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배우 된 썰 17
w.여봄
드라마 촬영을 시작한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여름 밤을 찍을 때는 촬영만 하면 되서 피곤하다거나 힘들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드라마도 찍어야 하고 잡지나 방송사 인터뷰나 화보 촬영, 가끔이지만 예능도 나가다보니 피로가 점점 누적되고 있는 걸 느끼고 있다.
스케줄은 1차적으로 최실장님이 거르고 2차로 하정우 선배님이 거르고 나서야 나에게 물어보기 때문에 차마 못하겠다는 얘기를 못하고 있다... 두 분이 생각하기에 나에게 득이 될만한 스케줄만 받는 걸 알기 때문에....ㅠㅠ
하정우 선배님은 힘들면 언제든지 말 하라고, 스케줄 다 빼주겠다고 하지만 그게 쉽냐구요......ㅠㅠ
오늘은 저번에 감독님이 언질을 주셨던 ost 녹음이 있는 날이다. 가이드 버전 음원과 가사를 이틀 전에 받아서 짬짬히 시간을 내어 연습한다고 했는데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다... 심지어 듀엣 상대방이 엑소의 백현이라는 얘기를 듣고 부담감이 더 커져버렸다.... 노래 너무 잘 하시는 분이잖아요....ㅠㅠ
오늘은 녹음 말고는 스케줄이 없어서 맨 얼굴로 가고 싶었는데 어제 밤에 녹음 현장 메이킹을 촬영할거라는 연락을 받고 결국 아침 일찍 샵에 들렸다가 녹음실로 가는 중이다...하.....
".....오빠... 저 진짜 이 노래 1000번은 들은 것 같애요....."
"....나는 니가 부르는 걸 1000번은 들은 것 같은데..." - 매니저
".....괜찮아요..?"
"응, 배우가 그 정도 노래하면 잘 하는 거지. 뭘 더 바래~ 너무 부담느끼지마. 노래 부르는 건 니 일이 아니잖아."
"그래도.... 피해주기 싫단 말이에요..."
매니저 오빠와 얘기하면서도 가사집을 놓지 않고 있다가 멀미가 나는 것 같아서 잠시 내려놓았는데 내 자리 앞에 6부 대본이 꽂혀있는 게 보였다.
"어, 6부 대본 나왔어요?"
"아, 어어. 어제 나와서 가져왔는데 말하는 걸 깜빡했네"
"오...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요. 읽어봐야지~"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대본 읽을 땐 힘이 난다. 원래 재밌는 대본이기도 하고 뭔가 장면들이 하나 하나 상상이 가서 더 재밌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암튼! 노래 연습 때문에 과부하 걸린 머리를 좀 식힐 겸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거의 마지막 쯔음 읽었을까... 뭔가 조금씩 묘한 분위기의 장면들이 나오더니 결국엔 나와버렸다.... 키스씬........
"헐.... 키스씬....."
"ㅋㅋㅋㅋㅋㅋㅋ봤어? 어떡하냐 은솔이~ 곧 첫 키스씬 찍겠네~"
".....망했다 진짜...."
키스씬은 그냥 키스씬이 아니었다. 소이가 먼저 연준에게 고백을 하며 뽀뽀를 하면 연준이 소이에게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서로 마음을 확인한 후에 찐한.... 찐한..... 입맞춤을 나누는.... 그런 장면이다. 처음 남길오빠와 만나기로 한 날과 비슷한 장면이라 쉽게 몰입을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이걸 어떻게 말을 하지....?
"......이거 대본 하정우 선배님도 보셨어요?"
"모르겠네, 어제 파일 넘겨드리기는 했는데 대표님도 요새 촬영하신다고 바쁘셔서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남길오빠한테 말해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형님 질투 엄청 하시겠네"
......이걸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는 중에 녹음실 앞에 도착해버렸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대본에 키스씬이 나오는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촬영 중인 남길오빠에게 전송하고 녹음실로 올라갔다.
백현님...은 아직 안 오셨는지 작곡가님과 작업을 도와주시는 분들과 메이킹 찍는 카메라 뿐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카메라에 당황하니까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야 한다며 신경을 안 써도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나요......
"...안녕하세요.... 유은솔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ㅎㅎㅎ 실물이 훨씬 이쁘시네요~ 만나뵙게 되서 아주 영광입니다!!"
"아이구... 아닙니다....ㅠㅠ 저 진짜 노래 못 하는데.... 잘 부탁드려요...ㅠㅠ"
"에이~ 목소리가 좋으셔서 반은 먹고 들어가실 거예요~ 그리고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걱정 안 하셔도 되요!"
"....ㅠㅠㅠㅠ네에... 진짜로 잘 부탁드립니다....ㅠㅠ"
연신 괜찮다며 다독여주는 작곡가님이 노래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와중에 녹음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백현입니다~!"
"....어, 어... 안녕하세요...! 유은솔입니다...!"
"와아~ 은솔씨~!!! 반가워요! 저 그거, 그거! 여름 밤 봤는데!!"
"아...ㅎㅎㅎ 네에..."
"진짜 저는 원래 연기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스텝이었다는 얘기 듣고 진짜 깜짝 놀랬잖아요~~!!!"
"아....ㅎㅎㅎㅎ 그 정도는 아닌데...ㅠㅠ"
"ㅎㅎㅎㅎㅎ그 정돈데~ 근데 은솔씨 낯가리시는구나~ 저도 낯 많이 가리는데!"
"....네...?"
.....? 젼혀 낯가리는 것 같지 않으신데....
"ㅎㅎㅎ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친하게 지내요! 아, 남자친구 분이 이런 거 싫어하시나ㅎㅎㅎ"
"아... 질투가 조금 심하긴 한데 괜찮아요...!ㅎㅎㅎ"
"헉 진짜요? 남길 선배님 질투가 심하시구나.... 그럼 조금 덜 친하게 지내보도록 해요ㅎㅎㅎ"
"ㅎㅎㅎㅎ 네에..ㅎㅎㅎ 저보다 오빠이시던데... 말 편하게 하세요...!"
"오~ 사전조사~ 엄청 철저하네ㅎㅎㅎ 그럼 말 편하게 할게! 너도 편하게 해~"
"....어... 더 편해지면 말 놓을게요ㅎㅎ!"
"ㅋㅋㅋㅋㅋㅋ그래~ 가이드는 들어 봤어?"
백현오빠는 이런 경험이 없는 나를 배려해서 현장을 리드해주었고 작곡가님의 디렉팅을 들으며 가이드를 쭉 듣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갔다. 백현오빠는 연습이 필요없지만 나를 도와주겠다고 함께 연습을 했다.
"여기 봐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기"
"어... 네네"
"여기는 길에에- 이렇게 쭉 끌어야 하거든? 억지로 막 바이브레이션 넣으려고 안 해도 되니까 한 번 해볼래?"
"아... 바이브레이션.... 어차피 못 해요...ㅎㅎㅎ 해볼게요!"
백현 오빠가 얘기해준 걸 신경쓰면서 노래를 불렀다. 평가 받는 기분이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오빠를 쳐다보는데
"와...은솔아 너 음색 장난 아니다..."
"에이... 빈말이라도 감사해요...ㅎㅎㅎㅎ"
"아 무슨 빈말이야~ 나 그런 거 못해ㅋㅋㅋㅋ 진짜로 음색 너무 좋은데?
"진짜요...?"
"응, 진짜 진짜 좋아. 나 약간 확신이 생겼는데 음원 순위 기대해봐도 될 것 같은데?"
"ㅎㅎㅎ 진짜요?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
백현오빠는 신나서 이것저것 가르쳐줬고 나도 신나서 더 열심히 연습을 했다. 오빠가 가르쳐준대로 하니까 조금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ㅎㅎㅎ 이제 연습 많이 했으니 녹음 들어가자는 작곡가님의 말에 급하게 가사를 다시 한 번 살피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누군가 하고 보면....
[남길오빠♥️]
곧 녹음에 들어가야 해서 어차피 오래 통화를 못 할 것 같아 무음으로 돌리고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녹음하러 가는 걸 아니까 끝나고 연락주면 되겠지 모...
노래 녹음을 하는 건 처음이라 어색하게 녹음실로 들어가서 멀뚱멀뚱 바깥을 쳐다보니 작곡가님과 백현오빠는 빵 터져서는 입모양과 손짓으로 헤드셋을 끼라고 했다. ....ㅠㅠ
헤드셋을 끼니 녹음실로 연결된 마이크가 있는지 바깥의 소리가 들렸고 작곡가님이 이제 녹음 하자고 말을 했다.
"자, 일단 한 번 쭉 불러볼까?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쭉 부르면 돼~" - 작곡가
"네....!"
부스 바깥에서는 백현오빠가 나를 쳐다보며 물을 마시라는 액션을 보였고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니 헤드셋에서는 반주가 흘러나왔다.
작곡가님 말대로 끝까지 쭉 부르고 나서 구간 별로 나누어 녹음을 시작하는데...
"은솔아, 여기 '아무도 없는 가로등 불빛 아래' 이 부분 음정이 좀 안 맞거든?" - 작곡가
"....어....네....ㅠㅠ..."
"ㅋㅋㅋㅋㅋ아 형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ㅋㅋㅋㅋ은솔아, '불빛 아래' 여기에서 불빛만 올리면 돼. 음... 좀 강조하는 느낌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 이해했어?" - 백현
"아.... 네네, 해볼게요!"
아무래도 백현오빠는 직접 녹음을 하는 가수이다보니 작곡가님의 설명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ㅎㅎㅎㅎ
"어, 은솔아. 다 좋은데 '너의 이불 안에 들어가고 싶은데' 이 부분에 조금 더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 작곡가
".....사랑스러운 느낌이요...?"
"ㅋㅋㅋㅋㅋ은솔아, 웃으면서 불러봐" - 백현
"....웃으면서요?"
"응, 아니면 남길 선배님 상상하면서 해도 되고~ㅎㅎㅎ"
".....아 왜 그래요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진짜 상상하면서 부르면 완전 다르다니까?"
"....일단 해볼게요...."
가사가 하필 너의 이불 안에 들어가고 싶은데라니.... 문득 남길오빠 집에 처음 놀러갔을 때 오빠 침대에서 잤던 날이 떠올라서 그때를 상상해봤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게 백현오빠 말이 완전 틀린 건 아닌가보다ㅎㅎㅎ 눈을 감은 채로 문제의 소절을 쭉 부르고 조심스럽게 눈을 뜨니
"이야~ 잘 하네 은솔이" - 작곡가
"ㅋㅋㅋㅋㅋ남길 선배님 생각했어? 완전 느낌 제대론데?" - 백현
".....자꾸 놀리시면 저 완전 막 부를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알겠어, 안 할게, 안해ㅋㅋㅋㅋ"
괜히 부끄러워서 퉁명스럽게 말을 했지만 백현오빠 덕분에 수월하게 녹음을 하고 있어서 엄청 고마웠다ㅠㅠ 나중에 밥이라도 사야겠어....
생각보다 녹음은 꽤 오래 걸렸고 끝나고 나와서는 완전 녹초가 되어 소파에 널부러져 있었다. 이제 집에 가나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메이킹용으로 백현오빠와 둘이 부스에 들어가 녹음하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오빠와 함께 다시 녹음 부스로 들어왔다.
"이건 어차피 영상만 쓰는 거라 진짜 노래 안 해도 돼. 녹음 안 돌릴게ㅋㅋㅋㅋ" - 작곡가
"아... 네에..! ㅎㅎㅎ"
"ㅋㅋㅋㅋ너 피곤하지. 눈이 다 풀렸네" - 백현
"...티 나요?"
"ㅋㅋㅋㅋㅋㅋ티 안 나. 이거만 얼른 하고 집 가자~"
얼른 집에 가자며 헤드셋을 씌워주는 오빠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녹음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이크 하나로 같이 불러야 하니까 엄청 가깝게 붙어있게 됐는데 이걸 보게 될 남길오빠의 반응이 상상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가 웃으니 같이 따라 웃는 백현오빠에 촬영을 하는 감독님은 흐뭇하게 쳐다보셨고 이런 포인트를 좋아하시는구나 싶어 일부러 더 백현오빠와 장난을 치기도 했다. 백현오빠가 윙크하면 나도 윙크하고 서로 볼 꼬집고.... 끝에 쯤엔 남기오빠가 단단히 삐지겠다 싶어서 자제하긴 했지만.... 약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ㅎㅎㅎㅎ
"은솔씨, 백현씨 마지막으로 같이 한 번 바라보면서 부르는 거 한 컷만 가고 끝낼까요?" - 메이킹 감독
"아 네!"
"알겠습니다~" - 백현
마지막 컷이라는 말에 몰려오는 피곤함을 꾹 누르고 백현오빠를 쳐다보고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립싱크가 어색해서 노래를 직접 부르면서 오빠를 쳐다봤는데 오빠는 그게 웃긴지 찐웃음이 터졌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어색함이 사라졌다고 해도 이렇게 눈을 맞추고 있으니 뻘쭘하긴 했다..ㅎㅎㅎ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때 쯤 감독님이 이제 됐다며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녹음실을 나가셨다.
"오늘 수고 많았어, 은솔아" - 백현
"오빠도 수고 많았어요ㅎㅎㅎ으아.. 집 가서 바로 자야겠다. 피곤해 죽겠어요..."
"요즘 스케줄 많은가보다. 은솔이 완전 슈스네?ㅋㅋㅋㅋ"
"아아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어제 촬영이 늦게 끝나서 그래요...ㅠㅠ"
"ㅋㅋㅋㅋㅋ알겠어, 아 우리 오늘 기념인데 사진 한 장 찍자. 괜찮지?"
"ㅎㅎㅎ좋아요! 인스타그램에 올려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라마 홍보도 할 겸 백현오빠와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러면서 백현오빠와 맞팔로우도 하고....ㅎㅎㅎ
eunsoliii 백현오빠와 뭘 했을까요~? 기대 많이 해주세요! #마니또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기절하듯이 잠들었고 매니저 오빠가 겨우 깨워서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아직 저녁시간 밖에 안 됐지만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촬영을 했기 때문에 참기 어려울 정도로 잠이 몰려와서 밥 먹을 생각도 못 하고 잠에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늦은 밤이었고 비몽사몽한 채로 핸드폰을 켜보니 남길오빠에게 10통 넘게 전화가 와있었다.
아... 아까 무음 해놓은 걸 깜빡했네... 큰일났다....ㅠㅠ
[여보세요]
"....오빠...!"
[응]
"....화났어요...? 아니 그게... 아까 녹음할 때 무음을 해놓고... 집에 오자마자 잠들어서...."
[응, 매니저한테 들었어]
"......"
[지금 집 갈건데 괜찮아?]
"....네에....."
[그래. 한 30분 걸려]
"....네에...."
진짜 큰일났다... 분명히 화난 것 같은데.... 어떡하지....ㅠㅠ 오빠가 나한테 화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지금 오빠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어서 더 무섭다....
일단 오빠가 온다고 하니까... 아까 씻지도 못 하고 잠에 들어버려서 대충 씻고 나와 오빠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어락 소리가 들렸고 오빠가 거실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오빠 쪽으로 걸어갔다.
"......"
"......"
......오빠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을 할 수가 없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카톡 하나 할 시간도 없었어?"
"........"
"그렇게 사진 한 장 보내놓고 연락도 안 되고"
"........"
"요즘 촬영 많아서 힘든 거 아는데 그래도 카톡이나 문자 정도는 남겨줄 수 있잖아. 그치"
".....네....."
"너 오늘 오전에 그 키스씬 사진 한 장 보내놓고 연락 한 번도 안 한 거 알지"
"........"
오늘은 진짜 피곤했는데.... 진짜 오랜만에 쉴 시간이 조금 생겨서 아무 생각 없이 잠부터 잔 건데.....
"최근에 촬영 많아져서 연락 뜸하고 단답하고 그런 거 다 이해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좀 서운했어"
".....오빠..."
"서운하고 서운하다가 화도 나고 그러더라"
"........"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긴 하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 한 달간 촬영이 계속 있고 간혹 촬영이 없는 날에도 인터뷰니 홍보 예능이니 하루도 쉴 수가 없어서 진짜 진짜 많이 피곤했는데 오빠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 그리고 피곤이 몰려오니까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었다. 답장을 보내는 것도 피곤해서 답이 짧아졌던 것도 인정한다. 그래도.... 나 진짜 피곤해서 그런건데....
"진짜 피곤해서 그런 게 맞나 의심도 되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락 안 되는 와중에 다른 남자랑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보면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아... 그건 드라마 홍보 때문에 올린 건데..."
하......
"그거 올리고 올리는 김에 나한테 연락 한 번 해줄 수 있잖아"
"연락 못 한 건 미안해요. 진짜 피곤해서 다른 거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도 그렇게 말 하는 건.... 나도 상처야"
"이렇게 말하는 내 기분은 좋겠어? 그 사진 보고 내가 진짜..."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사진은 드라마 홍보 때문에 올린 거고 진짜.. 진짜 생각을 못 했어요. 너무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못 하고 잤고"
"어쨌든 결론은 너한테 내가 첫 번째가 아니라는 거잖아"
"......오빠"
"내가 서운하고 상처 받고 화난 건, 오늘 하루 종일 너한테 내가 제일 마지막 순위였다는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왜 혼자 마음대로 생각해요?"
"마음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아니다, 내일 다시 얘기하자."
갑자기 큰 소리르 치는 오빠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오빠를 쳐다보면 한숨을 크게 쉬고 '피곤하다며, 일찍 자' 라며 집을 나가버렸다. 거실 중앙에 혼자 서서 멍하게 있다가 우리의 첫 싸움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내일 촬영 있는데.... 부으면 안 되는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어색하고 낯선 연예계 생활과 대본 숙지가 다 되기도 전에 들어가야하는 촬영에 대한 부담감에 예민해졌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오빠는 알아주길 바랬는데.... 내 잘못인게 분명한데도 계속해서 내 마음을 몰라주는 오빠 탓을 하게 되는 내가 밉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에 한참을 혼자 울다가 지쳐 그대로 잠이 든 것 같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눈을 떠보면 촬영 때문에 나를 깨우러 온 매니저 오빠가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래도 어제 그렇게 울다가 거실에서 잠이 든 것 같은데...
"야, 너 왜 여기서 자??? 열도 좀 나는 거 같고 눈을 왜 이렇게 부었어??"
"아....."
"목소리는 또 왜 그래? 감기 걸렸어?"
"몸이 좀 으슬으슬한 것 같기도 하고...."
"아이고... 그러니까 왜 거실에서 자냐... 촬영 가기 전에 병원이라도 들릴까?"
"에이... 그럼 나 때문에 촬영 밀리는 거 아니에요? 이 정도는 괜찮아.."
"오늘 비 오는 씬 찍잖아. 이따 비 엄청 맞을텐데 너 감기 더 심해져. 병원 갔다가 가자"
"괜찮다니까요~ 괜히 나 때문에 스텝들 기다리고 그런 거 싫어요. 그냥 가는 길에 약국 들러서 약만 하나 사다줘요. 응?"
내 고집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쉰 매니저 오빠는 알겠다며 차 빼놓을 테니까 내려오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으슬으슬한게 감기에 걸린 것 같긴 한데... 이 정도는 약 먹으면 괜찮을 것 같아 얼른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혹시나하고 핸드폰을 켜봤지만 남길 오빠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한숨을 크게 쉬니까 매니저 오빠는 룸미러로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고는 가는 동안에라도 잠시 쉬게 눈을 감았다.
오는 길에 매니저 오빠가 사다준 약을 먹었고 그래도 약을 먹고 나니까 지끈거리던 머리는 좀 괜찮아진 것 같았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안 먹어서 배가 좀 고픈 것 같긴 한데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텝들을 보니까 빨리 촬영을 끝내고 밥을 먹는게 나을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오늘 찍는 씬은 연준과 싸운 소이가 연준의 집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 씬이었다. 하필 또 상황이......ㅎㅎㅎㅎ 몰입은 더 잘되겠네 뭐....
"소이야, 비 계속 맞아야 하는데 괜찮겠어?" - 감독님
"ㅎㅎㅎ맞아야 하는 거면 맞아야죠~ 저 괜찮아요!"
"너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안색이 좀 안 좋은데...."
"아니에요~ 어제 오랜만에 푹 좀 잤더니 부어서 그래요ㅎㅎㅎ"
"그래, 그럼 혹시라도 중간에 힘들면 얘기하고. 알겠지?"
"네에!ㅎㅎㅎㅎ"
동선 리허설을 하고 이제 진짜 비를 맞을 때가 됐다. 살수차와 다른 장비들을 준비하는 스텝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도 문득 남길 오빠 생각이 나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 만나자고 했는데... 촬영 끝나고 연락을 해봐야 하는 건가... 늘 내게 맞춰주던 오빠여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뭐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하.....
남길 오빠와 어떻게 화해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준비가 끝났는지 이제 준비하시면 된다며 나를 데리러 온 스텝을 따라 카메라 앞에 섰다. 카메라가 돌기 전에 먼저 살수차부터 가동한다는 말에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데 머리 위로 차가운 빗줄기가 쏟아졌다. 소이가 연준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만나지 못 하고 돌아가는 씬이기 때문에 따로 대사는 없다. 감독님의 액션 소리에 아까 맞춰본 동선대로 집 앞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대문 사이로 안을 쳐다봤다가 쪼그려 앉아 텅 빈 골목을 쳐다보고 있으면 컷 소리가 들린다.
"컷! 소이 수건 갖다줘!! 빨리!!" - 감독님
컷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수건과 난로를 들고 오는 스텝들 덕분에 그나마 추위를 날릴 수 있었다. 방금 찍은 컷은 풀샷이었고 앞으로 찍어야 할 컷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조금 더 몸을 녹이고 찍어도 된다는 감독님의 말에도 얼른 찍고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아 괜찮다고 하고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NG도 몇 번 나고 컷 종류도 다양해서 꽤 오래 비를 맞았더니 난로 앞에 있어도 몸이 덜덜 떨려왔고 이제 마지막으로 연준을 기다리다 지친 소이가 텅 빈 골목을 걸어가는 뒷모습만 찍으면 된다는 말에 애써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도 지끈거리고 몸도 덜덜 떨리고.... 스스로도 지금 몸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보다 일찍 와서 준비하고 고생했을 스텝들 때문에라도 그만한다고 얘기하지 못 했다. 지금 못 찍겠다고 하면 다음에 다시 와서 찍어야 하는데... 나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생하는 게 너무 싫어서 내색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섰다. 매니저 오빠는 내 몸상태가 걱정되는지 마지막까지도 난로와 핫팩으로 내 몸을 녹여주다가 살수차를 가동한다는 말에 앵글 바깥으로 나갔다. 으아... 진짜 마지막이다.
"자, 소이야 웬만하면 오케이 할 거니까 조금만 힘내자~ 레디!"
감독님의 레디 소리에 살수차가 가동 됐고 곧 들리는 액션 신호에 비틀비틀 거리며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비틀거리며 걸어서 그런가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고 숨도 가빠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눈을 질끈 감고 걷는데 뒤에서 컷, 오케이 라는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마니또' 유은솔, 촬영 중 쓰러져 응급실 후송]
[유은솔 소속사 측, 현재 의식은 없으나 걱정할만한 상황 아냐]
[유은솔, 과로와 감기 기운으로 인한 일시적인 쇼크로 알려져...]
['마니또' 제작사 측, 유은솔이의 건강이 제일 우선이기에 촬영 중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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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미안해요ㅠ_ㅠ 내일은 더 많이 써서 올게요!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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