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완전 피곤해...
4시간도 채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경수는 병든 닭마냥 비실비실거리며 전철에 올라탔다. 한 손에는 새벽에 잠깐 훑어봤던 심리학 프린트물이 구깃구깃
쥐어져있었으며 다른 한 손은 피곤에 잔뜩 찌든 뻑뻑하기 그지없는 두 눈을 연신 꾹꾹 누르고 있었다. 평소에 하도 눈이 커서 흰자부자라던가
조금이라도 눈을 크게 뜰라치면 도르륵 눈알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모양새에 됴르르(또는 됴됴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경수였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그래도 앞을 보려는 갸륵한 그의 의지는 게슴츠레 살짝 치켜올려 뜬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란함(의심미)으로 인해 그저 지난 밤
야동으로 밤을 지새운 표정으로 밖에 보이질 않아 Fail. 시험 전에 한 글자라도 더 보겠다고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온통 사람들 틈에 끼어
낑낑거려보지만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씨로다. 자기 전에 봤건만 처음 보는 것 같은 내용에 고개를 위로 꺾어 잔뜩 울상을 짓던 경수의
눈이 바로 앞에 서있던 남자의 시선과 맞닿았다. 그러고보니 이 남자, 전부 다 다음 역에서 열릴 문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경수와 마주 선 요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여태 프린트물을 훑어보느라 고개를 아래로 쳐박고 있던 경수만이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뿐이고. 자신보다 한참은 큰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경수는 민망한 줄도 모르고 몇 초간 남자와 아이컨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화들짝 놀라 됴르륵 눈알을 굴리며 바닥으로 다시 고개를 쳐박았지만. 우습게도 여태까지 남자와 마주보고 서있었건만 꽤나 둔한
그는 민망함도 그만큼 느릿느릿 찾아오는 듯 어색하게 고개를 들어올렸지만 보이는 것은 그의 가슴팍. 괜히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은 경수가 서로 민망할까봐 뭐마려운 강아지새끼마냥 몸을 돌리려 애써봐도 이른 아침,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온천가시는 어르신들, 한 팔에
전부 책 한 권 씩을 껴안고 있는 대학생들로 인해 만원이 된 지하철 안은 조금의 빈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나즈막히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흘깃 눈을 올려 남자의 눈치를 보려다가 또 다시 마주친 눈으로 인해 한 번 더 오도도 떨어주곤 조용히 짜져있기로 결심했다. 내리기 전까지 그저
남자가 입고 있는 가디건의 가슴팍에 새겨진 요상한 문양의 자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경수가 플랫폼에 도착해 열린 문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저 멀리 밀려나갔다. 그제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에 스흡- 하고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에 한껏 몸을 웅크리긴 했지만.
지하철 역을 나서 셔틀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도 연신 걱정투성이었건만 셔틀을 타고 자리에 앉음으로 인해서 그 근심은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어차피 봐도 모를거 일단 잠이나 보충하자는 의미로 눈을 감은 경수는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30분 동안 열심히 꾸벅거리며 졸아댔다.
그리고 셔틀에서 내림과 동시에 그 걱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2배로 늘어 안그래도 작은 경수의 어깨를 짓눌러내렸다. 시험기간이라고 평소보다
일찍 준비하고 나와서 그런가 강의 시작까지는 한시간 가까이 남아있었다. 이 놈의 찬백이들은 뭘 하는지 눈에 띄지도 않는다고 궁시렁 거리던
경수는 결국 혼자서 먼저 강의실에 들어가있기로 결정하고 무기력하게 축 쳐져 원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엔 꺼지라고 해도 잘만 눈에 띄더니 오늘따라 코빼기도 안보여 외롭게..."
중얼중얼 신발 앞 코만 쳐다보며 부지런하게 걷던 경수의 머리가 순간 뭔가 딱딱한 것에 부딪쳤다.
"아..!!"
놀라서 움찔하여 내뱉긴 했지만 벽이나 기둥같은 차가운 무생물에 부딪힌 것은 아닌 모양인지 머리는 통증없이 멀쩡했다.
그제서야 제가 정신을 팔고 냅다 다른 사람한테 부딪쳤음을 자각한 경수가 서둘러 고개를 들어 사과를 하려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
그러나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방금 성난 황소마냥 들이받았던
따뜻한 가슴팍에는 기묘하고도 익숙한 문양의 자수가 새겨진 채 다시 한 번 경수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아까처럼 가슴팍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경수의 정수리 위로 이때까지 조용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퍼졌다.
"이봐"
"아..."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경수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지만 1교시도 아니었고 지금 쯤이면 그래도
사람이 꽤 다녀야할 시간인데 주변에는 사람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햇볕이 들지않는 캄캄한 복도통로에는 오직 두 사람 뿐이었다.
어쩐지 묘하고도 음산한 기분에 경수가 빨리 이 상황을 피하고자 굳어있던 혀를 움직였다.
"저기, 죄송해요. 제가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앞을 못 봐서..."
"너-"
"네...?"
"고민있구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네"
자신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전혀 다른 얘기를 꺼내는 그에, 더군다나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불쑥 반말부터 내뱉는 그 모습에 기분이 상할만도
하건만 어쩐지 개의치않은 경수가 남자의 말에 얼빵하게 입을 벌리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남자는 어느새 경수의 눈높이만큼 허리를 숙여 동그란
눈을 마주했다. 곧장이라도 입술이 맞붙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찬열만큼 키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경수보다는 머리 하나는 더 올라오는
그가 무언가를 유심히 관찰하듯 경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기..."
"시험때문인가?"
"에..?"
"너 말야. 딱 봐도 시험때문에 망했어요- 하고 얼굴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헐. 귀신같은 사람.
정곡을 찌르는 남자의 말에 큰 눈이 더 커질 수 없을만큼 커진 경수가 흠칫 놀라 움찔했다. 그러자 남자가 얼른 경수의 턱 밑으로 자신의 손을
가져다댔다. 갑작스런 행동에 이건 또 뭔가싶어 한 번 더 몸을 떤 경수의 행동에 남자는 부가설명을 하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입술을 뗐다.
"혹시라도 눈알 굴러 떨어질까봐. 내가 받아주려고. 네 눈- 꽤 귀엽거든"
"아..."
아까부터 계속해서 멍청하게 아,아 거리던 경수는 이번에도 역시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듯 또 한 번 아, 하는 단말마의 소리를 흘려보냈다.
"시험, 잘 보고싶지?"
"네? 아 뭐 네.. 그건 저 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죠..."
"내가... 잘보게 해줄 수도 있는데..."
"네? 어떻게요..?"
당연한 남자의 말에 한숨 섞인 음성을 내뱉으며 자조하던 경수가 곧이어 들려오는 조금은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고분고분 남자의 말에 대답하고 있는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채 경수는 좀 더 힘을실어 남자의 동공에 촛점을 맞추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이게 뭐하고 있는 짓인가 싶어 피식- 어이없이 웃은 경수가 장단이라도 맞춰주자싶어 혀를 놀렸다.
"뭐, 영혼이라도 팔까요?"
"아니, 영혼까지는 필요없고... 아 물론 영혼까지 주면 좋긴 하지만"
뭐야. 이거 설마 또라이 아냐?
장난식으로 내뱉은 말을 웃음기 없이 받아치는 남자를 조금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여전히 진지했다.
이쯤되면 경수 또한 그냥 별 미친놈을 다 보았네- 하며 지나칠만 했건만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묘한 설득력과 어쩐지 계속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흡입력을 가지고 있어 경수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별거 안되는 몇가지 가정법을 세운다면 첫번째, 남자는 경수의 처음 생각대로 그냥 또라이다.
두번째는 시험기간에 자신과 같은 멘붕상태로 살짝 정신줄을 놓치고 맛이 갔다, 라는 것. 마지막 한가지 가설은 그냥 이 남자는 매사에 이런 식으로
쓸데없이 진지하다라는 것. 어떤 것이 정답일까, 어느쪽이 좀 더 신빙성이 있지. 따위를 생각하는 와중에도 남자는 진득하게 경수의 눈동자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나, 또라이 아닌데"
"예.. 예? 제가 안그랬어요..."
"아니, 꼭 네가 나를 또라이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길래"
"어, 어... 그런건 아닌데..."
한껏 움츠러들어 짜져버린 경수가 울상을 지었다. 진짜 귀신같은 사람.
"그럼 시험 잘 보게 해줄테니까 내 부탁하나 들어줄래?"
"부탁...이요..?"
"어. 아, 부탁은 아닌가...?"
"무슨 부탁...?"
"음,"
손가락으로 턱을 쓸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지만 그저 그런 척 하는 것 뿐인-하던 그가 찰나 까만 눈동자를 반짝 빛내며 말했다.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걸 나한테 줘"
순간, 남자가 정말로 자신의 시험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경수가
머릿 속으로 핸드폰, 노트북, MP3 등등의 잡다한 것을 떠올렸다.
"아니, 그런거 말고"
"네? 그럼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음에도 마치 경수의 생각을 읽은 듯 부정의 말을 하는 남자를 사색에 잠겨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경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네 몸. 네 몸을 나한테 줘"
"네엑-?!"
크게 놀라 방어를 하듯 가슴 앞에 엑스자로 표시한 채 눈을 도륵도륵 굴리다가 아까 남자가 했던 눈이 귀엽다는 말이 생각나 얼른 두 손을 들어
보호하듯 양쪽 눈을 가리자 앞에서 남자가 바람빠지듯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설마.. 인신매매..? 잔뜩 심각해져있는 경수의 예민한 손을
크고 따뜻한 손으로 잡아 챈 남자가 경수의 눈에서 손을 떼어냈다.
"걱정마. 네 눈 안가져가. 눈만 따로 가져가는건 의미가 없거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름 다정하게 경수를 향해 얘기했건만 경수는 그저 '그런 잔인한 소리를 잘도 웃으면서..!!'하면서 아까의 가설에 하나를
더 덧붙여 남자는 싸이코패스다, 라는 결론을 짓기에 이르렀다. 뭐가 됐든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경수가 작은 어깨에 힘을 줬다.
"그래서 저를 어, 어떻게 하실건데요...?"
"뭘 어떻게 해. 난 그냥 네가 너무 안쓰러워보여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너의 성적에 조그만 보탬이 되고 나도 거기에 걸맞는 아주 작은 보답을
받는거지. 어때? 꽤 해볼만한 거래 아닌가"
거래고 나발이고 그런게 경수의 귀에 들어올리 없었다. 남자와 얼굴을 마주한지 족히 30분은 된 것 같은데, 얼마 안있으면 시험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 전에 한글자라도 더 봐야 공부한 티라도 내고 교수님께 덜 면목없을텐데. 그래야지 마음을 가득담아 답안지에 사죄의 편지도 쓰는거고. 암.
"아, 알겠어요. 일단. 그렇게 해요"
"정말?"
"아 그렇다니까요. 저 곧 시험 시작이예요. 한글자라도 더 봐야한다구요"
"너 그 말, 무르기 없기다?"
"알겠어요, 알았다니까요"
조급한 마음에 되는대로 내뱉자 만족한 듯 남자가 입꼬리를 올려 경수를 향해 웃어보였다. 미소짓는 것과는 무언가 묘하게 다른 것이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경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그의 바람 그대로 경수 곁에서 멀어져갔다.
"맘에 든다. 그럼 이따 봐, 경수야"
멍하니 남자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경수의 머릿 속에 순간 의문이 피어올랐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거지...
"야! 도경수! 너 아까부터 혼자 거기서 뭐하냐?"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시끄러운 백현의 목소리에 서서히 경수의 머릿 속에서 사라져갔다.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백현의 아침부터 짱짱한 목청에
고개를 그 쪽으로 돌린 경수 곁으로 세트처럼 붙어다니는 찬열과 백현이 다가왔다.
"뭐야 너네는. 꺼지라고 할 때는 죽어라 붙어다니더니 꼭 필요할 때엔 없어"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불러재꼈는데 혼자 쌩까고 있던게 누군데"
"내가?"
"그럼 너지 누구야. 혼자 복도에 서서 뭐하나 했네. 들어가기 전에 매점가자.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시간? 몇 분 있으면 시험 시작인데?"
"얘가 아까부터 왜 이래, 정신을 못차리네. 너 잠 덜깼냐? 시계 봐 봐"
손목에 채워진 까만 가죽줄의 시계는 아까 경수가 봤던 시간에서 채 5분도 흘러있지 않았다.
* * *
" 아 드디어 끝났다"
"뭐냐 됴됴르? 아침까지만 해도 죽상인 얼굴을 하고 있더만. 심리학 망한거 아니었어?"
"어 뭐, 솔직히 뒷부분은 아예 보지도 못했고 앞부분만 그냥 몇 번 훑었는데 문제가 생각보다 쉬워서 기억나는건 다 썼지"
"헐... 뭐야 너, 재수없다. 컴교양은?"
"아, 그것도 그냥 집에서 한 번 해보고 아까 책 한 번 대충 훑고. 쉬워서 제일 먼저 끝내고 나오는 길"
"헐헐... 너 뭐 기도라도 했냐? 공부 하나도 안했다고 징징대던게 어젠데?"
"뭐래. 아 몰라 이제 시험얘기 꺼내지도 마. 이제 중간고사 다 끝났다고. 내일은 그냥 중간고사 없으니까 오후수업만 들으면 된다고"
"찬열아- 쟤 뭐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았나봐. 어떻게 저래?"
연신 옆에서 쫑알거리며 시끄럽게 떠드는 비글커플을 감당할 길이 없어진 경수가 나즈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시끄럽고, 난 집에 가서 모자른 잠이나 보충할련다"
"야, 시험도 끝났는데 그냥 집에 가서 퍼질러자겠다고?"
"아 그럼 뭐"
"뒷풀이 가야지 우리 경수~ 한 잔 콜?"
"확 마- 그딴 말 할거면 꺼져"
날이 선 듯한 경수의 눈빛을 모른 척 하며 서로 눈빛을 교환한 찬열과 백현이 양 쪽에서 경수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고 질질 어딘가로 잡아끌고가기
시작했다. 백현이나 찬열에 비해서 확연히 작은 덩치의 소유자인 경수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비글들이라면
더더욱. 엎친데 덮친격 각각 경수의 팔을 붙잡은 반대쪽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든 두 사람이 비글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종대를 비롯하여
끼리끼리 어울려다니는 무리들에게 전화를 때리기에 이르렀다. 하나같이 시험이 끝난건지 아니면 내일있을 시험을 포기한 것인지 경수를 제외한
열명의 웬수들이 전부 콜을 외치며 한차례 거하게 술판을 벌일 기세였다. 경수는 절망했다. 날 밝을 때 집에 들어가기란 영 그른 것이었다.
지랄맞은 개새끼들...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비틀비틀 작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간신히 집 안으로 발을 들인 경수가 무기력하게 발을 끌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 문을 열자마자 불도 켜지 않은 채로 대충 가방을 던져놓곤 침대로 풀썩 쓰러지는데 순간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제 한 평생 무서운 것이 없다고 자부하던 경수가 그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소스라치게 놀라 쫄보라는 별명에 걸맞게 토끼처럼 펄쩍 뛰어 벽에
달라붙었다.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기대앉은 길다란 인영 하나가 경수의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ㅁ..뭐야..."
"이제 왔어?"
"ㄴ..누구세요...? 저는 가난한 학생이라 돈도 없구요, 여자가 아니라서 값나가는 악세사리도 없고, 어, 또..."
잔뜩 쫄아서 횡설수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던 경수의 귀에 픽-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해서 겁이 남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 인기척이 들리는 쪽을 바라보자 커다란 창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달빛에 한 걸음 경수를 향해 다가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당신은..."
"시험 잘 봤지?"
"에..? 네... 그런데 여긴 어떻게..."
"말했잖아. 잘보게 해준다고"
그게 사실이었어?!
단지 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습관처럼 눈을 굴리는 경수를 바라보던 남자가 그대로 경수의
턱을 낚아 채 시선을 맞추었다. 꼴깍- 경수가 침을 삼켰다.
"약속했었지...? 대가를 받으러 왔어 경수야"
"대가..?"
"그래. 아까 거래했던. 네 몸"
"아..."
멍하니 굳어선 미동도 없이 그가 하는 말만 듣고있던 경수에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나만 네 이름을 알고 있으면 재미없지. 기분 좋으니까 알려줄게. 내 이름은 카이야. 새겨들어 경수야"
카이가 매력적으로 웃으며 경수의 어깨를 밀어 침대로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달빛을 받아 파랗게 드러난 얼굴을 경수가 마주보았다.
그의 두 눈이, 전에 없이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 반짝 하고 빛났다.
"Let's show time-"
왜때문에 재미가 없죠...????(눈물)
담편이 나오면 떡설인데... 난 아마 안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