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바보 03 |
by.팊 “ 쑨양, 너 동아리는 안할거야? ” 강의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태환형이 질문을 해왔다. 동아리라, 사실 동아리 들어오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낯을 많이 가리다보니 선듯 나서기가 좀 그랬다. 좀만 더 생각해볼게요. 하고 매번 피했었는데‥. “ 동아리‥ ” “ 같이 수영하자. ” “ 수영? ” “ 너 어릴때 수영했었다며? 수영부하자. ” “ 아‥, 형이랑 같이? ” “ 응. 그러면 적어도 동아리모임에 혼자는 아니니까 덜 낯설거아냐. ” “ 음‥ 잘할 수 있을까? ” “ 사내놈이 무슨 그런 걱정을하냐. ” 뒷목을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더니 형은 강요하진 않을테니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했다. 사실 농구를 좀 좋아하는 편이라 농구코트 근처에 자주 기웃거렸는데, 막상 형이 수영을 하자고 하니까 또 거기로 마음이 가는건 어쩔 수 없었다. 강의를 듣는내내 수영에 대한 생각밖에 나질않아서 그날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않았다. “ 태환형- ” “ 어? 쑨양! 또 도서관가? ” “ 도서관에서 나오는길. ” “ 공부 디게 열심히하네‥ ” “ 중국에서는 더 해요. ” “ 음, 그래 중국이 한국보다 교육열이 높다고는 들었지만. ” “ 어디가요? 여자친구? ” “ 어? 아~ 아니야. 동아리 애들 모여서 오늘 저녁내기 시합한데서 가고 있어. ” “ 나도 구경해요? ” “ 해요가 아니라 해도 돼요?라고 해야지. ” “ 아아, 구경해도 돼요? ” “ 안될건 없지. 같이 가자. ” 형은 웃으며 체육관이 있는 쪽으로 고개짓했다. 옆에서서 나란히 걸어가다가 문득 왜 요즘은 여자친구를 만나지않아요? 라고 했더니 형은 그저 작게 웃어보였다.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였다. “ 어, 박태환 너 왜이렇게 늦게오냐! 다 목빠져라 너만 기다렸어. ” “ 미안미안. ” 수영복을 갈아입고 들어간다고 형은 나를 먼저 수영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들어오니 수영장 냄새가 왠지 기분 좋게 코를 간질여왔다. 그때쯤에 마음을 굳힌거 같다, 수영을 해야겠다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태환형은 그동안 옷 안에 가려져왔던 몸이 여지없이 들어났다. 몸이 좋다고 생각하긴했는데 직접 이렇게보니 탄탄하게 자리잡은 근육들이 굉장히 멋있어보였다. 그러고보니 한동안 공부때문에 운동을 하지않아서 왠지 내 몸에게 굉장히 미안해졌다. “ 근데 저 키 큰 친구는 누구야? ” “ 과 동생. ” “ 오~ 야, 저 신체 조건이면 수영이 딱인데. ” “ 안그래도 생각해보라고 했지. 농구에 더 관심이 있어보이긴한데‥ ” “ 농구? 야, 농구부 들어가면 사람베려. 거기 애들 질이 얼마나 안좋은데. ” “ 안그래도 그게 좀 걱정되서 수영부 이야기한거기도 해. ” “ 덩치랑 다르게 엄청 순진한가보네? 박태환이 걱정하는거 보면. ” “ 형이랑은 다르지. ” “ 왜 이러셔. ” 멀뚱히 의자에 앉아서 두사람이 이야기하는걸 보고만 있었다. 그런 내게 태환은 웃으며 다가와서 함께 이야기 하던 남자를 소개 해주었다. 이현승이라는 사람으로 우리 학과 선배였다. 그는 현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한국의 수영선수였다. 태환형과는 고등학생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람이였다. “ 쑨양, 내가 이겨서 너도 맛있는거 먹게 해줄게. ” “ 에? 아, 무리 할거까지는‥ ” “ 유학생! 얘 말고 우리를 걱정해야돼, 넌. ” “ 예? 어째서요? ” “ 이거 대충해도 왠만한 애들은 다 이겨. ” “ 이거라니, 형. ” “ 지금 이놈이 제대로 한다고했지? 그럼 수영선수인 나도 가뿐히 이기는 놈이야. ” “ 형, 그건 좀 오버다. ” “ 오버 좋아하고 있네‥ ” 헤- 라는 멍청한 소리를 내며 그냥 멀뚱히 바라봤다. 태환형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웃어보이더니 수모를 고쳐쓰며 사람들 틈으로 걸어갔다. 등을 기대고 편히 앉아서 물 안에 들어가서 수영 중인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은 물 속에 있을때 엄마의 뱃속에 있을 무렵을 기억하기 때문에 양수처럼 느껴져 몸이 가장 편하다는 말을 강의시간에 들었다. 왠지 나도 물에 들어가고 싶은 느낌이 들어서 몸이 간질간질 거렸지만 애써 참으며 슬슬 게임을 시작하는 동아리 무리를 지켜봤다. 수영은 해봤기때문에 어렴풋이 룰과 자세등은 알고있었다. 태환의 입수자세는 프로가 아닌 내가 봐도 정말 깔끔했다. 초반에는 다들 어깨를 나란히 하다가 어느 순간 태환은 치고나가기 시작했고, 무서운 속도로 마지막 바퀴를 돌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켜보던 내가 우와- 라며 탄성을 내질렀다. “ 수영 잘 하는구나‥. ” 아쉬워하는 사람들, 태환을 부러워하는 사람들, 질투를 하는 사람들 여럿이 보였고, 그 가운데 있던 형은 슥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씩 웃어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아마 나는 그때 쯤에 태환에게 반했었던거 같다. 그런 이야기를 후에 했을때 형은 소녀감성이라며 놀려댔지만 정말 멋있었고, 매말랐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었다. 그 일이 있고 몇일 지나지않아서 나는 수영부에 들어갔다. 형과 나는 정말 학교 안에서 만큼은 한번도 떨어지지않고 함께 다녔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흘러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방학 전에 동아리에서 한학기 열심히 잘했다며 회식을 가졌고, 술을 잘마시는 편은 아니였지만 중국의 술은 워낙 고량주로 유명했기에 한국의 술은 내게 그냥 음료수 같은 느낌이였다. 취해서 기절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정리해서 택시에 태워보내고 결국 현승형과 나, 태환형 이렇게 셋이서 남았다. “ 야, 쑨양. 너 이새끼 남자다? 술 존나 쎄! ” “ 저도 조금 취하는거 같은데요. ” “ 조금? 이 새끼‥ 지금 우리 꼬라지 봐라. 야야, 태환이 쟤 어디가냐. ” “ 전화, 전화. ” “ 누군데! 여기서 받아! ” “ 여자친구- ” 폰을 보여주며 베시시 웃던 태환형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 밖으로 나갔다. 멍하니 형이 나간 문만 바라보고 있다가 탁-하고 술잔을 놓는 소리에 시선을 옮겨 현승형을 바라봤더니 왠지 표정이 좋지않았다. “ 조만간이야 저거. ” “ 예? ” “ 바람났거든. ” “ 바람이요? ” “ 기집년이 알고보니 상여우더라고? 생긴건 순진하게 생겨가지고‥ ” “ 아‥ ” 그래서 요즘 태환형이 여자친구를 잘 만나지도 않고, 연락도 많이 없고 그랬던거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웃으며 일상생활을 전혀 문제없이 지낸 태환형이 갑자기 대단하게 느껴만졌다. 현승형은 그후에 너도 임마 그런 여자 안 만나게 조심해! 순진하긴 니가 갑인거 같다, 새끼야! 라며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물론 예의상 나도 함께 마셔야했고, 슬슬 알딸딸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쯤에도 태환형은 자리로 돌아오지않았다. “ 야, 쑨양. ” “ ? ” “ 너 솔찌 툭 까놓고 말해봐라. ” “ 뭐라구요? ” “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이 형한테! ” “ ‥뭐를요? ” “ 너 좋아하는 사람있지? ” 숟가락을 들어 찌개 국물을 떠먹던 나는 그대로 컥- 하고 기침이 튀어나와 아픈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그 반응에 현승이형은 더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콕콕 찔러댔다. “ 이쁘냐? ” “ 무, 무, 무슨 소리에요! ” “ 오오오~ 키는 커? ” “ 아, 그만해요! ” “ 다 알아, 새끼야. ” “ 뭐, 뭘 알아요! ” “ 너 게이냐? ” 그 한마디에 쿵- 하고 뭔가가 가라앉는 느낌이였다. 마른 입술만 달싹이다가 빈 술잔에 술을 채워 쭈욱 한번에 들이켰다. 번들거리는 입가를 슥 한번 닦아내고 다시 형을 보았다. 취한 형의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 저 중국에선 여자친구도 있었어요. 아니에요. ” “ 너 쟤 좋아하잖아. ” “ 누구를요. ” “ 박태환. ” 그 한마디에 또 한번 쿵- 하고 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부정하려고 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드러내놓고 싶지도 않은 감정이였다. 엄연히 여자친구와 잘 사귀고 있고, 무엇보다 남자를 좋아한다는건 그렇게 자랑할만한 거리가 아니였다. “ 형, 많이 취했어요. ” “ 솔직히 새끼야, 너 그렇게 다 티내고 다니는데 누가 몰라 뷰웅신아. ” “ 취했어요. ” “ 태환이도 알아. ” “ … ” 술잔을 잡으려던 형의 손을 제지하려다가 그대로 우뚝 멈춰섰다. 술잔을 뺏어든 형은 술을 들이켰고 허공에 뜬 내 손은 덜덜 떨려왔다. “ 다 안다고 새끼야. 누가 너보고 뭐라고했냐. 왜 죄지은 놈처럼 겁먹은 얼굴이야. ” “ ‥아니에요. 그냥 제가 아끼는 형이에요. ” “ 왜 쟤가 운동을 했는지아냐? ” “ 형이 오해하신거라니까요. ” “ 자꾸 남자가 꼬여서. 저 새끼가, 멀쩡히 아들내미 달고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남자가 이상하게 꼬였거든. ” “ 그런거 아니래두요. ” “ 그래서 몸을 좀 키우고 했는데‥ 히야, 새끼. 그래도 남자가 꼬이네. ” “ 형. ” “ 여자친구도 있는데 말이야. ” “ 현승이형! ” “ 귀 안먹었어, 임마. ” 왠지모르게 자꾸만 엄청나게 느껴지는 수치심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형을 노려보고 있었더니 형은 그저 작게 미소지었다. 그게 나를 깔보는건지 아니면 동정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폰을 주머니에 우겨넣었다. 형이 풀린 눈으로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 니가 안쓰러워서 그래, 안쓰러워서. 누가 남자를 좋아하던 여자를 좋아하던 내 알 바없는데, 넌 정말 너무 좋아하는게 티가 나서.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정도로 티가 난다고 너는. ” 애써 현승이형의 시선을 뒤로하고 출입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을 열자 방금 통화가 끝난건지 술에 들뜬 얼굴을 한 태환이 서있었다. 어, 쑨양! 하고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자 속에서 뭔가 뒤틀리는 느낌이 느껴졌고, 미간을 확구기며 그를 지나쳐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잠시동안 뒤에서 따라오는듯한 발소리와 내 이름을 애타게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얼마나 달린지도 모를정도로 달렸다. 숨이 차올라서 전봇대를 붓잡고 우웩- 소리를 내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계속된 헛구역질에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 {추해, 추하다. 쑨양 멍청한 새끼.} ”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어깨를 들썩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하지않았다. 그 날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도 기억이 나지않았다. 눈을 떴을때 익숙한 천장이 보였고, 책상에 올려진 휴대폰에는 몇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있었다. 현승이형의 문자 2통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태환형의 것이였다. [쑨양, 어디야?] -태환형 [너 어디야. 집에는 잘 들어간거야?] -태환형 [전화는 왜안받아. 현승이형이랑 싸웠어?] -태환형 [집에 무사히 들어간거지? 그렇게 생각할게.] -태환형 [쑨양,너 어디야. 강의 시작했어.] -태환형 [무슨일이라도 당한거야?] -태환형 그 후에 전화를 한건지 부재중 통화가 5통이 넘게 와있었다. 그리고 현승이형의 문자 두통을 확인했다. 다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걱정이 서려있는 문자였다. [어디냐,학교 안왔다며] -현승이형 [이거보면 전화, 박태환한테 완전 시달리고있다. 나 좀 살려줘라.] -현승이형 문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딱히 태환형에게 전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대로 통화버튼을 눌러 현승이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번 신호가 울리고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너 어디냐?] ” “ 집이요. ” “ [학교는 왜 안왔는데? 설마 어제‥] ” “ 지금 일어났어요. ” “ [‥화났냐?] ” “ 안났어요. 조금 피곤해서 그래요. ” “ [‥야, 솔직히 어제한 말은 진심이였다. 기분 나빠하지말고 너 잘생각해봐.] ” “ 뭐를요? ” “ [언제까지 그렇게 티 풀풀내면서 숨길 수 있을거 같다고 생각해?] ” “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한국와서 처음 사귄 친구나 다름없어요. 잃고싶지않아요. ” “ [태환이는‥] ” 하는 소리와 함께 쑨양이야?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승이형은 수화기를 잠시 귀에서 때고 형과 이야기를 나누는듯 했고, 바꿔줘- 쑨양 어디야? 라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황급히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후로 걸려오는 전화도 모두 무시하다가 결국 폰을 꺼버렸다. 꺼진 휴대폰의 액정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건 문제가 아닌데, 그게 태환형이라 문제인거야, 현승이형.} ” 잃고싶지않았다. 내 감정을 표현하는거보다 지켜주고싶은 마음이 더 컸다. 사실 내 감정을 말하지않아도 그냥 이렇게 옆에만 있어도 좋았다. 정말 더 바라지도 않았는데 사실 태환형은 내 마음을 다 알고있었다고한다. 아마 현승이형이 그렇게 말하는거보면 분명 태환형은 내 문제로 상담을 했다는 이야기일텐데,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기분 나빠했을까? 원체 형은 기분이 나빠도 베시시 웃으며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였다. 지금껏 나와 함께 있으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다시 머리가 아파와서 침대에 풀썩 누워 천장만 멍하니 봤다. “ {중국에, 중국에 가고싶다.} ” 도망가버리고싶었다. 그리고 나는 도망갔다. 몇일간 폰도 꺼놓고 학교도 나가지않았다. 물론 그 사이에 학교는 방학을 해서 상관이 없었다. 내일자 중국행 티켓을 들고 침대에 걸터앉아 착잡한 심정에 한숨만 땅이 꺼저라 쉬었다. 내일 중국으로 가면 어차피 되지않을테니까‥ 하고 폰을 켰다. 수십통의 문자와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 목록이 날 반겼다. 여지없이 태환형의 이름 밖에 보이지않았다. 현승이형의 이름도 간간히 보였지만. “ {중국에가서 머리 좀 식히고나면‥ 그때 형에게 가서 사과해야겠다.} ” 씁쓸한 마음에 폰을 다시 끄려는데 타이밍 좋게도 마침 전화가 울렸다. 어어? 하고 당황하는 사이, 발신자 이름을 확인도 못하고 실수로 통화버튼을 눌러버렸고, 조용한 집안에 작은 통화소리가 울렸다. “ [쑨양? 쑨양! 끊지마!] ” 그렇게도 그리웠던 태환형의 목소리였다. 통화종료를 누르려는데 끊지말라고 제발 끊지말라고 하는 태환형의 목소리가 왠지 슬프게 들려서 끊지않고 조심스레 귓가에 대었다. 이내 끊지않는다는걸 느꼈는지 숨을 고르던 형은 윽, 하더니 불규칙한 숨소리를 냈다. 울고있는거 같았다. “ 어디에요. ” “ [힘들어 죽겠는데 너는 왜그래, 진짜.] ” “ 어디에요, 형. ” “ [나한테 왜들 그래‥] ”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술집에 있다고 했다. 거기는 태환형과 내가 과제가 늦게 끝나면 배도 채울겸 간단히 술을 마시던 곳이였다. 대충 세수만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쓴채 집을 나섰다.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내가 왜 그곳에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태환이 울고있다는것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이런 내가 싫었다. “ … ” 혼자서 얼마나 마신건지 이미 텅빈 술병 여러병이 테이블을 나뉭굴고 있었고, 홀로 앉은 태환형의 어깨가 추욱 늘어져있었다. 조용히 맞은편에 앉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시선을 마주쳤다. 역시 울었던건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부어있었다. “ 너도 이제 내가 싫어? ” 오랜만에 만난 형이 꺼낸 첫마디였다. *** “ 쑤, 쑨양! ”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폰이 떨어지며 전화가 자동으로 끊겼다. 시선을 돌리자 커피를 손에 쥔채 겁에 질려 당황한 얼굴을 한 태환과 그런 그의 어깨를 쥔채 뭐라고 말하는 남자가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가 그 손목을 잡아 신경질적으로 떼며 얼굴을 보니 낯익인 얼굴이였다. “ 유학생? ” “ ‥현승이형. ” “ 니네 아직도 같이 있‥이게 아니라. 얘 왜이래? ” “ 쑨양‥ 나 아는 사람이야? ” 태환형은 나와 익숙히 대화를 하는 그를 보며 갑자기 더 불안에 떨었다. 태환은 이런 일 때문에 밖에 나오는걸 꺼려하기도 했다. 기억을 잃고 생각 자체가 어린아이처럼 변했다고 할지라도 누군가는 자신을 아는데, 자신은 모른다는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때마다 태환은 또다시 자신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걸 깨달았기때문에 싫어하는거 같았다. “ 형, 일단‥ 일단은 우리 좀 앉아요. ”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조금 안쪽으로 자리잡았다. 나와는 만난지 1년이 채되지않아 유학을 떠났던 현승이형이였다. 내가 낯선땅으로 떠났듯, 형도 낯선땅으로 떠났었다. 그 무렵 태환과 내가 함께 했었던거 같다. 내 옆에 꼭 붙어앉아 빨대만 잘근잘근 씹으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는 태환형을 빤히 보던 현승이형은 다시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 어떻게된거냐. ” “ 그게‥ ” 그러게요, 어떻게 된걸까요. 미간을 꾸욱 눌렀다가 떼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떻게 말을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는데 커피만 홀짝거리던 태환이 내 옷깃을 꾹 잡아당기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 집에 가고싶어. ” “ 아‥ 잠깐만, 조금만 참아요. ” “ 지금 가고싶어‥ ” 형의 얼굴은 금새 울상이 되었다. 그런 태환을 보며 현승이형은 얼굴이 더 굳어졌고, 내게 답을 요구했다. 양쪽에서 보채니 머리가 더 아파왔다. 그냥 도망가고싶은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 태환형이 좀 아파요. ” “ 어디가? ” “ ‥머리가요. ” “ 왜 아픈건데? 멀쩡하던 새끼가 왜? ” “ … ” “ 뭔 짓을 한거야. 말해보라고. ” “ 사고가 조금… ” “ 사고? ” 그때의 일이 떠올라 잠시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심해지고 배가 콕콕 쑤시는게 몸에 이상 증세가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하얗게 질리는 내 얼굴을 보던 태환은 발을 동동 구르며, 내게 답을 요구하는 현승이형을 흘겨봤다. “ 야, 박태환. 너 나 몰라? ” “ 현승이형, 태환형은‥ ” “ 너한테 안물었어. 조용히해봐. ” “ 현승이형‥ ” “ 박태환. ” “ ‥않아. ” “ 뭐라고? ” “ 알고싶지않아. 쑨양은 잘못없어. 너 싫어. 쑨양 아프게해. ” 현승이형은 적지않게 놀란 얼굴로 멍하니 태환을 바라봤고, 태환은 계속해서 싫어, 모르는게 나아. 라며 웅얼거리다가 이내 울컥했는지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랫입술만 잘근거리다가 휴지에 폰번호를 적어 현승이형에게 건내주고 태환형의 팔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형, 미안해요. 나중에 연락주세요. 그때‥ 그때 말씀드릴게요. ” 현승이형은 여전히 멍하게 우리를 보고 있었고,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주차장에 대놓았던 차를 찾아가 뾰루퉁해있는 태환을 조수석에 태워 안전벨트를 메어주고 운전석으로 가기위해 차 뒤로 돌아가던 중 트렁크를 붙잡은채 멈춰섰다. “ 아‥ ” 배에서 느껴지던 아릿한 통증이 점점 커졌다. 한 손으로 배를 꽉 움켜쥔채 입술만 깨물며 터져나오는 비명을 참아내려 노력했다. 그 탓에 온 몸은 금새 식은땀에 젖었고, 다리는 바들바들 떨려왔다. 통증은 1분간 계속 되었고, 달칵거리는 조수석 문소리가 들렸다. “ 쑨양? ” “ 내리지마요. 지금 갈거니까. 가만히 있어요. ” 다행히 떨리는 목소리를 눈치채지 못한건지 태환형은 그대로 다시 문을 닫았다. 상체를 숙인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적신 식은땀을 닦아내었다. 요즘 밥 시간을 잘못맞춰서 그런지 위에 부담이 간거 같았다. 통증은 점차 가라앉았고 다시 발걸음을 떼어 겨우 운전석에 올라탈 수 있었다. 태환은 땀에 젖은 내 얼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쑨양, 왜그래? 더워? ” “ ‥피곤해서 그래요. ” 터져나오는 비명을 참아내느라 목이 다 쉬어버렸다. 형은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팔을 뻗어 옷소매로 내 얼굴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닦아주었다. ‥여전히 이렇게 다정한데, 왜 이렇게 되버린걸까, 형. “ 집에가서 자자. ” “ 그래요. 집에가서‥ ”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안절부절하는 태환과는 달리 나는 묵묵히 운전만하며 한마디도 하지않았다. 혹여나 정신을 놓을까봐 운전대를 붙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내릴때 태환이 계속 손을 매만지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손이 하얗게됐어. 라며 피가 통하지않아 질린 손을 주물거리며 매만져주었다.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사랑스러운데 우린 대체 왜 이렇게 된걸까, 태환.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겠지? 한동안 나는 꽤 아팠다. 그날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건지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몸은 금새 몸살이 나버렸고, 계속 병원에 가자. 라며 울먹이는 형의 등살에 못이겨 아픈몸을 질질 끌고 근처 작은 병원에가서 주사를 맞고 오니 몸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렇게 또 자다가 스르륵 눈을 뜨자 작은 탁상 앞에 앉아있는 등이보였다. 멍하게 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더니 종이에 뭔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 태환, 뭐해요? ” “ 응? ” “ 뭐하고 있어요? ” “ 공부! ” “ 공부요? ” 너무 오래자서 머리가 묵직하게 느껴져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형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태환은 보면 안돼- 라며 몸을 숙여 종이를 다 가렸고, 대체 뭐길래 그래요? 라며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잠시 벽에 기대서 손으로 종이를 가린채 뭔가 열심히 쓰고있는 형을 물끄럼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화장실! 이라며 일어난 태환은 절대로 보면 안돼! 라고 신신당부하고는 화장실로 쪼르르 들어갔다. 눈만 깜빡거리다가 시선을 슥 내리니 굳이 보려고 하지않아도 종이에 적힌 글들이 보였다. “ 음‥ ” 눈을 가늘게 뜨고 적힌 글들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박태환 이라는 세글자와 내 이름 두글자만 가득히 적혀있었다. 잊지않으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있었다. 또 눈물이 터질거만 같은 느낌에 눈을 꾹 감았더니, 멀지않은 과거에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형은 열심히 뭔가를 적었다. 항상 뭐든지 적었다. 기억이 나면 아주 사소한거라도 적었다. 그리고 다 적고 나면 형은 나를 바라보며 울었다. 내일 자신이 혹시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미워하지말라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울며 매달렸었다. 그렇게 울다지쳐 잠이든 형은 눈을 떴을때 자신이 썼던 글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 쑨양, 쑨양? ” 생각에 잠겨 감고있던 눈을 떴더니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태환형이 쭈그려앉아 빤히 보고 있었다. 작게 웃으며 손은 씻었어요? 라고 묻자, 나 어린애 아니야. 라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게 또 너무 사랑스럽고 알수없는 그리움에 사무쳐서 팔을 뻗어 어깨를 잡아당겨 품안에 꼬옥 안아가뒀다. “ 쑨양, 왜그래? ” “ 바람쐬러 갈래요? ” “ 어디에? 또 병원 가는거야? ” “ 아니요, 우리집에. ” “ 우리집? ” “ 응. 거기가면 다들 태환을 반겨줄거에요. ” “ 맛있는거도 많아? ” “ 응, 많아요. ” “ 그럼 갈래! ” “ 그래, 같이가요. 같이. ” 품 안에 안긴 태환은 좋다며 베시시 웃었고, 그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어왔다. 고개를 숙여 태환의 어깨에 얼굴을 뭍으니 익숙하고 그리운 향기가 났다. 답답하다며 버둥거리는 태환의 등을 쓸어주며 달래었다. “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 지금 고개를 들고 얼굴을 바라보면 울거만 같아서 그렇게 꾹 안은 팔을 풀지않았더니 잠시 버둥거리던 태환은 졸려? 재워줄까? 라며 작게 물어왔다. 응- 이라고 대답했더니 몸을 뒤로 기우리며 내 몸을 쭉 당기더니 자신의 품에 훨씬 큰 나를 눕혔다.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고동 소리가 들려서 왠지 나른해졌다. “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거야. ” 나른해진 정신은 금새 아득해졌고, 나는 잠결에 그렇게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은거 같았다. 눈을 뜨고 얼굴을 보고싶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그리운 향을 품은채, 그렇게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
팊.
기다리셨죠ㅎㅎ 기다리신거에 비해서 한참 모자른 글로 찾아왔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ㅠㅜ 점점 글이 퇴화하는 느낌이네요.. 죄송합니다 ㅇ<-<
한계인가봐요 ㅠㅜㅜ 아 슬푸네여..흑흐긓ㄱㅎ그흑흑 ㅠㅜㅜㅠㅠㅠㅜㅜ
정말 슬프게 쓰고싶은데 자꾸 글이 안써져서 지웠다 썼다 지웠다 썼다...
열심히 썼어요 ㅠㅜㅜ 예쁘게 봐주세요 어흥ㄱ흐긓긓긓그 ㅠㅜㅜ 또르르....ㅁ7ㅁ8
부상에 대해서 걱정해주신 분들이 많으신데 다리가 좀 다친거에요! 전 튼튼합미다!!
그리고 그,그는 메일링 하지않았구요. 메일링은 지금은 안합니다~ ^^
메일링 기다리시지 않으셔도 될거같아요! 정리를 끝내고 10월말쯤에 할 예정입니다~
리댓글이 많이 밀리는데 어..얼른 쓸게요... 사랑합니다 독자여러분들 행쇼~S2
암호닉S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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