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
창문이 열려 있었나보다.
춥지만 귀찮아서 그냥 누워있었는데,
새벽부터 기침을 하고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콜록.....으으...박...찬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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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한 여학생이 무릎을 다쳤다며 보건실에 찾아왔다.
조잘조잘 거리는 걸 무시할 수가 없어 간간히 받아주고 있는데 아이가 들어왔다.
오랫만에 일찍 왔는데 하필 이럴때......
아이는 여학생에게 질투를 했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지만
앞으로 더한 상처도 치료할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선을 그었다.
그 때 말하면 더 상처일테니.
알았다 하면서 툴툴거릴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표정을 굳히더니 나가버린다.
나 오늘 출장가서 없는데, 어떻게 저걸 풀지.
나가려던 참에 교장선생님의 부름이 있어서 윗층 교무실로 올라갔다가
모르는 여선생한테 붙잡혀서 고생 중이다.
아이가 웃을 때는 이쁘고 사랑스러운데.
곁에 있으면 베이비로션 향기가 나서 좋은데.
이 여자가 웃는건 가식이고,
몸은 화장품 냄새와 지독한 향수냄새 뿐이다.
빨리 벗어나야겠다 생각을 하던 도중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를 발견했다.
얼마나 빨리 내려갔으면 제 발에 넘어질까.
어째 나에게는 넘어지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은 아이를 보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많이 다친것 같다.
놀란 마음에 다가갔는데, 까칠한 소리만 해댄다.
손대지 말라니.
기분을 풀어주려고 다정하게 부르려 하자 더 낮고 조용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한숨이 나왔다.
이 정도로 삐져있을 줄이야...
일단 사과는 해야할 것 같은데
사실 어디부분에서 미안하다 해야하는지 고민했다.
심술 부리지 말라고.
삐진거 다 아니까 그만 풀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정말 신경써서 말한건데 뭐가 또 배알이 꼴렸는지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말을 비꼰다.
내가 아침에 보건실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지
꼬박꼬박 존댓말에 존칭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보고만 있자
혼자 일어나려고 인상을 찌푸리며 땅을 짚는다.
잠시 일어나서 숨을 고르더니 걷기 시작하는데 저건 아니다 싶어
아이가 내게 무슨 말을 지껄이든 무시하고 부축해줘야겠다 생각하고 다가갔는데
소리를 빽 지르더니 걸어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받아줄 시간이 없다.
빨리 저 오해를 어떻게든 풀어야 하는데
시간이 조급하다보니 짜증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아이가 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차를 운전하고 가는 동안 온통 머릿속은 변백현을 외치고 있었다.
.
아이가 올지 안올지는 모르겠지만 일찍 가서 기다려야겠다 생각하고
평소보다 더 빨리 나왔는데 바람이 춥다.
가만, 보건실 창문을 닫았었나?
아무도 없는 학교에 등교해 보건실 문을 여는 순간 기침소리가 들렸다.
제길, 변백현.
창문은 활짝 열려있고
이불도 발로 차버린건지 제대로 덮지도 않고
새우처럼 쭈그리고 자는 아이를 바라봤다.
감기에 걸렸는지 계속 기침을 해댄다.
아이를 깨워 집으로 데려가야겠다 생각하며 아이에게 손을 대는 순간
그저 그런 감기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구급차를 불러야할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온 구급차는 아이의 상태를 보고
차로 옮기더니 빠르게 병원으로 가기 시작한다.
" 그냥 감기는 아닌 듯 한데...."
" 그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죠. "
딱딱하게 말하는 여간호사가 맘에 들지 않았다.
" 몸살에 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네요.
며칠 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영양실조에 소화장기는 거의 다 상했어요.
위 벽은 위산때문에 다 헐어서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다리는 또 왜 삐었나요? 인대가 잔뜩 부었네요. 이것도 한동안 고생 좀 할거예요. "
" ....네.. "
" 보호자 되십니까? "
아이의 부모님이 없다는게 생각이 나서
일단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온다.
" 학교 선생님입니다. 아이가 부모님이 안계서서 제가 돌보고있어요. '
아이가 깨어있었다면 난 아마 평생 화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응급실에서 링겔을 맞고있는 아이의 모습은 어색했다.
자세히 보니 몸도 좀 마른 것 같고 입술도 갈라진 것 같다.
깨어나면 많이 먹여야겠다.
갑자기 나는 벨소리에 아이가 입고있었던 겉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자
아이의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김종인.
친구인가.
" 여보세요. "
" 썅..!! 그러니까 오해라니까!!! 얘가 말해주는 걸 믿어!! 아 놔!! "
" ....여보세요. "
" 어? 야!! 변백!! 도경수 내가 찾았다. 너 어디에 갔길래 연락이 없어?
잘난 보건 선생 만나서 모텔이라도 갔냐? 나 다 알고 있어 새끼야. "
" 김종인학생. 나 보건선생님인데. "
" ......안녕하세요. "
" 시간되면 나중에 보건실로 찾아와라. "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뒤 아이의 휴대폰을 봤다.
자신의 셀카로 배경화면을 꽉 채워났다.
생각해보니 아직 번호를 모른다.
아이의 휴대폰으로 내게 전화해 연락처를 남긴 뒤
아이의 휴대폰에 내 이름을 저장해놨다.
갤러리나 볼까 더 만지려던 참에 아이가 깨어나려해 얼른 도로 아이의 주머니에 넣었다.
" ......선생님아. "
" 그래. "
잔뜩 쉬어서 갈라진 목소리로 날 부른다.
" 찬열이 선생님. "
" 응. "
" 미워. "
.
아직도 잔뜩이나 삐져있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못걷겠다고 안아달라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업고 들어가자 그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눈꼬리를 축 내리며 웃는다.
그 모습이 이뻐 짧게 뽀뽀하려는데 내 입을 손으로 막아온다.
" 안돼. 나 감기걸렸어. "
" 괜찮아. "
" 싫어, 나는 환자 간호하는거 귀찮아서 못해. "
" 큭.....누가 해달래? "
" 그러니까 한동안 키스하지마. "
" 순수하게 감기때문은 아닌 것 같군. "
" ....이...!!!! "
이제 좀 기운이 났는지 목에 감고있던 팔로 목을 조인다.
켁켁 거리며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자 날 힘차게 째려보기 시작한다.
하나도 안무서워.
귀엽기만하다.
욕구를 참지 못하고 다가가자 자기 입을 손으로 꾹 가린다.
바보같기는.
" 아...! "
목에 얼굴을 묻자 짧게 소리를 내며 몸을 작게 떤다.
손을 옷 속으로 집어넣으니 뜨거운 몸이 요란스럽게 움직인다.
" 차가워..!!! 손... 윽... "
" 쉬잇. "
" 미치겠다.. 박찬열 짜증나. "
" 알아. "
" 씨이.... "
.
이 상태에서 아이를 무리하게 안았다가는
하는 도중에 기절할 지도 모르겠다고 판단해
이미 흥분해버린 내 것을 애써 모른척 하며 아이에게서 떨어졌다.
" 한 숨 자고 일어나. "
" 응..."
" 일어나서 밥 먹자. "
" ...ㅇ.... "
피곤했는지 작게 끄덕이며 금방 잠에 빠져든다.
.
" 아... "
" 왜. "
" 맛있어서. "
" 내가 한거니까. "
" 칫...."
" 이제 삐진건 풀렸나? "
" 안풀렸어!!! "
" 그럼 이제 풀어. 밥도 해줬잖아. "
" 싫어. "
" 너... "
" 선생님은 날 안좋아하는 것 같아. "
아이가 밥을 먹다가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아픈게 틀림없다.
" 선생님한테는 내가 뭐야? "
" 평생 같이 살 연인. "
" 나랑 결혼하려고? "
둔하긴.
" 너만 괜찮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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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못썻어요...(젠장)
사실 저도 쓰고 싶었는데요...ㅠㅠ
어제도 늦게 들어왔어요 (아하하)
아마 이제 더 바빠질 듯 싶어요.
그치만 너무 늦지 않게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쓸께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