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혀엉..."
"으음..."
"준면이혀엉~ 일어나봐..."
한참 단잠에 빠져있는 준면을 경수가 흔들어깨운다.
개미목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깨우던 것이 준면이 일어날 생각을 안하자 점점 커진다.
자리에서 뒤척이며 미간을 찌푸리던 준면이 소매를 잡고 보채듯 칭얼거리는 경수에 결국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수야 왜..."
"혀엉..."
"응, 왜"
피곤한 눈을 문지르며 실눈을 떠 경수를 바라보니 무언가 할 말은 있는데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는게 보인다.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하는지 미안해하는 눈치가 보이길래 준면이 안심하라는 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경수에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있지... 나..."
"응. 말해봐"
"갑자기 딸기케이크가 먹고싶어..."
"뭐? 딸기케이크?"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말 그대로 자다 일어나서 갑작스레 딸기케이크가 먹고 싶다는 경수의 말을 들은 준면은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저, 경수야. 딸기케이크가 지금 당장 꼭 먹고싶어..?"
"아.. 아냐... 그냥 갑자기 먹고 싶어져서 그랬어. 미안해 형. 더 자"
괜스레 시무룩해진 경수가 앉아있던 몸을 다시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끌어올려 덮은 채 눈을 감는다.
그런 경수에게 순간 미안해진 준면이 누워있는 경수의 어깨로 손을 가져갔다.
"경수야"
"응?"
"기다려. 형이 어떻게든 구해올게"
"아냐! 이 새벽에 어딜가서 딸기케이크를 사. 아깐 너무 먹고싶어서 형 깨우긴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지금은 별로야 헤헤"
준면을 배려한 듯한 경수의 말에 더욱 경수가 안쓰러워진 준면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까치집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곤
가디건을 걸쳐입었다.
"가서 케이크 사올게"
"진짜 괜찮아! 지금 시간에 케이크를 어디서 사려구..."
"온 시내에 있는 베이커리를 다 뒤져서라도 사올게. 경수가 먹고싶다는데..."
"진짜 괜찮은데... 생각해보니까 형이 힘들게 구해왔는데 갑자기 먹기 싫어지면 내가 더 미안하잖아"
"그래도 우리 아가가 먹고싶다는데 당연히 사와야지"
준면이 다시 침대에 앉아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인다.
이불 밖으로 눈만 빼꼼히 내밀고 준면을 바라보던 경수가 눈을 휘어접으며 씨익 웃어보였다.
"그럼 나 순대 사다줄 수 있어? 아... 순대도 파는 곳 없으려나..."
"24시간 하는 포장마차 있을거야. 순대말고 또 뭐 먹고싶은건 없어?"
"음... 지금은 없어"
"그래. 그럼 형이 얼른 가서 사올테니까 또 뭐 먹고싶은거 생각나면 전화하고 좀 자고있어. 알겠지?"
"응. 미안해 형. 괜히 자는데 깨워서 심부름이나 시키구..."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경수랑 아가가 먹고싶다는데. 미안해하지 말고 앞으로 생각나면 말해, 알겠지?
임신 중에 먹고싶은거, 하고싶은거 못하면 나중에 엄청 후회한다더라"
"알겠어 헤헤. 고마워 형"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은 지갑과 차키, 핸드폰을 챙긴 준면이 경수의 이마에 살며시 뽀뽀를 하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 * *
약 한시간 후, 눈썹이 휘날리도록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닌 결과, 가까스로 순대를 구한 준면이 헐레벌떡 집 안으로 들어섰다.
행여 차갑게 식을새라 품 안에 꼬옥 껴안고 겁나게 엑셀을 밟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안방으로 뛰어간 준면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경수를 생각하며 뿌듯하게 웃었다.
"경수야, 순대사왔-"
머리는 따귀소녀처럼 바람에 휘날려 사방으로 뻗쳐 한쪽 볼에 찰싹 붙인 채로 해맑게 웃은 준면이 한 손에 순대가 든 까만 봉다리를
마치 금메달이라도 되는 양 흔들어보이는데 정작 이 모습을 봐줄 주인공인 경수는 꿈나라 여행 중인 듯 했다.
단잠에 빠진 듯 보이는 경수를 깨워서 순대를 먹여야할까, 아니면 이대로 자게 놔둬야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준면을 알아차린 것인지
경수가 슬슬 뒤척이는 낌새를 보이더니 곧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왔어...?"
"응. 나 때문에 깬거야?"
"아니... 원래 요즘 자주 깨... 밤에 막 오줌도 마렵구..."
작게 하품을 하며 꿈뻑꿈뻑 눈을 깜빡이는 경수를 바라보던 준면이 아까부터 같은 자세로 높이 쳐들고 있던 한 손에 들린 순대봉지를
떠올리곤 경수에게 다가갔다.
"지금 먹을래? 먹기 싫으면 나중에 먹고..."
"아냐. 형이 머리털 휘날리게 돌아다니면서 사왔는데 지금 먹어야지"
나무젓가락을 집어들며 상큼한 미소를 지어주는 경수에 준면은 마치 귓가에서 상투스가 울려퍼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순대 하나를 입 안에 넣고 입을 오물거리는 경수를 넋놓고 보던 준면이 순간 생각났다는 듯 방을 박차고 나가더니 곧이어
손에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들고 나타났다. 경수가 목이라도 막힐까봐 친절히 경수의 입가에 물 잔을 대주니 천천히 물을 들이킨다.
그렇게 경수가 순대 1인분어치를 다 먹을동안 옆에서 수발을 든 준면이 마지막 순대 하나를 입에 넣고 입맛을 쩝쩝 다시는 경수에
좀 더 사올걸 그랬나... 하고 생각했다.
"으아 배불러"
"안 모잘라? 조금 더 사올걸 그랬나?"
"아냐. 딱 좋아. 형도 좀 먹지..."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치..."
침대에 어질러져있는 순대의 잔해(?)를 치운 준면이 경수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어 조심스레 경수를 일으켜세웠다.
상체를 지탱하는 것을 도와 경수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선 준면이 칫솔에 치약을 짜 경수의 이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아~"
"아-"
"옳지"
가만히 준면이 하는대로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경수가 예뻐보여 양치질을 시키다말고 준면이 경수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런 준면의 행동에 경수가 피시식 웃고, 준면이 마저 칫솔질을 다 하고 컵에 물을 떠서 물로 헹구었다.
치약이 묻은 입가를 손에 물을 묻혀 슥슥 닦고 수건으로 톡톡 두드려 마무리까지 한 준면이 거울로 보이는 경수의 모습을 바라봤다.
"경수 배 좀 봐"
"내 배가 왜?"
"볼록 나왔다"
"에... 나왔나... 순대 먹어서 그래"
미미하게 볼록 나온 경수의 배로 손을 가져가 슬슬 쓰다듬으니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경수를 데리고 욕실을 나온 준면이 침대에 경수를 조심스레 눕히고 자신도 옆에 비스듬히 누웠다.
토닥토닥 경수의 가슴을 두드리던 준면의 손이 다시 경수의 배로 향한다.
"좀 있으면 배 더 나오겠다. 그치?"
"응. 살찌는거 싫은데..."
"넌 말라서 살 좀 쪄야 돼. 좀만 더 살 붙으면 훨씬 예쁠텐데"
"그러다 돼지되면?"
"그럼 같이 운동하면 되지?"
경수의 상의를 들추고 배를 쓰다듬던 준면이 귀를 경수의 배에 가져다댄다.
"뭐해?"
"그냥... 우리 아가 잘 자라나 궁금해서"
"아빠가 사다준 순대먹고 지금 쯤 잠들었을껄?"
"그런가"
혹시나 발로 차는 소리라도 들릴까싶어 열심히 귀기울이는데 소리는 커녕 간간히 꾸욱 꾸욱하는 경수의 뱃속사정만 전해져올 뿐이다.
"경수야"
"응?"
"혹시 뱃 속이 불편하니...?"
"왜?"
"자꾸 꾹꾹거리는 소리가 나..."
"늦게 뭐 먹어서 그런가보다"
"그래...?"
태연스레 말하는 경수에 잠시잠깐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듯 하던 준면이 순간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띄운다.
"그럼 소화도 시킬 겸 운동이나 할까?"
"이 시간에?"
"응. 아가도 적당히 운동을 해야 무럭무럭 쑥쑥 잘 크지"
"그건 그런데... 잠은 안자?"
"잠은 이따 자도 되잖아"
"흠... 그래서 무슨 운동 할건데?"
경수의 물음에 준면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점점 경수에게로 다가온다.
멀뚱히 눈만 뜨고 있던 경수가 낌새를 알아챈 듯 경악스런 눈빛으로 준면을 쳐다본다.
"설마..."
"응 맞아"
"안돼!!"
"어째서?!"
경수가 양 팔을 뻗어 준면을 막아서자 꽤나 억울한 듯 준면이 목소리를 조금 높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수는 여전히 부동자세.
"의사선생님이 조심하랬단말야. 임신 했을 때에는..."
"걱정 마. 초기에만 그런거지 몇개월 지나면 괜찮대"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
"책에서 봤어"
"... 꼭 그런것만..."
"잘 들어봐 경수야? 부모의 원활한 성생활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준대. 부모가 서로 사랑한다는 증거잖아.
그래서 아이한텐 편안함을 주고 또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댔어"
진지하게 경수의 양 손을 잡고 얘기하는 준면이지만 맞는 말인데 어쩐지 못미덥다.
한 쪽 눈썹을 치켜세운 경수가 의심스레 준면을 주시한다.
"꽤나 일리가 있는 말 같긴 한데..."
"일리가 있는게 아니라 사실이야!!"
"근데 왜 이리 못미덥지..."
"도경수!! 내가 널 위해서 이 새벽에 온 동네를 다 뒤져서 순대를 사다 바쳤는데... 내 말을 못 믿는다 이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구..."
"실망이다 정말"
준면이 경수에게서 손을 떼고 이불을 덮은 채 돌아눕자 경수가 당황한 듯 준면을 흔든다.
"혀엉..."
"얼른 자. 피곤하겠다"
"아 혀엉..."
"왜. 얼른 자래두"
"그게 아니고오... 부끄러워서 그랬어..."
경수의 말에 준면이 슬쩍 몸을 일으켜 경수를 바라보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볼을 붉힌다.
"뭐...가...?"
"그게... 그냥... 아가 가진 이후로 처음이고, 또... 왠지 아가가 알 것 같아서..."
"그래서?"
"아니... 나도 하기 싫은건 아닌데... 아가가 알면 좀 창피하구..."
"뭐가 창피해. 다 우리 아가 좋자고 하는 일인데.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도 보여주고 또 건강한 아가가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건데. 걱정하지마"
"그래도오..."
"씁- 걱정말고 이리와"
어느새 삐짐모드는 해제된 것인지 준면이 양 팔을 벌려 경수가 안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수줍수줍하게 볼을 붉히던 경수가 살금살금 준면에게로 다가가 그 품에 안기자 준면이 팔을 오므려 경수를 감싸안고 토닥였다.
이렇게 또 힘들었던 새벽의 뜀박질을 보상받는건가...
품 안에 안긴 경수가 모르게 준면이 한 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들의 하루는 나름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원래 임신물같은거 안좋아했는데 가끔씩 이런게 땡길 때가 있어요....ㅋㅋㅋㅋㅋ
준면형아는 다정합니다. 제겐 늘 동생들 잘 챙기는 뭔가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 그래서 임신물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저 혼자만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