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눈을 뜨면 이미 해가 져버린 깜깜한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려고, 햇빛을 보려고 노력해봐도 다 헛수고였다.
밤을 새서라도 보고싶었지만 왜인지 볼 수가 없었다.
마치 무슨 마법에 걸린것처럼 난 절대 아침을 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어둠이 무섭다.
이렇게나 지독하게 깜깜한 어둠이 무섭다.
내가 이렇게 된 날, 부모님을 잃었다.
사실 그 날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내게 돌지나기 전이라고 말하고 또 누구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전이라고 하고 나는 초등학교 때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 날 이후로 내 머릿속 기억들이 모두 엉키고 엉켜 풀수 없는 실타래가 되어버렸다.
손도 못댈 정도로 엉켜버려서 그냥 잘라 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봐왔던 많은 것들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정하게 웃어줬던 엄마 얼굴도, 나를 꼭 안아주던 아빠의 품도, 우리가 여행하며 탔던 자동차도, 포근한 우리집도...
잊혀 지고 있다.
그래서 어둠이 무섭다.
혼자 이 어둠속을 얼마나 오래 걸었을까?
당신이 찾아왔다. 아빠와 아는 사람이라며 다가왔다.
당신을 내칠수 없었다. 왜냐면 나혼자서는 난 아무것도 아니니까.
내게 당신은 내 아버지고 내 어머니고 내 눈이고 내 모든 것이다.
당신은 참 친절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내 옆을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둠이 무섭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날에는...
잘라버린 실타래를 다시 주워 주섬주섬 풀어 확인하듯...
이런 날이면 잊어버린 것같은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이 흘러 내가 이미 성인이 되어버렸지만 기억이...아니 그 느낌이...
섬칫하고 차가운... 슬픈 그 느낌이 온 몸을 지배했다.
내 몸이 떨자 당신은 내게 진정하라며 따뜻한 녹차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떨리는 몸을 주체 못하고 흘려 내 다리에 엎었다.
뜨거웠다.
하지만 여전히 차가웠다.
"조심하셔야..."
부르르 떠는 손으로 더듬어 당신의 옷깃을 꼭 잡자 말을 잇지 못했다.
가만히 내 등을 쓸어줄 뿐이었다.
오늘따라 왜인지 진정이 안된다.
"...나 쉬고 싶어..."
"침대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나의 손을 꼭 잡고는 익숙하게 나를 방으로 데려갔다.
내 방 냄새가 내 코에 닿자 맘이 편해지고 긴장이 풀려버려 주저 앉았다.
그런 나를 당신은 안아올려 침대에 눕혀주었다.
신기하지, 당신은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줄까?... 그저 우리아빠와 친한사이라서? 내가 안타까워서?...
나가려는 당신의 옷깃을 다시 꼭 잡았다.
"오늘은 내옆에 있어줘요"
당신은 아무런 대꾸도 않고 침대 옆에 앉았다.
손을 뻗어 당신의 얼굴로 향했다.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감촉만으로도 알 수 있다.
오똑한 코, 두껍고 부드러운 입술, 진한 쌍커풀, 거친듯 보들한 피부.
잊지 않으려 매일 당신의 얼굴을 만져본다.
"안보여도 알아요. 아저씨는 꽤나 잘생겼죠?"
내 말은 여전히 무시하는 당신이었다.
그래도 난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좋아.
반대편 왼팔 역시 뻗어 두얼굴을 당신의 볼에 가져갔다.
그리고 내 입술을 당신의 입술인지 어디인지 모를 곳에 대었다.
당신이 나에게 잘해주는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내가 김종인, 당신을 좋아하니까.
당신의 옷깃을 다시금 당겨 내 침대 옆으로 끌었다.
"아저씨,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