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너와 난 어땠더라. 내가 싫었다던 너. 다 같은 옷을 입고 까만 머리들 사이에 밝은 머리, 파마한 머리까지 옹기종기 모여있을 강당을 찾던 중 짧은 다리로 걸어오는 네가 보여 널 붙잡고 '아가, 중학교는 저긴데. 잘못 왔어?' 하고 묻자 날 위아래로 쭉 훑어보던 너. 그게 너와 나의 첫만남인줄 알았던 우리는 첫눈을 함께한 사이였다. 열일곱 1월 17일 올해의 첫눈이 내린다는 그 흔한 뉴스 소식 조차 없던 날이였다. 누나의 심부름으로 편의점에 들렸던 내가 내 앞에서 계산하던 널 기다리며 밖을 보자 내리는 눈이 비인것만 같아 우산을 집어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널 보다 시선을 돌려 계산을 하고 나왔다. 문 앞에 네가 서 있었고 밖은 예상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먼저 갈까 하며 널 바라보다 안절부절 못하는 네가 안쓰러워 우산을 펼쳤다. 같이 쓰실래요? 우산을 쓰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거 비 아니고 눈 같은데?" 그 말에 비로 보이던게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건 확실히 눈이였다. 그러게 난 우산을 왜 샀더라. 그게 첫만남인걸 스무살의 겨울, 첫눈이 내리던 날 알게되었다. 나 열일곱살때 첫눈 모르는 여자아이랑 맞았는데. 혹시 편의점? 서로를 마주보며 한참을 웃었다. 딱히 누군가 그 얘기를 꺼냈던건 아니였던거 같은데 우림 왜 그 얘기를 하게 됐을까. 하여튼 우리의 옆에 앉아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던 승관의 운명이네, 그 옆에 앉아 승관의 등을 두드리며 가득 채워진 소주잔을 입에 털어넣던 석민의 사랑이네. 하는 말에 웃음을 멈췄던것만 같다. 두 볼을 붉히는 널 보며 더워서 그래? 하고 물었던거 같기도 하고. 어찌됐던 우리의 첫만남은 생각보다 좋았었다. 애기 티를 못 벗고 반항하던 날 잡아주던 너. 친구의 권유로 접하게 된 담배를 2년이나 피우던 내가 너덕분에 끊게 되었다. 순전히 그 모든 건 다. 오로지 네 탓이였다. 그게 아마도 열여덟의 봄이였던가? 네 탓에 잔뜩 젖어버린 교복이 몸에 축축하게 들러붙어도 그렇게 춥지 않았던게 아마 봄인듯싶다. 급식을 먹고 평소와 다름없이 옥상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문득 옥상문을 열고 네가 들어왔다.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쪽팔려 죽을 뻔 했던 걸 너는 알까? 모르겠지. 넌 그 짧은 다리로 걸어와 양손 가득 들고온 바가지에 든 물을 내게 뿌렸다. 봄이라 다행이였지 겨울이라고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덜덜 떨리는 것만 같았다. 꺼진 담배는 생각도 못하고 널 빤히 바라보자 넌 내 머리를 세게 치곤 씩씩 거리며 날 올려다보다 뭘보냐며 발을 꾹 밟고 한마디를 던지곤 뒤돌아 걸어내려갔다. 꽤나 세게 닫히는 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 같다. 그제서야 네가 밟은 발이 아파왔었다. "담배 안 끊으면 너랑 친구안해." 그 말에 내 옆에 있던 원우는 미친듯이 웃었고 준휘는 괜찮냐며 날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건 아무렴 필요없었다. 세게 닫힌 문에 든 정신에 아픈 발도 무시하고선 네가 화를 왜 그렇게 내는지도 모르면서 내려가는 널 붙잡아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다신 안하겠다고. 그러자 넌 물을 뚝뚝 흘리는 내게 네 체육복을 건냈다. 웃으며 거절했었던거 같다. 이걸 어떻게 입어, 작아서. 아닌가? 고마워. 하면서 내걸 꺼내입었던가? 아무렴 어때. 난 그렇게 담배를 끊었다. 그렇게 반항을 하던 나와 달리 넌 성실함의 끝이였다. 물론 잠이 많아 깨워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하던 널 깨우려 20분을 걸어가 깨워주곤 했던 탓에 넌 개근상을 나와 함께 받았다. 아직도 생각하면 웃기다면서도 너와 난 그 상장을 각자의 집 거실에 떡하니 붙혀놨다. 서로의 집에 놀러갈때마다 아직도 붙혀뒀냐며 웃으면서도 그게 부적인듯 여기저기 몇번 이사를 가면서도 그 상장은 항상 거실에 붙어있었다. 크게 싸우고 먼지 나는 체육관 바닥에 누워 있던 우리.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남들이 볼땐 뭐 그렇게 다투냐고 묻지만 열여덟 가을의 싸움을 보면 별거 아니구나, 생각할거다. 아닌가? 너의 생각은 나와 다를까싶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다툼을 하지 않았던거 같다. 어쨌든 그래서 그 날 우리가 왜 그렇게 싸웠더라? 그냥 정말 별것도 아니였던 거 같다. 내 기억엔 네가 날 피했다. 넌 하루종일 날 피해 숨어다녔던거 같다. 같은 반도 아니라 쉬는시간 마다 찾아가도 넌 없었다. 난 그게 화가났다. 결국 점심도 굶고 널 기다리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 널 잡아 체육관으로 데려갔다. 왜 그러냐 묻는 내 말에 넌 그저 말없이 날 째려봤다. 그러던 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재수없어. 권순영." 그 말을 시작으로 너는 다짜고짜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이제까지 날 피한건 넌데 왜 내게 재수가 없다느니 하며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지않았다.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는 내 말에 넌 옆에 놓인 배구공을 내게 던져댔다. 그걸 피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네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아 화만 냈다. 그러다 먼저 지쳐 매트 위에 쓰러지듯 누워 숨을 고르는 너에 그 옆에 앉아 그런 널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사이엔 단 한마디의 사과도 오가지 않았다. 가쁜 숨이 고르게 쉬어지자 우리는 일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은 매일 같이하던 하교를 처음으로 함께하지 않았다. 다음날 평소처럼 난 널 데리러 갔고, 넌 내게 네 가방을 건넸다. 그렇지, 이래야 이지훈이지. 너와 싸운 다음 날 날씨는 왠지 좋았고 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여전히 네게 묻지 못했다. 왜 날 피했던건지. 가끔 물어볼까 싶어 물어보면 넌 내게 그냥, 그냥 그 날은 네가 재수가 없었나보지. 하고 넘겼다. 그럼 난 그게 뭐냐며 웃어넘겼다. 그래 뭐 아무렴 어때. 너와 내 다툼은 그저 우리의 추억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였다. 하늘의 별입니다. 다른 곳에서 다르게 썼던 글인데 글잡으로 한번 와봤어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순영의 시점이 이지훈이의 시점이 될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