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주인들 얘기 해준다고 했지? 원래 택운이가 야자감독만 안했어도 영화를 보려가려고 했었는데, 택운이가 하필 딱 그 날 야자감독이라 어쩔 수 없이 그냥 심야데이트나 즐기기로한 둘이야. 열시반이 다 된 시간에야 만난 둘은 무작정 차를 몰아서는, 그냥 목적지도 없이 드라이브를 하기 시작했어. 어디갈까? 한강? 아니면 명동갈래? 아님 압구정? 이곳저곳 제가 가고싶었던 곳을 늘어놓는 학연이를 바라보다가 난 그냥 너 가자는데 갈래. 하고 대꾸하는 택운이야. 음, 그럼 한강가자! 의외로 사람한테 치이는걸 싫어하는 학연이라, 비교적 조용할 것 같은 한강을 선택해. 한강에 가서 치킨도 시켜먹고, 맥주도 한 잔 할 생각을 하면서 학연이가 쌩쌩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봐.
그때, 익숙한 형체가 눈에 잡혀.
"잠시만. 택운아 저거 한상혁 아니야?"
그때 타이밍 좋게 차가 신호에 걸리고, 차가 멈춰. 택운이가 학연이가 가리키는 곳을 봐. 정말 상혁이야. 그리고 상혁이 옆에, 처음보는 여학생이 보여.
"쟤 지금 이시간에 뭐하는거야?"
학연이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상혁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학연이거든.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려서 상혁이에게 갈 것 같은 학연이의 모습에 택운이가 진정하라는듯이 슬쩍 손을 잡아줘. 차 돌려봐. 한상혁 어디가나보게. 학연이의 말에 택운이가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상혁이가 가는 방향대로 슬슬, 따라가기 시작해.
여자친구를 만나? 그것도 밤에? 마치 여자친구를 만난 제 아들을 보는 느낌이야. 차마 대놓고 소리는 못지르고 헤실헤실 웃으면서 여학생과 밤거리를 쏘다니는 상혁이를 창너머로 가만히 보고만있다가 저 못되쳐먹은 놈. 하숙이고 나발이고 집에 들어오기만 해봐. 하고 학연이가 작게 중얼거려.
그리고나서 그렇게 한참을 따라가다가, 택운이가 주위를 둘러봐. 하숙집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주택가야. 밤에 이런데 저렇게 돌아다니면 위험한데. 문득 요새 주택가를 대상으로 범죄가 일어났던게 생각이 나 다음부터는 여자친구를 만나도 이런데는 오지말라고 해야겠다고 택운이가 생각을 해. 그러다가 여전히 옆에서는 굳은 표정으로 상혁이를 쳐다보는 학연이가 보여. 학연이한테도 사람 적은 곳으로는 가지 말자고 얘기를 해야겠다고 덧붙여서 생각해. 상혁이한테 여자친구가 생긴 것보다, 데이트 장소가 더 중요한 택운이야.
"아, 한상혁 저게 진짜."
골목길로 들어가서 더이상 따라올 수도 없게 만드는 상혁이 일행을 보면서 당장이라도 학연이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자세를 취하는걸 택운이가 간신히 말려. 조금만 기다리다가 나가자. 말리는 손길에 하는 수 없이 다시 문고리를 손에서 놓은 학연이지만 표정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싶어 안달이 난 얼굴이야.
몇분이 지났을까, 다시 상혁이가 골목길을 빠져나와.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혼자야. 결국에는 학연이가 차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나가. 핸드폰 액정을 보면서 실실 웃던 상혁이가 놀라서 고개를 들어. 학연이형? 상혁이가 황급히 핸드폰을 끄고서는 주머니에 넣어.
"한상혁. 너 지금 시간이 몇신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
"네? 아…. 친구 집에 데려다준다고…."
"지금 이시간까지 친구랑 왜있는데?"
"학교 친구들이랑 다같이 졸업파티 했거든요. 이제 대학가면 다들 자주 만나지도 못하잖아요."
뭐? 학연이 말문이 막혀. 그러니까, 지금까지 상혁이랑 여자친구 단 둘이 있었던게 아니라 반친구들이랑 다같이 졸업파티를 한거였어. 뭐야. 설마 형 내가 쟤랑 뭐 단둘이 데이트라도 한 줄 알았던 거에요? 상혁이가 웃음을 터뜨려.
"에이 형! 저 아직 미자거든요? 형같이 응큼한 짓 안해요. 형도 진짜."
그제서야 한시름 덜은 학연이가 아씨, 괜히 따라왔잖아. 하면서 상혁이와 나란히 걷기 시작해. 형은 근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에요? 너 따라왔지. 한강 가는데 너 보이길래. 헐. 형 스토커. 상혁이가 장난스레 가슴위로 X자를 그리면서 학연이를 놀려. 아프지않게 가슴팍을 때린 학연이가 타. 데려다줄게. 하면서 상혁이를 차로 데리고가. 우와, 차타고 왔었구나. 잘됐다 싶어서 상혁이가 풀썩 뒷자석에 올라타.
"근데 한강엔 뭐하러 가게요?"
"그냥. 데이트하려고 그랬는데 이시간엔 마땅히 갈 곳이 없길래. 한강 가서 치킨 먹고 맥주 마시고 하게."
"헐 형 저두요! 나도 갈래요."
"그러든가."
결국 택운이와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는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제 9살 차이나는 동생을 지킨 느낌에 뿌듯한 학연이야.
* * *
지금 안쓰면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부랴부랴 급하게 써서 올리느라 짧은 분량이 더 짧아진게 함정(...)
택엔보다는 어째 상혁이 위주의 내용이 된 것 같아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