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레빗 - Falling in love
혹시 남동생과 남자친구가 한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으면 지금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
죽을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옆에 있는 남동생 눈치 한 번, 앞에 있는 남자친구 눈치 한 번 보게 되는 상황.
그런 상황을 생각했었는데...
"그럼 형이 먼저 사귀자고 한 거에요?"
"그렇지."
"대박. 뭘 보고? 뭘 믿고?"
이미 저 곳은 그들만의 세계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갈 틈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하랑 연애하는 법
06 下
w. 복숭아 향기
김태형. 내 사촌동생.
이라고 말을 하자마자 김태형은 환하게 웃으며 와다다다다 너에게 달려왔었다. 너는 그 때도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김태형을 바라보고 있었지.
김태형은 그런 너의 표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너의 두 손을 꼭 그러쥐며 땡글땡글한 눈으로 너를 올려보았다.
그리고 말했지.
"우리 누나 남자친구에요? 진짜? 이렇게 멀쩡한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들고 있던 주걱으로 김태형의 머리를 내리쳤고. 머리에 뻘건 국물이 묻었는데도 좋다고 웃은 김태형을 보며 그제야 너는 표정을 풀었었다.
진짜 동생이 맞구나 하고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안심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 진짜 사촌동생이 맞으니까.
그렇게 되서 지금 상견례 아닌 상견례가 된 것이었다.
내 옆에는 김태형이 그리고 내 앞에는 너가 앉아서 나는 죽을 두 사람은 방금 내가 만든 떡볶이를 먹게 된 거지.
김태형은 왜 또 양파며 양배추며 이렇게 많이 넣었냐고, 햄은 왜 하나도 없는 거냐고 투정을 부렸고 너는 그 옆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편식 안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네 입맛은 애기 입맛이었다.
김태형이랑 다를 게 전혀 없다는 말씀.
"작작하고 좀 그냥 먹어."
"누나 지금 내숭부리는 거?"
"내숭?"
"처먹으라고 안하고 먹으라고 하잖아요. 완전 내숭이지."
"처먹으라고 말해야 입 다물래?"
"이거 봐요."
김태형은 키득거리며 소시지를 우물거렸다. 소시지고 뭐고 아무것도 넣지 말 걸 그랬나.
괜히 맛있게 한답시고 육수까지 냈던 내 자신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맹물에다가 고추장만 풀어서 대충 해줄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냉장고까지 탈탈 털었을까.
너는 계속해서 김태형을 빤히 바라보며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내 어릴 적은 어땠는지,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어땠는지, 고등학교 때는 또 어땠는지, 어릴 때 사진 혹시 갖고 있는지 그리고...
"전에 남자친구 사귄 적은 있어?"
"누구요? 누나?"
"응."
지금까지 웃으면서 물어봤던 거와 다르게 너는 꽤나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까지 끄덕이며 김태형에게 물었다.
김태형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포크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꽤나 열심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날 리가 있나. 내가 누구 사귄다고 말한 적도 없고 사귄 적도 없는데...
나는 작게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다시 죽을 한 숟가락 떴다. 제길스럽게도 죽은 맛있었다.
내가 새우 좋아하는 건 또 언제 기억한건지... 나는 입 안에 있는 새우를 우물우물 거리면서도 김태형을 힐끗 바라보았다.
김태형은 아직도 포크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개새끼. 생각할 게 뭐가 있다고. 나는 발로 김태형의 발을 꾹 눌렀다.
흐익! 김태형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배시시 웃으며 너를 바라보았다.
빙글빙글 돌려대던 포크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누나 모쏠이에요."
"진짜?"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지랄하지마. 너 내 옆 아파트 살잖아.
라고 목구멍까지 튀어오는 말을 꾹꾹 누르며 애써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여전히 내 발은 김태형의 발을 꾹 누르고 있었다.
"옆 아파트 살면서 괜히 이상한 말 하지말자. 동생아. 중고등학교 다 여중 여고 나온 거 뻔히 알고 있으면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입은 웃고 있지만 절대 나는 웃고 있는게 아니다. 나는 배실배실 웃으며 김태형의 옆구리를 세게 꼬집었다.
역시 김태형은 아프다고 맘을 배배 꼬아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놈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만 튀어나오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너는 턱을 괸 채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지? 내가 입모양으로 왜? 라고 묻자 너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는 채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냥요.
라는 묘하게 찝찝한 말을 입모양으로 나에게 하면서.
-
"형 그럼 영문과?"
"응. 올해 입학한다고 했지?"
"네. 그럼 이제 선배 되는 거에요? 막 학교에서 보면 선배 이렇게 불러야 하는 건가?"
"형이라고 해. 뭐 또 선배야."
"그쵸? 이제 학교에서 자주 보겠다. 이번에 오티도 새터도 갈까말까 완전 고민했거든요."
"가지마. 가봤자 선배들이 이상한 말만 하고 그럴걸?"
"대박. 영문과 선배들 많이 빡세요?"
그런 건 아닌데 복학생 선배들이 좀 그런 구석이 있어서...
그래가지고 @#$#$!$...
그럼요... #$@#$@#$...
아주 신났다. 신났어.
부엌 식탁에서 내려와 거실 한복판에 둘러앉은 두사람은 이제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반도 넘게 남은 죽을 숟가락으로 휘휘 젓고 있었다. 입맛도 없고. 나 놀아준다고 온 동생은 저기서 나 간호해준다고 온 남자친구랑 수다나 떨고 있고.
못난 꼴 보여주기 싫다고 오지 말라고 했던 남자친구는 연락도 없이 (사실 내가 안받은 거지만) 와서 나는 신경도 안쓰고 지들끼리만 놀고 있고.
괜히 기분이 안좋아져서 숟가락을 식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평소라면 식탁에 죽이 묻는다고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이었다. 괜히 또 닦기 귀찮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아. 몰라. 그냥 기분이 좀 그랬다.
탁 소리가 나자 너와 김태형은 고개를 돌려 이 쪽을 바라보았다.
너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왔고 김태형은 눈을 멀뚱히 뜨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냥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뒤에서 너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몰라. 짜증나. 지금 너랑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 안놀아주고 내 동생하고만 놀고 있는 너에게 삐졌다는 것을 그대로 들켜버릴까봐 너랑 말하는 게 싫었다.
누나라는 체면이 있지. 어떻게 동생이 남자친구랑 논다고 삐져.
그런데 나는 지금 좀 많이 삐졌나보다. 방문 너머로 선배 선배 누나 누나 하는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침대 속으로 파고 들어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썼다.
몰라. 몰라. 잘 거야. 침대 옆 서랍자 위에 있는 안대까지 쓰고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몇시간 지들끼리 떠들다가 알아서 가겠지. 전기장판이 뜨끈해서 그런가. 잠이 잘왔다.
-
눈을 뜨니 밖은 조용했다. 자기 직전까지도 들려왔던 도란도란 거리는 소리며, 두 사람이 누나 선배 하고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부스스 눈을 떠 침대에서 내려왔다. 방문을 열어보니 아까 그대로 놔두고 간 식탁 위는 어느새 나름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식탁 위에 말라붙은 죽 자국이 좀 보이기는 했지만... 아까까지만해도 그대로 있던 냄비며 그릇이며 모두 보이지 않았다.
부엌 싱크대 쪽에 냄비랑 그릇이 차례대로 포개져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나 자는 동안 한건가. 설거지된 냄비를 보니 음...
고춧가루가 중간중간에 묻어있었다. 설거지를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누가 한 거지? 고개를 돌려 거실을 보려고 하는데...
"선배."
"..."
"아직도 아파요?"
"..."
갑자기 너가 튀어나와 나를 끌어안으며 배실배실 웃고 있었다.
사실 이제 아픈 거는 좀 가신지 오래였다. 약을 먹었던 것도 있고, 한숨 자고나니까 가라앉은 것도 있고.
그래도 아직은 너에게 조금 삐져있는 나였다. 둘이서 잘 놀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선배 하면서 오고 그런대?
흥칫뿡이다. 이 놈아.
"태형이 아까 갔어요. 어머니께 전화왔다면서."
언제 봤다고 태형이야?
"선배가 왜 아픈지도 말해주고 갔어요."
나쁜새끼.
"말이라도 해주지. 아. 근데 선배 있잖아요."
뭐. 뭐. 뭐.
너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며 배경화면을 보여주었다.
너 배경화면 지난번에 찍은 하늘 사진이었는데... 이었는데..? 헐.
어느새 네 배경화면은 내 사진으로 바뀌어있었다. 그것도 그냥 내 사진이 아니라 어릴 때 사진.
완전완전 어릴 때, 유치원때 사진이었다. 볼살도 포동포동하고 분홍색 원피스 입은 게 좋다고 환하게 웃으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사진.
이 사진을 너가 왜 갖고 있어?
"태형이가 아까 보내줬어요. 자기 선배 사진 진짜 많다면서."
"어?"
"이 사진 진짜 이쁜 거 같아요. 선배 어릴 때랑 지금이랑 똑같이 생겼다. 다음에 내가 태형이 밥 사주기로 했어요."
"이거 내 사진..."
"태형이가 본인이 찍은 거라면서 막 주던데... 아. 맞다. 그리고 선배 막 아플 때는 초콜릿이 최고라고 말해주고 갔어요. 아플 때마다 태형이 부른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왜 김태형만 불러요."
왜 갑자기 김태형...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남자거든요."
"너도 남자거든."
"남자친구랑 그냥 남자랑은 다르죠."
"남자친구랑 그냥 남동생이랑은 다르지."
"그니까 앞으로 나 불러요."
"싫어."
"왜요."
"아플 때 나 못생겼어."
"아닌데?"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 하지.
들켰다.
너는 배실배실 웃으며 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불편해. 내가 불퉁하게 말해도 너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선배. 있잖아요.
왜.
앞으로 진짜 태형이... 아니 김태형 혼자 집에 부르지 마요.
남동생이잖아.
아까 질투나서 죽는 줄 알았거든요.
잘만 놀더만.
당연히 잘 놀아야죠.
왜.
잘보여야하니까.
그건 또 뭐야.
처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잖아요.
지랄.
농담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개새끼.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린 채로 나를 바라보다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나 양치도 안하고 잤는데... 라고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내 코랑 입술을 살짝살짝 깨물기도 했고.
"하지마..."
어느새 내 목소리도 사르르 녹아있었다. 아. 짜증나.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네 가슴팍에 이마를 부비적거렸다. 짜증 잔뜩 내려고 했는데 이러면 또 짜증내기 미안하잖아.
너는 푸슬푸슬 웃으며 머리를 살살 빗어내려주었다.
"선배."
"왜."
"부엌에 생리통 줄여주는 한약 있다면서요."
젠장.
"제가 갖고 갈게요. 내가 매일 하나씩 줘야지."
망했다. 저거 존나 맛없는데...
이따가 김태형한테 죽을 준비 하라는 문자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매우 간절하게.
-
(여주 이제 주금. 저 약 진짜 존맛없.)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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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올라왔습니다아.
다음편이 생각보다 빨리 올라왔지요? 내용이 길어질 거 같아서 자른 거였어요.ㅎㅎㅎㅎㅎ
여주가 갖고 있는 한약 저희 집에도 잔뜩 쌓여있어요. 정말 진짜 레알로 맛없습니다. 정말 맛없어요.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타 지적해주시는 분들 정말 죄송하면서도 감사드립니다ㅠㅠㅠ
쓰고 바로 올리는 편이라서 오타 체크를 잘 안하는 것 같네요ㅠㅠㅠ 앞으로는 오타 많이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ㅠㅠㅠ
많이많이많이 사랑합니다!!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