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별아 안녕
BGM
"으아..!"
야근을 하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여주가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겨울이라 늦지 않은 시간에도 어두운 밤하늘에 도시의 불빛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역시 회사였고, 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보냈지만 곧 있으면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건 항상 이상한 기분을 가져다준다.
또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겠지만, 12월 31일은 꼭 특별한 기분.
여주는 이맘쯤만 되면 늘 한 아이를 떠올렸다. 나의 원동력이었던, 나의 응원이었던 나의 별.
잘 지내니? 난 너 덕에 잘 지낸다. 너가 해줬던 그 한마디가 그렇게 걸려서, 늘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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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심심해.."
여주가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낙엽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내어 모두가 추위에 떨고 있던 겨울이었다. 그날은 눈이라도 올 것처럼 하늘이 우중충했고 시린 바람이 창문을 뚫고 들어올 만큼 추웠다. 당시 여주는 또래보다 몸이 좋지 않아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게 된 지 10개월 정도 되던 참이었다.
여주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아 수술을 하고 난 후 체력이 좋지 않아 작은 병들을 달고 살았다. 아무래도 정신없는 도시에서의 하루가 여주의 잔병을 늘리는 것 같다는 부모님의 생각에 17살이 되던 연 초에 시골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물론 처음에 적응하기란 힘들었다. 아무래도 작은 촌에 있는 학교라 그곳에 있는 학생들끼리는 모두 서로를 잘 알고 친하게 지냈는데, 그곳에 갑자기 혼자 떨어진 격이었으니 낯가림이 심했던 여주에겐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지기란 어려웠다. 심지어는 다가오던 친구들 마저도 몸이 좋지 않아 활달하지 못한 여주와 점점 멀어져 갔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몸이 점차 나아지는 기분은 들었지만, 혼자 타지에서 할머니와 외롭게 사는 건 당시 17살 밖에 되지 않았던 여주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1년을 꼬박 혼자 외로이 지내서 그랬을까 여주는 점점 어두운 생각들을 자주 하곤 했다. 도시에 가면 몸이 아프고, 시골에 있으면 친구가 없어 외로우니 내가 왜 굳이 사나, 나는 이렇게 몸이 아픈데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
겨울방학이 되어서도 친구 하나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할머니 집 대청마루에 앉아 멍하니 바람을 맞고 있던 여주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또 우울했던 여주가 산책을 나가기로 막 결심한 터였다
"할머니, 저 산책하고 올게요"
"오냐, 뛰지 말고 무슨 일 생기믄 전화하는 거 잊지 말고!"
"네”
"아 맞다 애기야, 저기 저 순이네 할무니 집에 손자가 놀러왔댄다. 그 저기 저 부엌에 있는 떡 있지?? 그거 순이네 할무니 댁에 갖다주고 와!"
"순이 할머니 집에요? 일단 알았어요!"
순이 할머니는 여주가 친할머니 외로 유일하게 마음 놓고 얘기하는 할머니이다. 순이네 할머니는 여주의 할머니처럼 혼자 살았기에 저의 할머니와 많이 친했던 터라 어릴 적에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반겨주시고 잘 놀아주셨다. 그런데 손자가 웬일로 놀러 왔지? 명절에만 온다고 할머니가 속상해하셨는데
할머니 집에 방학 때만 되면 자주 놀러 왔던 여주 입장에선 의아하긴 했지만 할머니께 대충 인사를 하곤 대문을 열어 집 밖을 나왔다. 늘 그렇듯 텅 빈 논밭으로부터 시린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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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할머니! 저 여주에요! 문 열어주세요!"
차가운 청록색의 대문을 두드리며 순이 할머니를 불렀다. 끼익하는 철과 철이 부딪혀 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을 땐,
"어..? 누구세요?"
모르는 남자가 서있었다. 제 집을 두드린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어이가 없었는지 그다지 반기는 얼굴은 아니었다. 세모난 눈과 삐죽 서있는 눈썹. 입을 꾹 다물고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조금은 무서워 여주가 시선을 저 멀리로 두어 어색하게 유지했다.
"저.. 여기 순이 할머니 집 아니에요?"
"맞는데"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울리고, 여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누구.. 세요?"
"할머니 손자인데요"
아. 그제서야 여주가 여기 온 이유를 다시 깨달았다. 맞다, 손자가 놀러 왔다 했지. 저보다 큰 남자애의 키에 자신도 모르게 제 또래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여주가 대충 몰랐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곤 할머니가 건네주라고 했던 시루떡을 건넸다.
"이거... 할머니가 가져다주시라고 해서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저기, 잠깐만요"
뒤를 돌아 다시 산책을 나서려는 여주를 부른 건 그 낯선 소년이었다. 여주가 고개를 돌려 그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이 목덜미를 긁적이며 추운데 일단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이 집에 놀러 왔다고 착각한 모양새다.
거절을 하고 다시 산책을 나갈 수 있었지만, 거절하기 어려워하던 여주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잠시 시장에 간 것이니 곧 돌아올 거라는 소년의 말에 여주가 말없이 고개를 또 끄덕였다. 저의 할머니 집을 잘 아는 듯 자연스레 들어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주를 보던 소년이 문득 여주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제 할머니 집이 익숙해 보이는 여주와 달리 자신은 어색해 거실 바닥에 앉아있는 풍경이 조금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집 주인은 난데, 내가 왜 어색해하는 거야. 결국 소년이 침묵을 깨고 먼저 나이를 물었다.
"제 또래 같은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저 17살이요"
"아 나랑 동갑이네, 말 편하게 해."
여주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잘 하지 않는 타입인가? 소년은 말을 하지 않는 손님의 존재가 낯설고 어색했지만, 할머니의 손님이니 다시 먼저 입을 열었다. 할머니가 없이 저가 있어 놀랐을 소녀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다.
“그럼 너 이름은 뭐야?”
“어..김여주에요.”
“아…그렇구나.”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시작됐다. 여주는 어색하게 바닥만 보며 손을 뜯었고, 소년도 어색한 분위기에 멍 때리기 바빴다. 둘 사이의 침묵은 오래 지속되었다. 집 안 공기가 모두 축 늘어앉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온 집 안을 울렸다.
작은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것 같은 어색함에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주의 눈이 소년을 따라 움직였다. 거실로 간 소년이 할머니가 아침에 끓였던 차를 따라 손을 이리저리 만지작대던 여주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말 놓으라니까, 난 민윤기야."
"아.. 응.."
"우리 할머니랑 친해?"
"아, 응..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놀러 왔거든."
"아..그래? 근데 난 왜 못 봤지."
어색해하는 여주 덕에 다시 말이 끊겼다. 사실 낯가림이 심했던 건 비단 여주뿐만이 아니었다. 윤기 역시 낯을 좀 가렸다. 특히 윤기는 남중 남고를 나와, 저 앞에 있는 여자애가 어색했다. 더군다나 단둘이 있으려니 어색하고 땀이 삐죽삐죽 나는 기분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말도 걸었는데, 대화를 더 이어나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주에 윤기도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도 그런 침묵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순이 할머니가 도착해 멈추고 북적이는 대화 소리에 어색함은 사라졌다. 떡을 건네려고 왔다는 여주의 말에 순이 할머니가 여주와 대화를 길게 나누다, 어쩌다 저녁까지 얻어먹었다. 저녁 먹는 내내 순이 할머니는 윤기의 욕을 했다.
이놈이 사실 집을 가출하고 내려온 거다. 부모님이랑 싸워서 내려왔다. 속 썩여서 미치겠다.
할머니의 잔소리에 윤기가 그런 거 아니라며 해명을 하면, 여주는 대충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진짜, 할머니. 솔직히 저 음악 하는 거 할머니 좋아하셨잖아요. 할머니는 이해해 주실 줄 알았는데.."
"이노무 자식아, 그렇다고 집을 나와? 네 어미가 얼마나 전화를 했는데, 내가 놀라가지고 정말.."
"그건..! 죄송해요. 근데 허락받으려고 그런 거예요... 여기 오면 좀 영감도 받을 수 있고.."
여주는 알 수 없는 대화에서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밥을 먹었다. 할머니와 윤기의 말다툼은 여주의 밥그릇과 국그릇이 다 비워지고 나서야 멈췄다. 그날도 겨울이라 밤이 빠르게 찾아왔다. 저녁만 먹었을 뿐인데 어둑해진 하늘에 할머니가 윤기를 불러 여주를 데려다주라고 시켰다.
어색함에 여주가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몸이 약한 여주를 혼자 보낼 수 없었던 순이 할머니는 여주의 거절을 한사코 또 거절했다. 결국 윤기가 먼저 여주에게 목도리를 건넸다. 낯가림이 심했던 윤기만의 설득 방식이었다.
"밖에 추워. 이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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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민윤기라는 소년을 만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원래도 순이 할머니네 자주 가는 여주였지만, 굳이 가지 않아도 순이 할머니가 윤기를 제 집에 데려와 저의 할머니와 수다를 떨다 가시곤 했다.
아무리 어색해하고 낯가림이 심하던 여주와 윤기도 거의 매일을 붙어있으니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대화는 주로 짧게 여러 번으로 끊기곤 했지만, 둘 사이에 자리하던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여주도 매일 얘기할 대상이 생겨 지루하던 하루에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 윤기라는 애를 알수록 재밌는 친구 같았다.
예를 들어 어색하거나 민망하면 목덜미를 긁는다거나, 손톱을 뜯는 걸 발견해 뜯지 말라고 손을 잡으면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뜬다거나, 제가 말을 하지 않으면 우물쭈물 입을 달싹이다 겨우 야,라고 겨우 저를 부른다거나... 알면 알수록 좋은 친구 같아 보였다. 낯을 가리는데, 노력하는 거구나 싶은.
둘이 가장 친해졌던 날은 여주네 할머니가 정기검진을 받으러 서울로 올라가던 날이었다. 평소라면 여주네 부모님 중 한 분이 내려와 여주와 함께 지냈겠지만, 일이 바빴던 여주네 부모님이 올 수 없다는 말에 순이 할머니 집에서 자게 되었다. 순이 할머니와 윤기는 할머니 방에서 자고, 여주는 거실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혼자 낯선 곳에서 자려니 잠이 오지 않아 누워있던 여주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대충 눈이 쌓인 마당을 보며 멍을 때리는데, 제 뒤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자고 뭐해?"
"아 그냥... 잠이 안 와서"
"나돈데, 맨날 혼자 자다가 할머니랑 자려니까 잠이 안 와"
"미안. 나 때문에"
"아니, 그런 뜻은 아녔는데"
그 말을 끝으로 윤기가 여주 옆에 털썩 앉았다. 뭘 보는 거냐며 여주가 바라보던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을 쳐다봤다. 와, 눈 진짜 많이 내렸네. 저거 언제 다 치워.
"윤기야"
"어?"
"넌 집에 언제가?"
"왜? 나 많이.. 불편해?"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종종 하거든, 네 할머니한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여기 있는 거라서"
"아..."
사실 윤기도 제 할머니께 여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안 좋아, 몇 개월 전부터 여기서 살게 되었다고. 그런데 적응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얘기까지 들었던 터라, 순이 할머니가 여주네 집에 간다고 하면 괜히 따라나서게 되었다. 순이 할머니가 윤기를 데려간 것이 아니라, 모두 윤기의 선택이었다.
나름대로 자기가 친구 해주고 싶다는, 그런 작은 배려.
"곧 방학도 끝나잖아. 난 다시 학교 가는 게 좀 싫어. 매일 체육 시간엔 혼자 교실에 앉아있어야 하고, 친구도 없어서 재미도 없어. 게다가 너도 다시 집 갈 테니까... 그럼 나 혼자 또 뭐 하면서 지내나 싶어서."
여주의 진지한 고민에 윤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만큼 아파보지 않았으니,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윤기가 살포시 여주의 등을 토닥였다. 여주가 울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윤기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여주도 그런 윤기의 따스한 마음을 전해 받았다. 너무 자신의 고민만 털어놓은 것 같아 슬며시 윤기의 얘기를 물었다.
"넌 음악 만드는 직업 허락받겠다고 해서 여기 왔다 했지? 그래서 허락은 받았어?"
"아니. 솔직히 오히려 집 나와서 허락 더 못 맡게 생겼어. 근데 난 후회는 안 해."
"왜?"
"원래 사람이 다 부딪히면서 사는 거야. 난 여기 와서 너 만나면서 노래도 만들었거든. 까짓것 부모님 허락은 이런 거 들려주면서 다시 제대로 설득해 볼 거야. 허락 안 해주셔도 어쩔 수 없지만, 포기는 안 해."
제 꿈을 말하는 윤기의 눈이 반짝였다. 마당을 보던 여주의 시선이 자연스레 윤기의 얼굴로 향했다. 한참을 말없이 그런 윤기의 눈을 바라보다 여주가 작게 속삭였다. 부럽다.
"뭐가?
"넌 좋아하는 일도 있고, 그걸 열심히 하잖아. 나는 있었는데, 몸이 안 좋아서 포기했거든."
"좋아하는 게 뭐였는데?"
"그림 그리는 거. 근데, 여기선 못하거든. 시골이라 학원도 마땅히 없고... 근데 다시 서울로 가면 몸이 아프니까... 의사 선생님도 여기 와서 상태 많이 좋아진 거 보고 웬만하면 성인 될 때까지는 여기가 좋을 것 같다 그러시니까..."
여주의 고민을 듣던 윤기는 저도 모르게 몰입해 반문을 했다. 꼭 서울을 가야 해?
"어?"
"그림 그리는 거라며, 그거 꼭 학원에서 배워야 해? 그냥 해. 좋아하는 거 그냥 하면 되는 거지, 뭐가 문제야? 난 또 뭐라고."
"아.."
"여주야, 좋아하는 게 있으면 일단 부딪혀봐. 네가 몸이 약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 부딪혀보고 깨져보고 다시 일어나고 또 부딪혀보고. 네 인생이잖아."
윤기의 말에 여주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학원을 다녀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서울에서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 시골에 왔다고 좋아하는 일을 왜 포기하냐는 윤기의 말에 머리가 멍했다. 그러게, 내가 왜 포기하려고 했지? 내가 왜 우울해했지? 그냥 하면 되는 건데.
"남의 말 신경 쓰지 말고,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집으로 돌아가도 종종 놀러 와서 네 얘기 다 들어줄게. 내가 너 응원하는 사람, 그거 해줄게."
"...고마워"
"아이 뭘 또"
그 날 마지막엔 웃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저의 학교에 있는 친구들의 얘기부터 부모님 얘기와 형까지. 한참을 수다 떨다 새벽이 되어서야 같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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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가 다시 돌아가고, 여주는 부딪혀 보라는 윤기의 말대로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혼자 책을 사서 드로잉 기법을 배워보기도 하고, 학교에 딱 한 분 계시는 미술 선생님께 찾아가 배워보기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림을 배웠다.
매 학기가 끝날 즘이면 윤기를 만날 생각에 설렜다.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 멋지다며 칭찬해 주는 사람이 생겨 좋았다. 시골에서의 삶이 따분하고 외로웠는데, 그림과 윤기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 몇 명으로 여주의 삶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고작 윤기의 말 한마디에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러다 19살이 되던 해에, 윤기는 더 이상 시골에 오지 않았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도전의 도전을 해 서울에 있는 엔터테이너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순이 할머니를 통해 전해 들었다. 정말 그 소식 이후로는 여주와 윤기는 만나지 못했다.
윤기가 제 꿈을 이제 시작해 바쁘게 꿈을 펼치느라 3년은 서울에서만 살았다. 3년 후에 시골에 다시 내려왔을 땐 여주가 없었다. 재수를 한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만, 제 할머니를 통해 들은 게 다였다.
여주는 재수까지 해서 대학에 합격했다. 윤기의 말대로 부딪혀 보는 거.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 부딪히라는 그 말에 나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그 말 한마디로 살아냈다. 윤기와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지만, 여주는 어딘가에서 자기를 지켜볼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살아냈다.
21살에 대학에 입학해 미술실의 탁한 공기에 다시 잔병치레를 했을 때에도, 22살에 결국 안 좋아진 몸으로 휴학을 했을 때에도 모든 걸 다 포기 하고 싶을 때마다, 부딪혀보라는 말과 저를 응원하겠다는 그 말 한마디가 여주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27살, 윤기는 그 사이에 성공한 프로듀서가 되었다. 자신이 만든 노래로 데뷔해 쭉 윤기의 노래를 부르던 아이돌 그룹은 큰 성공을 거뒀고, 윤기가 만든 음악이 늘 차트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만든 음악이 여주가 가는 카페에 자주 흘러나올 만큼, 윤기는 성공했다.
그에 비해 여주는 꽤 아등바등 살아갔다. 화가가 되어 그림을 전시하고 싶었던 꿈 앞에서 여러 현실의 벽이 제 눈 앞에 있었다. 아득히 멀리 있는 꿈을 향해 부딪히느라 제 몸이 부서지다 못해 과로로 병원에 실려갔던 날은 윤기의 말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응원해준다면서.. 부딪히라면서... 나는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데, 이것도 응원해줄 거야?
그러다 병원에서 우연히 본 잡지에서, 윤기는 다시 여주의 삶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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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윤기 씨는 청춘과 꿈에 대한 노래를 많이 내시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달리라는 격려보단 괜찮다는 위로를 하시던데 이유가 있을까요?
YK. 음 저도 어릴 적엔 달리고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하기만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꿈도 어쩌면 닿을 수 없는 이상에 가까웠죠. 그런데 막상 직접 겪어보니까 다르더라고요. 내가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제 깨달았어요.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하는
Q. 감이 잘 안 잡히는데 정확히 어떻게 사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YK. 포기하는 거요.(웃음) 달리다가 지칠 때 잠시 쉬어서 돌아보기도 하는 거요. 저는 꿈속에서만 살아서 현실을 나쁜 거라고 생각했는데, 큰 사회 속에서 바꿀 수 없는 게 분명 존재하니까 포기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래서 위로를 하고 싶었어요. 너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포기해도 괜찮다고.
Q. 너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는 말 굉장히 와닿네요. 그렇다면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YK. 포기해도 됩니다. 포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거예요. 꼭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삶만이 의미 있는 건 아니니까요. 최선을 다해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내는 것도 대단한 거예요. 저는 그냥 그렇게 생각해요. 아, 그리고 혹시 제 친구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될까요?
Q. 네, 얼마든지요.
YK. 안 본지 꽤 됐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만 믿고 있어.(미소) 지금까지 살아내느라 수고 많았다.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 보고싶네(웃음)
Q. 오래된 친구인가 봐요.
YK. 네, 아무래도 제가 10대 후반부터 꿈 쫒는다고 친구들을 놓치고 살았거든요. 우연히 연락 닿은 친구들도 많지만, 못닿은 친구들도 있어요. 지금 생각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는 유독 궁금하네요.
그의 말의 끝으로 인터뷰 시간이 끝이 났다.
민윤기라는 프로듀서의 이야기와 인간 민윤기의 이야기는 모두 적절히 음악에 녹아내려져 있다.
미사여구 없이 투박한 그의 진심들이 닿아서 였을까, 그의 음악은 늘 누군가의 심장에 박혀 가사와 멜로디를 다시 곱씹게 만든다.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그의 남은 음악 인생이 기대가 되는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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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는 다시 그 인터뷰 속 말로 살았다. 자신의 능력과 환경, 제 자신의 약한 몸으로 어쩔 수 없이 화가라는 꿈을 포기하고 갤러리에 큐레이터로 들어가 그림을 보며 살았다.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그 선 안에서 다시 최선을 다하고 좋아하는 걸 옆에 두고 살았다. 내가 할 수 없는 건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아는 것. 그게 다시 여주의 삶을 바꿔 놓았다.
여주에게 윤기는, 어느새 제 삶의 별이 되었다. 어두운 밤을 밝혀주고 처절한 밤마저 예쁘게 빛을 내주는, 좌절의 순간마다 저를 환하게 비춰주는 별 덕분에 다시 아침을 맞았고, 또 그렇게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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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 풍경을 보며 윤기를 떠올렸던 여주가 몸을 일으켰다. 오래 앉아 있어 몸이 찌뿌둥했는지 기지개를 폈음에도 피곤했다. 이제 퇴근해야겠다. 사실 원래 더 빨리 퇴근할 수도 있었지만, 제가 연 카페에서 함께 새해를 맞이하자는 친구의 말에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 최대한 오래 사무실에서 있었다. 회사를 나와 신호등을 건너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역에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 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주가 코트를 꼬옥 여민 채로 지하철에 몸을 욱여 넣었다. 종각역에서 사람들이 한참을 빠져나가고, 여주도 내렸다. 사람들에 휩쓸려 역 밖으로 나가고 그나마 사람이 덜 북적이는 청계천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연지 고작 한 달 밖에 안됐지만, 친구가 연말 파티를 하고 싶어 하루만 문을 닫았다고 한다. 두 시간을 친구와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던 여주가 티비를 켰다. 티비 속에선 타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담긴 영상이 흘러나왔다.
여주의 친구가 잔에 남아있던 술을 마시다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미친!! 까먹고 있었어!!!
"뭐를?"
"나 최근에 단골손님 생겼는데, 그분도 오시기로 했었거든..."
"뭐? 나 낯가리는 거 알면서.."
"아 미안 미안. 근데 걱정 마. 너도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
"응. 전에 너한테 전화 와서 내 핸드폰에 너 사진 떴는데, 그 손님이 널 알더라고. 너 보고 싶다길래, 초대했어."
"뭐? 나한테 말도 없이.. 누구길래?"
이 친구는 대학 때부터 친구였기에 여주는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골에서 만들었던 친구들은 고작 2-3명. 아무리 연락을 자주 하지 않더라도 그 친구들이 서울에 살지 않는 건 알고 있었다.
게다가 대학 친구라면, 친구가 단골손님이라 표현하지 않았을 거다. 좁은 인간관계에서 저를 보고 싶다는 옛 친구가 있다는 게 의아했다.
"그건 비밀. 말해주지 말라 했단 말이야. 근데 좀 늦으시네. 이제 곧 제아의 종소리 울릴 텐데.. 적어도 종 치기 전엔 오신다 했는데..."
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티비 속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0!
9!
8!
"아무래도 바쁘신 분이라 못 오시나 보다. 우리끼리 새해 축하하자!'
이번엔 친구의 목소리와 티비 속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쳤다.
"3!!"
"2!!"
"1!!!"
뎅-
딸랑-
제야의 종소리가 티비 속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려 문쪽을 바라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늦었다. 여주야, 오랜만이야. 해피 뉴이어"
민윤기, 나의 별아 안녕.
독자님들 해피 뉴 이어!!!!
제가 윤기를, 그리고 방탄을 꽤 오래 좋아하면서 느껴왔던 감정을 조금 담은 글이에요!ㅎㅎ 예전에 구성해놨던 글이었는데, 새해 기념+민윤기의 30살 기념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좀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방탄을 깊게 좋아하게 된 계기가 네버마인드 였거든요. 그 노래가 그 당시 저한테 엄청 꽂혀서, 아직까지도 그 노래를 들으면서 살아가곤 하는데, 최근에 이런 저런 일을 겪고 가장 힘들었을 때 우연히 작년 슙디 라디오를 다시 듣게 되었어요. 근데 거기서 포기해도 된다는 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 당시 라이브로 들었을 때에도 위로가 되긴 했는데, 그냥 앓느라 정신 없었거든요ㅋㅋㅋ 근데 실제로 뭔가를 포기할 때 그 말을 들으니까 엄청 눈물나더라구요.
어쨌든 제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썼던 글이라 오래 제 블로그 속 임시 보관함에 묵혀놨었는데
새해가 시작되며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새 출발을 하시는 분들 모두 목표를 이루셨으면 좋겠다는 마음 한 스푼, 혹여 한 해 끝자락에서 무언가를 포기하는 분들을 위해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 한 스푼을 넣어 수정해서 올려봅니다ㅎㅎ
2021년 12월 31일에 올리려고 했는데, 저도 이런 저런 새해 맞이를 하다 이 새벽에 올려요ㅎㅎ
여기서 처음 글을 올려봤는데, 꽤 재밌는 추억이었습니다ㅎㅎ 감사했어요!! 모두모두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