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민) 형형 우리 축제 끝나고 뭐 먹어?
민규) 뒷풀이 해 안해?
여주) 피곤하니까 당일엔 하지말고 그 주 금요일이나 다음날 하는게 어때? 시간 조정해서.
한솔) 그게 제일 낫지.
승관) 아 그래도 축제 끝나고 그 분위기를 이어서 가는 것 도 좋은데~
지훈의 시선이 정한과 맞물리고 단호한 지훈의 대답이 동아리 실을 가득 채운 동시에 문이 열리며 1학년 아이들이 들어왔다. 지훈이 자연스럽게 휴대폰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자 정한은 그 모습을 쳐다보다 아이들의 물음에 답했다.
정한) 단톡방에 물어봐서 날짜 정하지 뭐. 근데 여주가 말한대로 금요일이나 다음날에 먹는게 좋을 것 같아. 애들 피곤하니까.
민규) 그래. 축제날은 집에가서 자야지.
석민) 진짜 어떻게 그렇게 맨날 자냐.
민규) 뭐가! 자도자도 졸려!
여주) 오빠 귀가 왜이렇게 붉어? 추워서 그래?
지훈) ..나 원래 귀 빨개.
여주) 그래? 오빠 피부가 하얘가지고 더 빨개보이나보다.
원우) 여주야 이브이 진화하는거 볼래?
여주) 어 볼래!
원우의 부름에 지훈의 옆에 앉아있던 여주가 원우 옆에 자리하고, 곧 분위기는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와 아이들의 말소리로 가득채워졌다.
축제 당일 날, 아침 일찍 모여 역할분담을 한 아이들은 각자 자리로 향했고 복도에 전단지를 붙이고 다녀야하는 민현과 여주는 동아리실을 빠져나왔다.
여주) 오빠 오늘은 안바빠?
민현) 이따 장기자랑 무대 관해서 모이는 거 밖에 없어, 축제는.
여주) 힘들겠다. 회장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었네.
민현) 자처한 일인데 뭐. 물론 내가 말고 엄마가 하신거지만.
둘이 동아리실을 나와 1층복도부터 천천히 간격을 넓혀 전단지를 붙이고, 2층 계단을 올라가다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주) 벌써 가을이다. 하늘 엄청 파랗네.
민현) 그러게. 이제 9월도 끝나가네. 날씨 엄청 좋다.
여주) 금방 또 추워지겠지? 올해는 눈 많이 내렸음 좋겠다.
민현) 겨울 좋아해?
여주) 응. 사계절 중에 겨울이 가장 좋아-.
아침 햇살이 은은하게 둘을 비추고, 은색 난간에 기대어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주를 내려다보며 민현이 물었다. 왜?
민현) 가을도 있고, 봄도 있잖아.
여주) 그냥, 추운거 좋아해. 꽁꽁 싸매도 뭐라고 안하잖아. 여름엔 긴팔입으면 왜 긴팔 걸치냐고, 안덥냐고 물어보는데.
민현) .......
여주) 그리고 눈도 오잖아. 눈오는 거 좋아해서 겨울이 좋아. 아, 물론 비오는 것도 좋아해!
민현) 나도 비오는 거 좋아해.
여주) 왜?
민현) 티가 안나서. 내가 울어도, 그게 빗방울인지 눈물인지.
여주) ...그게 뭐람.
민현의 쓴 웃음에 여주가 따라 쓰게 웃고, 곧 둘 사이에 짧은 정적이 자리했다. 그 때 여주가 전단지를 흔들어보이며 갈까? 하고 물었고, 민현은 그런 여주를 내려다보며 웃어보일 뿐 답은 하지 않았다. 적잖게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할 때, 민현이 느지막이 입을 열었다.
민현) 왜 긴팔 입는지 물어봐도 돼?
여주) ......아.
여주가 작게 탄식을 내뱉고, 제 손에 들린 전단지를 내려보며 눈을 여러번 깜박였다.
여주) 맞아서 흉터가 몸에 많아.
민현) ...누구한-,
지훈) 전단지 안돌려?
순영) 에이, 전단지 돌리랬지 누가 데이트하랬냐!
민현의 물음으로 대화가 이어질 찰나에 아이들이 다가와 꾸짖고, 곧 지훈이 여주가 든 전단지를 몇장 앗아가며 말했다.
지훈) 황민현 너 권순영이랑 마저 전단지 돌려.
민현) 아 왜 여주랑 돌릴거야.
순영) 야 서운하게 뭘 그렇게 단박에 거절하냐.
지훈) 너네 붙어있으면 놀잖아. 권순영이랑 돌려.
민현) ...그래 둘이 어산데 둘이 돌려. 권순영 가자.
순영) 아 찝찝하게! 한 번에 받아주든가!
민현과 순영이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고, 지훈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여주를 향해 물었다.
지훈) ..근데 어사가 뭐야?
여주) ...어색한 사이?
지훈과 한창 전단지를 돌리고, 둘의 손에 전단지가 몇 장 안남았을 때 지훈이 한적해진 복도를 둘러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지훈) 아까 전에,
여주) 응?
지훈) ..말 해주려 했어? 민현이가 물어봤으면.
여주) ...뭐, 못 말할 것 도 없지.
지훈) 왜?
여주) 그야, 나도 민현이 오빠 가정사를 다 아니까.
지훈) ...아.
여주) 근데 그건 왜?
지훈) ....아냐. 그냥 궁금해서.
다 붙였으면 가자.
지훈의 말에 여주가 마지막으로 전단지를 붙이고 먼저 복도를 가로질러가는 지훈을 따라 잡아 나란히 옆에서 걸음을 맞췄다. 여주는 제 가디건 소매 끝을 매만지다 지훈을 향해 물었다.
여주) 오빠는, 그럼 집에 가기싫어?
지훈) ..왜?
여주) ....아버지가 여자를 많이 데려온다그랬잖아.
지훈) ....싫지. 항상.
여주) ...나도 그랬는데.
지훈의 말에 여주가 쓰게 웃으며 동조했고, 지훈이 그런 여주의 표정을 내려다보곤 재빨리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흔들리는 제 시선이 들킬까봐였을까.
여주) 문 밖에서 서있어도 둘이 싸우는 소리가 새어나오면 괜히 동네 몇바퀴 돌다가 들어가고 그랬어.
지훈) ...나도 그래.
여주) 그러다가 들어갔을 때 두분 중에 한분이 안주무시고 계시면 날 때렸어. 왜 그렇게 늦게 다니냐는 핑계로 화풀이를 한거지.
지훈) .........
여주)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프더라. 난 그저 화풀이 용이었다는게.
이혼한 그 순간까지도, 둘이서 날 책임지지 않으려고 서로한테 떠미는게, 그게 그렇게 비참했어.
덤덤한 목소리에 쓴 웃음까지, 지훈은 그 모습이 퍽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고 여주는 지훈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자연스레 지훈의 걸음도 멈추고 여주의 눈을 맞췄다.
여주) 집에 가기 싫을 때 연락해.
지훈) ........
여주) 같이 있을게. 안외롭게.
지훈) ........
여주) 옛날의 나같이, 오빠가 그러고 돌아다니는게 싫어서.
내가 만약, 옛날의 나를 만난다면 난 그렇게 해주고싶어. 그 때 제일 필요한건, 똑같은 처지의 사람이잖아.
정한) 권순영이랑 황민현은 아까왔는데 왜 이제와 니네!
여주) 우리 어사라서 대화 좀 나눴어-
정한) 어사?
여주) 어색한 사이 ㅋㅋㅋㅋㅋ 민현이오빠가 우리보고 어사래.
정한) ㅋㅋㅋㅋㅋㅋㅋㅋ아 그러면 인정할게.
여주와 지훈이 사진 동아리 아이들이 배정받은 교실에 느지막이 도착하자 정한의 잔소리가 이어지다가 여주의 말에 수긍하며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쥐어줬다.
정한) 여주는 저기 벚꽃나무 오는 애들 찍어주고 지훈이는 단풍나무판넬 애들 찍어줘.
여주) 알았어.
여주가 폴라로이드를 손에 쥐고 벚꽃나무 판넬에 기대어 서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자, 사진기를 들고있던 민규가 여주를 담았다. 찰칵소리와 함께 사진이 나오고, 팔랑팔랑 흔들던 민규가 사진을 확인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민규) 예쁘긴 또 겁나 예뻐요.
“여기 눈사람 찍어주세요!”
민규) 예~ 갑니다~
민혁) 여주?
여주) ...네?
민혁) 너가 찍어주는구나! 나나 얘랑 찍어줘! 얘는 임창균. 엉 나랑 동갑인 임 창 균 이야!
창균) 즈블 득츠르...
민혁) 다 이 형님이 도와주려는거 아니겠냐.
여주) ...그럼 찍을게요. 여기 봐주세요. 하나, 두울-,
셋.
다시 한 번, 하나 두울 셋.
여주가 두장을 팔랑팔랑 흔들며 민혁과 창균에게 한장씩 건넸다. 선명하게 보일 때 까지 흔들어주세요. 하고 말을 덧붙인 여주가 다음 학생을 기다리기 위해 간이 의자에 앉으려 할 때 민혁이 여주의 팔을 붙잡았다. 저기,
여주) 네?
민혁) 같이 찍을래?
여주) ...사진을요? 왜요?
민혁) 아니, 친해지자는 의미로?
정한) 개소리하고있네. 좋은 말 할 때 꺼져.
민혁) 너 왜자꾸 방해질이야! 내가 말했듯이 내가 아니라-!
정한) 너든 아니든 상관 없거든? 사진 도로 뺏어서 찢기전에 나가라-.
아닛! 야! 밀지 말라고! 아니 손님을 이렇게 내쫓기 있어?! 아놔 이 사진동아리 진짜아!
정한) 정리 다했으면 갈까?
승철) 그래. 나 학원 때문에 먼저 간다!
찬) 형 나도 먼저 가! 승철이혀엉-! 같이 가!
석민) 여주야 갈까?
여주) 응 가자.
석민) 휴대폰 챙겼어?
여주) 응. 민규야 지갑 챙겼어? 저거 네 지갑 아냐?
민규) 어 맞아. 이제 없어 없어. 가자.
정한) 같이 가자. 다 끝났어.
민현) 야, 카페라도 들렀다갈래?
지훈) 에너지가 남아 도냐?
민현) 집에 가기가 너무 싫다.
승철과 찬이 학원으로 먼저 빠져나가고, 차례로 아이들이 인사를 건네며 나간 뒤 남은 여섯명이 동아리 실 문을 잠그고 적적한 복도를 거닐었다. 종종 불이 켜져있는 동아리 실과 교실엔 축제를 마무리하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고, 아이들은 잠시 그 광경을 구경하다 대화를 시작했다.
정한) 야, 이제 날도 춥다. 그냥 들어가라.
민현) 오늘 축제했다고 가자마자 또 과외있어.
지훈) 새벽과외 아니었어?
민현) 오늘은 밤부터 새벽으로 이어지는 과외. 이게 말이 돼?
지훈) 안되는걸 해내시는게 너희 부모님이잖아.
민규) 형도 참. 피곤하게 산다.
석민) 어떡해.. 형 우리집에서 잘래? 재워줄까?
지훈) 미친소리하네. 니네집에 여주도 같이 살면서 무슨.
여주) 난 괜찮은데?
정한) 여주야. 우리가 안괜찮아. 저자식은 안돼.
민현) 너네 진짜 왜그러냐. 그럼 니네가 나 재워주든가.
지훈) 우리집은 니네집 못지않은 콩가루야.
민현) ...넌 패스. 야 윤정한.
정한) 야. 우리집도 못지않게 콩가루거든? 알면서 지랄이야 왜.
민현) ...그럼 민규야.
민규) ..우리집 괜찮아? 전교회장 처음봐서 폭풍질문에 잠도 못잘텐데.
괜찮아. 재워주기만 해!
지훈) ...얼굴이 왜그래?
민규) 말했잖아 내가.. 질문 폭탄이라고. 어제 우리 엄마 질문에 세시간동안 시달렸엌ㅋㅋㅋㅋㅋㅋㅋ
정한) 진짜? 엄청나시넼ㅋㅋㅋㅋ
지훈) 뭔 질문을 얼마나 했길래.
민규) 우리집안에 전교 1등에 전교회장이 온 건 처음이라 그냥 다아~ 하신거지.
민현) 공부는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그렇게 유지를하냐. 아니 애초에 공부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거냐. 우리 민규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안했다. 그때부터 자기가 잘못키운거냐-..
민규) 아니 꼭 저런다니까?! 매앤날 우리 민규는 공부를 안한다~ 우리 민규는 이만큼이나 먹는데 원래 그렇게 먹는거냐~ 우리 민규는 이만큼이나 자는데 원래 고딩이 이만큼이나 자는거냐~ 진짜 돌겠다니까!
민현) 사교육비는 한달에 얼마나 드냐, 너희집은 라면 같은 건 안먹지 않냐, 우리집에 있는게 입맛엔 좀 맞냐,
민현의 쓸쓸한 음성과 쓴 웃음이 동아리실을 가득 채우자 소파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민현의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럿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민현이 괜시리 웃음을 머금으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민현) 야 나 진짜 살면서 처음들어봤잖아. 우리집 사람들한테도 못들어본걸 민규네 어머니한테 들어보다니.
지훈) 그 집 아들 하지 그래?
민규) 안돼! 그럼 맨날 민현이형 숟가락에만 갈비 얹어줄걸!
정한) ㅋㅋㅋㅋㅋㅋ넌 그게 걱정이냐
지훈) 철없는 놈ㅋㅋㅋㅋㅋ
정한) 연락은 안왔어?
민현) 담임한테 등교한거 확인한 뒤로부턴 안오더라.
지훈) 오늘 들어갈 거잖아.
민현) 응. 내가 뜻밖의 지옥행 열차를 끊어뒀네.
민규) 형 내일 등교는 가능한거야?
민현) 가능하겠지. 학교는 갈 정도로만-,
철컥-!
찬) 형형!!!! 어떤 여자 선배가 여주 데려갔어!!!!!
정한) ...뭔 소리야?
찬) 아 몰라, 여주 화장실에서 나오는 거 보고 같이가려그랬는데 어떤 여자 선배가 여주 데려갔어. 한솔이가 일단 따라가긴했는데-..
민현) 어디로 갔는데?
지훈) 어디로 갔는데.
찬) 아까 왼쪽 문으로 나가는 것 까진 봤어. 일단 내가 한솔이한테 연락을-, 어 형!!
쾅-!!!!!
찬이 휴대폰을 들어 한솔에게 연락을 하려는 동시에 문을 박차고 뛰어나간 민현과 지훈이었고, 순식간 동아리실엔 싸늘한 공기가 가득해졌다. 휴대폰을 들고 아이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는 찬이에게 정한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한솔이한테 연락해봐.
찬) 아 어. ...학교 뒷 뜰이라는데? 소각장 쪽.
민규) 씨발 진짜!
정한) 김민규 진정하고 나랑 같이 가. 너 여기서 사고치면 여주만 곤란해지는 거야.
일단 가보자.
“뭐하나 잘난게 없는데. 도대체 왜일까?”
“........”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니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저기요.”
“너 때문에 저번에 정아가 300시간 봉사한 건 알고있지?”
“........”
“아이씨, 대답안하냐.”
여주를 중심으로 여자아이들이 둘러싸고, 가운데에서 지현이 여주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현의 말에 눈을 느리게 깜박거리며 아무 말 없는 여주였고, 지현은 그런 여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위아래로 흘겼다. 그리고 곧 옆에 있는 여자아이들에게 말했다. 손 좀 봐줘. 지현의 말에 여자아이들이 여주를 툭 치며 눞히곤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고, 여주는 몸을 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떠 수많은 발 사이로 보이는 한솔과 뒤를 이어 들어오는 사진 동아리 아이들을 쳐다봤다.
‘걔 나중에 밟히는거 아니야? 한지현 선배한테.’
“........”
‘그 선배 황민현 선배 좋아하기로 유명하잖아.’
여주의 머릿속에 1학년 아이들이 자신을 등지고 이야기를 나누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가고, 곧 자조적으로 웃음기를 머금다가 표정을 지워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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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수록 느끼는 건, 행복할수록 불안하다. 라고 생각해요. 너무 어둡게 마무리가 된 것 같지만 여러분 길게 남았으니(진짜 제가 예상한건 정말 길게 길게 아주 길게^^..하핳..) 걱정 마세요! 흐히 다음주도 잘 마무리하면 좋겠네요. 추워지는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구 코로나도 조심하시구 저는 글이 맹글어져 지는데로 돌아올게요! 이번주도 힘드셨죠ㅠㅠ 남은 주말 잘보내세요! 예쁜꿈꿔요 안농💛
+세때홍클 사실 이렇게 까지 장편 생각한게 아니라서 제목에 회차를 안적었더니 좀 후회가되네옄ㅋㅋㅋ
대신 엔딩 다음에 넣으려 생각중이랍니다.
⬆️ 어쩌면 스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