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여기 한번만 봐주세요!!"
"저 한번만이요!! 한번만 !!!"
많은 사람들의 외침 속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자리를 떠나갔다.
그는 세 사람이나 품 안에 안고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와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다음차례는 자신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음엔 무엇일까, 라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치지도 않나, 이 사람들은. 한심하다.
하지만 더욱 한심한 건, 이들을 보며 혀를 차면서도 나 역시 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내가 그를 본 것은, 막 이 사회에 발을 내딛은 앳된 병아리나 다름없었을 때였다.
그는 그 때도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었고, 사람들은 그 때도 그에게 선택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그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아 제발 ㅠㅠㅠㅠㅠ 이번만은 되길 바랬는데!!"
"다음에는 제발 ㅠㅠㅠㅠ저 되게 해주세요!!!"
사람들은 그의 등에 대고 간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외침을 뒤로 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의 멋스럽게 올라간 입꼬리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처음보는 얼굴이네. 새로 들어왔나."
"ㄴ...네!! 레벨 9입니다!!"
"훗, 귀엽네. 내 이름은 한기적이라고 해."
"....기적이요?"
어리둥절한 내 반응에 그는 쿡, 하고 웃더니 뒤를 돌아 자신의 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다들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어떤 네모난 갈색 상자에 무언가를 넣고 있었다.
그들을 빤히 바라보자, 한기적씨는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1부터 500까지의 숫자 중에, 아무거나 5가지만 골라봐. 한 시간뒤에 내가 고른 숫자와 네가 고른 숫자 중 하나가 맞으면, 상을 줄게."
"상이요? 그게 뭔데요?"
"쿡, 그건 되면 알겠지. 자, 종이에 숫자 5개를 써 볼래??"
그는 내게 한 장의 하얀 종이조각을 내밀었다. 1부터 500까지라구...?? 나는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숫자를 적었다. 74. 145. 388. 427. 240.
내가 다섯개의 숫자를 쓰자 그는 내 손안에서 종이를 빼서 가져가더니, 그 위에 주황색 펜으로 숫자 하나를 휘갈겨 썼다. 100.
이건 뭐지? 내가 의문에 찬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 보자, 그는 씨익 웃으며 내 볼을 손등으로 살살 어루만졌다.
"보너스. 난 너에게 상을 주고 싶거든."
이 때부터였다, 내가 그에게 빠지게 된 것은.
하지만 그 보너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걸, 나는 그 숫자들을 응모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배신감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그의 상을, 온 몸으로 갈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