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또래들은 새싹같이 파릇파릇 돋아날 그 때, 내 인생은 말 그대로 흑역사였다.
선천적으로 눈이 좋지 않아 도수가 높은 안경을 꼈던 지라 눈은 항상 콩알만 했고
옷은 모양에 상관없이 몸가리개용으로만 입었고 우유는 그렇게 신물 나게 마셨는데도 키도 또래에 비해 작았고……,
늘여 말할 것 없이 결론적으로 쭈구리였다. 옛날엔 그나마 애들이 착해서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딱 빵셔틀상이다.
의외로 만인의 놀림감은 아니었다. 다만 그건 내가 사교성이 좋고 친구가 많은 이유가 아니었다.
날 놀릴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지호, 이름만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화딱지 나는 그 원수 같은 놈은 나같이 답답하게 생긴 놈더러 키티 같이 생겼다며 학교생활 내내 나를 제 주위에 내버려두고 한시도 가만 두질 않았다.
길지도 않은 내 머리에 리본달린 핀을 꽂고선 키티 같다며 귀엽다고 놀리고 안경을 억지로 벗겨서 눈 뜨고도 못 볼 지경으로 만들어 버리고……, 일일이 나열하다간 내가 지치지.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생활 내내 친구 하나 없이 우지호에게만 끌려 다니며 농노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그땐 나만큼 학교 다니기 싫었을 사람도 없을 거다.
초등학교 졸업 후, 우지호와 나는 서로 다른 중학교로 배정받았다.
난 그 때 영국의 오랜 지배에 해방된 인도의 국민처럼 독립만세를 외쳤다. 내 비폭력 운동은 이제야 빛을 발한 거다.
그 후 중학교에서는 평생 인생의 걸림돌 같던 우지호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일이 술술 풀렸다.
친구들도 생기고 말도 잘 하게 되고 이젠 어떻게 해야 남들에게 좀 더 괜찮게 보일 수 있는지 차차 알게 되었다.
안경 대신에 렌즈를 끼고 옷 입는 법도 알게 되어 이젠 제법 봐줄만해졌다.
그 덕에 초등학생 때 쭈구리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난 폭풍 정변을 해내어 예전과는 다른 정말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천국 같던 3년은 정말 쏜살같이 흘렀고 중학교도 졸업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완 달리 시원섭섭한 감정이 고등학교 첫 반 배정 날까지 남았다.
예전에 사귀었던 친구들과는 다른 학교, 다른 반이 되어서 그런지 지금 내가 앉아있는 교실에서는 전에 알던 사람이 없다.
등교시간이 지나가는데 다른 자리는 다 찼으면서 내 옆자리는 아직까지 비어있다.
말 걸 사람도 말 걸어줄 사람도 없어서 괜히 머쓱해 다른 반에 있는 친구한테 문자를 했다.
몇 통 주고 받다가 그 친구 쪽에서 먼저 문자가 끊겼다. 지는 친구가 있어서 걔랑 좀 논다나 뭐라나. 나쁜 자식.
휴대전화를 집어넣는 순간 학교 종이 쳤다. 정말 이대로 짝 없이 있는 거야? 괜스레 부끄러워서 잠이나 잘까 해서 고개를 책상에 묻었다.
나 빼고 전부 재밌나 봐. 선생님이 오시질 않으니 더 신랄하게 저들끼리 도데기 시장마냥 떠든다.
그러다가 갑자기 문 닫히는 소리가 '쾅!'하고 들렸다.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반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해졌지? 아까는 저것보다 더 크게 문이 닫혀도 잘도 떠들더니. 선생님이라도 들어오셨나 싶어서 고개를 들었다.
그랬는데 선생님은 없고 엄청나게 세게 생긴 녀석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남은 자리는 내 옆자리뿐이라 녀석은 내 옆자리에 '나 센 놈이오.' 라고 말하는 듯 불량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녀석이 MP3에 집중을 하는 동안 녀석을 관찰했다. 바짝 세운 머리에 단정치 못한 교복, 삐뚤 한 눈썹, 마른 몸, 그리고 제일 세 보이는 건 쏘아보면 오금 저릴 듯한 눈매였다.
이리 봐도 센 놈, 저리 봐도 센 놈. 예상외의 엄청난 센 놈이 옆에 앉아 적잖게 당황했다.
말을 걸어볼까? 걸지 말까? 세게 생겼다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중학교 때 민식이는 엄청 세게 생겼는데 알고 보니 좋은 녀석이었다.
얘도 그렇겠지? 그럴 거야, 아마. 갈등이 끝나고 용기내어 말을 걸기로 결정내렸다.
"저기……,"
"……."
누가 봐도 어색하고도 숨 막히게 말을 걸었다. 녀석은 MP3에 집중하다가 말을 건 내가 귀찮았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내 눈을 살짝 쳐다봤다.
"……안녕?"
거기에 굴하지 않고 나는 인사했다. 아, 대박. 인사 한 번 하는데 뭐 이렇게 스릴 넘쳐.
근데 녀석은 내 인사는 듣는 둥 마는 둥 나머지 한쪽 눈마저 찡그려서는 마치 무언가를 제대로 보겠다는 듯 내 얼굴에 제 얼굴을 바짝 대고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아…, 살짝 기분 나쁘지만 첫인상은 매우 중요한 거니까 웃으려고 노력했다. 근데 저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야."
"…응?"
관찰이 끝났는지 드디어 녀석이 입을 뗐다. 찡그렸던 눈은 다시 돌아갔지만 그래도 기분 나빴다. 사람을 깔보는 듯이 내리까는 눈. 저 눈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더라. 생각이 날랑 말랑 골똘히 기억을 되짚어보는데
"너 존나 키티 닮았다?"
녀석의 말과 동시에 내 지우고 싶던 흑역사가 생각났다. 그리고 녀석도 생각났다.
내 짝이 우지호라니, 망할 우지호라니!
초등학교 때처럼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우지호는 날 보고는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기분 나쁘게 소리 없이 웃는다.
"주제에 용 됐네? 키티야."
소름끼치도록 웃는 우지호를 보며 난 내 고등학교 생활은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하며 빨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자리를 싹 다 갈아엎어주시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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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거 내일 반배정 나와서 액땜으로 쓴 거에요...^~^
우죠, 정환이 오빠...고자 주제에 감히 써서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