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최한솔 - 그만 좀 예뻐
역시 알람은 적당히 맞춰놔야 한다.
5분마다 울리는 마성의 멜로디...☆★
하지만 나는 귓가에 알람이 울려도 끄고 다시 자버린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내 생기부가...(말잇못)
오늘이라고 예외는 없지. 알람을 3번 정도 끈 후에 4번째 알람이 울릴 즈음 겨우 눈을 떴다.
몸을 쭉 펴고 대충 머리를 손으로 슥슥 빗은 뒤 핸드폰을 들고 화면만 계속 바라봤다.
"아싸!"
4번째 알람이 화면에 딱 뜨자마자 알람 끄기를 누르고 나름의 만족감에 빠졌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끄면 뭔가 뿌듯하단 말이야.
나는 의자에 대충 걸쳐뒀던 패딩을 주섬주섬 입고 주머니를 톡톡 쳐 지갑이 있는지 확인했다.
지갑 있고. 핸드폰 있고. 딸기 사러 가야지-
하도 집에만 있어서 그런가 바깥공기가 굉장히 오랜만이네. 아, 어제 밖에 나왔지.
현관문을 닫고 두 팔을 쭉 펴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던 나는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고 고개를 돌려 정전국씨네를 바라봤다.
저 사람은 아직도 자나 보네. 딸기 사면 어제 고마웠다고 좀 나눠줘야지. 아, 딸기.
딸기와 정전국씨를 함께 생각하니 꿈에서 꿨던 딸기 빨리 먹기 대회가 생각났다.
꿈에서 졌던 딸기 먹기 대회가 많이 분했던 건지 옆집을 보기만 했을 뿐인데 괜히 치밀어 오르는 화에 잠잠한 옆집을 향해 악담을 퍼부었다.
"침대 조립만 잘 하면 다야? 딸기 먹다가 흰옷에 빨간 과즙이나 튀어라!"
말하고 나니 좀 시원해지는 것 같은 속에 만족감을 느끼며 계단을 총총 내려가 마트로 향했다.
근데 마트... 가 어딨더라.
그리고 문제는. 내가 여기 이사 온 지 3일밖에 안 됐다는 거지.
에이, 동네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걷다 보면 나오겠지.
혹시 길이라도 잃을까 싶어 일단 앞으로 쭉 가보기로 했다. 엄마가 원래 사람은 직진이랬어.
그렇게 검은 바지에 검은 패딩을 입고 검은 슬리퍼를 신은 채로 터덜터덜 걷다 보니 몇 걸음 지나지 않아 기적처럼 슈퍼마켓이 눈 앞에 있었다.
대박. 진짜 있네. 무슨 소설인 줄.
슈퍼마켓 앞에 떡하니 놓여있는 스티로폼 박스에 둘러싸인 큼지막한 딸기가 참 탐스럽게 보여 나도 모르게 박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래, 너로 정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예쁜 점원 언니의 인사말과 함께 계산을 하려던 나는 오랜만에 왔는데 뭐라도 더 사갈까 싶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고
"오, 만두. 만두- 만두만두 만두-"
"라면! 라면 사야지. 라면은 사야 돼."
"와, 소시지. 소시지."
내 식욕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 빵 맛있겠다."
"나 이 과자 되게 좋아하는데."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분명 딸기만 사서 돌아가려 했던 내 계획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정신 차려보니 내 앞에는 온갖 먹을 게 쌓여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육만 칠천오백 원입니다."
얼굴은 참하게 생겨서는 잔인한 금액을 내뱉는 점원 언니를 한 번 보고 내 앞에 가득 쌓인 음식들을 집어온 내 손을 잠시 원망스럽게 내려다봤다.
미쳤지. 돼지야. 살 뺀다며. 대학교 가기 전까지 살 뺀다며.
땅을 뚫을 듯 한숨을 내쉬며 엄마가 꼭 필요할 때만 쓰라던 카드를 집어 들었다.
내 소중한 직불카드인데...
떨리는 손으로 행여 구겨질까 조심조심 꺼내 점원 언니에게 부들부들 떨며 카드를 전해주었다.
나를 굉장히 이상하게 보고 계시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게 아니라고...
예쁜 점원 언니는 내 마음에 상처를 내듯 카드를 시원하게 그어버리셨고 내게 영수증이라는 종이 쪼가리와 함께 카드를 돌려주었다.
눈물을 머금고 카드를 받아 지갑과 함께 주머니에 집어넣은 나는 노란색 봉투 두 개를 어떻게 들고 갈 것인가, 에 대한 고민에 빠졌고
"어서 오세요-"
그 고민은 단 한 사람 덕에 그대로 사라졌다.
"어? 정전국씨!"
"성이름씨?"
빨간 반팔에 빨간 츄리닝 바지를 입고 빨간 슬리퍼를 질질 끌며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정전국씨를 발견한 나는 그의 팔을 잡아끌었고 정전국씨는 영문도 모른 채 내게 끌려왔다.
"이것 좀 들어줘요."
"예?"
나는 혼자 두 개를 다 들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정전국씨에게 노란 봉투 하나를 쥐여줬고 그는 한 손에는 봉투를 들고 다른 손은 내게 잡힌 채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뜬금없이 무거운 걸 들게 하는 게 조금 미안해 일부러 가벼운 걸 쥐여준 건데.
"저 그쪽 짐 들어주러 온 거 아니거든요."
"알아요."
나는 정전국씨의 말에 대답하며 내가 든 봉투에서 크림빵 하나를 집어 건넸고 정전국씨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빵을 받아들더니 이내 다시 내게 내밀었다.
"왜요? 그거 별로 안 좋아해요? 다른 거 줄까요?"
크림빵을 싫어하나, 싶어 붕투를 다시 뒤적이는데 앞에서 정전국씨의 헛웃음이 들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 까줘야 먹을 거 아니에요."
나는 하던 행동을 그대로 멈춘 채 고개를 들어 정전국씨를 황당하게 쳐다봤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 빵이 동그란 게 꼭 성이름씨 얼굴 같아서 왠지 제가 까면 그쪽 얼굴을 까는 기분일 것 같아서요."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입술까지 꼭 깨무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딸기를 다 먹은 후 나를 웃으며 내려다보던 꿈속에서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정전국씨 얼굴로 생크림 만들기 전에 조용히 해요."
내 눈앞에 빵을 달랑거리는 정전국씨의 손에서 빵을 뺏어 비닐봉지를 뜯어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마음 같아선 빵을 반절로 쪼개 안에 있는 생크림을 얼굴에 처바르고 싶었지만 난 봉투를 두 개 다 들고 힘들게 집에 가고 싶진 않으니 참기로 했다.
대체 저 약 올리는 건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예쁜 점원 언니의 잘 가라는 인사를 들으며 밖으로 나와 낑낑대며 봉투를 두 손으로 잡아들었다.
아, 그냥 더 많이 든 걸 줬어야 했는데. 저런 못된 인간을 뭐가 미안하다고 가벼운 걸 줘서...
힘이란 힘은 다 주며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나와 달리 평온한 표정으로 한 손에는 빵을, 다른 손에는 봉투를 든 정전국씨를 보고 있자니 아까 굳이 가벼운 걸 쥐여준 내 손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손아... 똑바로 하자?
열 걸음도 채 안 걸은 것 같은데 봉투 탓에 자꾸 한 쪽으로 쏠리는 무게 중심에 이리저리 휘청였다.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집은 거야. 반성해라 과거의 나.
누가 나를 텔레포트해서 집 안에 데려다줬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봉투를 들고 있던 손이 가벼워졌다.
갑자기 휑 해진 손에 놀라 고개를 드니 입에 빵을 문 정전국씨가 날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굳이 안 들어줘도..."
손을 허공에서 파닥이며 정전국씨에게 봉투를 다시 가져오려고 했는데 정전국씨가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내 얼굴 앞에 빵을 가져다 댄다.
뭘 어쩌라는 거야.
영문 모를 그의 행동에 내가 손으로 빵을 잡자 정전국씨가 입에서 빵을 뗐고 그가 먹던 빵은 내 손에 쥐여졌다.
"그러게 들지도 못 할 걸 왜 그렇게 많이 사서는."
입안에 있는 빵을 우물거리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정전국씨는 턱으로 내가 들고 있는 빵을 가리켰고
"나 지금 손 못 쓰니까 성이름씨가 빵 좀 떼어줘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는 정전국씨에 놀라 괜찮으니 내가 들겠다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정전국씨는 팔을 살짝 틀어 내 손을 피했고 봉투 두 개를 가볍게 들어 보였다.
"성이름씨 체격으로 봐서는 이거 다 들고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걷다가 넘어지면 얘네 터질까 봐 그래요."
묘하게 억울한데 묘하게 수긍 가는 정전국씨의 말에 차마 화도 못 내고 그렇다고 둘 다 들고 갈 자신은 없는 나는
"와, 그쪽. 와, 와 진짜. 진짜 내가... 내가 진짜. 참 나 진짜..."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정전국씨는 그런 날 보며 웃더니 빵이나 좀 뜯어달라며 입을 벌렸고 나는 빵을 크게 뜯어 그 벌어진 입에 쑤셔 넣었다.
"아, 뭐 하는 거예요!"
정전국씨는 고개를 뒤로 빼며 빵을 입안에 넣은 채 나를 노려봤고 나는 최대한 얄미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왜요? 너무 작아요? 더 크게 떼줄까요?"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돌려 헛웃음을 치던 정전국씨는 고개를 저으며 먼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고개는 왜 저어요? 무슨 뜻이에요 그게?"
나는 그를 따라 쫄래쫄래 걸어가며 집에 도착하는 내내 그의 행동에 대해 답을 요구했으나 정전국씨는 빵 떼어 달라고 할 때 빼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한심했나.
집에 도착해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며 봉투를 내려놓은 정전국씨가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진짜 고마워요. 정전국씨 아니었으면 나 혼자 엄청 고생했을 거예요."
"알면 좀 적당히 사지 그랬어요. 하긴, 이 정도는 먹어야 그 몸매가 나오겠죠."
정전국씨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나를 약 올렸다.
"이 몸매에 한 번 맞아볼래요?"
냉장고에 사온 음식을 정리하던 나는 들고 있던 만두 봉지를 머리 위로 들어 보였고 정전국씨는 손을 들어 막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알았어요. 진정해요. 진정."
나는 그런 정전국씨를 짧게 흘겨본 후에 다시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곧 내 손에 내 본 목적이었던 딸기 상자가 잡혔다.
오늘 아침부터 일 시킨 것도 미안한데 딸기나 같이 먹자고 할까.
"정전국씨, 딸기 좋아해요?"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오늘 산 것들을 구경하던 정전국씨에게 딸기 상자를 내밀자 정전국씨는 좋아한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딸기 먹고 가요. 씻어줄게요."
딸기를 씻으려 자리에서 일어나던 나는 내 손에서 딸기 상자를 가져가는 정전국씨에 의해 어정쩡하게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뭐야. 또 왜 가져가는 건데.
"그냥 마저 정리해요. 내가 씻을게요."
정전국씨는 봉투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상자를 들고 싱크대로 향했고
"괜찮아요. 내가 할게요."
"됐어요. 해준다고 할 때 그냥 있어요."
내 만류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상자를 덮은 비닐을 뜯기 시작했다.
"그럼 부탁 좀 할게요."
물을 트는 정전국씨의 등에 말을 건넨 나는 봉투을 뒤적여 마저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곧 집에는 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물 소리만으로 가득 찼다.
내가 정리를 끝내고 냉장고를 닫자 타이밍 좋게도 정전국씨가 체에 딸기를 가득 담아 탁자 위에 올렸고 의자에 앉아 딸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오. 맛있네. 역시 겨울은 딸기지. 그죠?"
한 입 물자 입안에 터지는 달달함과 상큼함에 씩 웃으며 정전국씨를 보자 그 역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쉬지 않고 딸기만 먹다가 갑자기 생각나 정전국씨를 불렀다.
정전국씨는 딸기를 물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고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걸 질문하기 시작했다.
"근데 정전국씨는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요?"
내 말에 씹던 딸기를 삼킨 정전국씨가 딸기를 막 집어 들며 나와 눈을 맞췄고 난 그 대답이 뭐라고 침까지 삼키며 긴장한 채 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정국에 뷔온대 사담
와. 어디서 끊어야 하나 몰라서 겨우 끊었네요.
다들 설 연휴는 잘 보내고 계세요? 설은 잘 보내셨어요? 저는 아무 데도 안 가서 탱자 탱자 놀았어요.
댓글에 일일이 답변 못 해드리는 거 정말 죄송해요ㅠㅠ 하지만 인티 들어올 때마다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첫사랑이었다' 는 뜬금없는 조각 글이에요. 단편입니다.
그럼 좋은 새벽 되세요. 늦은 것 같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p.s. - 아직 암호닉 안 받아요.
p.s.2 - 정전국 아닙니다. 전정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