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 BGM (적절한 배경음악은 글의 몰입도를 올려줍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 OST - 꽃과 나비가 머무는 곳
태자비(太子妃)
[ 영화 ' 청춘의 여명 ' 의 여주연 '금월' 역 오디션에서 떨어지셨습니다.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기회가 함께 하시길*^^*
- 더 필름 ]
망했다. 또 떨어졌다. 이번에도 이 말도 안되는 결과를 부모님에게 가져다 드리면 분명 때려치우라며 소리를 지를텐데.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에 구태여 배우를 하겠다며 연기를 배운지 어언 6년이 되었다. 정식으로 데뷔를 한 건 아니였지만 종종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이다. 연기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나 주변 동료들 모두 넌 연기를 너무 잘한다, 넌 성공하겠다, 칭찬들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해댔지만 정작 영화라던지 드라마 오디션을 보면 보는 족족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이 몇 번째 낙방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도 없이 떨어졌다.
"나 이정도면 연기에 재능 없는 거 맞지, 그치?"
"야, 절대 아니야! 내가 사심 다 빼도 동기들 중에 너가 제일 잘해."
"근데 왜 맨날 떨어질까? 나 때문에 우리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뼈빠지게 고생했는데.."
"주인공 되기가 쉬운 줄 알았냐, 조금만 기다려봐. 빛 볼 날이 오겠지."
일찍이 할 게 없어 거리를 돌아다닌지는 좀 됐지만 차마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러 집에 갈 자신이 없어 친구에게 위로나 받을 겸 밥을 함께 먹었다. 그마저도 친구가 바빠서 결국 나혼자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사람도 얼마 없는 넓은 공원을 걸어다녔다. 요새 날이 춥긴하지만 화창한 날이 많아 그닥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벤치로 가 털썩 앉았다. 며칠 후에 이 공원에서 드라마 촬영이 있다는데 그 때 구경이나 와볼까. 시덥잖은 생각들을 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어댔다. 그러다 문득 부는 바람에 오한이 들어 음료를 홀짝이고 있는데 내가 앉은 옆자리로 웬 할아버지(라기엔 큰아버지 뻘 즈음으로 보이는ㅡ) 한 분이 무릎께를 짚으며 앉았다.
"한창 꽃 필 처녀가 무슨 고민이 그리 많아."
"에..?"
"한숨을 연신 뱉어대길래"
"아, 뭐..그냥요. 모든 일이 내 맘 같지가 않아서요. 분명 내 인생인데.."
"원래 인생이란 알 수 없는 의문투성이인게지."
말이 길어질 거 같다. 잘못 말했나? 그냥 별 일 아니라고 할 걸..보통 할아버지 나이쯤 되면 지나갈법한 일에도 구구절절 이론을 펼쳐놓을 시기인데. 아무래도 괜히 말했다 싶어 커피 한 모금을 더 들이키는데 뜨겁다는 걸 생각못하고 크게 넘기니 받아들이지 못하고 목구멍에서 내용물이 도로 나왔다. 아뜨뜨. 혀 데인 거 아니야? 생각이 없어, 생각이! 방금 전 나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혀를 식히곤 옷을 보는데 오늘 새로 입은 옷 위에 튀어있다. 이씨. 이거 어떡해? 아직 할부도 안 끝났는데! 우거지 죽상이 되어 옷을 털고 있다가 불쑥 눈 앞으로 내밀어진 손에 손수건 하나라도 쥐어주나 싶어서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 어?
어라?
손에 쥐어진 명함을 보곤 옷에 튄 커피 방울들이 그대로 스며들어 간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멍하니 명함의 주인을 바라봤다.
' 영화 제작사 화금 '
- 대표이사 기완서
"나, 나 여기 알아요! 여, 여기 어엄청 유명한덴데?"
"아가씨, 진정 좀 해."
배우들이나 혹은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 모두 귀에 딱지가 얹히도록 들은 영화 제작사가 두 곳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이었다. 제작했다하면 대박을 치는 곳으로 나에게도 선망의 제작사였다. 이걸 근데 나한테 왜? 막상 어마어마한 명함이 손에 쥐어지니 궁금해졌다. 이걸 나한테 왜? 난 오디션이면 오디션마다 떨어졌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난 이 할아버지에게 내가 배우가 되고 싶어하고 또 오디션을 봤다가 낙방했노라 알려준 적도 없었다.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씀하셨다.
"그냥 아가씨한테 필요해보여서 건네준거야."
"에이, 거짓말! 세상 어느 바보가 그 말을 믿어요?"
"상황 파악은 빠른 처녀구만."
"그럼요. 대학 와서 먹은 게 눈칫밥 밖에 없는데 이 정도는 껌이죠!"
"사실 이번에 내가 영화 한 편을 찍어볼 생각인데 마땅한 여배우가 없어서."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덥썩 명함 건네줘도 돼요? 연기 잘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 부분은 걱정 말어. 아가씨가 잘할 거 같아서 맡기는 거야."
"..뭔가 이상한데."
"근데 아직 시나리오가 없어."
이거 사기 아니야? 사실은 나 뒷조사 해가지고 일부러 돈 빼먹을려고..!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황당하기 짝이 없어 있는 힘껏 미간을 찌푸리곤 할아버지를 쳐다보자 손사래를 치시며 급히 말을 이어붙인다. 그래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의심에 경계하는 태세를 보이자 당황한 할아버지는 두 손까지 번쩍 들고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며 믿어달라고 했다.
"시나리오는 아가씨가 직접 써오는거야. 글이 짧든 길든 아가씨가 원하는걸로."
"그게 뭐에요 진짜, 엉터리잖아요. 완전."
"속는 셈 시도라도 한번 해봐. 아니다 싶으면 이거 들고 날 찾아오는거야."
할아버지는 이내 품 속에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곤 나중에 보자며 자리를 뜨셨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글자 하나 적혀있지 않은 대본 뭉탱이들이 가득 담긴 봉투를 끌어안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잘 왔냐는 말보다 오디션은 어떻게 되었냐는 엄마의 질문에 침묵으로 답하자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며 당장 그만두라는 윽박지름을 무시한 채 방으로 들어왔다. 피곤한 마음에 당장에 잘 준비를 마친 채 침대에 누우려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대본들을 바라봤다. 글 쓰는 일에는 흥미도 없을 뿐더러 재능도 없었다. 해봤자 손해 볼 건 없겠다 싶어 결국 책상 앞에 앉아 아무 것도 없는 대본을 펼쳤다. 그렇게 째깍거리는 시계를 배경 삼아서 펜을 굴리며 엉덩이에 쥐가 날 정도로 생각이란 생각은 다 해보았지만 나오는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무작정 연기 하고싶다며 땡깡을 부렸지 어떤 걸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역시 괜히 했어. 아무 것도 안한 채로 이거 주러가면 쪽팔릴 꺼 아니야."
명색이 대표 이사라는데. 도대체 내가 어쩌자고 이 짓을 하고 있는거야. 답 없이 지르고 봤다. 아까 그냥 따라가서 못하겠다며 돌려줬어야 했는데. 혹시나 하며 걸었던 기대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된거야. 결국 쥐고 있었던 펜을 던지듯 내려놓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따드읏하다, 전기장판. 내일 자고 일어나서 저거 다 돌려주러 가야지. 어짜피 이제 연기 하지도 못할텐데. 못하는 거 붙들고 있어봤자야 하는 생각에 한시름 놓고는 잠에 들기로 했다. 역시 생각이 많은 날엔 잠이 잘 온다.
'네가 하는 허황된 상상도 밤마다 꾸는 꿈도 모든 것이 영화일 수 있지.'
"아가씨 정신이 조금 드십니까?"
"..응?"
"일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영원히 빛 못보시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요..."
내게 명함을 건네준 아저씨가 내 꿈에 나와선 대뜸 한마디를 남기곤 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잠에서 깼는데 아무래도 내가 죽은 거 같다. 그게 아니고서야 헛것이 이렇게 생생할리가 없다. 나이 먹고선 아직도 유치하게 캐릭터 따위를 방 벽에 도배해놓냐며 구박을 하면서도 기어이 지켜낸 고양이 벽지 대신 천장쪽 모서리에 까진 흔적이 역력한 누런 벽지들이 붙여져 있질 않나 분명 어젯밤 최대로 올려놓은 전기장판은 온데간데 없고, 내 위에 숨이 막힐 정도로 두꺼운 이불이 놓여져 있으며 나를 아가씨라 부르는 내 눈 앞의 이 여자도 모두 상상치곤 너무 현실적이었다.
"혹시 납치? 아니면 인신매매? 진짜 왜 그러세요 저한테!"
"아씨도 참, 아직도 몸이 아프십니까? 그리 헛소리를 하시니."
"핸드폰 어디있지, 핸드폰."
요즘 범죄자들 인신매매 집단에서 새로 떠오르는 납치법인가. 이게 도통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손이 덜덜 떨렸다. 어젯밤 모자까지 푹 덮어쓴 후드 앞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찾으려 손을 더듬어도 핸드폰은 커녕 주머니조차 잡히지 않았다. 설마 내 옷까지 벗긴거야? 미친! 순간 잠이 확 깨는 느낌에 벌떡 누운 몸을 일으켜선 돌덩이같은 이불을 제껴보니 후드는 온데간데 없고 서걱거리는 긴 치마와 언젠지 기억도 안 날 어릴 때 명절 때 입었던 한복 하나가 제 몸에 걸려있었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이런식으로 납치를 하지? 계속 눈 앞에 펼쳐진 낯선 상황에 이젠 눈물까지 덥석 나왔다.
"제가 잘못했어요, 네? 제발 집에 보내주세요. 저 진짜 아무 것도 없는 대학생이거든요?"
"아가씨. 갑자기 왜 이러세요? 하대하세요. 곧 궐로 시집가시는 아가씨께서 어찌 저같은 일개 노비에게 존댓말을 하십니까."
"아가씨는 뭐고, 궐로 시집을 왜 가요?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비가 무슨 말이에요 진짜.."
"아직 병이 심각한 거 같으니 의원을 불러올게요. 기다리세요 아가씨!"
혼돈에 빠진 날 두고 부리나케 방 밖으로 나가려는 여자의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나는 이게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당신이 왜 조선시대 사람인 척 연기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내 옷이며 지금 내가 있는 이 방이 왜 내가 알고 생활했던 그 방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무서운 마음에 기어이 눈물을 떨구기 시작하자 깜짝 놀란 여자는 이내 무릎을 꿇더니 내 앞에 앉아선 심각한 얼굴로 말을 건네왔다. 정말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냐는 여자의 말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곧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서운 건 나고 어이없는 것도 난데 오히려 이 여자가 더 죽을 거 처럼 눈물을 떨궈댄다. 그게 당황스러워 울다 말고 여자의 등을 두드려줬다.
"아씨, 이제 우린 큰일 났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아..."
"울지마세요. 왜 우세요. 울고싶은 건 난데."
"혼사를 며칠 앞두시고 갑자기 쓰러지시길래 단순히 몸이 곤하여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쓰러져요? 누가요. 제가?"
"예! 몇 날을 누워 계시길래 얼마나 애가 탔는데, 이제 깨어나셔서 다행이라 여겼는데 이를 어찌합니까 이제.."
여전히 무슨 말이고, 지금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여자에게 내 볼을 내밀며 한 번만 꼬집어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이 어떻게 태자비 마마의 얼굴에 생채기를 내냐며 펄쩍 뛰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여자는 몇 번이고 송구하다며 사과를 하곤 조심스럽게 내 뺨을 꼬집었다. 사실 그냥 볼살을 잡았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이젠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장난하냐며 울컥 소릴지르자 깜짝 놀란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눈 앞이 핑 돌 정도로 얼얼한 느낌에 꼬집힌 볼을 부여잡고 눈을 감았다. 셋만 세자, 딱 셋만 세보는거야. 정신차려라, 어? 이건 꿈이야. 그저 조금, 아니 훨씬 생생한 것 뿐이라고.
하나,
둘,
셋.
"아 나 어떡해요 진짜.. 꿈이 아니야. 이거 꿈 아니에요? 왜 아니야 왜!"
"아씨 고정하셔요! 이리 울고만 있다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어떡해요. 이게 꿈이어야 하는데 꿈이 아니잖아."
"이리 넋 놓고 계시면 아니됩니다! 곧 있으면 태자께오서 당도하실 겁니다."
"누구요? 태자?"
어찌 하다하다 태자 마마까지 잊고 계시옵니까. 하며 절망적으로 여자는 내게 말을 했다. 설마. 설마 내가 아는 그 태자? 그 사극에서나 보던 전하, 세자, 뭐 공주, 중전? 이런 거? 왜 하필 조선시대야! 조선시대 연기를 한 건 학원에서 짧게 잘라 내어주는 스크립트가 전부였는데! 실제 상황에선 전혀 도움이 되질 않잖아. 말투만 얼추 따라할 수 있었지. 조선시대에 어떤 단어를 썼는지 무지했다. 망했다. 망했어. 그냥 기억 잃었다고 하면 안되나? 어쩔 도리가 없어 넌지시 물어보니 눈이 튀어나올 듯 경련하며 절대 아니된다고 한다.
"아니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
"아씨 그러면 이렇게 해요. 제가 아가씨께서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하신건지 설명해드릴테니 제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셔요."
아가씨께서 기억을 잃었단 것은 저를 제외하곤 아무도 몰라야 합니다.
절대로 기억 잃었단 것을 티내셔선 아니됩니다.
그냥 제가 시키는대로 하세요. 그럼 별 탈 없을 겁니다.
나는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건 꿈도 아니고, 납치도 아니다. 인신매매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도 아니고, 남한은 더 아닌 화금국이란 나라의 양반집 유일무이 딸내미이며 하늘과도 같은 황제폐하의 장자인 황태자에게 시집을 가야하며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나라의 왕자란 태자 마마는 나와는 마주한 적이 없으며, 내가 쓰러지기 전 혼사를 앞두고 만나려다 내가 쓰러지곤 차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태자 마마는 나랏일로도 아주 바빠 시간 내기가 아주 어려웠으며 내가 오늘 깨어나든 아니든 날 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근데 아주 재수없게도 나는 오늘 기억을 몽땅 잘라먹은 채로 깨어나게 된거고.
"태자 마마와 아가씨가 초면인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가씨."
"그럼 뭐해요. 난 당장 눈 앞에 당신 이름도 모르는데."
"세에상에. 아무리 그래도 소녀의 이름도 까먹으시옵니까? 그것은 정말 서운합니다."
"미안해요. 이제부터 기억할게요. 이름이 뭐에요?"
"제 이름은 경월이라 붙여주셨습니다. 아가씨께서."
"내가요?"
"예. 기억도 안나시겠지마는 달과 햇빛을 따선 지어주셨습니다. 이름을 처음 받았을 때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경월이란 여자는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몸까지 베베 꼬며 수줍게 웃었다. 내 몸종이란 여자의 이름까지 들으니 이 모든 상황이 피부로 닿아왔다. 다시금 울컥 차오르는 눈물에 이번엔 내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경월도 이 상황이 막막하긴 한지 엉엉 울어대는 나를 구태여 말리지 않았다. 눈물이 없어질 때까지 울어보라는 듯 오히려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손길이 다정해서 또 왈칵 눈물을 한 바가질 쏟아냈다. 눈이 시뻘개져선 더 이상 울음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런 나를 보곤 곱디 고운 얼굴이 다 망가졌다며 경선은 이내 내 얼굴에 분을 칠하며 꽃단장을 해주었다. 저 멀리 대문 밖에서부터 요란한 것을 보니 올 것이 왔나 싶었다. 경월은 나를 안아주더니 이내 긴장하지 말라며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태자 저하, 도착하셨사옵니까?"
"오랜만입니다, 대감. 제가 너무 태자빈께 무심했지요."
"아니옵니다 마마. 태자빈 마마의 상태가 좋질 않았으니 오지 못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저 송구하오나 빈마마께오선 깨어나셨습니다. 막 깨어나셔서 준비를 하시고 있을겁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어찌 이것을 다 아시고!"
"아닙니다. 우연일 뿐이지요. 그럼 제가 태자빈을 보러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아니옵니다! 여기 계시옵소서. 소첩이 모시고 나오겠습니다."
진짜로 심장이 터져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방 문이라곤 하나 방음하나 되질 않아서 문 밖에 목소리들이 생생했다. 더불어 경월이 날 모시러 문 앞으로 오는 발자국 소리마저도 선명했다. 목이 타서 갈증이 났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경선이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다. 내가 떨고 있단 걸 아는지 경월은 자기가 대신 심호흡을 해보이며 조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경월은 고개를 뒤로 빼곤 이내 문을 활짝 열었다. 밤새 보는 빛이 이렇게 눈 부셨나 싶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문 앞에 놓여져있는 신발을 신고 일어나려는데 순간 다리가 풀릴 뻔 했다. 방을 나가기 전까지 잘못하면 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단 경월의 말이 생각나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뵙습니다. 태자빈."
내가 생각하던 황태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어디 한 대 후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는 왕이나 왕자들이라곤 다 늙거나 중후한 중년 아저씨들을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젊었다. 그리고 솔직히 내 진심을 말하자면 잘생겼다. 내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남자한테 시집 가는거면 진짜 계 타는건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냥 무서웠다. 사고회로가 멈춰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경월이 옆에서 정신 좀 차리라는 듯 팔꿈치께를 툭툭 쳐댔다.
"아, 아...소첩. 어, 태자 저하를 처음 알현하옵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지? 아까 전 경월이 알려준대로 슬슬 읊었지만 맞는건가 싶어 확인 차 눈만 굴려 경월을 바라보니 잘한건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자 몇 백년 묵혀둔 체증이 훅 내려가는 것 같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기쁜 마음에 고개를 드니 빤히 나를 쳐다보는 황태자와 눈이 마주쳐 도로 고갤 숙였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진짜 잘생기긴 잘생겼다. 인물이 훤하네. 원래 나였던 여자 부럽다. 나 가면 맨날 이 잘생긴 얼굴 볼 수 있으니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태자빈."
"...예?"
"그래도 남녀가 혼인하는 것인데, 이번 혼사는 황실의 독단적인 결정이라 날 싫어하면 어쩌나 했는데."
"싫다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예. 그래서 다행입니다. 그대가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서."
이미 결혼은 확정났는데 소개팅 가선 남자 처음 만난 것 마냥 가슴이 요동을 쳐댔다. 귀 끝이 벌개지는 느낌에 침만 삼키고 있자 대감마님, 그러니까 내 아버지란 사람이 둘이 후원으로 산보라도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아직 어색한데. 아직 아는 게 없는데? 어떡해! 명색이 아버지 말인데 거절할 수도 없는 마당에 다시 경월을 쳐다보자 다녀오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놀란 마음에 표정을 일그러뜨리자 말을 아끼라는 듯 입을 꾹 다무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 행동에 고개를 돌려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자 저하와 후원으로 향했다.
"혹 서운하진 않으셨는지요."
"무, 무엇이 서운하겠습니까..."
"혼사는 오래 전 결정이 났는데 태자빈과 저는 만남이 처음이질 않습니까."
"서운하진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뭐..."
"그래도 이리 아름다운 여인이였으면 한번이라도 보러올 걸 그랬습니다."
부끄러워! 할 말도 없어! 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말하는 것도 어색해 죽겠다. 부인이라던지 아름다운 여인이라던지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서 듣는데 불편했다. 물론 그 말들이 오글거리진 않았다. 여자라면 당연히 듣고 싶은 소리일테고, 들으면 기분 좋은 말들 일테니까. 날은 분명 추운데 이상하게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혹시나 나에게 이상한 말을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거지? 난 정말로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혼인은 언제가 적당하겠습니까. 태자빈께서 병을 앓으셨으니 미루는 게 좋겠지요?"
"네, 그 한 일주일 정도면 괜찮아질 거 같은데..."
혹시 일주일이란 말도 못 알아 들을까봐 일부러 손가락으로 '7'을 세보였다.
오른손 다섯 손가락, 왼손 두 손가락.
그러곤 태자 저하를 쳐다보니 별안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게 웃긴가.
"은근 귀여운 면이 있으십니다, 태자빈."
아, 그거였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알겠습니다. 일주일 후에 내 그대에게 옥가락지 하나 끼워드리지요, 부인."
화華(빛날 화)금噙(머금을 금)국의 황태자, 전원우.
폐후궁의 아들, 권순영.
양반가 자제, 이석민.
목穆(화목할 목)랑浪(물결 랑)국의 왕자, 김민규.
참고해주세욥. |
아이고 민망하여라 .쥐구멍이 어디있도라......ㅎㅎ 세봉이들 사ㄱ극이 없어서 제가 하나 놓구갑니다(총총) 똥멍청이 같은 글 읽는다고 스크롤 내리느라 수고하셨슴다. 이 담편이면 애들 다 만나겠죠? 저는 후다닥 스피드한 게 좋으니까여. 아 물론 담편도 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댓글 없음 민망하잖아여////-////너누 움짤 적당한 거 찾는다고 갤러리를 뒤졌는데 저거 보고 넘나 잘생겨서 심장폭행 당했습니다. 세봉이들 미모 열일♡신인상도 받고 이제 콘서트도 한다는데 넘나 좋은 것. 좋으시죠?(강요) 서가대 원우 보고 세상과 바이한 후에 다시 태어남 룰루. 문맥 상 어색한 부분이나 오타 있으면 살짜쿵 알려주세여 수정하러 감니당ㅎ.ㅎ그럼 이만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댓글 쓰시구 포인트 돌려받으세요>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