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리고 소년(Spring, and Boy).
w. Cherish(체리시)
00.
19살, 나는 천사를 보았다.
막 하늘에서 내린 눈으로 뒤덮힌 세상 마냥 새하얀 피부와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머리카락, 투명한 듯 반짝이던 까만색의 동그란 눈동자. 그것은 그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표현이자 부족하기도 했다. 하늘의 선물과 같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을 보며 나는 그를 만났다. 마치 우연의 한 부분인 것 마냥 그는 아무도 모르게 나의 품에 사뿐하게 들어와 있었다.
그는 마치 나비처럼 우아했으며 새빨간 사과처럼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존재 자체로도 섬광이 되었다.
봄, 그리고 소년.
봄이라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날이었다. 주위에 꽃들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에게 시위라도 하는 듯 가만히 시들시들하게 곧 죽을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얇은 초록색의 줄기는 끊어질 것 처럼 휘어져 있었다.
“아프겠다….”
루한의 갈라져 나온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무책임한 발길질에 의해서 겨우 버티고 있던 초록색의 줄기들이 희망 없이 오도독 하는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누군지 위로 보기도 전에 그 누군가의 얼굴이 루한의 눈 앞에 드러났다.
약간 까무잡잡한 얼굴에 미묘하게 비틀린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눈동자에 웃음을 지었다. 그의 교복에는 「김종인」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져 있었으며 그는 허리를 구부려서 루한과 눈을 맞추고 한 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웃음을 머금고 뒤를 돌았다. 루한은 떠날려는 그의 발걸음을 붙잡고 작은 화단에서 그의 무책임한 발에 유일하게도 밟히지 않은 분홍색의 꽃 한 송이를 꽤나 길어버린 손톱으로 톡 끊더니 종인의 손에 쥐어주고는 다른 화단을 찾는 듯 호기심이 넘치는 표정으로 주위를 서성거렸다.
“미친년.”
종인은 꽃과 자신이 밟은 화단을 번갈아 가며 허탈한 표정으로 보았다. 너도 뭉그러져. 종인은 소년이 쥐어준 꽃을 보며 중얼거리더니 화단에 꽃을 던지고는 자신의 신발로 꽃의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밟았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가지고 있는 꽃이 너무 싫었다. 그런 꽃을 보고 있는 그 소년에게도 이상하게 반항심이 들었다.
“저런거 다 필요없어.”
종인은 그 말을 끝으로 더럽혀진 화단에서 신발을 꺼냈고 진득하게 붙은 풀들을 신경질적으로 떼었다. 그리고는 그 소년이 간 방향을 찾아 두리번 거리다가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소년을 찾았다. 또 다른 분홍색의 꽃을 쥔 새하얀 소년의 손에는 미처 떨어지지 못한 군데군데 흙이 약간 붙어 있었다.
나빠. 소년이 자신의 손에 든 분홍색의 이름 모를 꽃을 바닥에 버리고는 종인을 보고 징그러운 벌레라도 보는 것 처럼 반대편으로 뛰쳐 나갔다. 안타깝게도 종인은 소년의 찬란한 금빛의 머리카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는 또 다른 ‘김종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허리를 숙여 더러워진 분홍빛의 꽃잎을 찾아서 주워서 웃음을 터뜨리는 자신을 보며 치를 떨었다.
“나랑 많이 닮았네.”
주위를 둘러 그 소년을 찾았지만 이미 떠나버린 소년은 자신을 감춰버린 후 였다.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종인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하늘에서 애처롭게 비가 몇 방울 떨어졌다. 그리고 곧 새파란 하늘은 그 동안의 분을 모두 풀어버릴 듯 먹구름으로 가득 차버린 하늘을 보며 종인은 눈을 감아버렸다.
그 순간부터 우리 둘의 운명의 장난이 시작되었다.
* * *
다시는 만나지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환상 속에서만 존재할 피사체라고 생각했었다. 그를 다시 만나지 않으면 그 날의 지독하게 뚜렷한 기억을 뇌 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교통사고라도 당해서 그의 아름다운 피사체가 날라가면 좋겠다는 그런 멍청한 생각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더 뚜렷하게 기억 남는 소년을 원망했다.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소년은 마약처럼 나의 온 몸에 스며들어 감각을 하나 둘 씩 깨웠다.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마약 중독자 처럼 종인은 그 소년을 맛보고 싶었다. 그것을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그의 중독성은 강했다. 마치 지독한 마약처럼.
“…보고싶다.”
종인은 단순하게 그 한마디로 무작정 가방을 싸들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 아마 저번에 그 소년을 만난 시간과 엇비슷 할거라는 생각에 괜한 두근거림으로 땀이 잔뜩 난 손을 교복 바지에 문지르고 가방 끈을 세게 잡았다. 손톱이 손바닥의 피부를 한껏 자극했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여유조차 없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는 무엇인가 자신의 앞을 막는다면 그것에 어떠한 짓 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종인은 자신의 입에 행복한 미소를 입에 걸쳤다.
그 때 저 멀리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빛의 무언가가 보였다.
“어? 내꺼다.”
반짝이는 금발 머리를 보자 그 동안의 답답함이 모두 가시는 것 처럼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내 사람. 그 단어는 종인의 기분을 충족시키기에 완벽했다. 소년을 향해 사뿐한 고양이의 우아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아름다운 나의 피사체에 긴장이 가득한 손에는 끈적하게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봄’이라는 계절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온 몸을 감싸들어서 나른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봄도 이런 따사로움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름도 모르는 소년은 종인이 자신의 가까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화사한 꽃밭의 앞에서 꾸벅꾸벅 졸며 꽃밭을 보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저 미친년이 예쁘기만 더럽게 예뻐.”
“알았어.”
“뭘 알아?”
“…너 올거라는 거. 알았다고.”
소년의 무심한 입놀림에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을 원망했다. 내가 온다는 걸 알았다고? 종인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그의 말을 곱씹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작고 오물거리는 입에서 튀어나온 어려운 퀴즈같은 그 말에 곧 머리를 헝크리며 생각을 그만뒀다.
“나 궁금한게 있어.”
“내가 먼저 물을거야. 이름이 뭐야?”
소년은 즐거운 듯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종인의 귀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가 무언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할 것 마냥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궁금해진 종인은 그를 닥달했지만 너무나도 느긋한 행동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빨리. 재촉하듯 다리를 떠는 종인을 보고 마침내 소년이 입을 열었다.
“루한.”
이름도 너처럼 미쳤네. 종인의 그 한마디에 조용했던 꽃밭은 두 사람의 요란스러운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루한」이라는 이름은 딱 그 소년과 어울리는 이름이며 다른 어떠한 이름을 붙여도 어색할거다. 즐거움이 만발하는 꽃밭, 그 속에 숨어든 미묘하고 뒤틀린 우리의 감정선을 찾고자 애썼지만 어디론가 재빠르게 숨어버린 우리의 뒤틀린 감정선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루한, 그와의 인연을 끝장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을거라는 불길한 추측에도 불가하고 종인은 그것을 무던히도 무시하려고 귀를 막아버렸다. 아직 어린 종인에게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지금의 행복만 있으면 미래의 고통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했으니까.
그것이 종인에게 어떠한 해를 입힐지도 몰랐고 어떠한 행복을 물어다가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루한. 그의 존재는 비밀스러운 꽃망울과 같은 존재였으니까.
***
루한은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나풀거리며 노란색 꽃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앉은 나비를 보고 있었다. 한참을 몰래 지켜보던 종인이 신발을 질질 끌며 루한의 곁으로 다가가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노란색의 꽃에 앉은 작은 나비를 보며 아리송한 표정으로 턱을 괴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고민이야?”
그와 눈을 맞추기 위해 종인은 엉덩이를 털썩 흙에 붙였지만 그것조차 투명인간 취급하고 오로직 시선을 나비에게만 고정시켰다.
“난 내꺼가 다른 새끼한테 집중하는 꼴 보기 싫어.”
“……”
“그게 저런 하찮은 나비라도.”
“……”
“경고했다.”
3, 2, 1. 종인의 험한 입이 닫기자 마자 길다란 손가락이 나비를 향해 순식간에 뻗어져 나갔고 그 공간에는 노란색의 꽃 홀로 외롭게 있었다. 루한이 나비의 행방을 찾으려 종인을 보았지만 그는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있었을 뿐 이었다.
“내 나비.”
종인은 다른 한 손가락으로 주먹을 쥔 손을 가리키며 한 쪽 입꼬리를 기쁘다는 듯 올렸다. 루한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 심술이 난 표정으로 종인에게 나비를 달라고 말 없는 시위를 했지만 종인은 그저 웃을 뿐 이었다.
“그거야?”
“…글쎄.”
루한의 커다란 눈이 울음을 참는 아이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것을 그저 무표정하게 보던 종인은 마침내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지자 허탈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종인이 중얼거리며 손을 활짝 펼치자 마치 종이처럼 꾸깃해진 나비의 날개가 보였다. 나비는 자신을 압박한 무언가가 떨어지자 허겁지겁 구겨진 날개로 위태롭게 꽃밭 위로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보던 루한은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한참을 울며 종인의 가슴팍을 작은 주먹으로 쳤다. 웅얼거리는 소년의 목소리에는 온갖 저주의 말이 다 들어 있었지만 그걸 그냥 받아만 주고 있었다.
“이제 알았지? 넌 김종인 소유.”
이 악마야. 루한은 울음을 멈추고 냉랭한 목소리로 흙이 달라붙은 바지를 손으로 털고 뛰어갔다. 아름다운 나의 소년과도 같은 노란색의 나비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와 나비는 하나라도 되는 듯 사라지고 난 후, 꽃밭은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심지어 종인 조차도 눈을 감아버리고 주저앉은 이후로는 고요함만이 존재했다.
단지 그와 같이 있는 시간을 원했을 뿐, 그 이상은 원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이리도 꼬이는지 종인은 짜증이 솟구쳤다. 누군가의 존재에 목매다는 자신도 한심해 보였으며 상대방이 자신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에서 분노를 느꼈다. 루한, 그의 존재가 잘못되었다.
“미친년. 또 보고싶다.”
+Cherish |
저번에 글을 올렸다가 덧붙일 부분이 생각나서 지우고 다시 올려요.(엄청 조금이지만ㅠㅠ) 오타가 있으면 둥글게 댓글로 살짝 알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