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태형! 편지다!”
상관의 말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그의 손에 놓여있는 편지봉투를 가져갔다. 흰색의 정갈한 봉투. 봉투엔 이름 석 자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편지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편지지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무언의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왠지 모르게 지금 이 편지를 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편지지를 펼치는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 태형아, 오랜만이네.
익숙한 필체. 그것이 제가 사랑하는 연인의 편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빠르게 글을 읽어 내렸다.
- 태형아, 나는 그저 네가 너무 좋아. 너무 좋아서 주체를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눈물이 나. 어떡하지?
편지지 곳곳엔 눈물 자욱이 가득했다. 거기다 펜을 제대로 잡을 힘도 없었던 것인지 글자는 심히 삐뚤삐뚤했다.
- 부모님이 혼례를 진행하겠데. 나랑 남준 오빠랑.
고철 덩어리로 머리를 가격 당한 듯 정신이 멍해졌다. 혼례를 진행한단다. 연인인 내가 있는데. 물론 그녀의 의견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을 것을 안다. 아마 김남준도 이건 아니라며 악을 쓰고 있을 것이다. 종이를 쥔 손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고 빠르게 다음 문장을 읽었다.
- 그래서 나, 도망치려고. 너 1년 후면 부대에서 나올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우리 1년 뒤에 만나자. 나는 너와 함께 갔던 곳에 있을게. 그.. 유채꽃이 만개했던 곳! 거기에서 나중에 우리 같이 살자고 약속했잖아. 내가 먼저 가 있을게. 내가 먼저 가서 나중에 오는 너를 반겨줄 테니까.....
“그래, 거기에서 만나자…….”
혼자서 중얼거렸다. 거기에서 만나자, 꼭, 1년 뒤에.
2.
“여보세요.”
- 윤기야.
전화기 사이로 흘러나오는 모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데 저렇게 남의 남자친구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나.
나는 턱을 괴고 전화를 받은 민윤기를 쳐다보았다. 표정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 것을 보니 좋게 끝난 인연은 아닌 것 같았다.
“뭔데.”
- 어디야?
“알아서 뭐 하려고.”
상대편의 물음에 민윤기가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나는 그 영양가 없는 대화들을 들으며 언제쯤 통화가 끝날까, 하고 테이블 위의 포크를 건드리던 민윤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을 잡으니 금세 깍지를 껴오는 민윤기에 소리 없이 웃음을 지었다.
- 윤기야, 혹시 지금 만날 수 있어……?
“지금 부인이랑 같이 있는데.”
- 부인? 진짜로?
민윤기의 말에 상대방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에 돌아가는 민윤기의 대답은 칼 같았다.
“어. 나 결혼했어. 그러니까 연락 좀 그만해라.”
- ……그래.
그리고 전화는 민윤기에 의해 끊겼다.
“전 여친?”
“어. 가끔씩 술 먹고 전화하더라. 헤어진 지 2년이나 넘었는데.”
“2년? 세상에. 버릇 나쁘네.”
“그렇지.”
민윤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데 왜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부인이라고 했어? 나 너랑 결혼 안 했잖아.”
“결혼할 거니까 그렇게 대답하지.”
“뭐?”
“너 이제 나한테 코 꿰인 거다.”
3.
나와 그는 서로가 원해서 만난 사이가 아니었다. 가문 사이의 결속과 세력의 확장을 위하여 그저 희생된 것뿐이었다. 그렇게 가문에 휘둘린 우리는 공통점이 꽤나 많았다. 지금의 처지도, 유년 시절의 기억들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로 하였다. 사랑하는 부부가 되지는 못하여도 친구 같은 부부가 되기로.
“정국아.”
“왜.”
“그런데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해?”
“너랑 나? 아니면 타인과?”
“너랑 나.”
“그러면 사랑하는 거지, 뭐.”
내 말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타인과 사랑에 빠지면?”
“타인을 정리해야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을 내뱉는 그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타인과 사랑에 빠진다면 보통은 그 사랑을 이어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타인을 정리할까. 그저 나를 정실부인으로 두고 첩으로 그녀를 들일 수 있는 것인데.
“왜 그러냐는 듯이 보지 마.”
“정말 궁금해서 그런 건데.”
“타인을 정리하는 건, 그게 너와 나 사이에 있는 신뢰를 무너트리는 일이라 그러는 거야.”
“신뢰?”
“그리고 그 사람보다 네가 더 소중할 게 뻔하니까.”
“음, 그래.”
나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거짓을 보태지 않고 말하자면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나와 그 사이의 신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인가.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보다 신뢰감으로 이뤄진 사이가 더 소중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내게 알 수 없는 의문을 남겼다.
“그럼 넌, 타인과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할 건데.”
“나도 타인을 정리할게.”
“그래?”
“응.”
아마 나도 너처럼 그 사람보다 네가 더 소중할 거야. 너와 나의 관계가.
그렇게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마지막 말을 삼켜냈다.
-
ㄲㅑ~~~~ 오랜만임니다
원래 7년차 썰 써야하는디 그냥 머리가 백지가 돼가지고........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조각글 가져왔어요.... ㅎㅔ헤....
열심.. 열심히 써서 가져오도록 노력할게요.. 넘나 죄송해서 오늘은 구독료도 안 붙였어... 어차피 글들이 다 짧지만..☆
글들에 달린 댓글의 답은 다음 글이 올라올 때 달겠습니다. 죄송해요 'ㅠ',...... 저를 매우 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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