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꿈은 끔찍한 것 같아 |
딱히ㅡ, 게이라던가 동성애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다. 일단은 저한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다 상관 없다는 마인드이고 하니까. 그래도 정말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싶은 신기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성규는 피로한 표정으로 제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별로 한 것도 없는 하루인데도 이렇게 피곤할 줄이야. 감았던 눈을 뛰며 성규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 태양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곧 밤이 될테고 밤이되면 자신은 움직여야한다. 이게 무슨 사람 사는 건가.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개운치 못한 생활을 지내는 것은 정말이지 내키지 않은 행위였다. 사람이 잠을 푹 자고, 그간 있었던 피로를 말끔히 풀어야하는데. 몸은 피로가 풀려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나도 참 불쌍하다. 저 자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한 성규는 길게 하품을 하며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성열과는 금방 헤어졌다. 거래를 해야한다면서 부두 인형을 갖고 온 이상스런 여학생한테 거의 질질 끌려가다시피. 잔뜩 일그러진 성열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던 성규는 사람이 많은 시내거리를 걸으며 땅 밑을 바라봤다. 음식 냄새도 나고, 여러가지 냄새가 난다. 음식 냄새. 집에 찬거리가 있던가. 곰곰히 생각해보던 성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다. 그러니까 사먹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성규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오늘은 어디서 끼니를 때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간판들을 훑고 있을 때, 성규는 제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냈다. 따뜻한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무리구나. 지갑에 보이는 것은 천 원짜리 지폐 몇 장. 다섯 장도 채 안된다. 이런 돈으로 뭘 사먹겠어. 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쉰 성규는 시선을 돌렸다. 성규가 그나마 들릴 수 있는 곳은 작은 편의점 뿐이였다. “나도 참 불쌍하지.” 불퉁스런 어조로 중얼거리던 성규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편의점에 들어갔다. 문을 밀어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가 훅 들어온다. 빵빵하게 틀고 있구나. 밖에 나가기 싫을 정도로 따뜻한 편의점 내부에 잠시 코를 근질거리던 성규는 이내 다리를 움직였다. 삼각김밥 몇 개 정도 사면 될 것 같다. 그리고 10시 전까지 뒹굴거리며 놀다가 잠에 들면 되겠고. 음음.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여보인 성규는 삼각김밥이 늘어져 있는 코너 쪽으로 다가갔다. “아.” 손을 뻗자니 누군가 먼저 집어간다. 제일 좋아하는 맛이였는데. 저도 모르게 흘깃 옆을 쳐다본 성규지만 모자를 푹 누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뭐, 저리 모자를 눌러쓴대. 범죄라도 저질렀나. 잔뜩 귀찮은 표정을 지은 성규는 이내 시선을 돌려 다른 맛의 삼각김밥들을 챙겼다. 못 먹는 거야 조금 아쉽지만 기분 나쁜 사람과 얽히는 건 사양이다. 입술을 씰룩이다가 옆을 지나친 성규는 계산을 하기 위해 계산대로 갔다. “너, 또. 그냥 가져가기냐?” 계산대에 서 있던 청년이 볼멘소리로 말한다. 응? 눈을 깜박여보인 성규는 알바생을 바라보다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는 이내 고개를 틀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다. 남자는 모자챙 부분을 살짝 들어올리고는 알바생에게 웃어보였다. “다음에 계산하는 거 알면서.” “인마, 사장님도 너 알기는 하지만 자꾸 이러면 곤란하다고! 내 돈으로 빠져나가잖아.” 에이, 친구 사이에ㅡ. 친구는 얼어죽을! 두 남자의 대화 사이에 껴버린 성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모자 밑에 가려진 남자의 얼굴을 꽤나 준수했다. 의외네. 범죄라도 저지를 것 같은 모습이였는데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도 그를 본다면 웃는 게 매력적이란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꽤나 화사한 미소를 짓는 남자였다. 뭐, 남자 미소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삑삑, 바코드 찍는 소리에 집중하며 성규는 한시라도 빨리 이 편의점 밖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 명의 대화를 모른 체 하며 가만히 듣기에는 너무 짜증난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인사성 좋은 알바생이 성규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고, 성규도 따라 목례하고는 이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등뒤로 짧은 두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건 그저 낯선 이에 대한 작은 호기심에 불과했다. 곧 사라질 호기심을 무시하며 성규는 편의점 문을 밀었다. 아까와는 반대로 차가운 바람이 훅 덮쳐온다. 몇 개 사온 삼각김밥을 금방 먹고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던 것은 어느새 끝나버리고 약속 된 시간이 찾아온다. 약속 하나는 철저히 지키는 성규는 열 시가 되기 무섭게 문을 두드리고, 주인의 허락을 구하기도 전에 침입해버린다. 이번에는ㅡ. “얌전하네.” 저번 같이 거대한 도심은 아니였다. 물론, 거기서 거기지만. 추위라던가 기분 나쁜 느낌은 사라진 점이 의외였다. 사람들도 없는 거리. 불도 들어오지 않는 횡단보도를 무시하며 사거리를 가로 지르던 성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머리 위로 길게 뻗은 빌딩들이 언제라도 덮쳐올 듯 아슬아슬하게 다가온다. 요즘 꿈들은 다 이렇다니깐? 하나 같이 일관성 있다. 특이한 꿈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정말 적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성규는 누구에게 묻지 않고 곧장 한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좀 더 걷다보면 꿈의 중심부가 보인다. 그 중심부는 삭막한 도시 환경과는 반대로 꽤나 몽환적인 세계까 펼쳐진다. 그곳이야말로 진짜. 영롱하게 불타오르는 영혼과 색깔. 멀리서도 보인다. 성규는 좀 더 걸음을 바삐했다. “색깔이…….” 푸른색이다. 짙은 색보다는 조금 연한 색깔. 아, 이걸 하늘색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런 색깔은ㅡ, 아마도. 우울함. 마이너스적 요소들이 가득할 때 보이는 색깔이다. 주인이 많이 우울하구나. 영혼을 향해 손을 뻗어보인 성규는 쯧쯧, 혀를 찼다. “원하는 꿈 꾸게 해주려고 왔다.” 어차피 들리지도 않겠지만 성규는 꿋꿋이 중얼거렸다. “나참, 대가가 너무 커서 선뜻 망설여지는 거래였지만.” 미간을 좁히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푸른빛의 영혼을 응시한다. “승낙은 했으니까ㅡ, 그러니까.” 손끝에 영혼이 닿자 도망치는 것마냥 화르륵, 소리를 내고 성규는 좀 더 깊은 곳으로 팔을 뻗었다. 손바닥을 활짝 펼친다. 그리고 구부린다. 손 안에 무언가 잡힌다. 그 느낌에 작게 입꼬리를 올려보인다. “대가도 받아갈거야.” 손에 잡힌 것을 뽑아내는 순간, 영혼은 저 위로 솟아오르고 주변 배경은 갈라지듯 사라진다. 삭막한 도시 환경이 사라지고,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새가 날아다니고, 봄내음이 코끝에 다가온다. 성규는 흩날리는 제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며 고개를 돌렸다. 푸른 언덕 너머로 보이는 두 인영. 다정한 연인마냥 손을 꼭 잡고 있는 두 사람은 같은 성별의 남자였다. 그 둘을 보며 성규는 허, 하고 낮게 웃었다. 잊는 주제에 뭐 이런 꿈을 꾸는 거야. 마지막이라는 건가. 정말 기분 나빠. 성규는 여승우의 뒷모습을 가늘게 응시하다가 이내 몸을 홱 돌렸다. 꿈의 주인께서 쫓아낸다. 밀려나듯 성규는 푸른 초원과 멀어진다. 짜증스럽게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는 모든 게 하얀 공간이였다. 흐응. 작게 콧방귀를 뀌어보인 성규는 제 손을 꽉 쥐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손안에 느껴졌던 것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가는 받았다. 그리고 거래도 끝났다. 이걸로 여승우와 다시 만날 일은 없다. 성규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 뿐이였다.
잔뜩 창백해진 얼굴로 눈을 떴을 때, 성규는 마른 세수를 하며 이를 갈았다. 기억을 받는 건 정말 좋지 않다. 원하지 않아도 기억이 몸 안에 흡수되니까. 물론, 회사에 제출하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제출하기 전까지 존재하는 그 기억은 너무나 짜증스럽다. 마치 성규가 아닌 것 같은 느낌. 자신이 김성규가 아니라 그 기억의 주인인 것 같다. 기억의 주인, 여승우가 된 것 같은 기분. 성규는 젠장ㅡ, 낮게 욕을 읊조렸다. “젠장. 미친.” 떨리는 눈꺼풀을 무겁게 닫으면 수많은 그림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겪어온 여승우의 기억들이. 기억들은 온통 두 명이다. 하나는 여승우고, 한 명은ㅡ. “미친…….” 웃는 게 화사하다. 남성스러운 손은 모든 걸 보듬어줄 것 같이 크고 따듯하다. 목소리에는 애정이 가득하고, 눈동자는 따스함이 충만되어 있다. 이게 바로 사랑 받는 느낌일까. “썅…….” 사랑스럽게 웃으며, 애정있게 손을 잡아주고, 항상 지켜줄 것 같은 표정이다. 자신만은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는 표정. 언제나ㅡ, 옆에서 있어주겠다는 그 눈빛. 성규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여승우의 기억은 온통 핑크색으로 가득하다. 가득하다 못해 숨이 막혀 질식될 것 같다. 남자랑 남자가 사랑하고 사귄다는 거에 큰 경멸은 없었지만. 아니, 경멸을 떠나서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똑같은 성별을 갖고 태어난 자식들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그래? 근데? 어쩌라는 식의 옛 반응을 내보일 수가 없다. 성규는 바득, 깨물었다. 「승우야.」 “성규야.” 제발, 제발. 성규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제 생각 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이상하게 들리지 말라고. 「평생 사랑하자, 우리.」 뇌속을 헤집는 듯이 웅웅거린다. 「우리 헤어지지 말자. 절대로 떨어지지 말자.」 기억일 뿐이다. 성규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진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랑해.」 마치 겨울의 눈이 녹고 봄이 찾아오는 마냥 가느다란 미소는 한 남자를 향해 있었다. 성규는 후,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하지만 다시 감겼다. 「……어째서?」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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