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X백현]
겨울병동
w.레녹
백현이 일반 병동으로 돌아왔다. 병원 앞 작은 공원에 매화가 피었다. 휠체어에 백현을 태우고, 찬열은 밖으로 나갔다. 아직 찬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안 추워? 찬열이 물었다.
응. 백현이 작게 대답했다. 사진 찍자. 찬열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 너 눈 감았다. 백현이 찬열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다시 한 번만 더. 찬열의 웃으며 말했다. 사진을 한 번 더 찍고 찬열은 그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저장해놓았다. 이제 핸드폰 열기만 해도, 너랑 내가 보여. 찬열이 핸드폰
홀드를 풀며 말했다. 나 너무 못나게 나온 거 같지. 백현이 제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냐, 니가 젤로 이뻐. 찬열이 말했다. 백현이 그런 찬열을 보며 가만히 웃었다.
*
그 날 밤. 다시 백현은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코마 상태라고 했다. 그 마른 가슴팍이 전기충격을 줄 때마다 크게 떠올랐다 떨어졌다. 찬열은 떨리는 손을 꼭 잡고 눈물을 참았
다. 코마 상태로까지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참을 의사 여럿이 붙어 백현의 심장을 다시 뛰게하려고 애쓴 덕에 백현은 의식이 돌아왔다. 약하게나마 심장이 다시 뛰었다.
이제는 백현 겉으로 차단막이 둘러졌다. 외부 세균으로부터 확실하게 격리되어 있었다. 백현에게, 저는 차단되어야 할 외부 세균이나 다름없었다. 찬열은 그 반투명한 차단막
바깥에서 백현을 지켜봤다. 백현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이렇게 잠만 자다가 조용히 하늘 나라로 갈 것 같을 만큼, 하루종일 잠만 잤다.
찬열이 찾아온 늦은 밤에야 백현은 잠에서 깨어났다. 잘 잤어? 찬열의 물음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지. 찬열의 말에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목소리가 다 쉬어있
었다. 손잡고 싶다. 찬열이 말했다. 백현이 차단막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찬열도 백현의 손 너머 차단막에 손을 올렸다. 백현의 푸석푸석하지만 따스한 손의 촉감 대신 차갑고
미끌미끌한 차단막의 질감만 손바닥에 닿았다. 맘 같아선 차단막을 뚫고 들어가서, 손도 잡고 싶고 품 안에 꼭 끌어 안고 싶은데. 찬열이 차단막에 맞댄 손을 꼭 쥐었다. 안고
싶다. 찬열이 다시 말했다. 찬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콜록. 콜록. 백현의 기침 소리가 심해졌다. 바깥으로 나가는 게 아니었는데. 찬열은 차단막 너머 백현을 보며 후회했다. 다 저 때문인것 같았다. 그깟 꽃 하나 보여주겠다고. 찬
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콜록거리는 백현의 기침소리가 가슴을 찔렀다.
*
찬열아. 찬열아. 소파에서 졸던 찬열의 의사가 흔들어 깨웠다. 다급한 손짓에 찬열이 벌떡 일어났다. 백현이…. 의사가 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찬열은 허겁지겁 차
단막 가까이 다가갔다. 의사는 다른 의사를 부르러 병실을 뛰쳐나갔다. 백현은 인공호흡기를 차고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순하게 처진 두 눈 꼬리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백
현아! 찬열이 차단막에 바짝 달라붙었다. 찬열은 병실 안 화장실로 달려갔다. 손을 박박 씻었다. 손이 부르트도록 씻은 다음, 양치도 두어 번 했다. 그리고 차단막 안으로 들어
갔다. 마른 손을 꼭 쥐었다. 백현이 나머지 한 손을 수납장 위로 더듬었다. A4지 한 장을 찬열에게 건넸다. 호흡기때문에 말을 못해 글로 쓴 모양이었다.
찬열아, 사랑해. 약속 못지켜서 미안해.
그 종이를 받아든 찬열이 무너져 바닥에 앉았다. 어린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었다. 백현이 힘겹게 숨을 쉬는 소리와 찬열의 엉엉 우는 소리가 묘하게 섞였다. 백현이 제 손을 쥔
찬열의 손을 꽉 쥐었다. 찬열이 끅끅 대며 다시 일어섰다. 미안하단 말 하지마. 찬열이 말했다. 백현은 그런 찬열을 보며 웃었다. 눈꼬리가 휘어지며 고인 눈물이 또르르 흘러
내렸다. 백현이 손을 뻗어 제 인공호흡기를 떼어냈다. 백현아! 찬열이 소리를 질렀다. 키스해줘. 백현은 숨이 넘어가면서 겨우 말했다. 백현아. 찬열의 눈물이 툭, 떨어졌다. 얼
른. 백현이 힙겹게 말했다. 삑, 삑, 거리는 백현의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허억, 헉. 백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찬열의 입술이 백현의 마른 입술에 닿았다.
그리고 삐─, 하는 소리. 찬열의 눈물이 툭, 하고 백현의 마른 얼굴에 떨어졌다. 천천히 맞추었던 입술을 떼었다. 백현이가, 스스로 호흡기를 떼어냈다. 찬열은 백현의 손을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울다가 지쳐 숨이 꺽, 꺽, 넘어가는 어린 아이들처럼, 찬열은 울었다. 백현아…! 변백현…! 찬열이 백현의 이름을 불러댔으나 백현은 답이 없었다.
의사가 돌아왔다. 의사 여럿이 놀라 차단막안으로 들어왔다. 인공호흡기 누가 뗀거야! 어? 의사 하나가 찬열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른 의사는 서둘러 백현에게 호흡기를 씌웠
다. 건장한 의사 하나가 찬열을 차단막 밖으로 끌어냈다. 놔요! 찬열이 울면서 소리쳤다. 백현이, 백현이 옆에 있어야되요! 찬열이 버둥거렸으나 다리 하나가 온전치 못한 찬열
을 끌어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의사는 바닥에 찬열을 내팽겨쳤다. 니가 죽인거야! 의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녜요. 찬열이 작게 말했다. 백현이 안 죽었어요…. 의사는 찬
열의 말을 듣지도 않고 차단막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교수님 불러! 의사가 소리쳤다. 인턴이 병실을 뛰쳐나갔다. 찬열은 바닥에 여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반투명한 차단막 안에서, 의사들이 백현을 살리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다.
백현인 왜 호흡기를 뗐을까? 찬열은 눈물을 닦아냈다. 그 정도로, 힘들어서 그런걸까? 백현의 마른 가슴팍이 올라갔다 내려갔다하고 있었다. 쿵, 쿵, 거리는 소리만 병실에 요
란하게 울려퍼졌다.
*
백현아, 오늘 우리 집 앞에 벚꽃이 피었어. 찬열이 말했다. 그래서 몰래 좀 꺾어왔어. 너 주려고. 찬열이 웃으며 벚꽃가지를 내밀었다. 백현은 여전히 웃고있었다. 보고싶다, 백
현아. 찬열은 사진 속 백현에게 말했다. 너 여기 두고 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어…. 찬열이 주저앉았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다리가 시렸다. 이렇게 추운 곳에 널 어떻게
여기에 두니…. 찬열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 날, 백현은 봄이 오는 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그게 어언 일년 전 일이었다. 너 나랑 벚꽃 보기로 했잖아. 찬열이 작게 말했다. 새 해 뜨는 것도, 단풍도 같이 보기로 했
잖아. 찬열은 벚꽃가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거짓말쟁이. 약속도 안지키구. 찬열이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벚꽃 갖구 왔다. 찬열이 그렇게 말하며 벚꽃을 함에
넣어주었다.
거기는 좋니…? 널 그렇게 괴롭히던 병도 없고, 네 얇은 손목을 찌르던 링거 바늘도 없구. 찬열이 납골당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나 없이도 잘 사는거야? 찬열이 고개를 들어 하
늘을 쳐다보았다. 난 이렇게 힘든데. 찬열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백현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니가 여기에 없고 거기에 있어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또다른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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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은 또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한 번 들인 버릇은 어쩔 수가 없었다. 기어이 찬열의 어머니가 오토바이 키를 뺏었다. 엄마! 찬열이 소리를 꽥, 질렀지만 찬열의 어머니는 단호했다. 이번에도 오래 입원해야했다. 너 이러다가 진짜 죽어. 형이 한 마디했다. 찬열은 그저 빙그레, 웃었다.
찬열은 이번에도 일반 병동으로 입원했다. 삼인실이지만 저 혼자 병실을 쓰고 있었다. 부모님과 형이 다 돌아간 저녁, 병실 문이 열렸다. 안녕? 한 소년이 걸어들어왔다. 찬열이 환하게 웃었다. 너 몇살이야? 소년이 물었다. 스물. 찬열이 대답했다. 어, 나도! 소년이 활짝 웃었다. 소년은 쓰고 있던 털모자를 벗었다. 숱이 적은 갈색 머리카락 이 드러났다. 잘 지냈니? 소년이 물었다. 응, 백현아. 찬열이 대답했다.
치료 안 힘들었어? 찬열이 물었다.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네 형 덕분에. 백현이 웃었다. 백현은 찬열의 형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저에게 맞는 골수 이식도 받았다. 1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백현은 찬열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다. 찬열과 벚꽃을 보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야만 했으니까.
곧 새해다, 그치. 백현이 말했다. 찬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제 벚꽃 볼 수 있는거지? 찬열이 물었다. 백현이 빙그레, 웃었다. 응. 백현의 대답에 찬열이 환하 게 웃었다.
사랑해, 찬열아. 백현이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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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녹입니다!
겨울병동이 끝이 났어요ㅠㅠ 여러분들이 백현이를 살리라고 그러셨지만...ㅠㅠㅠ 백현인 결국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대신 번외라고 할 것도 없는 아주 짤막한 또 다른 결말을 가지고 왔어요! 사실 둘 중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처음에 생각하고 글을 썼던 새드엔딩이 제일 나을거 같았어요..그게 스토리 상에도 맞구...
겨울병동은 영화 '파랑주의보'를 봤던 게 갑자기 떠올라서 쓰게된 픽입니다.. 옛날에 봤던 영환데도 아직까지 기억이 나요.. 겨울병동에 나오는 차단막에 관련된 얘기도 파랑주의보에서 송혜교와 차태현이 그 차단막을 두고 키스하는 장면이 나와서 인용하게 됐습니다..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ㅠㅠㅠ
마지막이라서 그런가 하고싶은 말이 엄청 많네요...되게 길다..ㅎㅎ
어찌됐든 다섯편에 걸쳐서 끝이 났네요... 장편 쓰시는 분들은 어떻게 쓰시나 몰라요...
지금 다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며칠 정도 걸릴거같아요! 다음 글에 대해서 조금만 말씀드리자면...백현이랑 찬열이랑 엄청나게 사이도 안좋고 라이벌관계...ㅎㅎ 겨울병동의 아련아련한 찬백이들은 이제 없습니다 앙칼진 백현이와 거친 찬열이를 보실 수 있을거에요..ㅎㅎㅎ
댓글달아주셨던 거품님, 맹구님, 백야님, 카스타드님, 치킨님, 비회원님, 착한사람님, 찬백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ㅠㅠ 그리고 댓글 달아주신 다른 독자분들도 너무너무 감사드리구요ㅠㅠ 여러분들이 있어서 제가 힘이 났던 거 같아요! 사랑합니다!^.^~
다음 픽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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