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후로 김정우랑 나랑 사이가 무척 애매해졌다.
서로가 신경이 쓰이지만
사귀지는 않는다.
원래 그랬더 것 처럼
학교에서 아는척도 안한다.
예전처럼 김정우는 나한테 시선을 주진 않는다.
가끔 예외도 있지만.
예를 들면,
"이름아. 오늘까지 수학쌤한테 노트 제출 해야 되는데, 너 다 안했지?"
"아 맞다. 빨리 적을게! 미안해."
"나 필기 다했는데, 내꺼 적어. 천천히 해도 돼."
"고맙다 진짜. 나중에 매점 쏠게!"
이렇게 반장이랑 얘기를 나눌떄.
반장이랑 말 만 하면,
김정우의 시선이 느껴진다.
못느끼는게 이상할 정도로 아주 빤히.
설마 쟤 질투하나.
지가뭔데?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반장이랑 대화를 끝내면,
김정우도 곧이어 다시 엎드려 잔다.
*
"헐, 뭐야. 나 쟤 급식실에서 밥 먹는거 처음봐."
"그러게? 난 또 급식비 안내서 안먹는줄 알았는데."
내 맞은편에 앉은 유진이가 밥 을 먹다말고 입을연다.
유진이의 말에 옆에 앉은 서아도 김치를 씹으며 맞장구를 친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게 처음인 사람.
설명만 들어도 알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내가 앉은 자리 뒤에뒤에서 김정우가 혼자 밥을 먹고있다.
아 쟤는 또 사람 신경 쓰이게
혼자 밥 먹고있어.
정우에게 시선을 주는건 우리들 뿐만 아니다.
급식실에 앉아있는 모두가 정우를 흘끔 흘끔 쳐다본다.
아 김정우 체하겠다.
원래, 아는 사람이 혼자 밥먹는 꼴 못본다 나는.
합리화가 아니라 정말로.
"오늘 너네 둘이 먹어."
밥을 먹다말고, 내앞에 있는 급식판을 들어
김정우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맞은편 의자를 빼 자리에 앉으니.
김정우한테 쏠렸던 눈동자 들은
곧이어 나에게로 돌아온다.
김정우의 시선마저.
아. 관심 받는거 싫은데
"
"한번도 안 온 급식실엔 왜 왔어?"
다른 사람들이 안들리게,
김정우한테만 들리게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궁굼해 죽겠지.
저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굼해서."
김정우의 대답은 주어가 없었다.
급식메뉴가?
아님 내가.
"불쌍해 보여서 와준거야?"
"어. 그러니까 급식 먹을때 말해."
같이 먹어줄테니깐.
생각도 안하고 뱉어버린 내 대답에
김정우는 피식 웃어 보인다.
"진작에 급식 먹을걸."
많은 눈동자 속에서,
우리는
약속을 잡는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반에 들어가기가 너무나도 싫거든.
*
사귀지도 않는 우리 둘인데.
사귄다고 소문이 났다.
급식 한번 먹었다고.
소문도 어디까지 돌고 퍼진건지.
둘이 원래 비밀연애 였는데, 이번에야 밝혀진거래.
몇주 전 부터 김정우가 계속 성이름 쳐다본거 나도 봤어!
헐 나는 반장이랑 이름이 사귀는줄 알았는데 아니였나보네
반장이 삽질한거네~
"성이름. 갑자기 안하던 짓 해서, 소문까지 나버렸네~"
"오지라퍼 성이름 해명하세요."
유진이와 서아는 뭐가 재밌는지,
지들끼리 웃고 난리났다.
"아. 나 학교생활 망한거 아니지?"
"이왕 이렇게 된거. 진짜 사귀면 안돼?"
"맞아. 솔직히 쟤, 얼굴은 잘생기지 않았냐?"
잘생기긴 했지.
고개를 끄덕 거리니.
유진과 서아는 또 사귀라며 난리친다.
오지라퍼는 너네들 인 것 같다. 애들아.
이런 난리통 속에,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정우가 들어온다.
세수를 하고 온 모양인지.
앞머리 끝이 살짝 젖어있다.
"이름이 남친 등장?"
"아 좀."
"그럼 우린 자리 피해줘야지."
내책상에 앉아있던 유진이와,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서아는 정말로 교실을 나가 자리를 피해줬다.
아니 지들이 자리 피해줬다고, 김정우가 나한테 올리가 없잖아.
또 자기 자리에 엎드려서 잠이나 퍼자겠지.
근데,
난 아직도 김정우의 캐릭터를 파악하지 못했나보다.
자리로 갈 줄 알았던 김정우는,
내 옆자리로 다가온다.
속으로 오지말라고 외쳐봤자,
김정우는 내 옆에 있는 의자를 빼 앉는다.
그러고서 하는 말이
"나. 너 남친이야?"
"뭐?"
"쟤네가 그랬잖아. 남친등장."
아까 유진이가 나한테 작게 말한게 들렸나보다.
귀도 밝아라.
"우리 사귄다고 소문났대."
김정우는 , 이런 소문을 알려줄 친구도 없으니까.
그냥 내가 말해줬다.
얘도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지금 김정우가 담고 있는 표정은 뭘까.
기쁨일까,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모르겠다. 김정우는.
-
처음에는
그냥 애가 밝아보여서,
그 다음에는
애가 맑아서
그리고
애가 예뻐서.
그냥 눈길이 갔다.
쟤는 내 이름을 알까.
수업시간에, 앞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수학문제가 어려우면 한숨을 푹쉬는 뒷모습이 귀여웠다.
체육시간에, 체육복 바지가 길어 두번접어서 입은 그녀가,
농구 골대에 농구공을 넣을려고 계속 공을 던지는 그녀가.
그냥 다 예뻐 보였다.
요즘 들어 그녀랑 눈이 마주친다.
내 시선이 닿았나보다.
자꾸 눈이 마주쳐도,
그 눈동자가 너무 예뻐서
눈을 피하지도 못했다.
내가 변태 인건가.
불편할 수 도 있는데,
무서울 수 도 있는데.
그녀가 나를 신경쓰여하는게 느껴져서 좋았다.
*
정말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학교에서부터
이 골목까지
너무 티나게 따라온 그녀를 모른척 해줄까, 놀려줄까, 고민했다.
근데 나도 모르게 막다른 골목에 도착해 버렸고.
사실 나도 모르는 동네였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 마다
그녀의 반응이 귀여워서
짓궂게 행동해 버렸다.
*
반장 김승혁.
우리반에서 내가 아는 이름은 성이름 그리고 김승혁 뿐이다.
김승혁도 작년에 같은 반 이여서 아는 거였고.
원래 반 아이들 이름은 모르지만,
김승혁은 질 나쁜걸로 워낙 유명했던 지라 모를 수 가 없었다.
근데 그런애가 왜 그녀랑 말을 섞고 있는지.
짜증이 났다.
그 둘의 대화는 별거 없지만,
김승혁의 속내를 알 것 만 같아 머리가 돈다.
처음으로 급식실을 갔다.
3년내내 발을 안붙일줄 만 알았는데, 내 시야에서 안보일때
혹시나, 김승혁이 그녀에게 말을 걸까
걱정이 돼서 온 거다.
근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가 내 맞은편에 앉아줄때
급식을 같이 먹어준다 했을때.
처음으로 김승혁한테 고마워졌다.
*
그녀가 말했다.
우리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돈다고,
나한테 처음으로 돈 소문이,
그녀랑 사귄다는 소문이다.
소문 같은 거 안믿는데,
믿고싶다.
----------------------------------------------------------------------------------
얼른 사겨라.
"
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