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
이불에 푹 파묻혀 자던 명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하품을 쩍, 한 명수가 손을 뻗어 폰을 집어 들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는 줄 알았는데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문자를 확인하려던 명수가 그냥 그대로 문자를 내버려두고 시간을 확인했다. AM 11:12. 가만히 시간을 보던 명수가 아직 어두운 방 안을 둘러봤다. 폰을 끄고 제자리에 내려놓은 명수가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 세수를 하고 빠르게 머리를 감은 명수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하고 수건을 든 채 방으로 돌아왔다. 얼굴에서 떨어지는 물기를 닦아내고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던 명수가 커튼을 걷었다. "…비?" 축축하게 젖은 풍경을 보던 명수가 창문 처마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보며 차가운 창문에 고개를 기댔다. 색색깔의 우산들이 펼쳐져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우산들을 지켜보던 명수가 분홍색 우산을 발견하고는 뭔가 생각이 난 듯 흥미롭게 분홍색 우산을 바라봤다. 우산을 쓰지 못한 어느 남자가 손바닥으로 비를 막으며 분홍색 우산 안으로 쏙 들어갔다. 갑작스런 일에 명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아아, 죄송해요, 우산이 없어서요' '아…' '저 앞에 정류장까지만 같이 가도 되죠?' '네…' 일기예보를 봐 놓고도 우산을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뛰어가던 명수가 대뜸 눈 앞에 보이는 분홍색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당황한 듯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저를 보는 사슴 같은 남자에 미안하다는 듯이 웃어보인 명수가 남자를 툭 치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름이 뭐에요? 볼을 우산처럼 분홍색으로 물들인 남자를 힐끔이던 명수가 대뜸 물었다. 이 성열이요… 성열의 말에 씩 웃은 명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열의 나이를 물었다. 23살이요. 묻는다고 또 대답한 성열이 짙은 고동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우산을 좀 더 꽉 쥐었다. '다 왔다. 잘가요, 성… 이거…' '네? 아, 젖었네요…' '……' '그…저기…' '폰 줘봐요' 어벙벙한 얼굴로 폰을 내민 성열이 생글생글 웃던 얼굴을 지우고 잔뜩 굳어져 있는 명수에 입술을 물어뜯었다. 남자 둘이 쓰기에는 작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저가 조금 젖는 거 보니 괜찮겠거니 한 것과는 다르게 성열의 코트가 푹 젖어있었다. 번호를 저장한 명수가 다시 폰을 성열에게 돌려주었다. 번호, 저장해 놨으니까 연락해요, 세탁비, 줄게요. 폰을 받아 주머니에 넣은 성열이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꼭 연락해요, 알겠죠?' '네…' '잘가요, 성열씨' 다시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돌아온 명수가 성열에게 손을 흔들고 멈춰서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가고도 한참을 정류장에 서 있던 성열이 수줍게 웃었다. ▷▷ 모자에 하얀 털이 송송 달린 연분홍색 야상을 입고 나온 성열이 정류장에 서서 저를 기다리는 명수를 보며 살며시 웃었다. 천천히 명수에게 다가간 성열이 명수의 앞에 조심스럽게 섰다. 제 앞에 온 성열을 본 명수가 사르르 웃었다. 그 웃음에 볼을 발갛게 물들인 성열이 명수를 따라 웃었다. 귀엽네요. 성열의 머리를 쓰다듬은 명수가 작게 속삭였다. 『세탁비 말고, 밥 사주세요!』 웃으며 성열의 문자를 성열의 눈 앞에 대고 흔들어 보인 명수가 가자며 성열의 손을 잡아 끌었다. ▷▷ '많이 아파?' '아니이…나 괜찮아…' '씁, 혼날래? 거짓말 하지 마' 입상을 쓰는 명수에 입술을 삐죽인 성열이 미지근해진 물수건을 갈아주는 명수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왜? 물 줄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보는 성열에게 물은 명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자락을 잡으며 고개를 살살 젓는 성열에 다시 자리에 앉은 명수가 성열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는 성열을 보며 미소를 지은 명수가 괜찮아, 하고 대답하며 성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래도…크리스마슨데…' '왜, 너랑 있잖아' '하지만, 오늘은 아픈 사람 간호하라고 있는 날 아니잖아…' 그렇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애인이랑 있잖아. 성열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 명수가 성열의 가슴팍에 손을 올려 아이를 재우 듯 토닥였다. 울상으로 저를 보는 성열에게 웃으준 명수가 푹 쉬어야지 빨리 나아, 하고 성열에게 말했다. 나는 안 졸린데… 웅얼거리는 성열에 살며시 웃은 명수가 성열의 옆에 누워 성열을 토닥였다. - 커튼을 친 명수가 거실로 나갔다. '이거 봐라? 내가 너 주려고 만든 거야! 맛있겠지?' 딥블루 색의 컵에 코코아를 타서 명수에게 건넨 성열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명수를 쳐다봤다. 눈을 깜박이던 명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김을 모락모락 풍기던 코코아도 성열도 사라져버렸다. 한숨을 푹 내쉰 명수가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찬찬 깊숙한 곳에서 딥블루색의 머그컵을 꺼낸 명수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커피포트에 물을 담고 버튼을 눌렀다. 코코아 가루가 든 통을 꺼낸 명수가 얼른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커피포트를 주시했다. 딱, 소리를 내며 불이 꺼지는 커피포트를 들고 머므컵에 물을 조금 따른 명수가 코코아 가루를 푹푹 퍼서 컵에 담았다. 물을 부어가며 숟가락으로 휘휘 저은 명수가 진하게 타진 코코아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던 명수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허벅지 위의 허공을 손으로 쓰다듬듯이 했다. "아…" 움찔하며 허벅지를 내려다 본 명수가 성열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도 고치지 못한 버릇들 중 하나. 한숨을 내쉰 명수가 코코아를 마시며 어깨에 걸쳐놓은 수건을 잡았다. 반쯤 남은 코코아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머리를 말리기 시작한 명수가 대충 머리를 털어내고 다시 머그컵을 잡았다. 멍하게 코코아를 마시던 명수가 문득 시선이 간 진열장 옆 책꽂이에 가득한 DVD를 보며 성열을 떠올렸다. 뭐에 홀린 듯 책꽂이 앞으로 간 명수가 성열이 좋아하던 DVD 하나를 꺼냈다. DVD를 재생 시키고 조금 남은 코코아를 마저 마신 명수가 테이블 위에 머그컵을 내려놨다. "봐도 꼭 지같은 것만 봐" 입술을 삐죽인 명수가 DVD를 보며 중얼거렸다. - DVD를 보다가 잠든 명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일어나기 무섭게 허기짐을 느낀 명수가 TV화면을 끄고 머그컵을 가지고 부엌으로 향했다. 싱크대 안에 머그컵을 내려 놓은 명수가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냉장고를 열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반찬통들 중에서 두 개를 꺼낸 명수가 식탁 위에 그것을 내려놓고 렌지 앞에 섰다. 된장찌개를 데우기 위해 불을 켠 명수가 밥을 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적당히 식은 밥을 보던 명수가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데우던 불을 끄고 찌개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반찬통의 뚜껑을 연 명수가 문득 식탁 위에 차려진 것들을 보고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성열이 차려주었던 밥상과 같은 메뉴에 명수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그 때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하…진짜…" 눈물이 날 듯했다. 요새 점점 괜찮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괜찮아지기는 커녕,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과 함께 밥을 먹던 명수가 밥을 먹다 말고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뚜껑을 덮어 냉장고 속으로 다시 반찬통을 집어 넣고 먹던 밥을 다시 밥솥으로 되돌려 놓고, 된장지개의 뚜껑을 닫았다. 부엌을 빠져나온 명수가 소파에 앉았다. - 9시가 다 되어가는 저녁, 비오는 날이면 갔었던 곳이 생각난 명수가 차를 끌고 그 곳으로 향했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도로는 차로 꽉 막혀있었다. 느릿느릿한 행렬을 보다가 툭툭하는 소리를 내며 차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를 듣던 명수가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고 싶은지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빗방울소리를 듣던 명수가 희뿌연 빛을 내뿜고 잇는 구름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히 구름뭉치를 보던 명수가 곧 그것이 구름에 가린 달이라는 걸 알아채고 슬프게 웃어보였다. 어느 한 구간을 벗어나자 도로가 뻥 뚫렸다. 그 곳으로 가며 성열을 떠올리던 명수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칠만큼 내리는 비와 함께 가라 앉는 기분으로 운전을 하던 명수가 그 곳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조수석 바닥에 내려놨던 우산을 집어 들고 차에서 내린 명수가 눈을 사로잡는 야경을 보며 왜 성열이 이 곳을 좋아했는지를 깨달았다. "그 때는 몰랐는데…" 비에 젖은 서울의 야깅이 매우 아름다웠다. 반짝거리는 예쁜 불빛들이 명수의 눈동자 안에 들이찼다. 일렁이며 차오른 눈물이 명수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보고 싶다, 성열아. 반짝거리는 서울의 야경 때문에 은은한 불빛 색으로 물들던 성열이 보였다. 반짝이는 눈으로 야경을 보는 성여릉ㄹ 끌어 안고 부드럽게 키스하면 그 예쁜 눈동자가 곧 저로 가득 찼던 걸 기억해낸 명수가 피식 웃으며 눈물 한 방울을 더 떨궜다. "이렇게 니가 아니라, 불빛들이 보이는 걸 보니까" 진짜 헤어진 게 느껴져. 그래서 딱 살아갈만큼 아파. |
두번째로 옮겨온 글!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쓴 글 중에 제 마음에 드는 글은 별로 없어요...ㅎㅎ...
그래도 그렇게 하면 제 글이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에 슬금슬금 그나마 나은 글들을 옮겨오고 있지요..ㅎㅎ!!
오늘은 짝남과 같이 집에 오는 길을 걸었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