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어렸다. 반항이란걸 모를 시기에 아버지에 무차별한 폭행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고, 더럽혀 진다는게 무슨 뜻 인지도 모를 시기에 유린을 당했다. 그러
나 소년은 무엇이 잘못 된 건지 알지 못 했다. 아프고 힘들어서 눈물은 났지만 이게 당연한 거라 생각 했다. 소년은 그렇게 어렸다. 그리고 소년은 그렇게 성숙
해 졌다. 무엇이 잘못인지, 어떤 것이 악인지 구분도 못 한채로 소년은 컸다. 그렇게 마음 속 한 켠에 절망만을 심어둔채 소년은 폭행과 유린 속에서 자랐다.
그렇게 소년은 끝 없는 고통 속에서 끔찍한 12년을 버티었고, 어느 정도 선과 악을 구분할 때가 되었을 즈음엔 17살. 10대의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그렇게 소년
은 자신의 과거를 원망 했다. 조금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걸. 소년이 깨달은 후에는 이미 자신은 반항과 부정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기였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은 당연한게 아닌 악이였다. 악의 존재를 알고나니 소년도 역시 이미 악이 되어버린 후 였다. 그러하여 소년은 절망 했다. 자신과 같은 나이인 또래 아이들은
자신과는 다르게 살고 있을 것 이라는 사실이 자신을 괴롭혔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가까운 곳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 이라던지, 학교에 가면 마주치는 동급생들 이라던지, 자신과는 다르게 평범하
게 사는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이라도 되면 차나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와주는 부모님이 계셨다. 어렸을땐 당연한줄 몰랐던 일들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소년은 자신에겐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슬퍼 했다.
“김상우.”
소년의 이름이였다.
가래가 잔뜩 낀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소년을 깨웠다. 밤은 무섭다. 어둠은 지독하다. 그렇게 소년을 옥매고 괴롭힌다. 소년은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
나 아버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둥, 둥, 둥. 마음 속에서 고동이 일었다. 아, 소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또 하나의 꽃과도 같은 선명한 상처 자
국들이 일어날 것임을.
너와 내가 동화 속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이유 上.
“라면 좀 사올게요.”
상우는 주말의 이른 오후에 눈을 떴다. 어제 밤에 터진 입술은 여전히 쓰라린 딱지가 눌러 붙어 있었다. 상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천원 짜리 몇 장을 꾸깃꾸깃
쥐고는 현관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길다란 아파트의 복도가 보였다. 끼익, 현관문이 녹슨 쇠 소리를 내며 닫혔다. 상우는 꺾어 신은 운동화 뒷꿈치를 다시 올려
신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계단에 거의 다달았을때 즈음, 뒤에서 다소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야.”
자신을 부르는건가, 상우는 걸음을 멈추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 곳엔 삐쩍 마른 한 남학생이 서있었다. 안 감아서 새 집을 지은 검은 머리와, 다 흘러 내
리는 후드 집업에 츄리닝 바지를 입곤 밑 창이 다 까진 슬리퍼를 신은 남학생 이였다. 우리 아파트에 저런 애도 살았었나. 상우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멍 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야, 너 일루 좀 와봐.”
“……저요?”
“어. 너 옆 집 사는 애 맞지?”
자신보다 한 뼘 정도 커 보이는 키에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썼다. 그가 손가락질을 하기에 상우는 어이가 없어 속으로는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실상 아무
말 없이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
“너네 아부지 보고 요기서 담배 피시지 말라 그래.”
“……네?”
“우리 어머니가 뭐라 그러신단 말야. 짜증나게……내가 핀 것도 아닌데.”
“저희 아버지 담배 안 피시는데요.”
“야, 내가 몇 번이나 봤는데. 요기서 담배 냄새 나면 사람들 다 짜증낸단 말야.”
“아, 예…….”
“너 중학생이야?”
그의 눈은 자세히 보니 몇 일 날 밤이라도 샌 건지 눈 밑에 진한 다크써클이 지어 있었다. 좋지만은 않은 인상이였다. 그리고 삐쩍 마른게 꼭 마른 멸치 같았다.
저런 것도 남자라고……쯧, 상우는 속으로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닌데요.”
“고딩이야?”
“예.”
“그으래? 몇 살인데?”
“열 일곱이요.”
“뭐야, 완전 애기네.”
“………….”
“난 열 여덟이야.”
야, 근데 생각 해 보니까 겨우 한 살 차이네. 그는 뭐가 그리 웃긴지 혼자 배를 잡고 깔깔 대더니 ‘뭐라 해서 미안타, 담에 보면 반말 써. 형이라 부르고.’ 라며 다
시 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 저런게 다 있어……상우는 닫힌 현관문 앞에다 대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다시 복도의 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가며 생각 해 보건데, 생각 할 수록 그의 행실이 열 받는다. 상우는 괜히 입을 삐죽이며 찬찬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
다음 날, 상우는 학교에 가기 위해 평소 주말보다 좀 더 빠르게 눈을 떳다. 부랴부랴 아침 밥도 거르고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제 앞엔 어제 그가 서 있었다. 어
제의 그 거지 꼴과는 다르게 단정한 머리와 깔끔한 교복 차림에 상우는 순간 그가 누군지도 못 알아볼 뻔 했다. 그는 먼저 상우에게 아는 채를 하며 상우의 어
깨를 툭, 건들였다.
“야, 안녕.”
“……….”
“왜 인사 안 해?”
“……안녕 하세요.”
“말 까라니까. 너 보기보다 소심하다.”
그는 실 없는 농담이나 툭 던지는 말을 좋아하는 듯 했다. 별 거 아닌 말에도 웃음을 주체하지 못 하고 복도가 떠나가라 깔깔 대는데 꼭 앙칼진 계집아이 같았
다. 상우는 그를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빨리 했다. 그러자 그도 똑같이 걸음을 빨리 하며 자꾸 상우의 옆으로 앵겨 붙었다.
“야, 니 나랑 교복 똑같애.”
“……….”
“같은 학교인가? 마크도 똑같은데?”
“……….”
“야, 말 좀 해봐.”
상우는 아예 입을 꾹 닫아 버렸다. 별로 섞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아마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겠지. 상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
고 무시했다.
“아침에 혼이라도 났냐? 입은 왜 삐죽거려.”
“……….”
“아, 말 좀 해!”
“……….”
“와아, 진짜 답답해 죽겠다. 아무 말 이나 해봐. 으응?”
그는 결국 상우의 어깨까지 부여 잡고는 흔들어 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도 계속 상우의 옆구리를 찌르는 둥 귀찮게 해대는데, 아파트 건물을 나오고 나서
도 그 지랄을 해대는게 참 열이 받아 상우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서는 제 뒤에 졸졸 따라붙던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꺼져!”
“오, 말 깠네.”
“꺼지라고.”
“야, 멱살을 놔 줘야 꺼지든 말든 하지. 너 보기보다 박력있다.”
그는 뭐가 그리 웃긴지 실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상우는 이에 그의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진짜 이상한 놈이다. 자신이 멱살까지 잡아 올렸는데 화도 내
지 않고 오히려 웃기다고 웃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말 깠으니까 이제 형이라고 불러라, 알았지?”
“………미쳤나 이게 진짜.”
“아! 내가 어제 뭐라 해서 화 난건가?”
“……….”
“미안하다 했는데……너 진짜 소심하구나.”
“……….”
“그리구 형이라고 불러 임마, 다음부턴 욕 하지 말고. 알겠지?”
그가 혼자 떠드는 말 들을 들어가며 걸어오니 어느 새 학교 앞 정문이 코 앞에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들과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분주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곤 거의 정문 앞에 다다르자 그는 상우의 어깨를 잡아 돌려곤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그는 마치 오래된 친구 다루듯 상우의 머리를 짖궂게 헝크러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먼저 학교 교문을 통과 해 지나가 버렸다. 상우는 기가 차고 어
이가 없어 웃음 밖에 안 나왔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상우는 그리 생각하며 걸음을 옮겨 교문을 통과 했다. 교문을 통과 하는 순간부터 상우의 머릿속에 멍─
해졌다. 이상하다. 머릿 속에 무언가 꽉 들어 찬 기분이 드는 것만 같다.
출석 번호대로 주번을 정하는 덕에 출석 번호순이 조금 빠른 상우는 번호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주번이 되었다. 이것 저것 선생님의 심부름 까지 방과후에 남아
도맡아 도와주곤 교실 뒷 정리에 교실 문 단속까지 하고 나오니 시간은 벌써 6시를 가르켰다. 점점 추워지는 10월, 이제 곧 겨울이라 그런지 6시만 되어도 하
늘이 꽤나 깜깜했다. 상우는 교복 마이를 여미며 낡은 공터를 지나 아파트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가디건 하나 없이 교복 마이
만 걸치니 여간 쌀쌀한게 아니다.
그렇게 아파트 앞 작은 놀이터를 지나 가려는 찰나, 무언가 제 어깨를 힘 없이 잡는 것이 느껴져 상우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곳엔 겁에 잔뜩 질린 듯 고개를 푹 숙이곤 떨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깜깜한 하늘 덕에 누군지 분간이 조금 어려웠으나,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
자 아침까지만 해도 쌩쌩히 날뛰던 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놀래라.”
상우는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 뱉곤 또 귀찮게 따라 오겠지. 하는 마음에 고개를 다시 돌려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그가 상우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었
다. 여전히 손은 벌벌 떨고 있었다.
“미치겠다 진짜. 아침부터 나한테 왜 이래요?”
“……야, 미안한데 나 좀 도와주면 안돼?”
제가 왜요.
상우는 목 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내뱉지 못 했다. 아마 자신이 그 만큼 무정한 사람은 아닌 듯 싶었다. 상우는 긴 한숨을 내 뱉으며 몸과 고개를 그 쪽으로 돌렸
다. 그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그냥 무시할걸.
상우는 귀찮은 일에 휘말린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차마 이제와서 내 치고 갈 순 없는 노릇이기에 다짜고짜 그의 손목을 잡아서는 놀이터 벤치로 끌었다.
지금와서 생각 해 보건데, 항상 나에게 악은 가까웠다. 선은 멀기만 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도 나에게는 악이였다. 그때 내가 좀 더 무심했다면 우린 제자리
였을까.
더보기
본래 장편으로 만들고 싶었던 글인데
여건이 안되 짧게 상중하로 나누어 쓰려니
사건 해석이 잘 안되서 전개가 너무 빠르네여ㅠㅠ아..슬프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