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선후배 7 끝
W.지호야약먹자
눈을 뜨자마자 피곤하다, 몸이 아프다, 이런 생각보다 설렘이 먼저 찾아왔다.
어제 지훈이 대뜸 공원을 가자고 한 말에 승낙하자 표지훈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헛기침 몇번하더니 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었다.
졸지에 혼자 덜렁 남겨진 나는 뻘쭘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방으로 들어오고.
생각해보니까 괘씸하네, 혼자 들어가면 어떡해? 나는 어쩌라고.
그러면서도 머리 한 켠에선 오늘 뭐 할까 생각이 자꾸만 커진다.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영화같은데 보면 공원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 먹고 그러던데.
분수도 있을까? 분수 앞에 앉아서 얘기도 하고싶은데.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상상했다. 아, 좀 이상한가.
180 넘는 남자 둘이 아이스크림에 분수 앞에서 도란도란 대화...아, 몰라.
외국인데 뭐 어때? 한국도 아니고, 누가 알겠어.
자꾸 남들 시선만 생각하게 되는 내가 싫은데 자꾸 신경쓰게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옷을 벗었다.
문득 표지훈이 왜 공원에 가자고 한 건지 궁금해졌다.
왜 가자는거지? 왜? 왜?
얼핏 고백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도 지나가지만 곧 지워버렸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커. 그냥 비우고 나가자.
바지에 다리를 끼우는데 문이 벌컥 열린다.
"아, 뭔데......"
당연히 태운이형일 줄 알았는데 표지훈이다.
한 쪽 다리는 훤히 드러난 채로 그대로 멈춰 시선이 닿았다.
눈이 동그래져서는 눈을 보다가 밑으로 향하는 시선에 왠지 몸이 간질거려 움추렸다.
"....나가!"
적당히 나갈 줄 알았더니 아직도 그대로 서있어서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야 문을 쾅 닫는다.
으씨...남자끼리 너무 예민한가, 괜한 반응을 했나 싶다.
아직도 나와있는 다리 한 쪽을 마저 쑤셔넣고 버클을 잠궜다.
티셔츠도 마저 벗고 짐을 풀지않아 한쪽에 빵빵한 모습으로 쓰러져있는 트렁크로 다가갔다.
딱 열어보니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겠어 편하게 입는 후드를 집어 머릴 끼워넣었다.
이따 공원도 가자던데 다른 걸로 입을까, 했는데 산더미같은 짐들에 뒤져 볼 엄두가 나지않아 그냥 나왔다.
일층으로 걸어나왔더니 태운이형은 와이셔츠에 자켓에 어제랑은 달리 차려입고는 쇼파에 기대있고
표지훈은 어딜 갔는지 안보인다.
"형, 어젠 안그러더니 왜 빼입었어?"
"몰라, 오늘 미팅 가. 짜증나. 원래 Pitter라고 어떤 놈이 가는 건데, 그 놈이 날 싫어하거든?
뭔 생각인진 모르겠는데 나한테 미뤘어. 정한해도 같이가는데...내일 올 것 같더라."
진짜 가기 싫은 건지 인상을 잔뜩 구기고는 다리까지 꼬고앉았다.
좀 불쌍해보이기도, 형이라고 어른스러운 척해도 아직 초딩 티를 못 벗은 것 같아보여서 웃음이 나오려던 걸 꾹 참았다.
표정이 안좋은 게 여기서 웃으면 맞을 게 확실하니까...
"근데 어젠 아무 말 없었잖아"
"어, 그러니까 더 미치겠는거지. 오늘 새벽에 전화왔었어.
전화는 정한해가 했는데...아악! 시발, 피턴지 개턴지 내가 언젠간 일 생기면 다 미뤄버릴거야.
동생이 어제 왔는데 동생을 두고 어딜가!"
안쓰럽지만 어쩌겠어...형이 캐나다의 근로자인 것을...
난 방학동안은 남아있을 생각이니까 아쉽진 않은데 형은 그런가보다.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긴 채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있던건지 지훈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온다.
"어? 굿모닝이요. 형."
날 보고는 바보처럼 웃고 손을 들어 인사하는데,
아침의 날 보던 시선이 생각나 괜히 쑥스럽다.
"뭐, 아침부터 남의 방에 불쑥 들어오고."
괜히 틱틱대며 대답했는데
그새 까먹었던 건지 아, 하는 짧은 탄식을 내밷으며 눈을 피한다.
아, 표지훈 어제부터 자꾸 쑥쓰럽다는 듯이 행동한다.
억누르려해도 기대가 자꾸 커져가는 느낌에 표지훈을 냅두고 얼른 화장실로 들어왔다.
대충 씻으려다가 샤워가 났겠다는 생각에 옷을 다시 벗었다.
아, 이럴거면 왜 입은거지...그냥 입던거 입고 내려올 걸.
샤워기를 틀었다.
욕조에 들어가고 싶긴한데, 늦게나가면 형도 일하러 가야되니까...밤에 하지 뭐.
깨끗이 씻고 나오니까 태운이형이 앉아있던 자리에는 한해형이 앉아있다.
아침부터 능글거리는 웃음으로 날 쳐다보는 게 꼭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것 같다.
뿌루퉁하게 입을 내밀고 똑같이 쳐다봤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왜 그렇게봐? 아침부터 형보니까 좋아?"
"뭐래. 태운이형은?"
"씻고 나왔네 우리 지호. 이리 와. 머리 말려줄게."
"정중히 사양할게요. 정한해씨. 아, 형은 어딨냐고"
"우태운이 부엌에서 토스트하는 중이시다. 지훈이는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그러니까 멀뚱히 서있지말고 일로 와, 좀."
그제야 옆으로 걸어가니 팔을 확 당긴다.
중심을 못 잡아서 쇼파 앞에 박을 뻔한 걸 병주고 약주는지 잡아줘서 안 박고...주저앉긴 했지만.
짜증을 내려 돌아보니 머리를 앞으로 돌리곤 손에 있던 수건을 뺐어간다.
제멋대로야, 진짜. 그래도 머리 말려주려고하는 거라니까 가만히 앉았다.
"어! 표지훈이- 이리 와서 얘 머리 좀 말려줘라. 쪼꼬만 게 노인 공경도 모르고 노동을 시키려고 하네..."
옷을 입고 내려오는 표지훈한테 날 떠맏긴다.
내가 언제 시켰다고? 생사람잡네 이 양반이? 형을 째려보니 눈을 피한다.
표지훈은 쭈뼜거리더니 다가와서 수건을 건네받고,
일어나서 내가 하겠다고하면 괜히 분위기만 이상해질 것 같아 가만히 있었더니
한해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고 표지훈이 조심스럽게 앉는게 느껴진다.
목 뒤로 살짝씩 닿는 표지훈의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게, 좀 두근거린다.
"머리도 혼자 못 말려요? 형한테 부탁하고."
나긋하게 타박하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데,
억울한 걸 반박도 못하겠고 아무말도 안나온다.
"아니, 그게..."
"형한테 말하지 말고 앞으로 나한테 말해요.
내가 더 어리니까 좀 부려먹어봐요. 힘도 세고...더 잘생기고, 그쵸?"
점점 자뻑으로 들리는데, 표지훈아?
"내가 더 났죠? 한해형보다?"
형한테 들리는 건 무서운지 귓가에 소곤소곤 말하는데,
너가 더 나은 건 알겠는데 입 좀 떼어줄래. 미치겠거든?
머리를 터는 손길도 나른한데 귀에 닿는 입김에 간지러워 몸을 뗐더니 간지럽냐며 더 가까이 온다.
큭큭, 웃으며 머리를 흔들다 한해형의 헛기침 소리에 둘 다 몸을 바로했다.
"어린 것들이...토스트나 먹어."
눈이 마주치고 웃으면서 부엌으로 갔다. 태운이형은 아직도 울상으로 토스트를 우물거리고,
그런 태운이형을 한해형은 킥킥대며 놀리기 바쁘다. 자기도 가는 거면서 왜 저렇게 좋아해.
형은 도착하면 전화하겠다고,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우리가 애긴 줄 아는지 전화번호를 종에에 적어 내 손에 쥐어주고
발이 안떨어지는 듯 1cm 씩 주춤거리며 나가다가 한해형에게 질질 끌려갔다.
그런 형들을 웃음을 참으며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고, 집엔 우리 둘만 남았다.
"이런 건 예상 못했는데, 꼭 우리 둘이 놀러온 것 같다. 그죠?"
문이 닫히자마자 헤헤. 하며 날 보고 묻는다.
응, 그러게. 이런 건 생각 못했는데.
혼자하는 생각이지만 꼭 우리 둘이 사는 집 같이 느껴진다.
"그럼 어디 갈까요? 아, 우리 공원가기로 했으니까 지금 공원가요. 응?"
내 손을 살짝 잡으며 끌고 나가려는 지훈에 놀라 손을 떼버렸다.
"아, 나 잠깐 옷 갈아입고. 후드티 한장은 추우니까..."
손을 쳐내곤 쪼르르 올라가는 지호형 뒷모습을 쫒았다.
얼굴은 빨개져서 올라가는 게 귀엽다.
어제 오늘 긴가민가했는데 나랑 비슷한 행동을 하는 형 모습에 용기를 내기로 했다.
정뭐뭐씨가 자꾸 자극하는 탓도 있고...밀어준다고 밀어주는 것 같긴한데, 영 마음에 안 든다. 스킨쉽이 너무 많잖아.
주먹을 꽉 쥐고 있어서 그런지 손에 땀이 차는 것 같다. 바지에 문질러 땀을 닥아냈다.
으으...떨려죽겠네.
괜히 손을 쥐었다 폈다 가만두질 못했다.
손을 치고 와서 그런지 미안했는데 손을 주물거리는 표지훈을 보니까 더 미안하다.
"자, 나가자!"
하며 은근슬쩍 손을 잡아끌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금방 웃음을 띄우며 따라나오는 게 단순해보여 마주 웃어줬다.
집에서 나와 정신없이 달려가 공원에 도착해 멈추자 턱끝까지 차오르던 숨이 한번에 터져나온다.
아, 운동 좀 해야겠다. 이걸로 숨이 딸리네.숨을 돌리자마자 이번엔 표지훈이 내 손을 잡고 끌고간다.
헐떡이며 도착하니 아이스크림가게.
"어! 나 아이스크림 먹고싶었어! 오오-표지훈 센스쟁인데?"
아침에 생각하고 있던 거라서 그런지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들어오고보니 어렸을 때부터 왔던 곳이다. 외관은 바뀐 것 같은데 다른 건 안바뀐 듯 그대로다.
옛날 생각이 나 웃고있으려니까 표지훈이 어깨를 잡고는 아이스크림이 진열된 곳으로 돌린다.
"뭐 먹을래요? 난 저거...초콜릿인가?"
어깨에 고개를 올리고는 손가락질을 하는데 그대로 굳어버렸다.
목이 간질간질한게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겠다.
뻣뻣하게 본 진열대에는 맛있어보이는 게 너무 많다...
어느 새 긴장이 풀려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NICE' 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이름이 눈에 띈다.
'FALL IN LOVE!' 소녀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이름에 킥킥 대다가도 손으로 집었다.
"난 이거."
주인아저씨는 아무 말도없이 웃으며 지켜보다가 콘에 한 스쿱씩 퍼서 담아주었다.
땡큐, 간단한 인삿말과 값을 치루곤 한 입씩 베어물며 가게를 나섰다.
차가운 공기에도 그닥 춥지 않은 날씨라서 상쾌한 기분만 든다.
"맛있다."
딸기때문에 상큼한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은 간간히 밖힌 초코칩으로 달콤씁쓸한 맛도 난다. 이름값하네.
하긴, 나이스가 괜히 나이스가 아니지.
정말 맛있어요? 하고 되묻는 표지훈에게 대답하려 아이스크림을 입에서 떼자 자기가 한입 먹는다.
"뭐야. 달라고 하지."
라고 말하는 내 입에도 자기 걸 물리고.
예고도 없이 입에 물려진 아이스크림이 입가에 묻는 느낌이다.
그래도 입에 들어온 아이스크림은 맛있다.
내 것보다 초콜릿이 더 들어가 더 진한 단 맛이 나는게 이것도 마음에 든다.
아이스크림이 떨어져 나가자 입가가 찐득한게 찝찝하다.
혀로 입가를 핥는데도 찝찝하다.
"입가에 아이스크림 묻었어?"
"응, 여기..."
자기 손으로 입가를 문질러 지워주는 데 그 손을 또 자기 혀로 핥는다.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야되는 데 왜 섹시하냐. 미쳤다 우지호.
"가자가자. 공원 구경이나 해."
먹던 아이스크림을 다시 핥아내며 먼저 걸었다.
어제 분위기가 풀어진 뒤로 왠지 더 스킨쉽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두 세걸음 앞에, 표지훈은 두 세걸음 뒤에 나란히 걷다보니 벌써 공원 분수에 도착했다.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한산한 분수 가장자리에 엉덩일 걸쳤다.
그냥 이쁠거라는 생각에 막연히 오긴 했는데 막상 오니 할 건 딱히 없다. 이쁘긴 하네.
남은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머리 위로 그늘이 진다.
"형."
"응?"
한참을 말이 없는 표지훈에 내가 긴장한 듯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괜히 기대도 되고...
"형, 내가 형 좋아해요."
담담한 말투로 말해서 평범한 얘긴 줄 알았다.
표지훈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 몸이 굳었다.
내 손을 잡아오는 표지훈이 느껴졌다.
"형은요?"
따뜻한 손이 닿자 좀 풀어지는 느낌이다.
미소가 지어진다.
먹던 아이스크림을 마저 입에 넣었다.
이름 한번 잘 지었네, 여기 있을동안 그것만 먹어야지.
내가 대답이 없자 손에 힘을 더 준다.
"너가 비행기에서 물어봤었지 지훈아.
나라면 널 좋아할 것 같냐고."
대답도 없이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는게 긴장했나보다.
"내 답은."
걸쳐뒀던 몸을 일으켜 표지훈의 입술에 입을 마주댔다.
표지훈이 웃는게 느껴져 나도 웃음었더니 내 허리를 잡고 더 깊숙히 입을 맞춘다.
열려진 입사이로 말캉한 느낌이 나고 혀가 얽혔다.
표지훈과의 첫키스는 달콤했다.
*****
"형, 그거 알아요?"
"뭐?"
"내 아이스크림 이름은 'SAY ONLY YES'에요."
*****
"정한해. 어디 가는 거냐? 여기 아니잖아."
"MY SWEET HOME, HONEY."
"개소리 하지말.........아니야, 아닐거야. 설마, 정한해..."
"음...설마가 사람 잡는다. 태운아?"
"헐, 개놈아! 우리 동생이랑 있고싶다고 나는!"
"넌, 네가 그 둘의 최대의 방해자란 걸 알 필요가 있어.
우리 집에가서 놀자. 알았지? 기대해."
"아악! 정한해!"
다 정한해가 꾸민 일인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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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여기가 끝이에요!!! 원래 고백씬으로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서...ㅎ 번외는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8로 쓰기엔 좀 부족 할 것 같아서 번외로 쓰는 거구요ㅎㅎ씬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답답이들이 결국 해냈어요...사랑은 용기있는 자가 갖는대요!!! 저는 용기만땅인데 왜 없을까요!ㅋㅋㅋㅋ 아무튼 번외는 주말 안에 들고올거에요ㅎ 그러면 2편 올린다는 약속은 지키는 거죠!! 감사해요!! 독자분들 다!! 같이 와주신 암호닉 분들 울님 백사자님 윈윈님 매니큐어님 현기증님 노숙자님 이불님 핫삥꾸님 복숭아님 오댕님 촉촉님 크롬님 떡덕후님 모기장님 두분은 어디가셨어요...그대는 어디에ㅠ 그래도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