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mm - no way back
들리는 바로는 도경수가 수혈과 봉합수술을 거쳐 시체처럼 잠만 자다가 깨어났고, 그대로 저 혼자 퇴원수속을 밟고는 사라졌다고 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연락이 닿는 보호자가 한 명도 없어서 담임이 밤새 걔 옆을 지켰다더라. 라는 말도 있었다.
기구한 인생아.
어쩌면 그리도 박복한지.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도경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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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는 입술이 붉다. 억지로 실리콘 따위를 주사해 넣었는지는 몰라도 부자연스럽게 통통한 입술은 항상 새빨간 핏빛 루즈에 뒤덮여있다. 그리고 항상 그 입술로 야살맞게 나를 부른다.
종인아, 배는 안 고프니?
우리 종인이, 공부는 잘 되고?
그렇게 운만 떼곤 건성으로 대답하는 나는 쳐다도 보질 않고, 그냥 친절한 어머니 대사에 스스로 만족한 듯 웃으며 고개를 살랑인다.
어디 디너파티라도 있으신가 봐요.
나는 속으로 그 말을 삼키며 방문을 굳게 닫았다. 하지만 그 아줌마는 분명히 예쁜 데가 있다. 세상 때는 하나도 묻혀 본 일이 없는 양 순박하고 어린 눈동자가 바로 그것이다. 저렇게 맑은 눈이 늙은 여우에게 박혀있다니. 그래서 나는 부러 아줌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일. 아주 당연한 사실.
그 아줌마에게서 난 소생, 도경수도 똑같은 눈동자를 가졌다.
나로써, 눈을 마주치기가 더 꺼려지는 편은 이쪽이다. 일렁일렁한 그 애의 물방울같은 눈알과 한번 시선이 마주치면 그 애의 무신경한 표정 같은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저절로 신경쓰이게 만드는, 또렷하고 동그란 눈. 그것이 나를 꽉 감쌌다가 놓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보아뱀같은 눈빛.
아줌마가 과일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되도록 얌전하게 말했다.
"노크 부탁드렸잖아요."
아줌마는 호호거리며 대답했다.
"어머, 미안. 다음부턴 꼭 그럴게."
아줌마는 샐샐거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개학하니까 좀 어때? 별일 없지?
별일이라, 속이 뒤엉킨다. 당신 자식이 손목을 동강내고 병원에 실려갔다가 잠적했다는 일이 이 동네 인기 토픽인데. 무슨 별 일이 또 필요하신가요? 가짜아들의 학교생활이 그렇게도 궁금하신 나머지 젤네일을 다시 하러 샵에 다녀오셨구요?
담임은 이 가히 소름돋는 진실을 모르니 당연지사 아줌마에게 연락을 주지 않았을테지만 아줌마가 그렇다고 이번 일을 모를 사람은 아니었다.
자살기도 소동이 전교회장 엄마 귀에 안 들어가면 그게 이상한거지. 나는 작년에 학생회장을 일임했던 사실이 있고, 아줌마는 법적으로, 또 대외적으로도 완벽히 나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줌마에게 미지근하게 역질문했다.
"개 학교 안 올거래요?"
아줌마가 움찔한다. 거 봐. 아줌마가 깨물어먹은 사과 토막에 붉은색 찌꺼기가 묻었다.
"응, 개라니? 누구 말이니?"
아줌마 아들이요. 라고 말했다. 부산스런 표정으로 사과를 씹어삼킨 아줌마가 말을 잇는다.
"아, 경수 말이구나."
네, 경수. 나는 의미없이 되풀이했다. 아줌마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경수, 경수가 글쎄 지 친구 집에서 지내겠다고 하더구나. 애가 어릴때부터 원체 막무가내라.."
오호호..그럼 난 나갈게. 공부 열심히 하렴. 그러면서 아줌마는 나갔다. 친구집에서 지낸다고 했다고? 아줌마, 너무하시네. 적어도 아줌마 알리바이 지킬 수 있는 정도로는 자기 친아들한테 관심 좀 가져줘요.
걔는 친구 없으니까.
안봐도 뻔했다. 제 아빠 병원의 어디 구석에서 쪽잠이나 자다 깼다 하고 있을테지. 죽다가 살아 돌아와도 네 자리는 바뀌지 않는구나.
우리 아빠 연봉에서 떼어져 나오는 구식 원룸이나, 마찬가지인 네 아버지 병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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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두달만에 본편 첫글이 올라왔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지만 그래도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슴다....
날도 더운데 고단백 장어같은 여름 보내세요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