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도 역시 일찍 일어났다. 옆에서 자고 있는 수영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니까 꾸밀까 하다가 인턴이랑 만나는데? 하는 생각에 잠시 갈등했다. 백화점도 가는데, 가서 수영이 선물도 좀 사고 하는 생각에 꾸미기로 결심하고 화장을 시작했다. 병원 갈 때는 불편해서 입지 않던 원피스도 꺼냈다. 옷도 다 입고, 나가기 전에 수영이를 깨우려고 방문을 열었는데 수영이가 졸린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서있다.
"뭐야, 김에리 남자친구 생겼어?"
"내가?"
"옷 그거 뭐야."
"백화점 가려고."
"헐, 나도 같이 가자!"
"안 돼, 병원 인턴 만나기로 했어. 신세 졌거든, 대신 네 것도 사올게."
수영이는 뾰루퉁한 표정을 짓더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갔다 올게 하고 손인사를 하자 웃으면서 같이 손을 흔드는 수영이다. 집에 사람이 있으니까 확실히 다르구나. 차에 타서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거 같아서 안심했다. 백화점에 도착해서 약속 장소로 올라가서 두리번 거리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보이질 않는다, 결국 휴대폰을 꺼내는데 누가 뒤에서 툭툭 치기에 고개를 돌리자 인턴이 서있다.
"어, 와있었네."
"네, 안녕하세요."
"뭘 그렇게 쳐다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요, 오늘 예쁘시네요."
인턴의 말에 너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하고 웃자, 머리를 긁적이면서 따라 웃는다. 가자 하고 말하자 앞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레스토랑에 들어와서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자, 여긴 이게 맛있어요 하면서 손가락으로 파스타를 가리킨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걸로 할까요? 하고 묻기에 그래 하고 대답하자 웨이터를 부른다.
"크림 파스타랑 치킨 샐러드랑 추천 메뉴 하나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웨이터가 자리를 비우고 난 뒤, 웃으며 많이 온 솜씬데? 하자 그저 웃는다.
"여자친구랑 데이트 이렇게 해?"
"여자친구 없어요."
"의외네?"
물을 마시면서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턱선을 쓸어내린다. 한참을 쳐다보니, 셔츠에 니트, 코트까지 색감부터 옷을 고르는 스타일이 장난 아니다. 병원에선 가운을 항상 입고 있으니, 잘 몰랐는데. 물잔을 내려놓으며 빤히 쳐다보자, 뭐 묻었어요? 하고 묻는다.
"너 옷 되게 잘 입는다."
"감사합니다."
말을 이으려는데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기에 입을 닫았다. 음식이 나왔는데 안 먹고 나를 쳐다보기에 먹어 하고 고개짓을 하자 사진 안 찍으세요? 하고 묻는다. 난 그런 거 안 해 하고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너 여자 많이 만나봤구나."
"아닌데요."
단호한 대답에 조용히 샐러드를 먹었다. 오, 여기 되게 맛있다. 내 혼잣말에 웃더니 많이 드세요 하고 내 앞접시에 음식을 놔준다. 아무래도 여자 많이 만난 거 같은데. 내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살짝 살짝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인턴은 내 궁금증을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디저트를 기다리는데 저, 선배님 하고 나를 부른다. 왜? 하고 묻자,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한다.
"스물 여덟, 김종대는 스물 일곱, 김종인은 서른, 김준면은 서른 하나. 아무도 말 안 해?"
"아, 그건 아닌데. 안 믿겨서요."
"뭐가?"
"선배가 스물 여덟이라는 게."
"칭찬이냐?"
"당연하죠."
고맙다, 이제 보니까 너 말 되게 잘하네. 병원에선 왜 조용하냐? 내 질문에 인턴은 잠시 망설이더니 그러게요 라고 대답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타입인가. 디저트를 먹고 나와서 계산대 앞에 서자, 선배 하고 나를 부른다.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니, 자기가 계산 했다고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뭐야, 나 보고 사라며?
"나중에 한 번 사주세요. 선배가 좋아하는 걸로."
"알겠다, 잘 먹었다. 덕분에 비싼 밥 먹었네."
내 말에 웃더니, 저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하고 대답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럼 조심히 들어가 하자 영화라도 보죠? 하고 얘기를 하기에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선배를 아주 구워 삶으려고.
"오늘은 안 돼."
"바쁘세요?"
"친구 선물 사야 돼. 백화점 온 김에 사려고."
"저도 같이 가요."
자연스럽게 내 옆에 붙은 인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렇게 살가운 애가 병원에선 왜 그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화장품 매장에 와서 립스틱 샘플을 들면서 비교하고 있었는데, 뒤에 뻘쭘이 서있길래 팔을 잡고 옆으로 당겼다.
"이 색 어때?"
"어......"
"이거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거기 서있어. 내 말에 가만히 나를 보면서 옆에 서있는다. 결국 처음부터 생각한 색을 두 개 사서 쇼핑백에 담았다. 인턴이 멍하니 서있길래, 팔짱을 꼈더니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야, 너 그 때 나랑 김준면이 하는 얘기 들었지? 내 말에 대답을 못 하기에, 들었네 했더니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인다.
"김준면만 아는 거니까, 너도 말 하지마. 아무한테도."
"알겠습니다."
"들었으니까 알겠지만, 걱정 마라. 사심 없다."
내 말에 인턴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바쁘다, 귀찮다는 핑계로 못했던 아이쇼핑을 했다. 물론, 인턴을 옆에 끼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시간이 조금 늦어졌기에 인턴을 보내고 차를 탔다. 수영이에게 금방 가겠다고 애교를 부린 뒤, 집으로 향했다. 수영이는 쇼핑백을 뜯어 보면서 아 진짜 사랑스러워 김에리! 하고 소리쳤고, 나는 환하게 웃었다. 인턴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하다가 잠이 들었던 거 같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병원으로 왔다. 김준면한테 할 말이 있어서 데스크에서 기다리는데, 김준면이 멀리서 걸어오더니 귓속말로 즐거웠어, 데이트? 란다. 뭔 개소리야 하고 소리치자, 나만 들리게 속삭인다. 인턴이랑.
"야, 인턴! 네가 말했어? 나랑 어제 만난 거?"
"야, 내가 봤어. 어제 너네 둘이 백화점에 있는 거. 쟤가 나한테 그런 거 얘기 하겠냐?"
씹...... 쪽팔렸다. 얼굴을 가리자, 김준면이 웃으면서 나를 막 놀렸다. 성질 좀 죽이라니까? 김준면이 막 놀리기에 발을 꾹 밟곤, 병실로 발길을 돌렸다.
"김에리, 귀엽지?"
"네."
병실에 들어와서 바로 준수를 찾았다. 준수는 이미 겉옷까지 다 입고 간호사의 손을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수야! 하고 부르자 쪼르르 달려오는 게 귀여웠다. 준수를 안고 차에 태운 뒤, 납골당으로 향했다. 납골당으로 가는 내내 준수는 내가 준 사탕을 먹고 있었고, 나는 납골당에 도착해서 준수를 다시 안았다. 엄마의 사진이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굳는 준수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준수야, 엄마."
"엄마, 준수 왔어. 준수 왔어요...... 엄마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요. 잘생긴 의사 선생님이 열 밤만 자면 엄마가 꿈에 와준다고 했는데 왜 안 와줬어? 많이 바빴어? 나, 엄마 너무 많이 보고 싶어."
준수의 안쓰러운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누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고개를 들자, 김종인이 서서 내 어깨를 두드린다. 언제 왔어? 내 물음에 준면이 형한테 물어봤어 하고 대답을 하더니 준수 옆에 쪼그려 앉는다.
"준수야."
"선생님."
"오늘 선생님들이랑 엄마 아빠 놀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