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훈남 변백현 4
종대는 차라리 저가 백현이를 꼬시는 게 더 간단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 만큼 복잡한 관계 속에 종대는 지쳐가고 있었어. 문, 이과 선택을 할 때 동정심에 이과를 선택한 스스로도 원망스러웠고 갑자기 김종인이 좋다고 말하는 너도 미웠어. 차마 백현이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종대는 그저 네가 음악 문제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대답 밖에 들려줄 수 없었어. 믿지 못하는 듯한 눈에 찔려서 죽을 것 같았지만. 종대는 평화주의자였어. 종인이가 혹시라도 너희 반에 오려고 하면 피 같은 용돈을 털어서라도 매점에 데려갔고 너와 백현이가 함께 있을 수 있게 갑자기 얘기를 하다가도 빠져줬어. 종인이가 피카츄 스티커에 집착하는 변태였기에 종인이를 빼돌리는 건 쉬웠지만 백현이는 아니었어.
너네 반 애한테 빌릴 거 있다니까?
나한테 빌려, 어? 빌려줄게!
필기도 지 같이 하는 새끼가. 아, 진짜 좀 나와봐.
교무실에서 돌아오던 차에 백현이는 뒷문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에 걸음을 멈춰. 김종대와, 김종인. 종인이가 9반으로 들어가는 걸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종대의 얼굴에 난처함으로 가득해. 종인이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던 백현이야. 그 모습을 무덤덤하게 앞문 앞에 서서 바라보던 백현이가 노래를 듣고 있는 너를 발견해. 꽤 집중하고 있는지, 아니면 음량을 높힌건지 저 소란에도 돌아보지 않는 게 신기해. 그 모습 마저 눈이 시릴 만큼 예뻐.
야, 내가 이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너 나 왕따 시키냐...?
아, 뭐라는 거야.
ㅇㅇ이 있을 때만 나 못 들어오게 하잖아. 내가 서러워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진짜.
무언가가 뒷통수를 강하게 내리치고, 백현이의 걸음이 멈췄어. 다시 뒷문으로 고개를 돌리면 시무룩한 종인이와 억울해죽겠다는 종대가 여전히 문 앞에 있어. 백현이의 눈이 천천히 김종인을 훑고 그대로 너에게로 되돌아가. 종인아, 하고 다정하게 부르던 너. 그런 너의 머리를 쓰다듬던 김종인. 속이 상할 만큼 어울리던 둘.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던 김종대. 허탈한 웃음이 저절로 나와. 백현이의 꽉 쥐어진 주먹이 창백해져. 결국 종대에 의해 다른 반으로 가게 된 종인이의 뒷모습을 멍하게 보던 백현이가 천천히 종대를 불러.
김종대.
왜, 새꺄.
진짜 그 때 아무 말도 안 했어?
...뭔 소리야...
종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굳은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어. 당황스러움에 입술만 깨무는 종대야. 뭔가를 알아차린건지 몰라도 백현이에게 더는 상처를 줄 수 없었어. 처음부터 솔직하게 얘기해야했어. 잊으라고. 어차피 안될 거였다고. 그만 놓으라고. 아무 얘기도 없었어. 종대의 힘없는 변명이 백현이에게 다시 한 번 상처가 되어 돌아왔어. 전하지 못한 마음이었지만,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끝나버린 자신의 마음이 안쓰러워. 무엇을 위해 그 어둠 속에서 살아온거야. 백현이의 2년이 백현이에게 물어.
근데 왜 나는 아닌 것 같지.
......
그대로 종대를 지나 교실로 들어온 백현이는 다시 한 번 너라는 벽에 멈춰서. 처음 만났던 그 날과 변함 없는 너. 한참을 서성이던 백현이는 결국 거칠게 종대 자리의 의자를 빼 자리에 앉아. 터져나오는 울분이 목구멍에 걸려 아려. 짝이 되었다고, 친해졌다고 병신 같이 설레였던 스스로가 떠올라.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백현이는 차라리 책상에 얼굴을 묻었어. 이젠 정말 놓아야 한다고, 되뇌이며.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어. 먼저 피한 건 너였지만 이젠 백현이가 먼저 너를 피했어. 칠판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자리를 앞 쪽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동 수업 땐 누구보다 빨리 교실로 올라가버렸어. 너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게 참 괴로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유난히 넓어보이는 등이, 단정한 검은 색의 뒷통수가, 너는 괴로웠어. 그래도 차라리 마음을 들키고 거절 당하는 것보다 이 편이 나았어. 불편한 사이가 되어 동정을 받느니 그냥 변덕스러운 여자애가 되는 것이 너에게는 슬프지만 최선이었어. 하지만 너에게도 견딜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어.
6교시에 있을 체육시간을 위해 미리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돌아오던 길이었어. 아침에 비가 내려서인지 조금 쌀쌀한 날씨에 하복 체육복을 입은 맨살이 춥다고 아우성을 치는 통에 팔을 조금씩 문지르며 교실로 들어오려던 너는 사물함 뒷편의 두 인영을 보고 황급히 다시 교실 밖으로 나와. 너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문 사이로 교실 안을 들여다봐. 도경아와 백현이. 그리고 며칠 사이 너는 볼 수 없었던 백현이의 웃음다운 웃음. 백현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경아를 모를 수가 없었어. 사귀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두 사람이야. 부러울 만큼 잘 어울렸고 너도 한 때는 이 둘을 보며 부럽다고 생각했었어.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안 예쁜 구석이 없는 경아가 지금 백현이를 보며 웃고 있어. 그 누구보다도 빛나게.
아, 백현이 귀여워서 누나는 아주 죽겠다.
까불지.
더 까붙건데? 우리 강아지, 우쭈쭈.
장난스럽게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이 꼭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아서 너는 왠지 모를 소외감이 들어. 어차피 나는 낄 곳도 없었어. 입술을 지긋이 깨문 너는 자그마한 경아가 백현이의 턱을 마치 강아지에게 하듯 쓰다듬는 걸 보고 그대로 교실 반대편으로 달려가.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지만 너는 교실로 돌아갈 수 없었어. 자꾸만 시야가 흐려져 손등으로 눈가를 닦아내자 묻어나오는 축축한 눈물이 너는 더 비참했어. 계단을 어떻게 내려갔는지도 모르겠어.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1층 여자화장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확 터져. 잡고 싶었어. 그 애한테 웃지 말라고 하고 싶었어. 다시 나한테 다가와줬으면 좋겠어. 모른 척 당당하게 굴었으면 친구라도 했을텐데,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갑작스러운 시작이었지만 그 크기는 너도 모르게 이렇게나 커졌나봐. 두 손으로 담아내기엔 너무 커서, 이제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어디 있었냐는 종대의 닦달에 보건실에 있었다며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어. 5교시를 통째로 빠졌어. 여자화장실에서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겨우 추스렸을 땐 이미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었어. 하는 수 없이 보건실로 향했고 네 수척한 얼굴을 본 보건선생님의 허락으로 남은 시간을 누워있을 수 있었어.
체육쌤한테 너 이번에 쉰다고 말해줄까?
내가 애야?
완전 애지.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헤집는 손끝에 인상을 찌푸리자 황급히 손을 떼며 미안하다고 하는 종대에게 씩 웃어보여. 그 웃음이 힘이 없어보이는 건 단지 아파서인 것 같지 않아 종대는 조금 더 걱정스러워졌어. 운동장으로 나가자 축구를 하고 있는 남학생들이 보여. 춥지도 않은지 신나게 공을 몰고 가는 걸 멍하니 스탠드에 앉아서 보던 너는 무의식적으로 백현이를 찾아.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인지 이제는 안 보고도 그릴 수 있는 뒷모습이 보이지 않아. 곧 종칠텐데. 아니나 다를까,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운동장에 가득 울려. 종대가 말을 해둔 것인지 종이 쳐도 스탠드에 앉아있는 너에게 선생님도 그닥 신경쓰지 않아. 대형을 맞추며 출석을 부르는 것 같아. 아직 백현이는 오지 않았어. 아까의 서러움보다 당장의 걱정이 너에겐 더 컸어. 그 순간 황급히 교실에서 내려오는 백현이가 보여. 그 익숙한 얼굴을 보자 묘한 안도감이 들어.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꾸중을 듣던 백현이가 결국 운동장을 돌아. 그 모습을 보던 너는 결국 무릎에 얼굴을 묻어. 끝없는 암흑 속에서 숨을 곳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었어. 진짜, 창피해.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올 것 같아 차라리 고개를 든 너는 예상치 못한 마주침에 굳어버려. 이제 반 바퀴를 돌던 백현이의 숨 가쁜 얼굴이 너와 마찬가지로 굳어있어.
그저 지나갈 줄 알았던 백현이가 너에게로 오자 당황스러움은 오직 네 몫이었어. 진심으로 놀란 네 눈동자가 정처 없이 헤매고 그 사이 백현이는 어느새 네 앞으로 가까워져있었어. 저 멀리 아이들이 패스 연습을 하는 게 보여. 체육 선생님은 환자와 지각생에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
...어디 있었어?
아, 몸이 안 좋아서... 보건실...
평소보다 거친 호흡이 이어진 침묵 속에 안정을 찾아갔어. 너는 차마 백현이를 올려다볼 수 없었어. 이유를 알 수 없는 백현이의 시선이 너를 몰아넣고 있었어. 그동안 백현이는 너를 한 치의 허술함 없이 샅샅이 지켜보고 있었어. 5교시 내내 비어있는 뒷 자리를 신경쓰느라 백현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이유없이 수업을 빠질 네가 아니었어. 혹시 어디서 다친 건 아닐까, 뉴스에 간간히 나오는 나쁜 사람들이 학교에 들어온 건 아닐까. 걱정은 불안감이 되었고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어. 제일 먼저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보건실에 네가 없어서 그 다음부턴 정말 미친듯이 돌아다녔어. 1층부터 4층까지, 남녀 구분할 것 없이 문이 열리는 곳은 다 들어가봤어. 그래도 없었어. 그제서야 핸드폰이 생각난 백현이가 주머니를 뒤졌을 때 안타깝게도 백현이의 핸드폰은 책상 서랍 안에 얌전히 누워있었어. 교실로 갔을 땐 이미 문이 잠겨있었고 결국 운동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그토록 찾던 네가 스탠드에 얼굴을 묻고 앉아있었어. 그 날처럼, 인형처럼.
아프다면서, 옷은 반팔이야?
동복 안 가져와서...
그런 백현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넌 이 상황이 어색해 그저 눈만 데굴데굴 굴릴 뿐이었어. 그 때 백현이가 자신의 체육복 상의를 벗어. 체육복을 들고 백현이가 네 코 앞까지 다가올 때까지도 너는 백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그저 눈만 크게 뜰 뿐이었어. 입어. 그 명령 아닌 명령이 뇌를 자극하고, 마침내 받아들였을 때 너는 비로소 네 무릎 위로 파란색의 동복 체육복이 올라와있는 걸 발견했어. 그 날처럼, 하얀 명찰이 빛을 내며. 백현이가 운동장을 향해 뛰어가는 걸 멍하니 보던 넌 다시 체육복으로 시선을 옮겨. 그 순간 다시 턱, 턱 발걸음 소리가 너에게로 다가와. 너는 아까보다 더 놀란 얼굴로 방금 떠났던, 발걸음의 주인을 올려다봐.
학원, 제일병원 옆에 있는 거 맞지?
어? 어... 근데 왜?
얘기 좀 하자. 10시에 앞으로 갈게.
...뭐?
기다릴게.
집에 오자마자 쓸 수 있는대로 써봤는데....휴.... 오늘도.......
아 근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막 화요일까지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철회할게여 저는 한가한 여자인 것으로......
제 글이 부족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댓글 주세여ㅠㅠ 피드백도 환영....
저번 편에서 완전 개막장이었죠? 휴... 알아여 저도.............
그나저나 종대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랑 결혼해.......
종대♥신인
종인♥스티커
백현♥여러분
그럼 전 다시 눈물을 훔치며 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