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에도 당신이 나왔습니다.비취빛 두루마기를 입고 나를 향해 미소짓던 그 자태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당신을 위해 여태껏 살아왔는데,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홍련아! 홍련…." 홍련을 찾던 재향이 찰나의 인기척에 멈칫했다.연화루 뒤편의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홍련은 하물며 그 모습조차도 아름다웠다.가히 연화루의 머리기생 답구나. 재향은 픽 웃으며 자신의 절친에게 다가갔다. "뭐 하고 있느냐? 이런 곳에서." "어젯 밤에……. 또 그분을 보았어." 아주 훤칠하고 미남이셨어. 재향은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홍련은 그 꿈을 꾸고 나면, 꼭 아편을 한 것처럼 환상에 젖곤 했다. "너 또 그 꿈을 꾼 것이냐? 에휴, 네년도 참 징하고만……." 5년 전, 홍련이 자결 시도를 했다. 기방의 여인들이 자주 접하는 시련이랍시고, 아무도 그녀의 자결에 대한 연유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그들이 관심 있는 것은, 연화루의 머리기생이 죽느냐 사느냐의 극단적인 문제였다. 3일 뒤 그녀가 깨어나서 한 말이 재향을 울렸다. "꿈에서……. 진정한 내 사랑을 찾았어." 너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이야……?꿈 속에서만 그칠 사랑이라고 확신하기에 5년이 넘도록 허구의 사랑으로 자신을 채워가는 홍련이 안타깝다. "……." "홍련아. 행수 어르신께서 찾으신다. 어서 가봐." 그래. 가야지. 나는 풍류를 즐기는 자들의 놀잇감 아니더냐.그들을 홀리는 검붉은색 저고리로 갈아입고, 그들에게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거짓 웃음을 짓고, 스스로 치맛자락을 올리고.힘 있는 한량들을 사로 잡는 도구. "홍련아! 대감님 드셨다! 어서 뫼시어라." 나는 오늘도 탐욕에 물든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서 보인다. "그래. 네가 홍련이냐?" "예." 탐욕에 물든 시선이 참으로 불결하다. 당장이라도 이 방을 뛰쳐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것이 평생의 한이었다.그들의 손에 잡혀 이리 저리 흔들리는 제 모양새가 우습다. 한낱 인형 놀이를 하는 계집아이보다 못하십니다-. 마지막 말은 삼킨 채로, 그렇게 그들에게 몸을 맡겼다. 한산 세모시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예쁘게 차려입고 안성 청룡사로 줄타기놀이 가세. 이내 손은 문고리인가. 이놈도 잡고 저놈도 잡네.이내 입은 술잔인가. 이놈도 핥고 저놈도 핥네. 이내 배는 나룻배인가. 이놈도 타고 저놈도 타네. -'여사당 자탄가' - "저 년이 연화루의 홍련이라고 하옵니다." "얼굴부터 나 색녀요, 하고 써 있구만!" "어휴, 내가 저 년만 보면 속이 들끓소. 내 지아비를 홀려서 재산을 홀랑 벗겨먹었다니까?" "저, 저 새빨간 입술 하고는. 여시 아닌감? 쥐라도 잡아먹은거지 그래." "저 요물을 누가 데려가서 살 지……. 하기사, 기생년에게 진정한 연정을 품는 사내가 있긴 하오?" 여자들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비뚤어진 전모를 고쳐 쓰고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꽃밭이 있는 마을 변두리를 향해 걸었다.재향은 그 옆을 따라 걸으며 홍련을 바라보았다. 푸른빛 하늘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때묻은 기생의 것이 아니었다. 연정을 품은 평범한 여인이었다.홍련과 함께 살아온지 근 15년이었다. 누구보다도 홍련을 잘 아는 재향이었기에 그녀가 더욱 가여웠다.재향은 또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그 새 다 왔구나." "……이곳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워." "그러게 말이다. 잠시 이 근처에 들릴 데가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재향이 헐레벌떡 행수 어르신의 심부름을 하러 간 사이, 홍련은 꽃길을 걸었다.사르륵- 거리는 치마 끝자락의 소리가 기분 좋았다.고개를 숙이고 바람결을 느꼈다. 이제야 좀 자유로워진 느낌이 든다. 한참을 걸었을까-. "참으로 아름답소." 사내의 목소리에, 홍련은 전모를 들어올리고 시선을 올렸다. …… 아아. 몸이 떨렸다. 믿겨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구나. 나의 사람. 비취빛 옷을 입고 나를 바라보는 당신은, 진정 간밤에 다녀 간 그분이십니까. 정말 존재하셨습니까. 황홀경에 눈물이 그렁인다. 정말……. 내 님이 맞으십니까? 꿈으로만 그쳐질 사랑이 아니었어. 안도감에 다리가 풀릴 것만 같다.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그대의 목소리에 가슴이 저려온다. 이제서야 만나게 된 운명인데…. 당신의 앞에서조차 기생으로 남아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저는…. "세화입니다……." 재향이 말고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해 주지 않았던 나의 참 이름이다. 이제서야 말 해줄 수 있게 되었구나.. "그렇소…? 나는 김원식이라고 하오." 꽃잎을 타고 오는 당신의 눈빛에 숨이 멎는다.
어젯밤 꿈에도 당신이 나왔습니다.
비취빛 두루마기를 입고 나를 향해 미소짓던 그 자태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당신을 위해 여태껏 살아왔는데,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홍련아! 홍련…."
홍련을 찾던 재향이 찰나의 인기척에 멈칫했다.
연화루 뒤편의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홍련은 하물며 그 모습조차도 아름다웠다.
가히 연화루의 머리기생 답구나. 재향은 픽 웃으며 자신의 절친에게 다가갔다.
"뭐 하고 있느냐? 이런 곳에서."
"어젯 밤에……. 또 그분을 보았어."
아주 훤칠하고 미남이셨어.
재향은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홍련은 그 꿈을 꾸고 나면, 꼭 아편을 한 것처럼 환상에 젖곤 했다.
"너 또 그 꿈을 꾼 것이냐? 에휴, 네년도 참 징하고만……."
5년 전, 홍련이 자결 시도를 했다.
기방의 여인들이 자주 접하는 시련이랍시고, 아무도 그녀의 자결에 대한 연유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이 관심 있는 것은, 연화루의 머리기생이 죽느냐 사느냐의 극단적인 문제였다.
3일 뒤 그녀가 깨어나서 한 말이 재향을 울렸다.
"꿈에서……. 진정한 내 사랑을 찾았어."
너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이야……?
꿈 속에서만 그칠 사랑이라고 확신하기에 5년이 넘도록 허구의 사랑으로 자신을 채워가는 홍련이 안타깝다.
"……."
"홍련아. 행수 어르신께서 찾으신다. 어서 가봐."
그래. 가야지. 나는 풍류를 즐기는 자들의 놀잇감 아니더냐.
그들을 홀리는 검붉은색 저고리로 갈아입고, 그들에게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거짓 웃음을 짓고, 스스로 치맛자락을 올리고.
힘 있는 한량들을 사로 잡는 도구.
"홍련아! 대감님 드셨다! 어서 뫼시어라."
나는 오늘도 탐욕에 물든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서 보인다.
"그래. 네가 홍련이냐?"
"예."
탐욕에 물든 시선이 참으로 불결하다. 당장이라도 이 방을 뛰쳐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것이 평생의 한이었다.
그들의 손에 잡혀 이리 저리 흔들리는 제 모양새가 우습다.
한낱 인형 놀이를 하는 계집아이보다 못하십니다-. 마지막 말은 삼킨 채로, 그렇게 그들에게 몸을 맡겼다.
한산 세모시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예쁘게 차려입고 안성 청룡사로 줄타기놀이 가세. 이내 손은 문고리인가. 이놈도 잡고 저놈도 잡네.이내 입은 술잔인가. 이놈도 핥고 저놈도 핥네. 이내 배는 나룻배인가. 이놈도 타고 저놈도 타네.
-'여사당 자탄가'
-
"저 년이 연화루의 홍련이라고 하옵니다."
"얼굴부터 나 색녀요, 하고 써 있구만!"
"어휴, 내가 저 년만 보면 속이 들끓소. 내 지아비를 홀려서 재산을 홀랑 벗겨먹었다니까?"
"저, 저 새빨간 입술 하고는. 여시 아닌감? 쥐라도 잡아먹은거지 그래."
"저 요물을 누가 데려가서 살 지……. 하기사, 기생년에게 진정한 연정을 품는 사내가 있긴 하오?"
여자들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비뚤어진 전모를 고쳐 쓰고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꽃밭이 있는 마을 변두리를 향해 걸었다.
재향은 그 옆을 따라 걸으며 홍련을 바라보았다.
푸른빛 하늘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때묻은 기생의 것이 아니었다. 연정을 품은 평범한 여인이었다.
홍련과 함께 살아온지 근 15년이었다. 누구보다도 홍련을 잘 아는 재향이었기에 그녀가 더욱 가여웠다.
재향은 또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그 새 다 왔구나."
"……이곳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워."
"그러게 말이다. 잠시 이 근처에 들릴 데가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재향이 헐레벌떡 행수 어르신의 심부름을 하러 간 사이, 홍련은 꽃길을 걸었다.
사르륵- 거리는 치마 끝자락의 소리가 기분 좋았다.
고개를 숙이고 바람결을 느꼈다. 이제야 좀 자유로워진 느낌이 든다.
한참을 걸었을까-.
"참으로 아름답소."
사내의 목소리에, 홍련은 전모를 들어올리고 시선을 올렸다.
……
아아.
몸이 떨렸다. 믿겨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구나. 나의 사람.
비취빛 옷을 입고 나를 바라보는 당신은, 진정 간밤에 다녀 간 그분이십니까.
정말 존재하셨습니까. 황홀경에 눈물이 그렁인다.
정말……. 내 님이 맞으십니까?
꿈으로만 그쳐질 사랑이 아니었어. 안도감에 다리가 풀릴 것만 같다.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그대의 목소리에 가슴이 저려온다. 이제서야 만나게 된 운명인데….
당신의 앞에서조차 기생으로 남아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저는….
"세화입니다……."
재향이 말고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해 주지 않았던 나의 참 이름이다.
이제서야 말 해줄 수 있게 되었구나..
"그렇소…? 나는 김원식이라고 하오."
꽃잎을 타고 오는 당신의 눈빛에 숨이 멎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