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든 상가가 반짝반짝 눈이 부시게 장식을 하고 커플들이 판이 치는 크리스마스.
하지만 솔로인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마찬가지로 외롭게 방구석에 쳐박혀 크리스마스 특선영화나 보고있다.
친구들을 불러 같이 놀까했지만 얄미운 녀석들은 이미 여자 하나씩을 꿰차고 열심히 데이트 중이시란다. 나쁜 놈들.
열심히 케빈에게 집중하고 있을 무렵 핸드폰에서 울리는 진동음. 힘차게 메시지 잠금을 푸니 에라이, 또 김미영팀장님이다.
이 여자도 크리스마스에 할 일이 없는걸까. 나랑 마찬가지네 뭐. 메시지를 삭제하고 다시 케빈에게 집중하고 있으려니
또 울리는 진동음 에이씨, 또 김미영팀장님이야? 메시지 잠금을 풀고 액정을 들여다보니 범준 형이 보낸 메시지다.
‘방에 틀어박혀서 특선영화나 보고있지?ㅋㅋ다 알아 지금 너희 집 앞이니까 나와.’
자기가 뭔데 나오라 마라야. 속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이미 내 손은 후드티와 바지를 찾아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눈이 소복히 쌓인 밖으로 나오니 빨간색 목도리를 둘러메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날 기다리고 있는 범준 형이 보인다.
“형!!”
“어, 왔냐.”
무슨 주인님을 기다린 강아지처럼 쪼르르 형에게 달려갔다. 뭐, 여튼 할일없는 나를 구원해준 사람이니까. 흠흠.
“근데 왜 불렀어요?”
“나랑 선물 좀 고르러가자. 고백할건데 좋아할 선물을 딱히 모르겠어서.”
“네..?형,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요?”
“뭐...여튼 그렇게 됐다. 같이 고르러가줄거지?”
“아...네.”
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설마 쑥맥인 범준 형에게 애인따위가 생길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어떤 여잔지 얼굴이라도 봐서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물론 그런 행동을 하는 즉시 범준 형에게 난 아웃이겠지만.
씁쓸한 마음을 추스리고, 먼저 발걸음을 떼는 범준 형을 따라 나도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 피어싱 예쁘다. 그치?”
“아..네, 그 분 귀는 뚫었어요?”
“응, 뚫었어. 이걸로 사가자. 또 다른 거 있나..”
이렇게 자기 혼자 다 해먹을거면 난 대체 왜 데리고 나온건지. 장범준에게 애인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니 모든 게 다 삐딱해보인다.
아아, 이게 다 범준 형 때문이야. 진열장을 훑어보던 범준 형은 더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가 없었는지 검은색 별모양 피어싱을 가지고 계산대로 향한다.
“형태야, 가자.”
“뭐, 또 다른 거 선물하게요?”
“그래야지, 달랑 피어싱 하나만 주고 끝낼 순 없잖아.”
범준 형은 자기 혼자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으면서 남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나빴어, 진짜..
몇 분을 걷고 걷다가 커플 용품을 파는 가게를 발견해 그 가게로 들어섰다. 입구부터 보이는 커플 컵이니, 옷이니..
이런 닭살스러운 짓을 범준 형은 그렇게도 하고 싶은지, 신나서는 이것저것 구경해보기에 바쁘다.
“와, 형태야 이거봐봐 이 토끼 너 닮았다!”
범준 형은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는 듯 서로 입술을 들이밀고 있는 검은색 토끼인형 한 쌍을 내게 보여준다.
“전혀 안 닮았거든요?”
“왜~ 꽤 닮았는데..이걸로 사야지. 딴 거 구경하자 이리 와”
범준 형은 내 팔을 잡아끌고 온통 분홍색과 파란색 천지인 커플 용품들이 신기한 듯 두리번두리번거린다.
“오, 이것도 귀엽네”
자꾸 맹구웃음을 지어대며 나를 바라보는데, 그 웃음이 왜 그렇게 미칠 것 같은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제쳐두고 껴안고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입술을 깨무느라 피까지 맺혔다. 하, 이게 웬 고생이야
“다 산거죠?”
“응, 이 정도면 그 사람도 만족하겠지?”
“뭐...그거야 모르죠”
만족 안해서 뻥 차여버려라. 마음속으로 저주를 거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범준 형은 자꾸만 피식피식 옅은 웃음을 내비치며 날 바라본다.
뭐에요? 기분 나쁘다는 투로 형을 향해 톡 쏘니 어?아니야..흐흐, 멋쩍은 웃음을 짓는 범준 형이다.
다시 눈이 소복소복 쌓인 우리 아파트 앞으로 되돌아온 우리. 달라진 게 있다면 범준 형의 두 손에 가득 들린 쇼핑백들 정도?
“그럼 전 들어가볼게요.”
“아, 잠깐만”
범준 형은 내 팔을 잡아 세우더니 지금까지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고른 물건들이 담긴 쇼핑백들을 나에게 내민다.
“이걸 왜 저한테 줘요?”
“와..진짜 눈치 드럽게 없네. 나 지금 너한테 고백하는거잖아”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뭐야..그럼 범준 형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였어..?
“남자가 남자 좋아하는 거.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고..”
“좋아요”
“어?”
“나도, 나도 형이 좋아요”
활짝, 맹구웃음을 짓고 날 향해 안기라는듯이 팔을 벌리는 범준 형에게 폭삭 안겨 바보같이 헛웃음을 흘려댔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홀로 외롭게 보내지않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