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의 미학 01
당돌한 연하 권순영 X 철벽쩌는 너봉
스물 한살의 봄, 그다지 특별한 거라곤 없었다. 그저 그런- 봄일 뿐이었다. 새내기의 설레임은 이미 남일이 된지 오래, 그저 내 머리께로 떨어지던 것이 눈에서 벚꽃잎으로 막- 바뀌려고 하는 찰나 즈음. 그 이상 또 그 이하의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 그런 계절이었다. 그 계절에, 너는 내 삶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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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망한 수강신청 탓에, 월요일 아침부터 9시 수업을 나가기위해 미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억지로 눈을 부벼 뜨고는 시계를 바라보니 8시가 훌쩍 넘어있다. 여기서 학교까지 30분. 조금만 늦게 일어났으면 지각 확정 일 뻔했다. 늘상 반복되는 일인지라, 태연히 또 급히 고양이 세수를 한 얼굴에 캡모자를 푸욱- 눌러쓰고는 침대에 헤벌레- 하고 널부러져 있는 트레이닝복에 몸을 대충 끼워넣었다. 거울을 볼 새도 없이- 민낯을 가리기위한 안경을 우왁스럽게 잡아채고는 현관을 나섰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채로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급박한 목소리가 내 귀에 쏟아졌다.
"저기 … 저기요!"
"…"
"저기요, 누나!"
저기요- 하는 그 목소리에 내가 아니겠지- 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곧 오는 버스를 놓치면 지각 확정이다. 사실 복도에는 나밖에 없었고, 저 목소리는 나를 지칭함에 분명했지만, 모르는체하려 애썼다. 하지만, 계단을 우다다- 내려가는 내 발걸음을 그 목소리는 역시 뒤쫓았고, 계단을 반층 쯤 내려갔을 때, 나는 내 어깨를 감싸쥐는 손에 의해 멈춰졌다.
"신발끈, 신발끈 풀렸어요. 넘어져"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돌려세운 그 손길에 당혹감이 번져 눈만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니, 그 아이는 대뜸 내앞에 쭈그려 앉았다. 신발끈,신발끈- 하고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내 운동화의 끈을 열심히 묶어준다. 구겨 신었던 신발을 펴주고는 내 발을 조심스럽게도 신발에 쏘옥- 넣어주고 난 후에는 뿌듯함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바지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잘했죠? 하며 마치 칭찬이라도 바라는 강아지, 아니 그보다는 여우에 가까운 표정인지라 어찌 해야할 바를 모르고 벙쩌있으니 먼저 입을 뗸다.
"조심히 갔다와요!"
뭐지, 나 쟤랑 알던 사이었나. 혹시 나 술마시고 쟤랑 친해졌던가. 아는 사람 마냥 살갑게 손까지 크게 휘휘 저어가며 인사하더니 나보다 더 빨리 도도도- 계단을 내려가는 그 뒷모습을. 단정한 교복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금발의 뒷통수를. 한참이고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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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수업은 당연히 지각을 했더랬다. 운좋게도 교수님보다 한발 앞서 자리에 앉은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나의 말도 못하는 몰골을 본 최승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뭐 하루이틀 보는 추한 꼴도 아니면서- 하며 그저 무시했다. 내가 지각아닌 지각을 한 것이 꼭 그 아이 탓은 아니었다만, 그 아이를 원망하는것이 아님에도 자꾸만 머릿속에서 멤돌았다. 그냥 원래 그런 아이일까? 혹은 내가 정말 금방이라도 넘어질듯이 위태로웠나? 나랑 아는 사이였던가? 애초에 우리 옆집에 고등학생이 살았던가? 심상치 않던 금발머리를 상기시켜보니 어쩌면 노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다. 요즘 고딩들 무섭다던데, 혹시 나 찍힌 것 일까. 갖은 의문점 때문에 그 수업은 몽땅 날려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뿐아니라, 그 아이의 수상한 짓은 거기서 끊이질 않았다.
밤 10시 즈음- 뜬금없게도 아이스크림 미친듯이 먹고싶어 슬리퍼를 지익지익- 마구 못살게 굴며 편의점을 향하는데 멀리서도 한눈에 튀는 금발의 고딩이 반갑다는 듯 나에게 달려오더니, 편의점에 혼자가면 위험하다며 따라붙었다. 아직 10시 밖에 안됬는데- 하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는 무슨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냐며 자꾸 질문을 해오는 통에 곤란했다. 게다가 얼마전에는 대뜸 나에게 우유를 건네며 아침을 굶지 말라하지 않나. 이런 저런 당황스러운 행동들이 근 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 탓에 나는 집 문밖을 나가는데에도 초긴장상태였다. 그 아이, 그러니까 권순영이 (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쇄뇌 시키는 탓에 얼떨결에 통성명까지 해버리고야 말았다) 나에게 특별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만, 밀려오는 그 행동들은 부담스럽기에 짝이 없었으니 말이다.
"…누나!"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나 했다. 넌 고등학생이 주말에 학원안가니? 누나! 하고 해맑게 들이미는 얼굴에 당장이라도 내뱉고 싶은 말이었다. 탈색한 머리탓인가. 사복을 입으니 앳된 얼굴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같지는 않아보였다. 뭐,그건 내 알바가 아니고. 최승철이 영화를 보고싶은데 친구가 없다고 징징거려, 황금같은 주말에 집에서 뒹굴지 못하고 외출을 해야하는 것이 내게 당장 닥치 가장 큰 시련이었으니. 그저 대충 하이- 하고 권순영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어어- 하고 다급하게 나를 돌려세운다.
"누나는 왜 항상 계단으로 다녀요?"
"그냥-"
"누나 오늘 왜이렇게 꾸몄어요? 어디 가요?"
"그냥-"
권순영과의 대화는 늘 이런식이다. 뭐 그리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인지, 혹은 질문을 연구해오는 것인지. 나에게 끊임없이 쏟아내는 물음들에 나는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그냥- 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하고. 아직 10대여서 그런가. 잡초마냥 미적지근한 내 반응에도 절대 시들지 않고 권순영은 더더욱 나에게 치대고. 딱히 이아이에게 철벽을 쳐야겠다 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저 나는 이 고딩의 의도를 당최 짐작할 수 없으니 하는 행동이었다.
"…근데 너는 학교에서 머리 안걸리냐?"
결국 나는 권순영에게 붙잡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게 되었고, 딱히 궁금하진 않았지만, 처음보았을 때 부터 문득문득 떠오르던 그 질문을 내뱉었다. 내말에 권순영이 감동이라도 받은 표정으로 입을 쩌억 벌리고는 나를 쳐다본다. 그게 그렇게 놀랄일인가. 생각해보니 내가 먼저 입을 뗀건 처음같기도 하다. 권순영이 이내 퍼득- 정신을 차린듯 표정을 고치고는 대답한다. 예고라서 딱히 뭐라하진 않아요-
"아아-"
예고였구나. 권순영을 안지 한달이 조금 넘고서야 알게되다니. 딱히 알길이 없었다고 내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그러고보니 이 근처에 예고가 있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예고는 머리 안잡는구나. 아아- 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보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자마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아무생각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나를 다급히 따라 탄 권순영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내보이며 묻는다.
"나 금발한 거 이상해요?"
"이상하진 않은데 …"
"이상하진 않은데 …?"
"좀 양아치 같긴했어"
순식간에 시무룩해지는 권순영의 표정에 아차- 싶었다. 어쩌면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뇌를 거치지 않고 내뱉는 버릇을 고치던가 해야지 말야. 괜히 추욱- 쳐진 그 눈꼬리를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사실 틀린말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권순영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처음엔, 정말로 무서운 앤줄 알았단 말야 … 게다가 나는 과거형을 사용했는걸. 지금은 양아치라고 생각 안해! 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제와 변명하기에도 웃기는 노릇이니 그저 눈만 됴륵됴륵 굴렀다.
"김여주!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아직 약속시간 안됬거든"
권순영의 표정을 살필 겨를도 없이, 7층에서 1층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며 타박을 주는 최승철의 얼굴이 보였다. 순영이에게 인사라도 하자 싶어 뒤를 돌았는데, 권순영은 저벅저벅- 긴 다리를 휘적이며 나를 앞질러 걸어간다. 정말, 그 말때문에 삐지기라도 한건가. 아는사이야? 하는 최승철의 말에. 엉? 옆집 고딩 … 이라고 대답하는 사이, 어느새 저멀리 걸어간 권순영이 왜인지 모르게 신경쓰였다.
순영이는 그 날이후로 일주일정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웠다는건 아니고 말이다. 그저, 그냥 그렇다고. 그러다가 친구들과 치맥을 먹다가 괜히 피곤해서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앞에 익숙한 뒷통수가 보여 고개를 갸웃했다. 저 교복도. 이 시간 즈음 보이는 저 인영도 권순영이 분명한데, 뭔가 조금 다르다. 뭐가 달라졌지 …? 한참 그 동그란 뒷통수를 노려보다가 생각해냈다. 어디서보아도 눈에 띄던 금발의 뒷통수가 단정한 갈색의 머리로 바뀌어있다. 바뀐 머리에도 권순영일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어, 대뜸 그 이름을 불러제꼈다.
"권순영-"
"…"
"권순여엉-"
맥주 두캔도 다 안비우고 왔는데, 왜 이렇게 알딸딸하지. 술기운에 부끄럼따윈 잊고 꽤나 크게 내지른 내 부름에도 대답이 돌아오기는 커녕, 권순영은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뭐야. 내가 잘못봤나. 싶어 눈을 엉성한 손길로 부비는데, 누군가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오랜만이다? 김여주?"
"…놔"
순간 정신이 확- 하고 들었다. 망했다. 하필 최승철도 없을때. 날 잡아챈 목소리의 주인은. 그러니까 전남친이었다. 지가 먼저 바람펴놓고는, 그 여자에게도 거하게 차여 군대로 도피한 자식이었다. 제대후에 아쉬움이라도 남은것인지 몇 번 질척거리며 나를 찾아오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승철이가 해결해주곤 했었다. 그런데 하필 이런상황에. 한상준이 쥐고 있는 내 손목이 조금씩 아려왔다. 이새끼도 술에 취한게 분명했다. 나 지금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인거 맞지?
"에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정없게. 술이나 한잔 콜?"
"…놓으라잖아"
나를 잡아끄는 한상준에 화가나 정강이라도 찰까 하려는 찰나에, 누군가가 나를 제 뒤로 숨기며 한상준에게 톡 쏘아붙인다. 응? 낯익은듯 낯선 이 갈색 뒷통수는 순영이임에 분명했다. 이 귀찮은 고딩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제정신이 아닌 한상준을 상대하기엔 순영이가 위험해질것만 같아 순영이를 끌고 코 앞에 보이는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한상준이 지지않고 순영이때문에 놓쳐버린 내 다른 손목 한 쪽을 움켜쥔다.
"이 새끼는 뭐야?"
한상준의 말에 순영이의 미간이 보기 좋게 구겨진다. 한층 짧아진 머릿칼을 한 번 쓸어넘기더니 한숨을 내쉰 순영이가 말한다. 김여주 손 놔.
"머리에 피도 안마른 새끼가 반말질이야 엉?"
순영이에게 달려드는 한상준에도 순영이는 나를 제 뒤로 숨기는데 급급했다. 아니, 순영아. 지금은 네가 더 위험한 것 같은데? 순영이의 멱살을 잡아채려는 한상준에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말이다. 그 개자식의 급소를 발로 걷어찼다. 억 …김여주 너 죽,죽을래?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에 나뒹구는 한상준에 통쾌하다는 듯한 미소를 살짝 내비치고는 순영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야, 뛰어!
-
"누나 괜찮아요?"
헉헉 거리는 숨소리만이 우리 둘 사이를 가득 채웠다. 얼마나 뛰어왔는지 모르겠다. 홧김에 급소를 걷어차고는 도망친 꼴이라니, 알딸딸해서 그런가- 웃긴 상황이 아님에도, 기분이 마구 들뜨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게다가 자기가 더 땀에 범벅되가지고는 나보고 괜찮다고 묻는 권순영이라니. 그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너는? 하고 가볍게 물었다.
"누나 술마셨죠"
내 물음에 동문서답이 이어진다. 표정을 구기며 누나 술마셨죠. 하며 말을 내뱉는데 나도 모르게 눈치가 보였다. 나보다 3살이나 어린 고딩 눈치를 보는 꼴이라니 자존심이 상했지만, 사실은 조금 무서우니 급히 말을 돌렸다. 머리 언제 바꿨어?
"…어제요. 이상한가"
자꾸만 어색한지, 제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이게 훨씬 난데- 인물도 살고. 기분 좋은김에 옛다 칭찬이다- 하고 내뱉자 권순영의 귀가 빨개진 것만 같았다. 가로등 불빛만에 의지해서 잘 구분이가지는 않았지만, 어버버 하는 모습이 순수해보여 귀엽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빈말이 아니었으니. 아- 맥주 한캔 더 하고 싶다. 옆에 있는게 아직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있는 일개 미성년자이니 어서 집으로 돌려보내야지. 만약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게 권순영이 아니라 최승철이였다면 나는 분명 맥주라도 더 마시자며 한참 땡깡부렸을게 분명했다. 잠깐만, 손?
"…엄마야"
"…"
"너,너 왜 내 손 잡고 있어"
누나가 먼저 잡았는데- 급하게 잡고 있던 손을 빼내고 순영이에게 따지자, 순영이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암튼, 너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나 혼자 사는데"
"…어?"
"됐고, 누나야 말로 여자가 늦은 시간에 혼자다니고 말이야"
집이나 가요. 얼른. 그 말이 이상했다. 뭐라 표현해야하지. 정말 이상했다. 분명 한상준을 만난 날에는 김이 쭈욱- 빠져야하는데, 뭉실뭉실 구름위를 걷는 기분. 술기운 탓이라 생각하며 콧노래까지 부르며 발걸음을 순영이와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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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낑깡입니다. 세봉이들 너무너무 ㅇㅖ븐 노래에 제 부족한 글을 살짜쿵 끼워팔기하려 왔습니다.
이 글 분명 아낀다 활동할 때, 쓰기 시작한 글인데 (까마득)
정말 순영이가 갈색머리를 하고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 너무 기쁜마음으로 살짝 손을 보고는 이렇게 올려요
연하 수녕이의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갈 캐럿들 구합니다 (1/1920472910)
연하 순영이 많이많이 사랑해주세요 ♡ (낑깡이도 …♥) 우리 롱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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