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Matryoshka - Sacred Play Secret Place
"지민아."
막 편의점에서 나오는 지민이와 눈이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가 그리 바쁜지 내가 건넨 인사에 내 얼굴을 흘낏 보곤 빠른 걸음으로 내 옆을 지나치는 지민이에 들고 있던 손을 잔뜩 민망해하며 내렸다.
"바쁜가 보네."
지민이가 좋아하는 복숭아 향 음료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꾹 주며 뒤를 돌아 막 사라지는 그의 검은색 재킷을 눈에 담았다.
오늘도 가야 되나.
아직 쌀쌀한 날씨 탓에 하얀 입김과 함께 한숨을 쏟아내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에 지민이가 강의를 들을 강의실 앞에 도착해 살짝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 살짝 옷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손목에 찬 시계는 강의 3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빨리 오긴 했네.
지민이는 항상 맨 뒤에서 다섯 번째 줄, 정중앙에 앉았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앉는 데엔 이유가 있겠지.
지민이가 항상 앉는 자리 앞에 서서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복숭아 향 음료수를 놓고 주머니에서 포스트잇을 꺼냈다.
미리 써오길 잘했지.
[오늘도 바쁜가 보네. 바빠도 밥은 잘 챙겨 먹었으면 좋겠어.]
종이에 살짝 스며들어 번진 잉크 자국을 손으로 슬슬 쓸다가 음료수에 붙은 상표 스티커 위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행여 떨어질까 접착면을 계속 만지작대다 이쯤이면 됐다, 싶어 손을 떼고 그대로 강의실을 나섰다.
그럼 이제 난 2시간 동안 또 뭘 하지.
언제부터라고 딱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이런 일상은 매 학기마다 반복되고 있었다.
이것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민이는 항상 1교시가 빈 적이 없었다.
다들 1교시만큼은 피하려 그렇게 애를 쓰는데 지민이는 항상 1교시를 가장 먼저 신청했었다.
아침잠도 많아 항상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면서도 그는 강의를 빼먹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그가 좋아하는 간식이나 음료수를 사서 그가 항상 앉는 그 자리에 직접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올려놓았다.
정말 그가 먹는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챙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강의가 끝난 후의 책상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감으로, 지금은 복잡한 의무감으로. 나는 그의 아침을 챙기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건물을 막 빠져나와 시간을 확인하니 내 강의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정확히 1시간 50분이 남아있었다.
매일 남은 시간 동안엔 뭘 할까, 에 대한 고민을 하며 학교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주변을 걸으며 어제와 다름없는 풍경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규칙적으로 깔린 보도블록에 시선을 둔 채 의미 없이 걸음을 옮겼다.
몇 분 되지 않아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걸음을 멈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에 바로 보이는 지민이의 이름에 살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성이름?"
고작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내 이름만 들었을 뿐인데 심장이 쿵쿵대는 게 느껴졌다.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대며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조금은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어, 지민..."
"혹시 지금 바빠?"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지민이는 내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그에게 왜 그러냐며 걱정스럽게 묻자
"다음 주에 있을 리더십 캠프 말인데."
그는 내게 리더십 캠프 얘기를 꺼냈다.
아, 그거.
지나가다 발견한 팸플릿을 보고 그날 바로 신청하러 갔던 기억이 났다.
"응. 그거 왜?"
"내가 어제 그걸 신청하러 갔더니 이게 선착순이더라고."
아, 이쯤 들으니 그가 내게 뭘 원하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못 듣게 됐어."
그리고 언제나 슬픈 예감은 맞아떨어지는 법이고.
"근데 난 그게 정말 듣고 싶거든."
한두 번도 아니고 애처럼 뭘 기대하고 그렇게 신나게 전화를 받았던 건지.
잔뜩 실망했지만 애써 티 내지 않으려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그거, 내가 이름 변경해줄게."
속이 마구 쓰려왔다. 이러려고 네 전화를 받은 게 아니었는데.
스피커로 지민이가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의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툭, 힘없이 핸드폰을 든 손을 고개와 함께 떨어뜨렸다.
눌어붙은 껌의 검은 자국이 얼룩덜룩 남은 보도블록이 딱 내 마음 같았다.
여기저기 얼룩져서 보기 흉한 게.
물론 나도 정말 듣고 싶어 신청한 프로그램이었다.
내게 필요하기도 했고, 듣고 나면 오는 혜택도 꽤 있었으니.
그래서 나는 선뜻 다른 사람에게 내 자리를 양보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다른 사람이 박지민이라면, 나는 당연스럽게 내 자리를 넘겨줄 생각이 있었다.
그가 좋아만 한다면,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얼마든, 언제든 내 것을 넘겨줄 생각이 있었다.
잠깐 그렇게 서있다가 뒤를 돌아 다시 학교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민이가 듣고 싶다는데, 지민이가 좋다는데 해줘야지.
진짜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얼마 걷지 않아 눈앞에 보이는 학교에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익숙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앞에 있는 문을 열었다.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리더십 캠프 신청자를 좀 바꾸고 싶은데요."
앞에 앉은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괜스레 옆에 잔뜩 쌓인 종이 더미만 훑어 내렸다.
"매번 이런 식이면 우리도 곤란하다니까요."
"죄송합니다."
한두 번이 아닌 일임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것뿐이었다.
"성이름 학생 맞죠?"
"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짧게 들리더니 한숨 섞인 목소리가 앞에서 다시 들렸다.
"이번에도 박지민 학생이에요?"
"네."
"이거 한번 취소하면 다시 신청 못 하는 거 알죠?"
"네."
내 말에 다시 잠깐의 키보드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울렸고 변경되었다는 소리와 함께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곤 재빨리 빠져나왔다.
아쉬움 반, 기쁨 반이었다.
그 캠프에 못 가게 된 건 정말 아쉬운 일이었지만 지민이가 나 대신 열심히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쁠 터였다.
학교에 다시 온 김에 남는 시간 동안 좀 따뜻한 곳에 가있기로 했다.
어디가 좋을까...
막 건물을 나서는데 바로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반쯤 열다가 멈칫하고 뒤를 돌았다.
"아. 안녕."
지민이 친구네.
항상 지민이와 함께 있던 걸 봤기에 얼굴은 많이 익숙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지민이 친구는 내 바로 앞까지 걸어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근데 넌 왜 여기서 나와? 너도 나처럼 인적 사항 잘못 썼어?"
처음엔 장난으로 묻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표정을 보니 그의 말은 장난이 아닌 듯싶었다.
"아니."
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그는 활짝 웃으며 내게 다시 말을 건넸다.
"아, 그래? 하긴. 그런 실수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럼 여긴 왜 온 거야?"
대체 내가 왜 얘 말을 일일이 듣고 있어야 하나, 싶었지만 애써 지민이 친구라는 걸 상기시켰다.
"리더십 캠프 참가 취소하러."
"진짜? 그거 선착순이라 엄청 금방 마감됐다던데. 왜 취소한 거야?"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목소리로 묻는 그에게 지민이가 가고 싶대서, 라고 답하자
"정말? 그거 다음 주 아니야? 그걸 지민이가 가겠다고 했다고?"
그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재차 물었다.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걔 다음 주에 외국어 강화 캠프 갈 텐데."
"뭐?"
그 말에 여전히 반쯤 열려있던 문을 닫고 그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다시 물었다.
"지민이... 다음 주에 어디 간다고?"
내 말에 그는 걔 외국어 캠프 간댔는데. 라며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대체 누구에게 탓해야 하나, 싶었다.
내게 그런 거짓말을 한 박지민의 탓인지, 그의 말에 순순히 이름을 바꿔준 내 탓인지.
휘청이듯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꼭꼭 삼켰다.
억울함 반, 속상함 반이었다.
바꿔준다고 한 건 나였지만 왜 애초에 지민이는 가지도 못할 캠프를 가고 싶다고 한 걸까.
지민이 친구는 괜찮냐며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고 나는 고개를 숙어 그의 눈을 피했다.
"안 괜찮아 보이네."
그는 그런 내 행동에 음... 하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그 느낌에 고개를 드니 지민이 친구는 아까 만났을 때처럼 활짝 웃으며 내 앞으로 악수하듯 손을 뻗고 있었고
"나는 김태형이야. 나 되게 재밌는 앤데. 나랑 놀래?"
내가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자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반가워. 친구야."
영문 모를 표정으로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만 있다가 억지로 그의 손에 잡힌 내 손을 빼내 주머니에 넣었다.
"뭐야. 악수했잖아. 나랑 놀아줘야 돼, 그러면."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해놓고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 말하는 그 모습에 조금은 황당하게 그를 보고 있자니 손에 쥔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지민이.
분명 지민이었다.
정국에 뷔온대 사담 |
안녕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맞아요. 우리 지민이... 저런 나쁜 남자... 이번에는 제대로 트레쉬 한번 만들어 보려고요. 지민맘들 미앙... 다들 월요일 마무리 잘 하시고! 내일 11시에 봐요! |
p.s. - 아직 암호닉 안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