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
깜짝 놀라 키스를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어깨를 한번 으쓱 하더니 다시 입을 맞춰온다.
" 우리꺼 아냐. 괜찮아. "
-
" 하아.....윽..... "
눈이 답답하다.
머리도 어지럽고 몸에도 힘이 없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 분명 아까...... '
" 집에 데려다 줘! 내 물건 가지고 선생님 집으로 갈께! "
" 이제 내 집에 눌러 앉으려고? "
" 헤헤, 그럴 생각이야. "
" 일찍 와야한다. 기다릴께. "
" 응! "
그에게 부탁해 내 집에 내린 뒤, 현관 문을 열었는데.
그 다음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신을 잃었고.
지금 어딘가에 갇혀있는 상태인 것 같다.
" 누구 없어요!!! 윽...도와주세요!!! "
목이 터져라 외쳐봐도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만 들리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냉기가 흘러 올라오는 바닥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보고싶었다.
박찬열.
" 흐....흐윽.....선생님....박찬열.....찬열아..... "
" 잘도 그 이름을 입에 담는구나. "
그와 비슷하게 낮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의 말이 들린다.
비슷하다. 말투도, 음성도.
" 역시나 사내자식이 붙어있었군. "
박찬열은 아니였다.
무겁게 걸어오는 발소리에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자
내 얼굴을 잡아 온다.
" 그래. 박찬열 옆에 있으니 뭐가 그렇게 좋았지?
돈이 필요했나? 아니면, 그냥 남자가 필요했나? "
" 누구세요... "
" 눈을 가리고 있어 전체적인 얼굴은 모르겠지만
몸을 보아하니.....박찬열이 좋아할만 하군. "
차갑고 습한 손가락으로 내 목을 만지길래 몸을 틀어 떨어지자
별안간 고개가 돌아감과 동시에 볼이 화끈거리고 입술이 아프기 시작했다.
" 잘 듣거라. 두번 얘기하지 않겠다.
박찬열 곁에서 떨어지는게 좋을거야.
왠만하면 너에게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러지 않으면 죽어도 놓아주지를 않을 것 같아서. "
들어본적이 있는 목소리다.
그와 함께 있을 때 들어본......
지독히도 낮았던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
" 박찬열의...... "
" 아버지 되는 사람이란다. "
" 왜...... "
" 네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위험한건 너뿐만이 아니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라서,
아들의 목숨따위 지금 당장이라도 벌레보다 더 쉽게 죽일 수 있어. "
끔찍한 소리가 들린다.
단지 말을 하는 것 뿐인데도 무서워서 몸이 덜덜 떨려왔다.
자유롭지 않은 시야에 인상을 구기자 아까 맞은 뺨을 톡톡 건들이면서 얘기한다.
" 이만큼 했으면 알아들었을거라 믿는다.
내가 건드리기 전에 정리하거라. "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
눈을 떴다.
침대에 멀쩡히 누워 이불까지 덮고있는 상황에 내가 하는 생각이 전부 꿈인 줄 알았지만,
침대 옆에 있던 손거울을 집은 순간 빨갛게 부은 뺨과 터진 입술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으며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끌어 욕실 앞으로 갔다.
세수를 하는 도중에도 끝없이 눈물이 나와서
그렇게 계속 조용히 얼굴만 씻다가 욕실 바닥에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
" 네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위험한건 너뿐만이 아니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라서,
아들의 목숨따위 지금 당장이라도 벌레보다 더 쉽게 죽일 수 있어. "
내가 납치가 되어 협박을 당했다는 것보다,
그 이유가 박찬열이라는게 너무 슬펐다.
내가 다치는 것은 상관이 없었지만,
그에게 피해를 주기는 싫었다.
빨갛게 충혈되어 아프기까지한 눈을 벅벅 비비며 일어섰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나가게 되면 무슨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밤을 샜다.
불이 나도록 전화를 해대는 그를 무시한채.
.
" 선생님ㅇ.... "
" 너!!!!!!!어제 무슨일이 ㅇ.... 입술이 왜그래? "
" 미안해.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누워있는다는게 전화도 못받고 자버렸네.
입술은 오늘 아침에 씻다가 다쳤어. "
날 보건실 침대에 앉히고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에 연고를 발라주는 그를 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 ...너, 무슨일이야. "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자 있는대로 목소리를 낮추며 나에게 물어온다.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나자 모든걸 다 말해버리고 싶은 마음에 입술을 깨물며 침을 삼키자
어깨를 세게 잡아온다.
"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 "
" 선생님이....알 필요는 없어. "
" 변백현. "
날 뚫어버릴 듯한 기세로 노려보며 깊고 작게 내 이름을 부르는 박찬열.
그 목소리는 다른의미로 내 심장을 건드렸다.
" 선생님.한테. 말. 하고 싶지. 않아. "
흔들릴 것 같은 목소리에 단어 하나하나 힘을 주며 말하자 그의 표정이 점점 더 굳기 시작한다.
" 왜 그러는거야, 갑자기. "
" 나...... "
울고싶었다.
품에 안겨 모든걸 다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다.
괜찮다고. 무서워 하지 말라고.
따뜻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찢어지는 심장을 애써 모른척한채 그를 바라봤다.
모든 원망을, 없는 미움을, 거짓이 담긴 거짓을.
있는대로 전부 담아내어 뱉어냈다.
한마디 한마디 말할 때마다,
그와의 첫 만남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 찬열 선생님, 찬열 선생님, 찬열 선생님. .... 찬열아. "
" 뭐라 지껄였냐 학생아. "
" 선생님이 싫어졌어. "
" 변백현. "
" 상담은 상담실 가서 해. "
" 상담 선생님 여자란말이야. 창피해. "
" 선생님 말대로 상담을 받아봐야 했나봐.
이제 알게되서 조금 민망하네. "
" 그만해. "
" 나 앞으로 보건실에 맨날맨날 올꺼예요, 선생님 보러. "
" 선생님을 좋아하진 않은 것 같아.
그냥 단지 남자가 궁금했을뿐이였어. "
" 그만하라고 했어. "
" 나 게이놀이 중인데 선생님도 같이 할래요? "
" 지겨워. 헤어져. "
그렇게 나는 박찬열의 표정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채 보건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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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괜찮아지고 쓰는 글인데
하필.....★☆
분위기가 좀 아니죠? (먼산)
쓰면서 눈물이 나네요... (훌쩍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