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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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을 좋아하게 된 건 내 삶에서 그렇게 큰 변화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꽃에는 나비가 꼬이듯 나에게 김도영은 그저 수많은 꽃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얼빠에게 김도영의 얼굴은... 당연히 매혹적이지 않겠는가. 이동교실을 갈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반에 들어가는 게 좋았고 하루하루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즐겼다. 그래, 딱 거기까지였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전하게 될 줄을 몰랐단 말이다. 그런데 왜. 내 앞에서 친절을 베풀고 있는 저 사람이 왜 하필 김도영일까.
“야, 성이름. 죽었냐? 왜 말이 없어.”
“아... 아니. 이동혁 내가 다시 전화할게.”
짧게 말을 전하고는 휴대폰을 급하게 주머니로 욱여넣었다. 무슨 말을 해야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을까. 평소 굴리지도 않는 머리를 굴렸다. 한참을 고민을 하다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뻔뻔하게 나가자 성이름.
“어...고마워. 저...혹시 전화 내용 들었어?”
“응.”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이 세상에 김도영이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너랑 나 아는 사이도 아니고...”
XX! 뻔뻔하게 나가긴 무슨! 쪽팔림에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들킨다는 설정은 외국 하이틴 드라마에서만 주야장천 봐 온 장면이었건만... 그 어려운 걸 내가 지금 해낸다.
“응. 오해 안 할게. 늦었으니까 집 조심히 가.”
'...?'
이렇게 쉽게 수긍을 한다 김도영 너는. 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그렇게 쉽게 믿어버린다. 이걸 배려라고 해야 할까, 무관심이라 해야 할까. 당연히 후자에 가깝겠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상처를 받고 싶지 않으니 저 말에 대한 정의를 내리진 않겠다.
나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 왜 ㄸ..."
“이동혁!! 도영이가 나한테 집 조심히 가래!!!”
...이 정도면 중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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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독서실은 가지 않았다. 그깟 공부 집에서 하면 되는 것이고 이 시국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가지 않는 것이라고 나 자신과 합리화를 했다.(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닌 김도영과 거리 두기가 되어버렸지만.) 이동교실을 갈 때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제일 앞 줄 가장자리로 가서 앉았다. 김도영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다시 마주쳐서 그 어색한 공기를 느끼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짜증나게 하지 말고 놔라 진짜.”
“아, 같이 뒤에 앉자니까?”
“흐즈 믈르그 흤드...”
“나 쓸쓸하다고 성이름~”
저 주옥같은 이동혁이 내 후드집업 모자를 놓지 않고 떼를 쓴다.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 건지 날이 갈수록 정신연령이 사촌동생인 박지성만도 못한 xx가 되어 가는지 의문이다. 그날 있었던 일을 이동혁에게 말했을 때 이동혁은 숨이 넘어갈 듯이 꺽꺽대며 웃느라 바빴다. 바보 같은 변명을 했다며 비웃기만 하다 결국 몇 대 얻어 맞고 울상을 짓기는 했지만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어, 성이름 너 나한테 좀 고마워해야 할 듯."
“뭔 개소리야. 놓으라ㄱ... 으억.”
이동혁 저 개X식! 앞으로 넘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동혁은 버둥대고 있던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속삭이고는 이내 잡고 있던 후드집업의 모자를 놓아버렸다. 방심하고 있었던 내 몸은 앞으로 쏟아졌고 그 장면은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욕을 생각했는지... 이동혁 너는 진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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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넘어져 고통을 표하며 이동혁의 머리채를 잡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픔이 아닌 따뜻함과 편안함이 느껴졌다.(어쩌면 좋은 향기가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따뜻함과 편안함? 추워진 날씨에 따뜻하고 편안한 바닥이라니. 후지다고 유명한 우리 학교에서 보일러가 되는 바닥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와 부딪혔다는 소리인데... 본인한테 고마워해야 한다는 소리가 설마...
"또 보네."
"아 미안. 이동혁 때문에... "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곧 수업시간이니까 수학한테 혼나기 전에 빨리 자리에 앉아."
"응... 미안해."
즐겁다는 듯 실실 쪼개고 있는 이동혁 저 개X식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무미건조한 대화만 주고 받은 우리는 이내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이동혁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몸을 돌리는 순간 누군가에 의해 몸이 다시 돌려졌고 눈에 보이는 건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김도영이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입을 앙 다물고는 이내 열린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날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요즘 왜 독서실 안 와?"
그렇게 너는 나를 또 다시 무너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