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월식
w.남군
오늘도 그의 방문 앞에 섰지만, 항상 드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꽤 큰 집은 아니지만 둘이서 살기에는 전혀 좁은 집이 아니었다. 적당했다. 하지만 그가 들어가있는 방은 매우, 좁았다. 창고로 쓰던 방이라 사람이 지낼 공간이 못 되었다. 너는, 우리의 큰 집을 놔두고 항상 그 공간안에서만 있으려 했다. 아무리 나오라고 해도 전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하루종일을 혼자서 보냈다. 왜일까. 나의 말이라면 항상 잘 듣던 그인데. 나와 함께있는 순간이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던 그인데. 어느순간부터 그는 점점 나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성규야."
열까, 말까. 많은 생각들을 번복한 끝에 결국 문고리를 잡았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살 돌리던 문고리가 턱-하고 걸려버렸다. 역시 내가 온 걸 아는 건가.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떼고 그의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다. 오늘도 아무 답이 없겠지. 내가 있는 한 절대 나오지 않았던 그였다.
"나 우현이야."
방문을 사이에 두고 얘기했다. 대답이 없어도 이건 꼭 전해야했다.
"나 잠깐만 나갔다 올 테니까 식탁위에 있는 밥 꼭 먹어."
알아들었겠지.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우현은 한숨을 푹-내쉬며 방문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억지로 거뒀다.
*
한참이 지나자, 조용해진 집안 분위기를 느낀 성규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 우현이가 밥 먹으라고 했는데. 중얼거린 성규가 부러져버린 그의 발목때문에 발을 질질 끌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식탁 위에는 따뜻하게 차려진 밥과 쪽지 한장이 있었다.
'밥 꼭 다 먹고, 집 잘 지키고 있어, 금방 올테니까.'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의 쪽지를 슬며시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던 것인지 허겁지겁 다 먹어치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TV나 볼까. 하며 거실로 나가 소파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으으- 하는 신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발목. 발목을 다쳤네."
약이나 바를까. 라고 생각하며 소파에서 일어나 힘든 몸을 이끌고 약상자를 찾아 서랍을 열었다.
"턱-"
갑자기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심하게 떨었는지 손에 들고있던 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느새 손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이 떨렸다. 형용할수 없는 느낌에 몸서리치던 그의 몸이 뻣뻣이 굳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닌 무생물처럼 움직였다. 눈이 뒤집힌 채 안색이 새파래진 그는 평소의 김성규가 아니었다. 바닥을 헤집으며 소리없이 기어다니던 그의 손에 돌멩이 하나가 들어왔다.
이미 정신줄을 놓은 그였기에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었다. 돌멩이를 계속 바닥에 내리찍었다. 퍽-퍽-하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어느새 그는 그의 방 안에 들어가 자동적으로 문을 잠갔다. 바닥을 내리치던 돌멩이의 위치는 서서히 그의 발목으로 옮겨졌고, 신음소리는 하나도 없었고,돌멩이에 집중한 나머지 그의 발목에 있던 살점이 뜯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쿵-"
30분정도 지났을까. 반복적인 행동을 계속 하던 그의 몸이 축-늘어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
눈을 떠 보니 내 방 안이었다. 분명 난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 왜이렇게 발목이 쓰라리지. 거울좀 보고 와야겠다.
"!!!!"
믿을 수 없었다. 내 발목은 칼에 난도질당한듯 살점이 마구 찢겨져 나가있었고 피가 흐르다 멈췄는지 딱딱해져 굳어버린지 오래였다. 손으로 발목을 살살 쓸어내렸다. 으으- 아프다.
놀랐던 건 발목뿐만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심하게 부딛힌 듯 몸 여기저기에 나 있는 멍들. 풀어헤쳐진 와이셔츠.
결론은 하나뿐. 내 간질병이 다시 도졌다는 거. 제발, 이 병이 멈췄으면 좋겠다. 회복도 불가능하고, 죽을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밀려오는 수치심에 눈을 감고 머리를 쓸어내렸다. 내가 이런 짓을 했다니. 간질병이 도질때마다 자해를 하는 나였지만 전혀 내 의지가 아니였다. 그 지옥같은 순간이 끝나고 나면 남은건, 내 자신에 대한 비난과 수치심, 그것 뿐이었다.
간질병이 기분나쁘다고 뇌전증이라고 고쳤지만 간질은 간질. 어떻게 부르든 간질이라는 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이 끝날때까지 자책하고 후회하는 것이 내 숙명이다.
우현이에게는 아직 알리지도 않았다. 그도, 모르는 눈치였다. 제발, 모르기를 바란다. 그래도 다행이다.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알리고싶지 않았던 내 마음이라도 이성을 지키고 있었으니.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만약이지만 우현이가 볼수도 있었으니까.
그가 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떨까. 더럽다고 피할까. 아니다. 그는 나를 절대 배반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왜 알리지 않냐고?
그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았다. 나때문에, 슬퍼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도 모두 싫었다. 내가 조금만 더 힘들면, 그가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것 같았다.
내, 이런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순수한 척이랄까.
거실로 나가 약상자를 집어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약상자를 꺼내 연고부터 바를까-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샤워를 해서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싶었달까- 그래도 없어지진 않지만. 따끔거리는 발목에도 불구하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옷도 입지 않은 채 연고를 집어들고 몸 이곳저곳에 바르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서 이게 다 가려질까.
"발목은 어쩌지.....에휴."
어쩔수 없이 발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그 위에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좀 발이 퉁퉁해보이긴 하지만 많이 티는 안난다. 멍들은 긴 옷으로 다 해결이 되었다. 다행이다.
약상자를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누우니 천장이 보였고, 하얀 천장을 계속 바라보니 이것저것 별다른 생각들을 했다. 멍-때리다가, 실실 웃다가.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
집에 돌아와보니 또 정적만 맴돌았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느낄수없을정도의 한기만 느껴졌다. 오늘만큼은 나와있을 줄 알았는데.
'밥은 챙겨 먹었나?'
부엌으로 들어가 자신이 차려놓은 밥을 확인해본다. 깔끔하게 치워진 채 설거지까지 되어있었고, 쪽지는 어디로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다행이다. 밥이라도 먹어서.'
혼자 내버려두고 오면 전혀 밥을 먹지 않았었는데, 챙겨주고 나오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까지 한 모습에 기특하다고 느낀 우현이 성규의 방으로 다가갔다.
"성규야."
"......"
대답이 없었다. 문이 열려있나, 하고 확인해보려 문고리를 돌렸다. 오늘도 굳게 잠겨있겠지,라고 체념한 표정이 역력한 그의 얼굴이 의외라는듯 이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달칵-"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1달만인가, 오랜만에 들어와보는 그의 방에 낯설기만 했다. 그는 자고있었다. 곤히. 깨우기가 미안할 정도로 잘 자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그의 얼굴인지. 한참을 믿기지 않은 듯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그의 옆에 앉아 가지런하지못한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아기처럼 볼이 발그레해진 그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이불을 둘둘 두르고 팔에는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자는 그의 모습은 천사라고해도 믿을수 있었다. 그가 깨어있는 모습을 보고싶었지만, 이정도로 만족해야겠다. 그의 볼에 쪽-하고 입을 맞춘 그가 이불을 목끝까지 올려주고는 침대맡에 머리를 묻고 옆에서 잠을 청했다.
*
잠에서 깨어나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얼마나 잔거지....? 핸드폰을 꺼내 살펴보니 벌써 8시.
'6시부터 잤으니까.....14시간이나 지났네.'
전날의 그것때문에 피곤해서 그렇겠지,라고 단정지은 성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을 바라봤다. 우현이 있었다. 침대맡에 머리를 묻고 쭈그려 자고 있었다. 어...어떻게 들어왔지? 주변을 둘러보니 살짝 열려있는 문과 함께, 어제의 일이 기억이 났다.
'아....내가 문을 잠구는 걸 깜빡했구나.'
불편한 자세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옆이라 그런지 행복한 미소를 짓고있는 우현을 나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나저나 내 다친 모습은 들키지 않았으려나. 보지 말아야했다. 아니, 절대로 안됬다. 죽는날까지 숨기고 싶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내가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
"우현아, 미안해."
이럴 수 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줘.
*
홀로 집에 남아 TV를 보고 있었다. TV에는 우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그런 지구의 주위를 맴도는 달. 끝없이 돌고 도는 그것들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래, 모든 것은 다 태양을 중심으로 돌았다. 태양이라... 그는 태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는,나는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 나는 달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다른곳에 머물며 저멀리 떨어져있는, 넘볼수 없는 존재인 태양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달.
지구, 지구가 되고 싶다. 그의 주위를 맴돌고 싶다. 지구조차도 못되어 지구의 곁만 맴돌고 있는 나는, 그의 곁에 억지로라도 남고 싶었다. 지구조차도 되지 못하게 끊임없이 나를 밀어내는 그는, '넌 안돼.'라고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항상. 한번이라도 내가 가까이 갈 수 있게 허락해줘. 제발.
김성규, 김성규. 그가 보고 싶어졌다. 너는, 너는 왜 나를 허락해주지 않는 것일까.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잖아. 갑자기 왜 이러는건데. 아, 그가 보고 싶다면서 자꾸 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다. 미안하다. 이렇게라도 너에게 질책하지 않으면 나도 더이상 버티긴 힘들 것 같아서 그래.
꿈이었지만, 현실이 아니었지만 그의 눈에서 눈물이 툭-하고 흘러내렸다.
*
끼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성규가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와중에도 우현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애처로워보인다, 라고 생각한 우현이었다. 자신을 아직 보지 못한듯 살살 눈치를 보며 거실로 들어오던 성규가 이내 턱-멈춰선다. 성규야,라고 부르자마자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려는 그의 팔목을 턱-하고 잡았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당황한 성규가 옆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성규를 보며 우현은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살짝 웃었다.
"성규야, 나좀 봐봐."
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고개를 돌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잡힌 팔목이 아려올 법도 한데 참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너, 요즘 무슨 일 있지? 맞잖아. 내가 말해도 대답도 안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맨날 피하려고만 하고."
"아무 대답 안해도 돼. 이렇게 얼굴 한번 본걸로도 만족하니까. 혹시나 해서 말하는건데-"
우현의 손을 떼어내려 힘을 주고 있는 그를 끌어당겨 꽉-안았다. 안겼지만 고개를 들지 않으려 애를 쓰는 그의 얼굴 가까이에 대고 나지막히 말했다. 나 떠날 생각하지마. 그말을 듣자마자 빨개지는 귀가 눈에 띄었다. 서서히 그를 안고있던 팔을 떼고, 천천히 멀어졌다. 그 자세 그대로 멈춰있던 성규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힌 채로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우현이 웃으며 뒤를 돌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 발을 내딛었다.
"우현아."
작은 목소리였지만 설마.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린 우현이 부들거리며 떠는 그의 몸을 보고 다가가려 흠칫,했다. 그가 울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불러놓고, 뭐야. 진짜.
"김성규. 왜울어."
그가 가만히 서있는 우현의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입술을 꽉-깨물고 그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우현아, 우현아.자꾸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성규의 입술에 손을 갖다대며 쉿-이라고 말한 우현이 나중에 편하면 말해, 알겠지? 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입을 오물거리다 이내 고개를 다시 그의 어깨에 파묻고, 그의 어깨가 눈물로 젖어들어갔다. 한 손을 들어 그의 마른 등을 살살 쓸어내렸다. 괜찮아. 괜찮아. 그의 말에 더 서럽게 울어대는 성규였다.
"우현아, 나는 월식을 원해."
그를 달래기 위해 응, 응 하고 잘 듣지도 않은 채 대답해버린 우현이 그를 더 꽉- 안았다. 그래, 그래. 월식이 오겠지, 언젠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달이고, 너는 태양이야."
그래, 너는 달, 나는 태양.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지만 대답해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 그가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의 품에 안겨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버린 성규를 안고 침대에 눕히고 그 옆에 같이 누웠다.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을 꽉 잡고 천장을 바라보는 우현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로 번졌다. 이렇게 같이 누워있는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옆의 성규를 힐끔힐끔 보며 믿기지 않다는듯 계속 그의 얼굴을 만져보고 있었다. 오늘은 잠이 잘 올것 같다. 눈을 감고 살짝- 웃음지은 우현이 오랜만의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어.....이게 뭐야."
잠에서 깨어나 보니 곁에 있어야 할 성규가 없었다. 뭐야, 또 사라져버린 거야? 어제는,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았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았다. 성규가 방에서 나오지 않던 그때 그 시절처럼, 싸늘한 한기만 맴돌았다. 그의 방으로 다급히 달려가 문고리를 잡자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방 안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고 그의 흔적이라곤 책상 위에 놓인 쪽지 하나뿐이었다. 헤어지자. 이 한마디만 적혀있는 쪽지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보다, 그가 너무 미웠다. 하룻밤 사이에 달라져 버린 그가, 너무 미웠다. 이젠 정말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김성규, 나쁜자식."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에 입술을 꽉-깨물고 가차없이 쪽지를 찢어버렸다. 눈에 뵈는게 없었다. 그가 사라져버린 마당에. 혼자 남겨진 그의 집 안에서는, 유리 깨지는 소리로 가득했다. 보이는 대로 막 집어던지는 통에, 손에서 피가 나고, 유리조각이 밟혀 발에서도 피가 나고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보다 아프지 않았다.
*
그의 물건들을 다 치워버리고 나서 텅 비어버린 방 안엔, 두 남녀가 몸을 섞는 소리만 남았다.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앙앙거리고 있었지만, 남자는 무표정하게 상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와 헤어진 후, 성에 문란해져버린 그에 의해 성규의 방이었던 곳은 우현이 다른 여자와 갖는 성관계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앗, 우, 우현씨-,흐읏!"
"닥치고 즐기기나 해."
거칠게 밀어붙이던 자신을 받아내기 어려웠는지 자꾸 시끄럽게 구는 여자가 귀찮았던듯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시끄러워. 여자는 귀찮았다. 몸이 좋아 흥분이 잘 되긴 하지만 너무 시끄러운게 흠이었다. 뭐, 없는 것보단 낫지만.하고 생각한 우현이 다시 거칠게 박아넣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정해버린 우현이 그녀를 버려두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옷을 다 챙겨입고 지쳐 널부러져있는 여자에게 한마디 했다. 알아서 가. 그대로 몸을 돌려 빠져나온 우현의 얼굴에 조소가 띄었다. 김성규다. 눈을 크게 뜬 채로 방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시선을 다잡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자신이 옆에 온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듯 정신이 없던 성규를 그대로 잡아채 자신의 방으로 내몰았다.
"김성규."
강하게 이끌리는 힘에 놀라 우현을 바라보았다. 벽에 쾅-하고 부딛힌 등이 아려왔지만 그를 계속 노려보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여긴 왜 온건데? 왜, 아직도 미련이 남으셨나? 날 버리고 가신 분이? 아, 나 또 이용해먹으시게?"
아니야, 그거 아니야. 깊이 상처받은 눈을 하고 울먹이는 그가 역겨웠다. 이제는 아무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귀찮았다. 아까의 여자보다도 더. 울음이 터져 눈물이 막 쏟아지는 그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췄다.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입을 떼어버린 그가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년아, 키스에 목말랐어? 또 찾아와서 나 흔들려고? 착각하지마. 이제 안흔들려. 니가 원하는 키스 해 줬으니까 꺼져.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그를 그대로 질질 끌고 집 밖으로 내팽겨쳤다. 문이 쾅- 닫히고, 밖에서는 한동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벽에 부딛혀 쓰라린 등을 움켜잡고, 거리를 헤메었다.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인지라, 우현 외에는 아는 사람도 없는 지라 갈 곳이 없었다. 너무 미안하지만, 우현에게 가면 다시 받아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던 내가 병신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내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한순간에 갈곳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다 만들어낸 일이니까. 내가 다 책임져야지. 비틀거리는 걸음을 몇 걸음 옮기던 그가, 갑자기 멈춰섰다. 또, 찾아와버렸다.
"악! 으으- 우현아, 우현아!"
가슴을 붙잡고 온몸을 부르르 떨던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연신 우현아,를 외치며 울고있는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이제는 침이 줄줄 흘러 내리며 입에는 거품을 문 채로 우현의 집에서 몇걸음이 떨어진 곳에서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몸이 쓸리고, 부딛히고, 돌멩이에 머리를 박아 피가 흘렀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현아!우현아!우현아!"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내 자신이 아니었다. 우현이 부르면 안되는데...... 내면과 싸워도 내 자신을 이길 수가 없었다. 우현이가 보면 안된다. 안된다. 하지만 몸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처럼, 돌멩이를 집어들고 이번에는 제 팔을 내려찍고 있었다. 살이 찢겨지고, 살점이 뜯겨나가도 미친 사람처럼 한곳만 계속 찍어내렸다.
*
"악! 으으-으악!"
시끄러워. 왜 지랄이야, 이 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제 옆에서 잠들어버린 여자를 내려다 보던 우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뛰어갔다. 씨발, 진짜 시끄럽네. 한마디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우현이 현관 문을 벌컥-열었다.
눈앞에서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악! 살려줘!우현아!"
김성규였다. 머리는 이미 찢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손에는 돌멩이가 쥐어진 채 자신의 팔을 내려찍고 있었다.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고 얼굴은 곧 죽을 사람처럼 새파랗게 변해있었다. 김성규가 아니다. 저건 괴물이다.
"아니야......아니야....저건 김성규가 아니야."
점점 뒷걸음 치던 발이 꼬여 넘어졌다. 제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왜 울어. 저건 김성규가 아닌데. 아니다. 아니야...... 아무리 부정해도 자신의 눈물을 막을 수 가 없었다. 우현아!우현아! 하는 소리가 계속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악! 하고 소리지른 우현이 미친듯이 발악했다. 성규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모습은 정말 괴물같았다. 돌멩이를 잡은 팔이 잡히자 다른 팔로 그를 밀어내버린 성규가 다시 자신의 팔을 내려찍기 시작했다.한참을 반복하던 그의 행동이 이내 멈추고, 그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동맥이 다 끊겨 피가 철철 넘처흐르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주머니 속에 있던 쪽지를 넘겨주었다. 우현이 그를 바라보자, 이거......주려고 했어. 하며 웃어보인 성규가 눈을 감았다. 안돼, 너 혹시 죽은 건 아니지? 우현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끝없이 나오는 흐느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니가 원하던 월식이라는 게, 이거였냐고.
"나는, 월식을 원해."
이 한마디만 남긴 채로, 그는 사라져버렸다.
* 뇌전증(간질병)
의식장애, 자동증(의도가 확실하지 않은 반복적 행동), 전신 강직, 청색증, 침과 거품, 발작 후 깊은 수면 등
안녕안녕 |
장편계획이었던 월식을 이렇게 단편으로 쓰게 되었네요...아무리 생각해봐도 단편이어야 할 것 같아서.... 번외는 올라올 수도 있고....모르겠네요 그럼 전 또다른 글을 쓰러 갈게요.. 이거 읽어보질 못하겠어요..너무 오글거려 메일링 할까요? 원하지않으시면 소금이 되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