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w. 옥수수소세지
Q. 비와 데이트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주세요.
"아. 그 해 겨울, 첫 눈 오던 날에 다시 만났거든요.
근데 봄, 여름, 가을에는 눈이 안 오잖아요.
EP. 03: 부부의 과거
"저기...
이렇게 사람 앞에 앉혀 놓고 궁상 떠는 거 못할 짓이다?"
"...후."
"번호라도 좀 물어보지 그랬냐."
"아니 그냥 갔다니까? 날 그냥 쓱- 보고.. 갔어!
형! 솔직히 말해 봐! 내가 그렇게 별로야?!"
"응. 지금은 되게 별로야."
ㅇㅇ 씨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의도치 않았던 철벽을 당한 주지훈 씨는 약 두 달 가량 위와 같은 레퍼토리로 제 주변 지인들을 돌아가며 괴롭혔어요.
영문도 모른 채 오늘 이 자리에 끌려나온 분은 조승우 씨입니다. 오랜만에 제가 보고 싶다며 술을 사준다는 꼬드김에 넘어 간 것 뿐인데 정말이지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안 나왔을 거라고 억울하게 말씀하셨어요. 이름, 나이, 그리고 얼굴도 알 수 없는 그녀를 만일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때 지훈이에게 왜 그랬냐고 울고불며 따지고 싶은 심정이라는 조승우 씨예요.
첫 출연부터 고생이 참 많으시네요.
아! 이건 저희가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혹시 여러분들은 운명을 믿으시나요?
"아이고. 방을 잘못 들어왔네. 죄송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
"..."
"형. 저 분이야."
"뭐가.. 어?! 저 분이라고??!"
저희는 오늘부로 한 번 믿어 보려구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더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나 봐요. 지훈 씨가 여태껏 애타게 꺼이꺼이 목놓아 찾던 그녀가 신의 장난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한 실수인지 모를 결과로 방을 헷갈린 순간부터 저 둘은 아주 난리가 났어요. 약 5초 간의 정적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당탕탕 일어나다 식탁에 무릎을 그대로 세게 부딪힙니다. 웬 덤 앤 더머가 따로 없네요.
아파하기도 잠시, 벌컥 문을 열고 나가 때마침 홀에 있던 종업원에게 겨우 물어 ㅇㅇ 씨의 행방을 찾았죠.
"헐- 대박! 진짜 조승우 님이네!?"
"봐아!! 나 취한 거 아니라고오!! 내가 봤다고 했잖아!!!"
"야- 내 팬 분들이신가 본데? 안녕하세요."
"그, 저... 저도 있는데."
"예? ㅇ, 예! 그쵸오! 저 궁 되게 좋아했어요..!"
"... 안녕하세요."
어라- 온도 차이 무엇. 목소리 톤이 땅굴을 파는데요?
아아.. 맞다. 아직 ㅇㅇ 씨 주지훈 씨를 연예인 병 말기 환자로 알고 계시죠? 반응이 저럴 법도 하네요. 매우 당당하게 문을 열긴 했으나 어정쩡하게 자리에 뻘쭘히 서 있던 두 분은 붙임성 좋은 핵인싸 현승희 씨의 깜찍한 권유로 더한 노력 없이 얼떨결에 입장에 성공합니다.
그럼, 지훈 씨에게 건투를 빕니다.
화이팅!
"와하. 비밀의 숲을 14번 씩이나요?"
"네. 제가 섹시목 당신을 사랑하거든요."
"허..."
"오오?"
현승희 씨의 어릴 적 꿈이 코난이었던 거 아시나요.
자칭 타칭 오돌뼈 킬러인 승희 씨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안주까지 제쳐놓고 본격적으로 명탐정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세상 치밀하고 예리한 척... 그 아무도 시킨 적이 없지만 말이죠.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ㅇㅇ 씨의 온 신경들이 제 대각선에 자리한 조승우 씨에게 향해 있다는 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똥개도 알 정도니 잠시 무시하죠. 하지만 정작 승희 씨의 이목을 끈 건 자신의 대각선에 앉은 주지훈 씨는 대체 무슨 연유로 제 옆자리의 ㅇㅇ 씨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걸까요. 드라마 광팬으로써 좋아하는 연예인 만나 주접 좀 쌀 수도 있지. 저 깨발랄한 모습에 삔또 상한 저 입꼬리는 대체 뭐냐구요. 혹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시지 지금껏 한 마디도 못 붙혀보고 뭐 마려운 사람 마냥 왜 저러는 거죠.
이 두 남정네들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다른 어느 곳을 향하지도, 잠시 어딘가에 닿지도 않았다는 건 승희 씨만 눈치 챈 것 같아요. 홀로 곰곰히 생각하다 결국 다다르게 된 결론은
ㅇㅇㅇ, 혹시 돈 빌렸나? 라는데... 이야.
코난, 그 꿈 접길 잘 하신 것 같아요.
관찰은 꽤나 영특했으나 추리는 개똥이네요.
승희 씨, 저걸 좀 보시라구요!
실수로 젓가락을 떨어트리면 새로이 젓가락을 챙겨주고,
물컵이 조금 비면 모자라지 않게 컵을 가득 채워주고,
조금 맛있게 먹는 듯한 안주는 죄다 ㅇㅇ 씨 앞으로 가 있잖아요!
게다가 방금 화룡점정으로,
"우왕- 승우 님이 따라주는 술이라니 이런 건 가보로,"
"..."
"아니.. 그걸 왜... 그쪽이 마시.. 아, 빡...아..."
아- 아까 한 말 취소 취소! 저 딱 느낌 왔어요. 촉 섰어.
지금 ㅇㅇㅇ 연예인이랑 연애 각인 거죠?
드디어 제가 나설 차례인 게 분명하다며 큐피트 현승희 씨는 스스로 재빠르게 세운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남몰래 구석에서 아주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옷 소매까지 비장하게 걷어붙이네요.
오,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뜽우 옵빵! 뜽희뜽희 혼쟈 화댱실 가기 무또운데 같이 가쥬시면 안대영?!"
네? 승희 씨, 저희는 조금 당황스러워요.
"뭐야- 또라이야. 혓바닥 집 나갔냐. 급발진 뭐야.
승우 님이 너랑 화장실을 왜 가, 미친아."
ㅇㅇ 씨 성격상 저 어투도 조승우 씨 앞이라 많이 순화 시킨 것 같아요.
대신 눈으로 쌍욕을 하시네요.
"뜨르 느그으."
(따라 나가아)
지훈 씨만 승희 씨의 생각을 간파한 것일까요,
식탁 밑에 지훈 씨의 발은 이리저리 데구르르 굴러다니는 눈동자 못지 않게 아주 분주하네요.
"아뇨. 저도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네요."
영문도 모른 채, 정강이를 차이고 발이 밟힌 조승우 씨는 오늘의 최대 피해자로 확정 난 것 같네요. 이젠 안쓰러운 걸 넘어서 불쌍하기까지 해요.
약간의 병맛 기질이 섞이긴 했으나 승희 씨의 계획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찌 됐든 지금 방에는 지훈 씨와 ㅇㅇ 씨만 남게 되었잖아요? 하지만 승희 씨가 성급히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면 아주 잽싸게 문까지 꼭꼭 닫고 자취를 감춘 두 분과 함께 찾아온 이 적막한 분위기.
이 분위기는 대체 누가 책임지나요...
숨이 막히는 듯한 지루함에 여태껏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핸드폰을 제 주머니에서 꺼내는 ㅇㅇ 씨. 그런 ㅇㅇ 씨를 바라보며 괜히 바보처럼 입만 벙긋이게 되는 답답함에 그저 머리를 긁적이는 지훈 씨. 정말이지 현재의 투 샷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만큼의 보기 드문 고요함이네요.
아니- 이렇게 어색할 일입니까?!
그냥 사랑한다고 말 해요!!!!!!
"승우 형 좋아해요?"
"조승우 님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럼 저는요?"
"좋아해요."
"크흡."
"뭐야. 자기가 물어 봐 놓고 왜 저래."
"아니 그럼... 그때는 ㅇ,"
"근데 여기 이마 왜 그래요?"
"이마요? 왜요."
"아니. 자기가 어디 다친 줄도 몰라.
이리 와 봐요."
"이마..? 여기요?"
미간을 좁힌 채 제게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온 ㅇㅇ 씨가 참 예뻤다고 해요. 이미 몽롱했던 정신이 처음으로 가까이 마주하게 된 얼굴에, 무척이나 사랑스럽도록 간지러운 손길에 다시 또 취한 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신대요. 발그레 달아오른 귓가에서 쉴새 없이 들려오는 이유 모를 이명에 일렁이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순간, 심장을 울리는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귀청이 터질 듯 황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알려준 게 하나 있다면,
아, 이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
지훈 씨는 그 짧디짧은 찰나에 지금껏 저는 지독하게 따분하던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얕은 충동 따위에 이끌린 게 아니었다고 확신하셨다고 해요. 누가 듣는다면 별 것도 아닌 시시한 일일지 몰라도 제게는 참으로 대단한 설레임이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녀의 몸짓과 숨소리 하나하나가 아직까지도 제 인생을 송두리째 잡고 뒤흔들 만큼이요. 수학 공식만큼이나 난해하고 어려운 것인 줄만 알았던 사랑이 이리도 쉽게 저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고요.
"현승희 진짜 죽일까. 튄 거 같아요. 저희도 그냥 가죠."
"오늘 첫 눈이래요."
"네?"
"미신 같은 거 안 믿어요?"
"미신? 뭐, 같이 첫 눈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거요?
근데 그거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말 아닌가."
"저 안 싫다면서요."
"예?"
"그럼 나 좋아하면 되겠네."
"술 많이 잡쉈네...
됐고. 내일 해장이나 같이 해요."
"진짜? 진짜죠?! 전화번호 줘요..!"
사람이 참 속고만 살았나 봐요.
혹여 그녀가 그새에 마음이라도 바꿀까 걸터앉아 있던 계단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ㅇㅇ 씨의 앞으로 휴대폰을 내밀며 호다닥 달려옵니다. 이렇게 술은 다 깬 것 같네요. 오늘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지훈 씨의 말갛게 웃는 얼굴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던 ㅇㅇ 씨는 가슴 한 귀퉁이에 찾아온 왠지 모를 간질거림이 낯설어 괜히 목을 가다듬네요. 무의식적으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 입꼬리를 숨기려 건네받은 휴대폰에 제 번호 열한 자를 더욱 열심히 꾹꾹 입력합니다.
둘 사이의 기류가 미묘하게 바뀐 듯 하네요.
"근데 나 정말 안 취했어요."
"아 예. 첫 눈만 맞고 들어갑시다."
헐, 진짜 눈 오네?
제 뺨에 닿아 녹아 버린 눈송이를 닦아 내다 싱그러운 미소를 짓던 ㅇㅇ 씨를 제 눈에 가득 담은 지훈 씨 또한 그녀를 따라 환히 웃습니다.
새하얀 꿈만 같던 두 번째 만남입니다.
EPILOGUE.
Q. ㅇㅇㅇ 씨도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네요.
"생각을 해 봐요.
겁나 잘생긴 남자가 술자리에서 계속 나만 쳐다보고,
젓가락 챙겨 줘, 물 챙겨 줘, 내가 좋아하는 안주 다 내 앞으로 밀어 줘,
아- 술 뺏어 먹는 건 제가 원래 싫어해서... 그거 알고는 이제 안 하죠."
"어우. 우리 집 술고래 술잔 뺏으면 큰일나요."
"아무튼, 돌이 아닌 이상 없던 마음도 생기지 않겠어요?
주지훈 졸귀탱!!!"
안녕하세여 여러분!
저 약속 잘 지키져!??!
겁나 빠르게 돌아왔져?!?!?!
자 칭찬 한 번씩만 해주세요!!!!!!!!!!!!!
워후!!!!!!!!!!!!!!!!!!!
이 분위기를 이어서 암호닉을 받아볼까 합니다!
테니스때부터 암호닉이 계셨던 분들은 인사 한 번씩만 해주세여
우리 사이에 공백 따위란 없었다는 듯
제가 철판 깔고 친한 척 할게요 (뻔뻔)
받아주셔야 합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혹시 보고싶은 소재가 있으시다면
추천 좀 해주세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저 모솔이라구요...
연애 세포 그거 뭔데요....
썸이든 뭐든 남자랑 만나야 설레는 글을 쓰든 말든 하지...
인생... 후....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