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꼿날 자료이지만;;;; 그래도 김성규가 이뻐서 ;;;;;핫핫;;;;;;
매일봐도 매일이쁜 김성규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이뻐서 나는 쥬겄다고한다.....ㅇ<-<
(는 웬 갑자기 뻘소리;;;;;;;;)
하얀 거짓말, 그 두 번째 거짓말 |
하얀 거짓말 W. Irara
* * *
겨울에 내리는 비는 한없이 차갑고 춥기만 한 것이다. 전혀 시원하지도, 마음을 비워내 주지도 못한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위로 길게 누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살던 성규가 명수의 집으로 짐을 옮겨버려 말할 것도 없이 휑한 집이었다. 더 이상 성규의 물건이 남아있지 않은 집을 눈으로 둘러보며 우현은 머리 이마위로 손을 얹었다. 아무래도 붙잡을걸 그랬지.
그가 좋아 그의 집으로 가야겠다고 단호히 말하던 성규의 어깨를 쥐고 정말 이것뿐이냐고, 너에게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거였냐고 소리를 쳐 봤지만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열에 받쳐 홧김에 좋아한다는 고백을 해버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며칠 전 달랑 문자 한통으로 전해져 온 ‘밀라노에 쇼 일정이 있어 떠난다’는 통보와, 역시나 김명수 그와 함께 서울을 떠나버린 너를 떠올렸다. 이즈음 하면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연락이 왔어야 했는데 아직 감감 무소식이었다. 시계를 올려다보았더니 새벽 네 시가 다 된 시간. 아직 저녁도 먹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밥을 먹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씻고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 뒤로 또 네가 두루 뭉실 떠올랐다. 밥도 잘 안 챙겨 먹고 그 마른 몸으로 힘든 쇼를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심심한 걱정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김명수가 있는데 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느리게 소파에 눕혔던 몸을 일으키고 옷가지들을 벗어나갔다. 여기저기 널려진 우현의 옷들이 그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그런 사람.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침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 우현은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창문을 두드렸다. 웅웅거리는 바람소리가 너무 끔찍해서 우현은 두 귀를 틀어막았다. 어떤 방법으로도 잠을 이루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눈을 감고 하염없이 밤이 흘러가기를 바랄 뿐.
“……….”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너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라고 답했다. 예상하고 있던 답이긴 했지만 결코 원하던 답은 아니었다. 너와 내 사이가 친구라고 정의를 내려버리는 너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문을 열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잘 가란 인사도, 또 보잔 눈웃음도 해주지 못했다. 너를 향한 내 감정을 애써 모르는 척, 전으로 되돌아가려는 너를 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의 아등바등 거리는 두발을 붙잡고 현실에 네가 안주하기를. 제발 나의 사랑을 인정하기를 바라야 하는 걸까. 아니면 너와 함께 우리 좋았던 그때로. 얼굴을 마주하고 잠에 들 수 있던 ‘친구’라는 이름의 그 시절로 돌아가야 옳은 걸까.
눈을 감고 허탈한 숨을 몰아 내쉬는 우현의 등 뒤로 어둠이 졌다. 열린 문틈으로 희고 가느다란 손이 들어와 가만히 문을 열어본다. 우현아, 자? 조심스럽게 묻는 물음에 찬 기운이 잔득 묻어났다. 어둠 속에서 뭔가를 내려놓는 듯, 둔탁한 소리 뒤로 겉옷을 벗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현은 들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곧이어 침대위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 그리고 제 코앞으로 다른 누군가의 숨이 불어지는 느낌. 그 모든 것을 다 느낀 후에야 우현은 가만히 눈을 떴다.
“…김성규.” “새벽 비행기로 왔어.” “쇼는?” “진즉에 다 끝났는데, 명수 형 화보 촬영 있어서 좀 늦었지.” “…그 사람은?” “밀라노에.”
눈을 떠 어둠이 눈에 익자 점점 너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눈동자만 보이던 것이 점점 찢어진 눈도 보이고, 오똑한 콧날도 추위에 더 붉어진 입술도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술 한 잔을 걸친 건지, 너의 코끝에서 미약하게 알코올 냄새가 풍겨졌다. 술 마셨어? 내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하는 대답이, ‘조금’이란다.
성규는 손을 들어 우현의 젖은 앞머리를 헝클었다. 머리라도 말리고 자지, 감기 들게. 걱정에 찬 소리였지만 우현의 귀에는 마냥 곱게 들리지 만은 않았다. 차가운 손을 끌어 내렸다. 집으로 가. 무겁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칭얼거리는 투정으로 대꾸한 성규는 우현의 이불 안으로 더 파고들었다. 집은 너무 추워. 추워서 가기 싫어. 그 소리에 마음이 미어지는 건 아마 우현 저 혼자 알아야 할 일. 가슴으로 파고드는 성규를 끌어안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모른 체 해버리는 이 고양이를 어쩌나 싶어서.
“야, 김성규.” “응?” “잊어버린 거 아니지?” “뭘?” “내가 너 좋아한다고 했던 거.” “……….” “나 장난 아닌데, 너 이렇게 우리 집 무턱대고 찾아오는 것도 이제는 위험해.” “…우현아.” “나는 진심이다 이 말이야.”
제법 분위기가 묘해졌음을 느낀 너는 몸을 일으켰다. 친구이면 안 돼? 간절하게 묻는 그 목소리가 너무 힘이 겨워서 하마터면 ‘돼’라고 답할 뻔 했다. 나, 너 보고 싶어서 새벽 비행기로 온 거야. 형은 한국 오려면 아직 멀었어.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해. 혼자서 호텔에 있기가 너무 외로워서, 너랑 놀려고 온 건데. 나 안반가워? 왜 그렇게 냉정하게 굴어? 꼭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야해? 서운하다는 식의 말투가 너무 김성규다워서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토라진 듯, 툭 튀어 나온 입술을 손가락으로 툭 쳤더니 하지 말라고 고개를 저 쪽으로 튼다.
우현은 성규를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였다. 마음 놓고 성규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일. 이렇게 가까이서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 성규를 향한 마음이 이미 그 정도로 자라 버렸으니까.
우현은 눈앞의 성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무 약해 언제나 보듬어주어야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던 친구였다. 늘 곁에 두고 다치지 않도록 돌보아주어야겠다는 보호본능을 일으킨 사람. 그런 ‘친구’가 ‘사랑’으로 번질 줄은 우현 저도 몰랐던 일이었다. 친구를 향해 처음으로 뛰었던 심장과 불규칙적인 호흡. 이상한 메스꺼움이 설마 사랑일까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우현이었다. 촉촉하게 빗물을 머금은 성규의 머리를 살살 털어낸 우현은 침대에서 내려와 성규에게 갈아입을 옷을 건넸다. 자고 갈 거지? 혹시나 했던 물음에 ‘당연하지’하고 돌아온 대답이 왠지 사랑스러워서. 미워할 수 없는 고양이 같아서,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그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건지. 시샘이 나서 핸드폰을 낚아채었다. 놀라서 당황한 얼굴도 잠시 잠깐,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달라며 내민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우리 집에 왔으면 핸드폰은 내려 둬. 내 요구에 너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 안하고 왔단 말이야. 지금쯤이면 촬영 끝났을 텐데, 호텔에 나 없는 거 알면 걱정할거야. 꽤 철든 소리를 하는 너의 말에 시비를 걸고 싶은 내가 못난 걸까? 그는 네가 없어도 외롭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을 불러 가볍게 밤을 즐기겠지. 원래 그런 그였고 앞으로도 그럴 그라는 걸 왜 모르는 지. 그냥 말 없이 무작정 내 욕심으로 핸드폰 전원을 오프 시켰다.
“뭐하는 거야?” “김성규, 예의라는 걸 좀 차려라.” “무슨 예의!” “적어도 내 앞에서는, 아니 우리 집에서는 그러지 말아. 나 아프도록 참고 있잖아. 이런 내가 기특하지도 않아?”
내 말에 눈을 흘기는 너. 그러나 뻗었던 손을 도로 거두는 너. 어느 게 진짜 너의 얼굴일까. 너는 정말 나를 친구, 정말 그 정도로 생각하는 건지. 그 이상은 정말 아닌 건지. 자꾸만 미련이 생기는 까닭은 계속해서 보여주는 너의 희망 때문에. 희망고문이 따로 없었다. 내게서 멀리멀리 도망을 치다가도 잠깐 멈춰 서서 뒤를 돌아 나를 보는 너 때문에. 핸드폰을 뺏긴 너는 이불 속으로 머리통을 쏙 집어넣었다. 그런 너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전보다 나은 기분. 보다 수월하게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내일 아침부터 스케줄 있어. 일찍 일어나야해. 내 목소리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만히 내 허리를 끌어안는다. 미치겠어. 너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
우현은 눈을 감았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성규의 체취에 잠이 몰려오는 건 아마 저가 사랑 앞에 속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처럼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만의 사랑이 좀 아프고 힘이 들고,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사랑이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이런 식이면 괜찮지 않을까 내심 합리화도 시켜본 그였다. 피곤했는지 얼마 안가 고른 숨을 내쉬며 잠에 든 성규를 위해 우현은 성규의 고개 아래로 이불을 끌어내렸다. 언제 봐도 예쁜 얼굴. 가만히 볼 위를 매만지다가 엄지로 저의 입술을 꾹 내리 눌렀다.
“잘 자.”
그리고 성규의 입술위로 엄지를 꾹 내리 눌렀다.
몰래하는 굿나잇 키스. 그것이 우현의 사랑을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 * *
“…없네.”
모처럼 늘어지게 잠을 잤다고 생각했다. 매일 같이 시달리던 악몽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빠졌었다. 시끄럽게 울리지 않는 알람이 이상해서 슬그머니 눈을 떴을 때 넓은 침대 위에는 나 혼자 누워있었다. 아침부터 스케줄이 있다더니 정말 바빴나. 말이라도 하고 가지. 피곤한 나를 위한 너의 배려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서운함이 몰려왔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았다. 전원을 켜보았지만 텅텅 비어있는 핸드폰에 괜히 마음이 쓰려서 다시 전원을 껐다. 단 한 통의 연락도 없었다. 내가 말없이 밀라노에서 사라졌는데도 연락이 없었어.
다소 충격적인 표정에 잠겨있던 성규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착잡한 마음이 자꾸 어떤 동요를 불러 일으켰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원래 표현이 없는 사람이니까 아마 이번도 그랬을 거라고. 내 걱정을 했겠지만 표현을 못한 거라고. 정말 그뿐이라고.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사랑을 받는 것 보다 주는 쪽이 더 행복해서 선택했던 상황이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우현이의 사랑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 했던 건, 단순히 내 감정이 소중해서. 남들이 들으면 지나치게 이기적일 내 사랑이 더 소중해서 그랬다. 내가 없음에도 연락조차 없는 애인을 떠올리면서 나는 아파하고 있었다. 형에게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내 사랑을 놓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이렇게 아픈가.
성규는 저릿한 가슴을 꾹 누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거실로 나와 소파위에 곱게 개켜진 저의 옷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우현의 옷들과는 상반되게 저의 옷만은 예쁘게 놓여있었다. 소파로 가 옷을 집어 들었을 때, 탁―하는 소리와 함께 발밑으로 떨어지는 하얀 종이에 놀라 허리를 숙여 종이를 집어 들었다. 하얗고 티 없는 종이 위로 가지런히 놓인 우현의 글씨.
‘밥 해 놨다. 먹고 가.’
함께 살던 때에도 우현이가 요리를 도맡아 했었다. 누구의 것보다 우현이 네 요리가 가장 맛있다는 내 칭찬에 귀 끝까지 입이 걸리던 순수한 아이라는 걸 안다. 내 입맛은 오로지 우현이의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다. 형에게 ‘입이 까다롭다’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우현이의 손맛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내가 음식을 가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토록 변화를 두려워하는 내가 변화에 민감해야 하는 모델을 하려는 이유도 오로지 형. 그뿐. 내 앞가림을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변명으로 둘러댔지만 분명 녀석도 눈치 챘을 거다. 내가 단순히 형이 좋아 형의 일을 따라하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렇게 불안한 얼굴로 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거겠지.
성규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탁위에는 반찬이 놓여있었다. 모두다 성규가 좋아하는 반찬들. 손을 얹어보았더니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나간 지 얼마 안 된 건가. 바쁜 시간을 쪼개 저를 위해 요리를 했을 우현을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미안한 만큼 웃기기도 하고 마음이 쓰리기도 해서. 밥솥에서 밥을 퍼 식탁 앞으로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 밥을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서 울컥 울음이 나왔다. 저의 아픈 사랑 뒤에 서서 늘 돌아갈 곳을 마련해주는 우현이 너무 고마워서 그래서 울었다.
형을 만나 내가 웃었던 날을 손으로 꼽아보면 우현이와 함께 지낼 때 보다 훨씬 적었다. 형과 하는 사랑에서 일방적으로 내 사랑이 더 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형의 옆에 나 아닌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에게 사랑을 주는 건, 지금 형의 옆에 있는 사람은 나라는 그 떳떳한 이유 하나 때문에. 받지 못하는 사랑이라고 해도, 그래도 형의 옆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놓지 못하는 거였다. 형의 옆자리가 행복한지를 물었던 우현이의 물음에 울음을 참으며 그렇다고 대답한 나를 누가 알아줄까. 매일을 외줄타기처럼 불안에 떨며 살고 있는 나를 알아줄 사람은 누구일까. 나를 사랑한다는 우현이에게 얼마든지 달려갈 수 있었다. 비록 내가 녀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사랑해주니까. 사랑을 받길 원한다면 녀석에게 갔어도 됐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까닭…
“…흐윽….”
내 입으로 나와 녀석의 사이를 ‘친구’라고 단정 지어 버렸으니까.
성규는 입을 틀어막았다.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도 우현의 집뿐이었지만 쉽사리 울 수가 없었다. 우현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서, 그의 사랑을 애써 무시하고 있는 저라서 마음 놓고 울 수가 없었다. 창밖에서 전보다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실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들면 우현이 곱게 개켜놓은 저의 옷이 보여서, 울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 우현이 차려놓은 따뜻한 밥상이 보여서. 성규는 더 크게 울었다.
바보같이 너를 친구라는 틀에 가두려는 날 알면서도 너는 한없이 나를 사랑했다. 내가 미울 법도 하고, 누구보다 쉽게 나를 떠나갈 만도 한데 너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내가 놓아둔 친구라는 선 안에서 너는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었다. 따져보면 형보다 너에게 받는 것이 더 많았다. 바보처럼 너에게 주는 것보다 받는 게 익숙해진 지금, 너에게 받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해질 정도로, 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런 네게서 떠나가야겠다는 말을 했던 날. 어쩌면 네가 미쳐 악에 받쳤던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프도록 내 어깨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대던 너를 떠올려도 화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어쩌면 네 마음을 눈치채버려서 너의 집을 버리고 형에게로 달아나 버린 걸지도. 줄곧 친구라고 생각했던 너였고, 우정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어서. 그 벽을 허무는 게 나로서는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조금 아프지만 내 마음이 안정적일 수 있는 방법. 나는 그를 택하면서 형을 택했다.
성규는 수저를 들어 올렸다. 수저 한 가득 밥을 떠 억지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턱턱 목을 막아왔지만, 꾸역꾸역 삼켜냈다. 요리를 하며 오로지 저만 생각했을 우현이라는 걸 알아서 남기고 일어날 수 없었다. 저가 눈물을 삼키는 지 밥을 삼키는 지 분간이 안 될 정도가 되고 나서야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입안에 든 것과 함께 속에 든 것을 모두 게워내고 나서야 성규는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었다.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서러움과 슬픈 감정을 모조리 토해냈다.
이렇게 울고 나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에 소리 질러 울었다. 아무도 나의 눈물을 듣는 이가 없는 지금, 답답한 가슴을 내리치며 내 안의 상처를 모두 토해냈다. 형과 함께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육체만으로 이어진 나와 형의 사이를 형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형이 나에게 마음이 없는 만큼, 내 몸이라도 원하게 해야 했다.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내 속을 털어내며 우는 일 따위 상상 할 수도 없다. 늘 형의 옆에 서서 웃어야 하고 행복해야 하니까. 누구보다 형에게 사랑받는 얼굴을 하고서 나는 형의 곁에 있고 싶으니까.
“…흑, 흐으으…”
한번 울음이 터지고 나니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얼마나 울었을까. 갑자기 도어락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울음을 멈추었다.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잘못들은 건가 싶은 생각에 한숨이 푹 나왔다. 이제는 헛소리까지 들리나. 혼잣말과 함께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서려는데 등 뒤로 화장실 문이 열렸다.
“……우현아!” “……….” “……….” “김성규.”
우현이의 눈이 무서운 속도로 변기안의 내 토사물과 바닥에 주저앉은 나, 그리고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굉장한 비밀을 들킨 기분에 정신이 멍하니 나가버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가만히 너를 올려다보고 있는 나를 역시 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하던 너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변기커버를 내리고 물을 내렸다. 내 어깨 사이에 팔을 끼우고 나를 일으키고, 눈물로 더러워진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왜 벌써 온 거야? 당황함에 가득한 성규의 물음에 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컵에 물을 받아 말없이 내밀고, 성규는 컵을 받아들고 입을 헹궈냈다. 우현은 손에 물을 묻혀 성규의 볼에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지워냈다. 성규는 우현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누군가의 챙김. 보호받는다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이랬었구나. 과거를 회상하며 진지한 눈을 한 우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울었어.” “……….” “밥은 먹었어?” “응.”
‘아이, 착하다.’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우현이의 큰 손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너무 편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내 아픔을 미리 알고 아무것도 묻지 않아주는 너라서. 오랜만에 느끼는 이런 편안 행복을 조금 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들었다.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까지 닦아준 우현이의 손에 이끌려 다시 밥상 앞으로 앉았다. 내 앞에 마주앉은 우현인 손으로 턱을 괴고 눈짓을 했다. 마저 먹어. 내 앞에서 다 먹어.
성규는 수저를 들어 올렸다. 천천히 밥을 먹는 성규를 아프게 바라보던 우현은 숨을 고르고 환한 미소로 얼굴을 바꿨다. 맛있어? 이미 답을 알고서 묻는 물음. 그에 성규는 우현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답했다. 응, 네 요리가 제일 맛있어.
“성규야.” “응?” “아프지 마.” “……….” “이건 부탁이야.”
우현의 부탁에 성규는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저만큼이나 아픈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 성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아플 게. 친구야.
내 대답에 너는 쓰디 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너의 얼굴을 못 본체, 고개를 숙여 밥을 먹었다. 난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나의 사랑을 지키고자, 나의 믿음을 잃지 않고자. 너의 사랑을 또 한 번 짓밟았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너를 내쳤다. 아플 너는 생각하지도 않고 밀어냈다.
“우현아, 우리 친구 맞지?” “……….” “응? 친구 맞지?” “…어, 맞아.” “고마워. 친구해 줘서.”
아픈 네 가슴 위로 선사하는 장미의 가시.
미안함을 이긴 내 이기심에 치를 떨면서도, 나는 끝까지 웃으며 너에게 가시 넝쿨을 선물했다.
* * *
-새벽 비행기로 갔대. “네가 어떻게 알아?” -자기 매니저한테 물어봤지. 어떡할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내 호텔로 넘어와.” -알았어, 자기야.
끊긴 전화위로 가만히 손을 얹었다. 아무렇지도 않다 하면 거짓말이겠지. 뭔가를 뺏긴 기분이 들어서 마냥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촬영이 끝났다. 하루정도 휴식을 갖고 내일 다시 촬영에 들어간다. 유명한 사람이 된다는 건 그만큼 피곤함이 따랐다. 끊임이 없는 스케줄 속에서 쉴 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이성열은 짧은 휴가 같은 존재.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달콤한 녀석 때문에 나는 퍽퍽한 이 생활을 견뎌 내고 있었다.
성규를 말하자면 허울 좋은 나의 배경에 속하겠다. 끼가 있는 녀석을 꼬드겨 모델을 시켜놓고 나는 가만히 앉아서 녀석이 정상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적당이 뒷돈을 써 쇼에 서게 만들고, 나의 눈빛 못지않게 오로라를 뿜어내는 김성규가 톱 모델의 구축에 들면, 내가 그를 캐스팅했다고 말 하면 된다. 그럼 나는 모델로서의 매력뿐만 아니라 모델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능력자도 된다. 나의 미래를 위한 보장. 김성규는 녀석의 사랑을 이용한 나의 보험정도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겠다.
벤이 멈춰서고 명수는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자연스럽게 VIP층을 누르는 손에 귀티가 흘러 넘쳤다. 길지 않은 복도를 지나 하나의 문 앞에 멈춘 그의 발걸음. 그는 손을 들어 가볍게 노크를 했다. 그러자 마치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린 듯 한 타이밍에 열린 문.
“달링, 어서와.” “이쁜이.”
문이 열리자마자 명수는 문 앞의 성열을 끌어안았다. 품에 가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편안함의 미소를 지었다. 보고 싶었어. 평소 무뚝뚝한 그답지 않은 꽤 직설적인 표현. 그런 그의 표현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이 명수의 허리를 마주어 끌어안는 성열. 나도, 자기야.
오랜만에 성열이가 해주는 요리를 배불리 먹고 조금 쉴 겸 해서 침대에 누웠다. 계속해서 잠자리를 보채는 녀석의 이마위로 알밤을 놓고 그건 오늘 밤에 해도 늦지 않는다며 핀잔을 주었다. 대낮부터 잘거냐는 녀석의 물음에 피곤하다 답하고 돌아눕자 곧 잠잠해지며 등 뒤로 나를 끌어안아온다. 피곤이 몰려왔다. 휴식 없이 진행된 촬영이 힘이 들긴 했었는지, 체력운동을 더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점점 잠에 빠져들려던 찰나에 성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성규가 연락도 없이 갔어? 김성규, 배짱이 두둑해졌네.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보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대로 돌아누워 녀석의 삐죽거리는 입술위로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했다. 귀염둥아, 그게 그렇게 싫어? 내 물음에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흥분한다. 당연하지! 자기를 이렇게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면서, 정성이 없잖아 정성이! 호텔에서 기다리면서 진수성찬을 차려놔도 모자랄 판에!
“김성규는 요리 못해.” “뭐야? 그럼 왜 데리고 살아?” “노후 보장이라서.” “응?” “김성규는 너랑 나 먹여 살릴 보험이라서 그래.”
그런 거야, 자기? 금새 또 표정을 풀고 품으로 파고드는 이 녀석을 어떡하면 좋지. 정말 집으로 들여야 하나. 김성규를 버려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있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나에게 핀잔을 주며 피곤하면 얼른 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좀만 자고 일어나자. 오랜만에 만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 일어나면 오빠가 다 해줄게. 그 말에 까르르 웃으며 내 가슴팍을 두들기는 작은 손에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를 무방비한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은 아마 너 뿐일 거다, 이 맹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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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초면 충분한 잔소리 TIME
기다리고 있던 젖절한 타이밍에 제가 토라왔는지, 모르겠서요ㅠㅠ
늦은건 아니겠죠ㅠㅠㅠㅠㅠ?
그래도 평소 쓰던 속도보다 배는 빨리 썼다는!!!!(이라라의 평균 연재하는 속도=일주일)
ㅋㅋㅋㅋㅋㅋ아직 엘티이가 아니라서 죄송해요ㅠㅠㅠ내사랑드류ㅠㅠㅠㅠ나 그래도 많이 노력하고 이써여ㅠㅠㅠ엉엉엉(찌질)
그나저니 이 글이 본격, 김성규 개xx만들기 김명수 개xx 만들기 프로젝트인듯^0^
이성열은 덤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넼ㅋㅋㅋㅋㅋ개xx만들기 투플러스 원 행사기간입니다^_^
댓글들을 보니까 모델물이라고 많이 기대하시는 거 같던데 ㅠㅠ
엉어유ㅠㅠㅠㅠ 모델물로써 젖절한 장면은 그리 많지는 않아요ㅠㅠ JUST 배경이 모데류ㅠㅠㅠ
더군다나 나중에 밝혀질 일이지만, 우현이 직업은 카슈 데스네ㅠㅠㅠㅠㅠ엉엉
너무 어어어어어엄청난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ㅠㅠㅠ 부다...ㅁ....되여....ㅜㅜㅜㅜㅜ(물론 그런 기대 안하고 있으실거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그럼 이쯤해서 잔말을 줄일게요ㅋ_ㅋ 저는 너무 말이 많아서 탈....;;;;
다들 즐겁게 읽고 가기이=ㅅ=.............................ㅇ...........안녀엉..........
(역시 잡담의 끝맺음이 제일 어렵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