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철수야. 나 좀 깨워주고 가지 너무해애.”
“뭐래. 못 일어난 건 너거든? 그리고 말꼬리 좀 그만 늘려, 징그러워.”
“뭐어? 징그럽다니. 철수 정말 너무해애애.”
“야, 신짱구! 귀에다 바람 불지 말랬지!”
2012년 여름. 나는 어느 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어렸을 때와 다름 없이, 나는 단 한번도 수석을 놓치는 경우 없이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완벽한 나의 성장기에서 가장 큰 오점은 저 끔찍한 자식과 함께 지낸지가 벌써 13년째 중에서도 중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고교생
짱구x철수
1
“철수야. 너 때문에 체육한테 머리를 세대나 맞았다구. 이거 봐, 팅팅 부었지.”
“그게 왜 내 탓이야? 그리고 깨웠는데 안 일어난 건 너라구, 신짱구.”
“에에? 그럴리가 없잖아. 난 철수가 짱구야아 하고 부르면 번쩍 눈이 떠지는걸.”
“내가 언제 널 짱구야아-하고 불렀냐? 저리 가. 나 노트정리 해야 돼.”
“지금 했네. 다시 해봐, 철수야. 짱구야아- 해봐.”
“저리 안 가?!”
“에이. 역시 철수는 까칠한게 매력이라니까.”
결국 소리를 한번 빽 지르고 난 후에야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엎드렸다. (그래봤자 그 자리는 내 옆이었지만) 무려 13년이나 이어진 녀석과 나의 질긴 인연-또는 악연-동안에도 나는 대체 저 녀석에게 적응을 할 수가 없었더랬다. 하긴, 저 엉뚱함을 넘은 기괴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저 녀석은 쉬는 시간에 퍼질러 자느라 체육을 못 나갔던 일을 내게 고스란히 덮어씌우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녀석을 깨웠고, 미동도 없이 계속 잠을 잤던건 녀석인데도 말이다.
녀석에게 적응하기 힘든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지금과 같은.. 이상한 스킨쉽-이라고 칭하기도 역하지만-이었다. 녀석은 시도때도 없이, 어떤 이유도 없이 내 몸 이곳저곳을 만지고 찌르고, 꼬집고 부비기를 좋아했다. 남자끼리 살을 부빈다는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그나마 유치원 때는 훈이나 맹구에게도 했던 짓이 점점 아이들과 학교가 갈리면서 오직 나에게만 집중적으로 퍼부어지고 있었다.
“신짱구. 손 떼라?”
“철수 살 쪘어? 엉덩이가 꽤 물렁물렁해졌네.”
“살 안 쪘거든! 그리고 내가 살 찌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에이. 철수 또 예민하게 구네. 그리고 내가 왜 상관이 없어? 만지는 느낌이 달라진단 말이야.”
그나마 단둘이 있을 때 이런 짓을 한다면 이젠 무시할 수도 있겠는데, 녀석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반 아이들이 모두 함께있는 교실에서 이런 짓을 하게 되면 저 시선들을 고스란히 받게 되고, 그럼 나는 적극적으로 내 거부 의사를 표명해야만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짱구녀석은 내가 그렇게 당황하는 상황들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고성이 몇번 터지자 앞쪽 끝자리에 앉아있던 수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녀석과 나에게 눈을 흘겼다. 그도 그럴 것이, 수진이는 늘 나를 따라잡으려고 부던히도 노력하는 전교 2등이었다. 사실 나보다 더 공부벌레인 것 같은데 결과는 늘 2등인게 신기할 정도로, 수진이는 늘 공부만 했다. 나와는 하루에 두세마디 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상한 점은 내가 그녀에게 점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라이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쩐지 시간이 갈 수록 점점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 시간 중에는 심지어 수업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철수야.”
“…….”
“철수야.”
“……. 아앗!”
“꼭 이렇게 해줘야만 날 본다니깐.”
갑자기 귀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귓 속으로 후우-하고 뜨뜻한 바람이 들어왔다. 절로 몸이 움찔하는 찰나에, 녀석이 이를 세워 내 귀를 잘근 씹었다. 내가 녀석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녀석이 꼭 하고는 하는 버릇 비슷한 것이었는데, 요새들어 수진이 때문인지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늘 겪어도 생소한 감촉에 눈을 찡긋 감으로 어깨를 웅크리자 녀석은 언제나처럼 능글맞게 웃으며 내 엉덩이를 꾸욱 쥐었다가 놨다. 숨이 섞인 앗 하는 소리가 한번 더 터졌다. 정말.. 요새들어 녀석의 스킨쉽은 점점 과해지고 있었다. 찡긋 감았던 눈을 뜨자, 앞자리의 수진이가 더럽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이런..!
“…. 경수야. 자리 좀 바꾸자.”
결국 나는 짱구의 손을 매몰차게 내던지고 책을 챙겨 일어났다. 알 수 없는 표정의 녀석의 얼굴이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나는 더 이상 너 때문에 남들 눈치 보기가 싫어, 신짱구. 너랑 얘기 하는 것도 재미 없고, 이런 의미없는 장난들도 지겨워. 더 이상 내 시간 낭비시키지마.”
내 말을 듣는 녀석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조용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녀석에게 쫄아버린건 나였다. 나는 결국 자리를 바꿨고,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도 녀석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짱구는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가는 나를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역시, 아무리 녀석이라고 해도 그 말은 상처였겠지. 옆에서 조잘거리는 놈이 없는 것은 참 좋았는데. 이상하게 허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게..
2
“우리 철수, 아직도 공부하네?”
“네, 엄마. 아직 할게 조금 남아서요. 먼저 주무세요.”
“그래. 엄마는 우리 철수가 이렇게 바르게 자라준게 너무 좋아. 철수는 알지?”
“그럼요, 엄마.”
엄마는 들고 들어오셨던 과일들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빙긋 웃으시며 나가셨다. 뭐야.. 공부하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과일도 가져오신 거면서. 이젠 새벽 3시까지 공부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예쁘게 다듬어져있는 과일들을 보자, 어쩐지 숨이 턱 막혀와서 샤프를 책 위로 가볍게 던졌다. 나는 늘 그랬다. 집에서는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아들, 학교에서는 전교1등을 놓치지 않는 수석이자 1등 반장감. 틀에 꽉 맞춰 살아가던 내 삶 속에서 오직 김철수 나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때는..
“신짱구….”
녀석과 함께 있을 때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너 때문에 남들 눈치 보기가 싫어, 신짱구. 너랑 얘기 하는 것도 재미 없고, 이런 의미없는 장난들도 지겨워. 더 이상 내 시간 낭비시키지마.’
아까 녀석의 표정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딱히 찡그린 것도, 웃는 것도 아닌데. 정말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이었는데. 왜 이렇게 생각이 나는거야, 신짱구.
3
정말이지, 체육시간이 제일 싫다. 대체 체육 배워서 어디다 써먹는다구 공부 할 시간까지 버려가며 체육 수업을 해야하는지, 원. 툴툴거리며 멀리까지 굴러간 공을 주우러 뛰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미 공을 주워 내게 내밀었다. 아, 고마워… 하며 고개를 들자, 내게 공을 건네고 있는 짱구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어제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공을 빼앗듯 잡아채곤 바로 뒤돌아 앞으로 뛰어갔다. 내가 지금 무엇인가에 쫄아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가슴이 어제보다 더 답답해졌다.
북적북적. 급식실은 이미 학생들로 가득 차있었다. 낑낑대며 겨우 배식을 받고 빈 자리를 고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강하게 밀쳤다. 덕분에 균형을 잃은 나는 급식실 바닥으로 고꾸라졌고, 들고있던 식판이 먼저 바닥으로 엎어지면서 온 몸으로 음식물들을 맞는 꼴이 되고 말았다. 심하게 넘어진 터라, 으으 하는 신음과 함께 뒤를 돌아보자…. 수진이가 서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누가봐도 나를 비웃는듯한 조소가 씌여있었다. 엎어진 내게 손을 내밀기에 그 손을 잡으려 나 역시 손을 뻗었는데, 그녀는 내 손을 매몰차게 쳐냈다. 그리고 내게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그 꼴을 해서 어따 손을 내밀어, 니가.”
결국 그녀는 뒤돌아 가버렸고, 웅성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 많은 학생들의 눈을 뒤로하고 나는 급식실을 빠져나왔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든 것은,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머릿 속에 녀석의 얼굴이 조금 더 진해졌다. 아무래도 나는, 나는 니가 필요한 것 같아, 신짱구….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지금 내 꼴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학교 뒷 정원으로 달렸다. 그 곳은 늘 사람이 없어서, 녀석은 늘 점심을 먹은 후 뒷 정원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곤 했었다. 정신없이 달려가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뒷정원에 가까워지자 점점 사라졌다.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 짱구가 늘 누워있던 벤치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그가 없었다. 역시, 이젠 짱구녀석마저 내게 등을 돌렸나보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속눈썹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물을 닦아내고 싶은데 손과 교복에 잔뜩 묻어버린 음식물들 때문에 불가능했다. 정말 최악이야. 작게 읊조리고 고개를 숙이는 찰나.내 엉덩이를 꾸욱 쥐어오는 손길이 느껴졌다.
“역시, 너 살 찐 거 맞다니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씨익 웃고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내 엉덩이를 쥐고있는 손과 함께.
“…….”
“어라. 김철수, 울어?”
“…너어. 너…. 어디갔다가 이제 와, 이 멍청아! 내가, 내가 얼마나….”
“아이, 참. 날 피한 건 너잖아.”
“흐으. 흐…. 미안해, 미안해…. ”
“니가 이러는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난 절대 안 놔.”
“응…. 응. 너는 나 놓지 마.”
결국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온몸에서 음식물 냄새가 풍기고 있었음에도 녀석은 나를 피하지 않았다. 한참을 엉엉 소리까지 내서 우는 나를 안아주고있던 녀석은, 내 울음이 서서히 멎어갈 때 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철수 니가 말했다? 나 니 엉덩이 안 놓을 거야. 근데 엉덩이 살은 좀 빼는게 좋겠어.”
“……아앗, 신짱구!!”
내 양 엉덩이를 두손으로 주무르며 녀석은 익살스레 웃었다.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소리에, 온갖 음식물을 뒤집어 쓰고있는 내 꼴에, 녀석의 앞에서 울어버린 상황에. 나에겐 그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인정해버린 이 상황에 나는 괜히 녀석의 이름을 버럭 질렀다. 이미 얼굴은 있을대로 발갛게 익어버린 후였다. 진짜, 너는. 신짱구는 못말려.
올림픽 끝나고 할 짓 없어서 쓴 본격 만화 망상물ㅋㅋ
속편 쓰고 싶은데 제 욕심이겠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