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
인생은 누군가가 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고 했던가-
한글을 갓 뗀지가 바로 어제 같은데, 어쩌자고 벌써 우리는 일곱살.
w.봄봄봄
[01] : 어쩌자고 우리는 봄봄유치원 원생
" 아놔 이 호구 새키가. "
지용은 가래침을 모아서 바닥에 퉤- 하고 뱉었다. 지용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흡사 못볼걸 봤다는 듯 승리를 흘겨보았다(얼마 전 옆집 형에게 배운 '상대를 무섭게 만드는 법'이다). 승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바닥에 앉아 생글생글 웃어가며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다.
" 야 이승리. "
" 응? "
뒤에서 불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승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거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며 한 쪽 손을 바지춤에 꽂고, 한 쪽 다리를 덜덜 떨고있는 무서운 행색의 지용이 있었다. 잘 못 보면 흡사 다리에 수전증이 걸린 사람같아 보였다. 승리는 '헙!' 놀라더니 그만 손에 들고있던 로보카폴리 인형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둘 사이에는 잠깐의 미묘한 정적이 흐렀고, 그 정적을 깬 것은 다름아닌 승리였다.
" 미… 미얀. "
" 뭐가 미안한데. "
" 로보카폴리……. "
" 더 자세하게 말 해보려무나, 우리 예쁜 승리야? "
지용은 어느새 바닥에 아빠다리를 한 채 승리의 앞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 했다. 눈웃음을 샐쭉 흘려보이는게,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것만 같다. 아아. 어떡게 해야 하는 상황이지. 지용이 화날때 활짝 웃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골치가 아파지는데. 아파아파 변해버린 맘이 맘이 맘이 오마이 허니허니 베이비 어떡게 해야하죠……
" 로보카폴리 죵이 쟌남강인데 내가 가꼬 놀았써. "
" 쟌난강이 뭐야 승리야. 장난감이라고 하는거야. "
" 으…응. 죵이 지금 무셔워. "
" 무서우라고 하는거야 승리야. "
지용은 계속해서 승리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 몇 분만 더 있으면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처럼 또다시 폭풍이 몰아닥칠것만 같다. 승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손등으로 몇 번 눈가를 훔쳤다. 우는거 들키면 지용이에게 저번처럼 놀림 당할게 뻔했다. 아마 곧 울음이 터지겠지. 이 무서운 상황을 극복하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번째는 지용에게 무릎꿇고 비굴하게 빌어야 하는 것이다. 이 물론 지용의 옆집 형이 알려준게 틀림 없었다. 두번째 방법은 바로 봄봄유치원계의 대 스타인 최승현이 나타나는 것이다. 오오 주여. 제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몇가지만 더 주시옵소서. 첫번째 방법은 약간의 부작용이 있사옵니다.
" 누가 내 로보카폴리 건드리랬어. 너는 뽀로로 그 찌질한 팽권이랑 놀… "
" 어? 지용아 여기있었어? 전화했는데 왜 안받아. 나 랩 새로 작사한거 보여줄라고 했는데. "
승리의 앞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들어 막 승리의 머리를 힘껏 내리치려고 하던 찰나, 갑자기 들리는 승현의 낮은 목소리에 지용은 멈칫하며 승현을 올려다보았다. 승리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봄봄유치원 대 스타 승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역시 원복은 싸그리 무시한 채 누나가 입혀준 옷 그대로 유치원에 등교를 한 승현이다. 왁스로 잔뜩 멋을 낸 머리 하며, 유치원생 주제에 쓸데없이 껴입은 블랙수트. 물론 승현은 유치원에서 가장 큰 키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뭐든 다 잘 어울렸다. 130cm에 블루블랙 원단이 유난히 빛나보이는 적당한 핏감의 수트는 그의 낮은 목소리 만큼 퍽이나 어울렸다. 지용은 그런 승현을 멍하니 쳐다보며 승리를 때리려던 손으로 승리의 앞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지용의 표정은 금새 '난 아무것도 몰라용'이라고 말하는 듯한 순수하고 적당한 귀여움과 애교가 섞인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승현은 그런 지용을 보고 또 좋다고 헤헤 거리며 웃었다.
" 그런데 뭐하고 있었어? 승리 앞머리 만지는 중? "
" 응? 아니… 그냥 씸씸해서 가만히 이쩠쩌. "
" 아 진짜 오빠 코피나게 할래? 애교좀 그만 부려 권지용. 다른 애들이 볼라. "
" 아잉♡ "
승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비척비척 원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지용에게 놀림과 구타는 받지 않아서 좋은데 사랑의 현장을 계속 보고있으려니 속이 다 쓰려왔다. 갑자기 저 혀 짧은 소리는 뭐고, 코피는 또 무엇인가. 올해 승리 나이 일곱살. 이년 전부터 시작한 저 둘의 연애는 좀처럼 식을줄 모른다. 오늘도 승리는 쓸쓸한 옆구리를 부여잡은채 원장실을 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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