만 하다.”
“이호원 너 내가 눈 뜨면 죽었다. 내가 심봉사다, 너네 공양미 삼백석 준비해라.”
“크하하하, 그러면 내가 장심청이야? 푸하항!!!”
“멍청아, 심청이는 성이 심이고 이름이 청이야.”
“아...”
멍청한 애들이랑 있으니까 멍청한 바이러스 옮을 것 같아. 어찌저찌 애들은 내 보냈다. 애들 말로는 내가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아저씨!!! 오라이!!!!!! 오라이!!!!!!” 라고 소리치면서 돈 들고 막 소리치고 있었다고 하는데... 거짓말일거야, 거짓말일거야, 거짓말일거야...
오늘은 그냥 꼼짝없이 있어야 겠다. 겨우겨우 눈을 비비니 조금씩 눈은 떠졌다. 거울을 보니 가관이다. 눈이 너무 부어서 안 그래도 길게 찢어진 눈이 더 찢어져 보였다. 볼 살은 더 터질 것처럼 부었고. 인간형 꼴뚜기 완성이요.
띵동~
올 사람 없는 이 곳에 누구십니까.
“누구세요?”
“고객님~ 컴퓨터 점검 나왔습니다~”
“부른 적 없는데요...”
“정기 점검입니다, 고객님~”
아웅... 지금 꼴이 말이 아닌데. 하긴, 그 키 작은 아저씨라면 뭐... 뭐... 뭐....... 야!!!!!!!!!
“하하, 성규씨. 안녕하세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녕 못 해요!!!”
남우현? 내가 헛 걸 봤나? 남우현이 여기에 있어? 왜? 왜? 왜? 내가 혹시 술 마시고 전화 했나? 내가 진짜 정신이 나갔구나.
“들어가도 돼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 안........... 아니, 돼요.”
“하하. 이젠 이 집이 익숙하네요.”
나 지금 완전 못 생겼는데. 태어났을 때 보다 더 못 생겼는데... 왜 지금 온 거야.
“성규씨.”
“...... 네?”
“나 오늘 성규씨 보러 왔는데.”
“네?”
“하하, 성규씨는 이런 모습도 귀엽고 예쁘네요.”
뭐시여? 지금 거시기가 거시기 허다고 한 기여? 거시기 혀서 거시기가 거시기를 하네?
“네?”
“저 오늘 성규씨한테 고백하러 왔어요.”
“네?”
“성규씨한테 고백하러 왔다고요.”
“네?”
“나 오늘 이렇게 멋있게 입고 꽃다발도 가지고 왔는데...”
“네?”
“아이, 참. 나 남우현이. 김성규씨한테 반해서. 지금. 여기에. 고백을 하러. 왔다고요.”
“....... 네...”
근데 왜 하필 오늘 왔냐고!!!
“저, 저기요...”
“네?”
“저 지금 되게 못생겼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좀 정상적인 인간의 형체가 되면... 그때... 만나요.”
“뭐 어때요? 성규씨 지금 되게 귀여워요.”
“아...”
귀엽다니...... 헐. 그가 온다, 온다, 온다...
He’s back
------------------------
뇨뇽님께 드리는 저의 부끄러운 단편이예뇨뇽ㅠㅠㅠㅠㅠㅠ
막 급하게 써서 스토리도 엉망이고 드립도 많지만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뇨뇽ㅠㅠㅠㅠㅠㅠ
뇨뇽님 항상 댓글 달아주시고 그래주셔서 감사해뇨뇽ㅠㅠㅠㅠㅠㅠ
앞으로 열심히 글 쓸게뇨뇽ㅋ
나름 떡밥 받아서 썼는데 맘에 드셨을지 모르겠뇨뇽;;;;;;
진짜 막 썼뇨뇽ㅋㅋㅋㅋㅋㅋ
즐거운 하루 보내뇨뇽!!!!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