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실 한 가운데에서 앉아 있는 이태일에게 다가가 서류를 건넸다. 손만 내밀어 봉투를 받다가 내가 봉투를 놓지 않자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는 이태일.
"박사님."
"또 왜."
"우지호 어딨어요."
"너네 이제 못 만난다고 박경이 말 안해주디?"
아뇨. 아주 잘 전달 받았어요. 조용히 이태일을 내려다보았다. 이태일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내 손에서 봉투를 빼앗아들며 다시 고개를 돌려 버린다. 유리 밖으로 보이는 X구역의 바람이 오늘따라 더 거세다. 모래 바람의 영향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난 이태일을 믿는다.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믿을 수 없다. 이태일이 우지호를 없애 버릴 것 같다는 괜한 불안감이 몸을 뒤덮었다.
"맥박 수 정상."
"현재 혈액 불순물질 농도 90.05%."
바쁘게 움직여대는 연구원들. 나도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려 제어창을 띄우다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거대한 스크린에 떠 있는 CCTV 영상에 우지호가 나오고 있다. 늘 입고 있던 하얀 옷 위에 특수 활동복을 입고 있는 우지호. 우지호가 밍기적거리자 옆에 서 있던 군인 두 명이 아예 직접 손을 내밀어 입히기 시작했다. 헬멧까지 쓴 후 군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준비 다 되었습니다.
"해치 닫고, 게이트 열어."
이태일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자 선체 내에 이태일의 목소리가 울린다. 먼저 내부와 통해 있는 해치의 문이 닫히고, 그 다음에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들어온 바람으로 인해 CCTV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가시거리 넓힌다. 30m 이동."
창 밖으로 보이는 우지호와 군인 두명. CCTV는 모래가 덮혀 볼 수 없었지만 아직까지 바깥 상황 정도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BBC-7에서 나오는 강한 바람 때문에 가시거리가 넓어져서 시야가 더 또렷해졌다.
"현재 심박동 정상. 호흡 정상."
연구원들이 내뱉는 말들은 다 무시한 채 나는 우지호만 빤히 바라보았다. 30m가량 걸은 후, 군인 두 명이 우지호를 내버려두고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다. 우지호는 혼자 남았다. 몸과 연결 된 긴 선들때문에 도망가진 못하겠지만.
"우지호, 내 말 들리면 대답해."
[...]
"우지호?"
우지호는 대답이 없다. 그러자 이태일이 이마를 짚으며 언성을 높였다.
"이런데서까지 말 안한다고 고집을 부려야겠어? 내 말 들리면 오른 손 들어."
그러자 창 밖으로 보이는 우지호의 오른팔이 들렸다. 이태일이 기가 차다는 듯 '하'하고 웃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냉정한 태도로 돌아가서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댄다.
"활동복 벗어."
활동복을 벗어라.
일반인에게 하는 말이라면 그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나와 처음 본 날, 우지호는 살아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살아있지 않을까.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우지호의 모습을 사령관실 내부 카메라가 확대했다. 우지호의 두 팔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내부에 탄성의 소리가 가득찼다. 활동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천천히 헬멧까지 벗은 우지호가 잠시 휘청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헬멧이 바닥에 떨어지고, 우지호의 마이크를 통해 바람 소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야야, 저거 소리 낮춰...아니, 우지호 목소리만 냅두고. 할 줄 알잖아. 잡음 제거해. 어어, 그렇지. 그렇게. 우지호, 내 말 들리면 오른 손 들어."
바람 소리가 확연히 줄어 들었다. 우지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고, 모두의 표정이 괴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는 초조하게 우지호를 살폈다. 다행히도 멀쩡해 보이긴 한다.
"그럼 위에 입고 있는 옷도 벗어."
"박사님!"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날 이상하다는 듯 수십 개의 눈들이 바라본다. 그리고 이태일의 냉담한 시선까지도.
"뭐."
"굳이 다 벗으라고 하는 이유가 뭐에요."
"우지호의 몸이 저 옷과 특수한 반응을 한다던가 해서 저 옷이 우지호를 방어해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이미 그런 건 검사 다 했잖아! 지금 굳이 애를 사람들 앞에서 벗겨야 되요?"
"저게 애냐? 괴물이지. 그리고 이게 원칙이야. 모든 실험은 맨 몸에서도 작용하는가, 이게 기본이야."
이태일이 차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시발. 우지호는 괴물이고 연구 대상. 애초부터 인권따위는 없었고 사람 취급 받을 이유도 없었다. 눈에 들어 온 우지호의 얼굴이 말갛다. 화면으로 봐서 그런지 캄캄하게 보이는 우지호의 두 눈이 조금은 무섭다.
"우지호, 옷 벗으라고."
이태일이 다그치자 우지호의 두 팔이 천천히 움직였다. 옷자락을 붙잡은 우지호의 두 눈은 땅바닥에 고정되서 움직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내 옷자락을 꼭 쥔 손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천천히 우지호의 얇은 다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용히 눈을 감는데, 갑자기 통신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사운드 조절을 해 잦아 들었던 바람 소리가 갑자기 커져 스피커를 찢을 기세다. 이태일이 당황해서 '소리 줄여!'하고 외치지만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는 소리. 천천히 고개를 들자 보인 바깥은, 세상에나. 불순 바람에 모래 폭풍이 가해져 앞이 아예 보이질 않는다. 간간이 보이는 틈으로 드러난 우지호의 모습. 눈을 곱게 내리깔아 아래를 보고 있는 우지호의 얼굴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미친, 바람 더 못 키워?"
"이게 최대입니다!"
"우지호, 내 말 들려? 우지호, 대답해."
소리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커다란 바람소리에 사람의 목소리는 전혀 섞여있지 않았다. 이태일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헤집었고, 우지호와 연결 되있던 선들이 끊어졌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태일이 화난 목소리로 "여기서까지 고집 피워야 돼? 대답 해. 안 들려?"하고 말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팔을 내밀어 이태일의 손에 들려 있던 마이크를 빼앗아 들었다.
"우지호."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태일이 얼굴을 굳히고 말하지만, 나는 묵묵히 보이다가 사라지다가를 반복하는 우지호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때, 스피커를 통해 사람의 목소리가 나왔다.
[응.]
"저 망할 새끼가 또."
이태일이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지금 몸 상태?"하고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고 바람 소리만 더 크게 들리는 모습. 이태일이 아까 우지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던 군인들에게 '쟤 다시 데리고 와'하고 지시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프다. 그렇게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을까, 갑자기 거세지는 바람에 동체가 흔들린다.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는데 기울어지는 동체에 이태일의 휠체어가 미끄러진다. 이렇게 거대한 게 쉽게 기울어질 리가 없어.
이태일의 휠체어를 붙잡아 미끄러지지 않게 붙잡자 이태일이 입술을 꽉 깨문다. 밖으로 보이는 모래 바람이 금방이라도 유리를 깨부실 기세다. 이미 통신이 끊긴 군인 두 명의 생사는 알 수가 없고. 치직거리는 소리를 낮추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소리를 꺼버리려는 음향 담당. 그런데 셔터를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난]
뚝.
"우지호!"
이태일의 휠체어를 놔버리자 이태일이 "이 미친 놈아!"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급히 문을 열고 계단으로 한참을 내려가 해치를 열었다. 열려 있는 게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모래. 푹푹 꺼지는 모래들을 밟는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가 이질감이 든다. 얼굴에 닿는 모래알갱이의 느낌에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을 가렸다.
인이어로 '표지훈, 안 들어와?'하는 이태일의 높은 목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하고 그냥 밖으로 나섰다. 입을 살짝 벌리자마자 입에 들어오는 모래라던가, 얼굴을 긁으며 상처를 내는 건 상관이 없었다. 기도로 넘어오는 공기가 공기가 아니다. 숨도 못 쉴 정도로 답답한 공기였지만 지금 내겐 우지호가 더 중요했다. 찢어질 것 같은 목을 무시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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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이게 지금 여기서 나눠지면 안 되는데.. 끝까지 써야되는데... 안되는데.. 안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