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붉은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입은 그가 따스한 봄날,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 길로 들어섰다.
익숙한 거리 풍경과 익숙한 옷차림의 사람들.
이리저리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작은 웃음이 매달린다.
바삐 제 길을 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걸음을 내딛은 그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 처음 보는 조선의 봄날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의 나뭇잎.
길거리에 피어난 이름 조차 알 수 없는 화사한 색의 꽃들.
봄의 향기를 가득 담고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그의 뺨을 간질인다.
뒷짐을 진 여유로운 걸음으로 봄 기운 가득한 길을 걷다가 눈앞을 지나는 여인들의 모습에 시선을 던진 그는
색색이 고운 비단의 물결에 걸음을 멈춰섰다.
'태환'이 입어 아름다웠던 옷들.
살구빛 비단에 하얀 꽃잎이 새겨진 저고리를 입고 자신을 향해 웃던 어여쁜 얼굴이 떠올라 그의 입가에 웃음이 서린다.
[나으리.]
귓가에 들려오는듯한 맑은 목소리.
[나으리~]
웃음기 가득한 그의 부름.
살랑이는 봄바람에 묻어온 그리운 목소리에... 다시 한발을 내딛는 그의 걸음이 조급해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창 마당을 정리하던 하인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담장 밖에 빼꼼히 내밀어진
손 하나를 발견하고 멈춰섰다.
붉은 소매 끝에 드러난 커다란 손.
보기좋게 피어난 푸른 나뭇잎 하나를 떼어내는 누군가의 손길에 그것을 지켜보던 하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어~쭈? 나뭇잎 도둑이여? 뭐여?!"
나으리께서 아끼시는 나뭇가지에 함부로 손을 대는 괘씸한 짓거리에 들고 있던 싸리빗자루를 내팽개친 하인은
거친 손길로 소매단을 걷어 올리고 대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누군지 몰라도 내 손에 죽은겨!"
빠른 손놀림으로 무거운 빗장을 걷어 올리고 대문밖으로 몸을 내민 하인은 인기척이 느껴지는 담장 밑을 향해 냅다 소리를 내질렀다.
"야이~도둑노무 시키야!!!"
한껏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빽-하고 내지른 하인은 푸른 나뭇잎 하나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에 두 눈을 커다랗게 떠올렸다.
"도...둑..?"
붉은 두루마기를 단정히 차려 입고 서있는 훤칠한 키의 남자.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삐죽이는 그리웠던 그의 모습에 한껏 소리를 내지르며 구겨졌던 하인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나...나으리..."
눈물이 차오르는 눈가를 소매끝으로 찍어낸 하인은 여전히 자신을 흘겨보며 서있는 그를 향해 한걸음에 달려갔다.
"아이고오~~~나으리!!!"
나뭇잎을 들고 서있는 팔을 붙들고 반가움을 표하는 하인의 모습에 그제서야 쑨양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잘 지내셨소?"
"아이고~그럼요~그럼요."
"오랜만에 만나는데 첫 인사가 참..."
"소인은 나으리신줄 모르고..."
도둑놈이라 힘껏 외친 자신을 책망하며 허리를 굽실굽실거리는 모양에 쑨양은 그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려주고
대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실로 오랜만에 들어선 마당.
여전히 잘 정리된 마당을 휘- 둘러보는 쑨양의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일단 차라도 한잔 내올깝쇼~?"
어느새 곁에 다가와 묻는 하인의 말에 그를 슬쩍 내려다 본 쑨양은 그저 웃음만 지어보이고 인기척 하나 없는 안채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를 찾는 듯 안채를 기웃거리는 그의 모습에 하인은 비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나으리~도련님을 찾으십니까요?"
흠칫...놀란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으리의 표정에 하인은 씩- 웃어보였다.
"아니, 뭐...장린은 어디 갔소?"
흠흠..헛기침을 하며 괜스레 다른 이를 찾아보지만 이미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다.
"도련님과 함께 저잣거리에 가셨습니다요~"
"장에? 거기는 무엇하러..."
"도련님이 하시는 일 때문에... 일단 앉으십시오~ 차라도 한잔 내오겠습니다요~"
"차는 무슨...나중에 마셔도 되오."
하인의 손에 이끌려 누마루에 앉은 쑨양은 이리저리 눈만 굴리다 하인의 눈치를 슬쩍 보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조선에 당도하였으니, 여기저기 구경이나 좀 가볼까~"
담장 너머로 고개를 돌린 쑨양은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 하인의 시선을 피해 마당을 천천히 가로질러 나갔다.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려던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하인의 외침.
목청껏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 쑨양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물든다.
"도련님은 저잣거리 김.씨.네 비단가게에 계십니다요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떠올린 쑨양은 재빨리 발을 놀려 길을 나섰다.
잠시 멈칫거리다 급한 걸음으로 대문을 나서는 나으리의 뒷모습에 하인은 애써 참으려던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곧 돌아오실텐데!
그새를 못참고 도련님을 찾으러 나서는 나으리의 모습에 하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려~한동안 고운 얼굴을 보지 못하셨으니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여전히 두 분은 봄날이구먼~"
마당에 내팽개쳐진 싸리빗자루를 들어 벽에 세워 두고 활짝 열린 대문을 닫으려던 하인은 저멀리 사라지는 나으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태환을 따라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터 길을 걷던 장린은 이리저리 치이는 보자기가 신경이 쓰였는지
앞서 걷는 그를 붙잡아 세웠다.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태환.
별다른 말없이 태환과 시선을 마주하던 장린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손에 들린 보자기를 받아 들었다.
"어? 괜찮소~ 내가 들 수 있소."
"나으리가 계셨다면 저와 같은 마음이셨을 겁니다."
"아니..그래도..."
자신의 손에도 비단이 한짐이면서 보자기 마저 빼앗아 드는 그의 모습에 태환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음은 장신구 가게입니까?"
붉은 입술만 오물거리며 어쩔줄 몰라하는 태환의 모습에 장린은 그를 지나쳐 걸음을 내딛었다.
"무거울텐데... 뭐라도 하나 주시오~"
앞서 걷는 장린의 뒤를 따라가 짐 하나를 빼앗아 들려는 태환의 손길에 그를 내려다보던 장린이 설핏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신구 가게에서 사는 물건은 도련님께서 다 들으셔야 합니다."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짐이 한가득인 양손을 내보이는 장린.
그 모습에 태환의 얼굴에 그제서야 웃음이 번진다.
"이제 가시겠습니까?"
"예~"
태환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그가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해 길을 내는 장린과 그 뒤를 따라 걷는 태환.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좌판을 구경하는 태환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잰걸음으로 장터에 다다른 쑨양은 하인이 말해준 김씨네 비단가게를 눈으로 찾으며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해 걸음을 내딛었다.
따스한 날씨탓인지 구경 나온 사람들이 많아 한걸음 내딛는것조차 쉽지가 않다.
사려는 자와 팔려는 자의 흥정이 오가는 시끄러운 장터 길을 걸으며 예전에 한번 가봤던 비단가게를 떠올리는 그의 눈빛이 초조해진다.
남들보다 두세뼘은 큰 키 덕분에 고개를 쭉- 내밀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쑨양은 혹시나 태환과 마주치지 않을까
긴장을 놓지 않은채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설화!"
[설화?]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에 쑨양은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삼삼오오 모인 여인네들로 북적이는 가게 하나.
입구에 내걸린 색색이 고운 비단들을 발견한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비단 가게를 발견하고 급한 걸음을 내딛어 그곳으로 향한 쑨양은 곱게 지어진 한복을 붙들고 너 나 없이 감탄을 쏟아내는
여인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 시선을 거두었다.
['설화'라는 말을 들은듯한데...]
기다란 손끝으로 이마를 긁적이다 피식- 웃어버린 쑨양은 다시금 비단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이려다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단어 하나에 다시 걸음을 멈춰섰다.
"이것 보라지~ 여기에 '설화'가 새겨져 있어야 진짜라니까~"
"어머~맞네. 그려~"
한복을 둘러싸고 펼쳐진 여인들의 수다에 쑨양은 몸을 돌려 그 틈에 얼굴을 내밀었다.
저고리 소매를 걷어 올리고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 여인의 손끝.
그 끝에 붉은 실로 곱게 새겨진 이름 하나에 쑨양은 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설...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낯선 남정네의 목소리에 한창 수다를 떨던 여인들이 화들짝 놀라 비켜섰다.
그 반응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자신이 입고 있는 붉은 두루마기 소매를 걷어올린 쑨양은 그 안에 곱게 새겨진
이름에 시선을 멈췄다.
그의 손끝을 따라 여인들의 시선도 멈춘다.
"어머~남정네 옷도 있단 말이오?"
"여인들의 한복만 있는줄 알았는데! 세상에~ 비단 봐. 곱기도 하여라~"
붉은 두루마기를 눈으로 훑으며 다시금 수다를 시작한 여인들의 목소리에 쑨양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수많은 여인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
고개를 들자마자 멈춰진 여인들의 수다에 쑨양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
단정하고 깊은 눈매를 가진 그의 얼굴에 호기심 가득하던 여인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입만 벙긋거리며 자신의 얼굴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내리는 여인들의 끈적한 눈빛에 쑨양은 흠..하고 헛기침을 하며 돌아섰다.
"어머...저 나으리는 누구시라니..."
"이 한양 바닥에 저리 잘나신 분이 계셨던가...?"
"두루마기가 이리도 잘 어울리다니... 어느 댁 자제이신지..."
자신을 향한 여인들의 갑작스러운 관심에 쑨양은 얼굴이 붉어져버렸다.
급히 가게 안으로 시선을 두고 태환이 없는 것을 확인한 쑨양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들을 지나쳐
장터 길로 발을 내딛었다.
계속 되는 여인들의 웅성거림을 애써 외면하며 바삐 걸음을 옮기던 그가 비단가게와 멀어지고 나서야 다시 소매단을 걷어 올렸다.
손끝에 닿는 이름 하나.
붉은 두루마기 소매안에 새겨진 이름을 매만진 그는 낯선 여인의 손끝에 머물던 같은 이름을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붉은 실로 새겨진 이름을 매만지는 그의 짙은 눈썹이 작게 일그러진다.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장터 길을 걷던 태환은 코끝에 닿아오는 고소한 냄새에 서서히 걸음을 멈춰섰다.
기름에 금방 튀겨져 조청에 버무려진 맛깔스런 매작과가 태환의 발길을 붙든다.
동그란 두 눈을 반짝이며 종종 걸음으로 좌판 앞에 멈춰선 그.
달짝지근한 조청에 버무려진 매작과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태환의 모습에 그 뒤를 따르던 장린도 그 옆에 멈춰섰다.
"드시겠습니까?"
함박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태환을 향해 엷은 미소를 지어보인 장린은 두 손에 들린 짐을 바닥에 내려두고
동전 몇 닢을 꺼내들었다.
"이거 하나...맛 보아도 되오?"
"그럼요~ 드셔보십시오~"
나무판 위에 맛좋게 놓인 매작과를 멍하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건넨 물음에 주인이 얼른 손을 뻗어 제일 예쁜 것을 태환에게 내밀었다.
보따리 하나를 내려두고 받아든 윤기가 반지르르한 매작과.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주인을 향해 웃어보인 태환은 손에 들린 매작과를 입에 넣으려다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두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태환의 하얀 손끝에 매달린 매작과를 받아문 붉은 입술.
달짝지근한 조청이 묻은 입술을 엄지 손가락으로 슥- 닦아내고 천천히 떠올리는 깊은 눈동자.
자신을 바라보며 입술 끝을 올려 살며시 웃는 모습에 태환의 까만 두 눈이 커다랗게 떠진다.
".....더 맛있습니다."
".........?"
"그대가 먹여주니, 더 달달합니다."
여전히 자신의 손목을 붙든채 빙그레 웃어보이는 그리웠던 얼굴에...태환의 까만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든다.
***
안녕하세요! 흰둥이입니다~!
약속한 날짜보다...하루 늦게..왔어요...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저를 매우 치십시오ㅠㅠㅠㅠ엉엉
지금에서야 다시 읽어보고 티안나게 몇몇 부분 수정해서 올렸어요ㅎ
이제 마지막화에 가까워졌네요.
드디어 사랑스러운 두 남자가 만났답니다~ㅎ
다음편...달달 꽁냥 오글! 원하십니까?!
준비해서 오겠습니다!
기대에 못미치더라도...미워하지 마세욥ㅠㅠㅠㅠㅠㅠ
30화! '설화' 마지막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시고..댓글 달아주시고...용기주시는 많은 분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밤..편안한 밤 보내세요! ♡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