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W. The Sun
학교 2013 박흥수 X 학교 2013 고남순
화이트 크리스마스 강미르 X 시크릿 가든 한태선
친구 2 최성훈 X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
신사의 품격 김동협 X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윤정혁
외
아름다운 그대에게 존김, 뱀파이어 아이돌 까브리,
검사 프린세스 이우현, R2B 지석현
아… 젠장. 머리 깨질 것 같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르의 침대 위에 눕혀져 있던 태선은 강렬한 취기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제 몸 위에 겹쳐진 채 거칠게 저를 짓누르고 있는 미르의 몸을 힘겹게 밀쳐댔다.
“아파, 좀 살살… 아읏-”
“아프라고 하는 거야.”
“미친 새끼….”
“아, 진짜 더럽게 말 많네.”
짐짓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든 미르는 머리가 아파 눈을 감은 채 달뜬 숨을 색색 내뱉고 있던 태선의 도톰한 입술을 거칠게 집어 삼켰고, 억지로 강하게 혀를 섞으며 태선의 입속을 탐했다. 아, 이 새낀 소주를 얼마나 쳐 마신 거야. 마주 닿은 입을 통해 전해져 오는 독한 소주 향과 그 씁쓸한 맛에 살짝 미간을 구긴 미르는 금방이라도 입술을 떼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전해지는 씁쓸함 속의 달큰한 맛과 말캉한 입술의 느낌. 온 정신을 빼앗아가는 매혹적인 체취에 이끌려 쉽사리 입술을 떼지 못했다. 게다가 무슨 심정의 변화가 있었는지 제 목 뒤로 감겨진 태선의 얄쌍한 팔과 적극적인 태도에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던 둘의 입술은 끈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타액에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로 살짝 훑어낸 태선은 야릇한 느낌에 주변이 붉게 달아오른 눈을 미르에게 맞추며 조금은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한 게 있어.”
“대답해 줄 생각 없어.”
“너 나 좋아해?”
“뭐…?”
태선의 물음에 미간을 구긴 미르는 어이없다는 듯 허- 하고 웃으며 태선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그럼 이건 왜 하는 건데?”
“아파하는 거 보는 게 좋거든.”
그런 미르의 대답에 살짝 어깨를 으쓱한 태선은 미르의 목 뒤로 넘겼던 팔을 더 단단하게 감았다. 그러자 안 그래도 품이 널널한 태선의 티셔츠가 조금 벌어져 깊게 파인데다 매끈하기 까지한 쇄골이 훤히 드러나 잠시 미르의 시선을 빼앗았고, 미르의 시선을 눈치 챈 태선은 속으로 작게 웃고는 거친 키스에 조금 부어오른 제 아랫입술을 혀로 살짝 훑어 내리며 말했다.
“웃기고 있네.”
“….”
“그럼 나랑 내기 해.”
“…내가 왜.”
“질 것 같아서 그러나 보네.”
태선의 말에 이를 바드득 간 미르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는 태선을 노려보며 저항하지 못하게 세게 짓누르고 있던 태선의 허벅지를 더 강하게 쥐기 시작했다. 내가 져? 너한테? 너 따위한테? 붙잡힌 허벅지가 점점 아파와 태선이 아랫입술을 깨물 때까지 아무 말 없던 미르는 끝내 하- 하고 숨을 뱉으며 말했다.
“들어나 보자. 어떤 개 같은 내기인지.”
“넌 아까 분명하게 말했지,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그게 뭐.”
“나도 널 싫어하는 건 매한가지니까 그걸 이용해서 내기를 하는 거야.”
“…?”
싱긋 웃은 태선은 천천히 상체를 조금 들어 올리며 미르의 귓가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고, 그런 태선의 행동에 잠시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던 미르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누가 먼저 상대방을 꼬시는가 대결하는 거. 어때?”
“…뭐?”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뒤로 누운 태선은 손을 뻗어 미르의 셔츠 단추를 천천히 풀어 내리기 시작했고, 그런 태선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미르는 그 손을 잡아채며 태선의 머리 위로 짓눌렀다.
“가지가지 한다 아주. 그딴 내기를 누가 하고 싶어 해?”
“자신 없으면 안 하는 거지. 아니, 못하는 건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한 태선은 미르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 조금씩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그러느라 고개를 옆으로 돌린 태선의 예쁘장한 옆선과 매끈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흰 목덜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미르는 살짝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태선의 손목을 더 강하게 붙잡았다.
“내기에서 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중에 정해. 지금은 이게 더 급하잖아?”
싱긋 웃은 태선은 아무 말 없이 미르를 올려다봤고, 그런 태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미르는 작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말했다.
“벌써 시작이냐.
“….”
“이건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이거 끝내고 시작하는 게 좋을 걸.”
“무슨 자신감이야 그건?”
“야, 내가 말을 안 했는데….”
차가운 비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숙인 미르는 태선의 흰 목덜미를 혀로 살짝 핥아내고는 색기가 뿜어져 나오는 태선의 귓가에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깐 물속이라 실력 발휘를 못했거든. 본격적으로 하면 나한테 안 빠지고는 못 배길 텐데. 테크닉으로는 아무한테도 안 지거든 나.”
“원하는 바야. 시시하면 재미없잖아. 그래야 좀… 즐기는 척 연기를 해주지.”
묘한 신음 소리가 섞여 듣기만 해도 몸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듯한 태선의 목소리를 들은 미르는 순식간에 제 셔츠를 찢어내듯 벗어던지고는 누워있는 태선에게 달려들었고, 그렇게 욕망에 들끓어 오르는 뜨거운 두 몸은 순식간에 뒤섞여 거칠게 엉키기 시작했다.
**
끝내 술주정이란 술주정은 다 하다가 잠든 남순을 방으로 데려가 침대 위에 눕힌 것은 흥수였다. 그래도 잠들어서 다행이다… 깨어 있었으면 난 아마 이 새끼 칭얼대는 거 다 받아주다가 K.O 당했을 거다. 곤히 잠든 남순의 몸 위에 이불을 잘 덮어준 흥수는 여름감기라도 걸릴까 노심초사함에 에어컨 온도를 조금 올려 딱 잠자기에 쾌적한 온도로 맞춰 두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세심한 것을 챙기던 흥수가 마지막으로 남순의 머리칼을 정돈해 주고는 방을 나서려는 찰나, 잠들어 있던 남순이 중얼중얼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가지마….”
“…뭐?”
어렴풋한 울음기가 섞여있는 남순의 목소리에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몸을 돌린 흥수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 모로 누운 채 끙끙거리고 있는 남순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그 앞으로 다가가 벌써부터 식은땀이 배어나오고 있는 이마에 손을 올렸다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어깨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남순아. 왜 그래?”
“안 돼… 가지마 제발….”
“남순아.”
“내가 잘못 했어… 제발… 나 버리지 마….”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허공을 향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남순의 손을 꽉 붙잡은 흥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하릴없이 남순을 흔들기만 했다. 대체 어딜 가지 말라는 거야…? 몸도 부들부들 떨리는 걸로 봐서는 심상치 않은 꿈인데 이거….
“젠장… 대체 무슨 꿈이길래 이렇게 힘들어 해?”
“가지마….”
“남순아, 일어나 봐. 어? 일어나….”
“가지마 흥수야… 흥수야….”
뭐…? 누구? 남순의 애처로운 목소리에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낀 흥수는 그대로 온몸이 굳어 움직이질 못했고, 그 꿈이 꽤 고통스럽고 슬펐는지 긴 속눈썹이 파들파들 떨리던 남순의 눈에서는 끝내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설마… 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내가 남순이를 버리는 그런 꿈? 가볍게 붙잡고 있던 남순의 손을 더 강하게 부여잡은 흥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옆으로 흘러내린 남순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내며 울음때문에 붉게 달아오른 부드러운 볼을 다른 한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남순아, 나 여기 있어. 눈떠봐. 어?”
그런 흥수의 손길에 잠시 고개를 작게 움직이던 남순은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눈을 떴고, 제 앞에 있는 흥수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울음에 잘게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흥수…야….”
“술 마시고 진상 부리고 잠자다 울고… 아주 가관이다 새꺄.”
장난스럽게 말한 흥수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남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 으쌰-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남순의 옆에 누웠다. 손님용으로 꾸며놓은 방이라 1인용 침대인 남순의 침대 위에 흥수가 올라가자 먼저 누워있던 남순이 가장자리로 밀려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술기운에 정신이 없는데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시트를 꽉 쥔 남순은 울음에 살짝 잠긴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좁아. 네 방가서 자.”
“이러면 안 좁아.”
옅게 미소 지으며 남순을 제 쪽으로 끌어당긴 흥수가 남순의 고개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하며 남순을 품에 한가득 끌어안자 비좁았던 1인용 침대 위에 공간이 어느 정도 남아 둘 다 그런대로 편안하게 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뭔가 맘에 들진 않는지 입을 삐쭉 내민 채 뭐라 중얼거리고 있는 남순의 등을 규칙적으로 토닥이던 흥수는 베개를 남순의 쪽으로 더 움직이며 말했다.
“내가 아무데도 안 간다는 것을 증명해야 다음부터 그 딴 악몽 안 꾸지.”
“…악몽은 무슨.”
“입 다물고 그냥 자. 너 잠들면 갈게.”
흥수의 듬직한 품안에 안겨 이리저리 시선을 움직이던 남순은 무언가 쿵쿵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다가 끝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가볍게 감았고, 그런 남순의 어깨를 규칙적으로 두드리던 흥수는 시간이 좀 지나 남순의 숨소리가 잠이 든 듯 가벼워지자 남순이 깨지 않게 한숨을 내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잊혀지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진 듯 제 머리를 꾹꾹 누르던 흥수는 몸을 일으키려다 잠시 고민을 하고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어차피 주사하는 거라 기억 못할 테니까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잡아놓고 안 놔줬다고 말해야지. 내 방까지 내려가는 것도 귀찮다. 편한 자세를 찾아 조금씩 몸을 들썩이던 흥수는 그런대로 자세가 편해지자 제 품에 안겨있는 남순을 가볍게 끌어안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아, 근데… 아래층에서 뭐가 이렇게 쿵쿵 대는 거야… 시끄러워 죽겠네. 이 늦은 밤에 뭐, 가구라도 고치나?
**
“괜찮겠어 형?”
“…괜찮다고. 이것 좀 놔.”
잠들었다 깨어나면 멀쩡해지는 타입이긴 했지만 과음을 해서 그런지 아직도 남아있는 술기운에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정혁은 괜찮다는데도 끈덕지게 제 팔을 부여잡은 채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도와주던 동협을 밀쳤고, 그런 정혁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동협은 제 복슬 거리는 머리를 짜증스럽게 흩뜨리고는 다시 정혁의 손목을 잡아챘다.
“아니, 내가 뭐 큰 거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방까지 데려다 주겠다는데 왜 그래?”
“필요 없어. 그것보다 머리 울리니까 그 입 좀 닥쳐.”
짜증스럽게 말을 내뱉은 정혁은 불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계단 위로 은연하게 비치는 달빛에 의존해 계단을 오르다 반층 정도 올랐을 때쯤 또다시 제 손목을 붙잡은 동협의 손이 걸리적거리기 시작해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이 새끼는 왜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그렇게 붙어 다니지 말라는데도 도움 같은 거 필요 없다는 데도 항상 내 옆에 있다.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어서 문제야 얘는. 끝내 풀어지지 않는 동협의 손에 욕지거리를 뱉으며 몸을 돌린 정혁은 그 어둠 속에서 저보다 키가 큰 동협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들며 말했다.
“김동협. 제발 내 일에 신경꺼라. 어?”
“….”
“귀찮아 죽겠다고 몇 번을 말해? 너 때문에 신경질 나 죽겠으니까 제발 좀 내 앞에서 꺼져.”
그렇게 말하는 정혁은 달빛 아래에 서있어 그 모습을 완연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그와는 달리 그림자에 가려진 채 어둠 속에 들어가 있는 동협의 모습은 어렴풋한 실루엣만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정혁은 동협의 표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어떤 표정이건 상관은 없지만 상대방의 표정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화를 더 진행한다는 것은 과도한 위험부담이었던 정혁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내려 바닥을 바라봤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동협은 붙잡고 있던 정혁의 손목을 놓으며 작게 한숨을 뱉었다.
“형은 내가 왜 이러는지 아직도 모르는구나.”
“…헛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
“내가 그렇게 수없이 말을 했는데….”
차갑게 말을 내뱉은 정혁은 그 뒤로 들려온 동협의 말은 철저히 무시한 채 몸을 돌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동협에게 잡혀 몸이 뒤로 기울어지나 싶더니 강하게 계단 벽에 밀쳐져 등을 세게 부딪힌 정혁은 그 고통에 작은 신음 소리를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너 이게 뭐하는 짓…!”
달빛 아래 드러난 동협은 꽤 화가 난 듯한 눈빛으로 정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동협의 무서운 분위기에 말문이 막힌 정혁은 시선을 급하게 옆으로 돌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학교에서 꽤 싸움 좀 하는 놈이었다더니 분위기 잡으니까 진짜 무섭네. 살짝 겁이 난 정혁은 제 양 어깨를 강하게 쥐고 있는 동협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칠 생각으로 손을 천천히 올렸지만 그런 정혁의 계획은 금방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뭐라 말을 뱉으려는 듯 천천히 벌어지던 동협의 입술은 뜻밖에도 정혁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고, 그런 동협의 기습 키스에 당황한 정혁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 순간 숨을 멈췄다. 그 사람에게 입을 맞추던. 병원에서의 그 키스와 닮아있다. 또 다시 머릿속을 강렬하게 헤집는 추억―어쩌면 고통스러운 기억―들에 눈을 꽉 감은 정혁은 어느새 제 입 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동협의 혀에 묘한 기분이 들어 목을 울리며 끙끙거렸다. 내가 이래서 이놈이 싫다. 이놈이 나에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 사람에게 내가 하던 것과 많이 닮아있어서. 그 사람을 잊고 싶어도 계속 생각나게 해서. 그래서 싫다. 얘는 알까? 자신이 날 얼마나 괴롭게 만드는지.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렇게 달빛 아래서 시작된 키스는 아래층에서 정리를 다 끝마친 존과 우현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
넓은 테라스 가장자리에 자리한 성훈은 담배 한 개피를 물고 그 끝에 불을 붙이고는 그 매캐한 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머리가 복잡하던 와중이었다. 머리를 식히려 여행 간다는 것을 따라오긴 했지만 끈질기게 따라오는 제 실수에 대한 죄책감에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지그시 누르던 성훈은 가볍게 눈을 감고 다시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 매캐한 연기가 폐 속에 꽉 들어차 생생한 폐포 하나하나를 검게 물들이는 듯 속이 쓰려옴에 그 연기를 빠르게 밖으로 뿜어낸 성훈은 그 흰 연기가 공중에 스러져가는 것을 느끼며 담뱃재를 가볍게 털어냈다.
“담뱃재 그렇게 함부로 버리면 안 되는데….”
이건… 그 애 목소리 인데. 눈을 뜬 성훈은 고개를 살짝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고, 그렇게 말한 수하는 터덜터덜 걸어 성훈의 옆으로 다가가고는 테라스 아래에 자라나있는 잔디 위에 담뱃재가 떨어진 것을 보며 작게 탄식을 뱉었다.
“아, 저거 봐봐요. 잔디 죽겠네.”
“왜 따라 나왔냐.”
“…그러게요. 정신 차려보니까 여기던데요?”
어깨를 으쓱하며 길게 숨을 뱉은 수하는 맥주를 얼마 안 마셨는데도 취기가 올라오는지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며 늦은 밤, 숲에서 흘러나오는 습기를 머금은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래도 여기 공기는 좋네요.”
“숲속이니까.”
느릿하게 대답한 성훈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는 것에 집중했고, 멍하니 숲속을 응시하던 수하는 성훈을 힐끗 쳐다보다 시선을 살짝 내리깔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처음에 들었던 것… 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묻고 싶어 미치겠다. 물어보면 또 화낼 것 같아서 억지로 참고 있긴 한데… 언제까지 이 궁금증을 참을 수 있을지가 문제다. 입을 꾹 다문 채 제 궁금증을 속으로 꾹꾹 눌러대던 수하는 고개를 들어 검은 벨벳 위에 조그마한 보석들이 세세하게 박혀있어 하나하나 섬세하게 빛나고 있는 듯한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역시 숲속이라 그런가 경치 좋다.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온 거냐.”
“…네?”
“네가 읽었다는 내 생각. 너 지금 그거 엄청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와, 대박이네.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내린 뒤 의외로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성훈을 멍하니 응시하던 수하는 눈을 가늘게 Em며 말했다.
“혹시 형도 남 생각 읽어요?”
“아니.”
“근데 그걸 어떻게….”
“그냥 그런 것 같아서.”
그냥 때려 맞춘 건데 놀라기는. 수하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속으로 작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느라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툭툭 털어내던 성훈은 담배를 피느라 목이 조금 칼칼해졌는지 목을 가다듬고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데, 말 해줄 수가 없다 그건.”
“…말 해주실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만큼 심각한 문제니까.”
“오해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두는데.”
“…?”
“안 죽었다. 아직 살아 있어.”
그렇게 말한 성훈은 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테라스 바닥에 던져 밟아 끄고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고, 테라스에 홀로 남은 수하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냉기가 흐르는 철제 테라스 난간을 붙잡고는 제 무릎에 턱을 기대며 작게 말했다.
“혹시 살인한 건 아닌가 걱정한 건 또 어떻게 알았대.”
눈을 보면 생각을 읽는 나보다 남의 마음 읽기는 훨씬 잘하는 것 같다. 이거 은근 경쟁심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수하는 그래도 궁금했던 것이 절반은 풀려 속이 조금은 풀리는 듯 시원하게 숨을 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