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 늑대소년
06
w. 마카
아침에 눈을 뜬 경수는 눈 앞에 보이는 소년의 얼굴에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왜 여기에 있는거지. 잠시 생각하던 경수는 이내 어제 저녁의 일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어제 저녁, 한참을 멍하니 달만 바라보는 소년을 지켜보던 경수가 조금씩 몰려오는 졸린 기운에 먼저 침대 위에 눕자, 그제서야 경수가 있는 침대께로 다가온 소년이 바닥에 앉아 경수의 옆자리를 지켰다. 어둠 속에서 살풋 마주쳤던 시선이 한참 떼어지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이리 와.'
침대 옆자리를 내준 것도, 경수 자신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직 잠에 빠져있는 소년의 얼굴을, 경수는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지 못해 조금 풀린 눈으로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도 생각못할만큼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옆으로 흘러내린 앞머리, 짙은 눈썹, 두꺼운 쌍커풀, 뭉툭하지만 시원하게 뻗은 코, 두꺼운 입술. 하나하나가 찬찬히 경수의 눈 안에 담겼다. 그러다 문득, 경수는 생각했다.
만지고 싶다.
장난감을 훔치는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소년의 얼굴 위로 향하는 손 끝에, 가슴이 두근 두근 뛰어왔다. 그리고 손 끝이 소년의 눈 위로 닿았을 때, 더욱 더 세차게 뛰어오는 것을 느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자신의 가슴 속을 간지럽히는 것처럼 자꾸 깊은 곳에서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서로의 사이에 마주오가는 대화가 없어도, 서로 마주쳤던 시선과 이런 느낌들만으로 소년과 경수도 모르는 사이 이미 많은 것들이 서로의 마음 속에 닿아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
"갔다 와."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 듯, 소년이 경수의 옆에 서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어린 아이같은 모습에 경수가 소년의 머리 위를 쓰다듬으며 소년을 달랬다.
"괜찮아, 종인아."
아직은 입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부르며, 경수는 자신 옆에 선 소년을 마당 앞에 선 택시 앞으로 데려갔다. 택시 문 앞에 서 소년의 어깨 위로 손을 얹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괜찮아.
택시 문을 열자 먼저 택시에 타 소년을 기다리고 있는 경수의 엄마가 보였다. 택시 안으로 소년을 앉힌 경수는 소년 너머로 앉아 있는 엄마에게 눈 짓을 하고는 택시 문을 닫았다. 택시 문을 닫을때까지도 살짝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 경수를 쫓았다. 안심하란 듯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준 경수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잘 다녀 와.'
곧 택시가 출발하고, 택시가 눈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뒤를 눈으로 쫓은 경수가 한참을 자리에 서 빈 길 위를 바라보았다.
혹시 모를 소년의 실종 신고를 확인 하기 위해 서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오는 길에는 소년을 위한 옷도 사온다고, 그런다고 했다. 진짜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소년에게 그것은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경수는 이상하게 불안해 오는 것을 느꼈다. 소년에게는 몇 번을 괜찮다고 말해놓고, 정작 제일 불안해 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불현듯 불안 끝에 보이는 이기심에 가슴이 따끔거렸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거야.
그 말이 소년에게 하는 말이 었는지, 경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었는지, 경수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소년을 보내고 집에 들어가려던 경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향한 곳은 어제 소년과 찾았던 시냇가였다. 사실 아는 곳이 이 곳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지만, 답답한 마음을 잊을 곳은 이 곳 뿐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작 한 번 찾았을 뿐인데, 발걸음은 이미 익숙해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제 앉았던 곳과 같은 곳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경수는 눈을 감고 머릿속을 비워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아픈 기억도, 소년에 대한 생각도, 모두 다 덜어내고 싶었다. 어제완 다르게 겨울 바람이 조금은 시린 듯도 했다.
"저기."
그렇게 머릿 속이 가벼워졌을 즈음,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경수는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았다. 시냇가 옆, 길 위에 서있는 한 남자가 경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햇살에 비춰 더욱 그런진 몰라도, 창백하다고 생각될 만큼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경수가 아무 말도 없자, 다시 먼저 말을 건냈다.
"내가 여기 처음이라 그런데, 여기 보건소 어디 있는지 아니?"
뭐라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경수는 이내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러자 곤란해진 듯 손에 들린 약도를 내려다 보던 남자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거 짐 옮기는 것 좀 도와주지 않을래?"
이내 찌푸렸던 미간을 피고, 하얀 피부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남자를 말없이 올려다보던 경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더 환하게 웃었다.
남자가 들고 있던 작은 가방을 옮겨 들은 경수는, 약도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건소를 찾는 남자의 뒤를 말없이 따라만 갔다. 얼떨결에 자신은 어느새 남자를 돕고 있었다.
"아, 여기다."
머지 않아 보건소를 찾은 남자가 코트 주머니 안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캐리어 가방과 온갖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는, 문을 연 채로 경수가 먼저 안에 들어가도록 길을 터주었다. 짐만 옮겨주면 되는 거 아니었나 잠시 생각하던 경수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보건소 안으로 들어갔다. 곧 문 앞의 짐을 안으로 옮긴 남자 역시 안으로 들어왔다.
"짐은 아무데나 내려놔도 돼."
어정쩡하게 서있는 경수에게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책상 위에 들고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남자를 돌아보자, 옆의 소파로 손짓을 했다. 소파로 가 앉은 경수가 어색하게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보건소 안을 훑어 보았다. 곧 코트를 벗고 의사 가운을 걸친 남자가 경수의 맞은 편 소파에 와 앉았다. 의사 가운 위 명찰에 적힌 남자의 이름은 '김준면' 이었다.
"여기까지 짐 들고 오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
"아, 그러고 보니 내 소개도 안 했네. 반가워. 난 이번에 여기 보건소로 새로 부임한 김준면 이라고 해."
자신을 소개하며, 준면이 선뜻 먼저 경수에게로 손을 내밀어 왔다. 그 손을 잠시 어색하게 바라만 보던 경수가 이내 손을 맞잡아 왔다. 아까 시냇가에서 봤던 것처럼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고등 학생같은데, 몇 살이야?"
"...열여덟이요."
"오다보니까 고등 학교는 이 동네에선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던데. 혹시 거기 다니니?"
준면은 예의 상 물어 온,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으레 물을 그런 질문이었겠지만 경수는 고개를 숙여 준면의 눈을 피했다.
"...학교, 안 다녀요."
아직 극복하기에 자신은 너무나 어리고 미성숙한가보다고 생각했다. 아픈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맞은 편에 앉은 준면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만 있어."
고개를 숙인 경수를 바라보던 준면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가 들고 왔던 가방이 올려져 있는 책상으로 다가가 가방 안에서 무언갈 꺼냈다. 곧 다시 자리로 와 앉은 준면이 경수에게로 무언갈 내밀었다.
"...이걸 왜."
준면이 건낸 것은 책이었다. 탁자 위로 내밀어진 소설책 같아 보이는 것에 경수가 고개를 들어 준면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책. 한 번 읽어 보라고. 여기 올 때 가져온 거라곤 책밖에 없어서."
"..."
"아까 도와준 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그거 읽고 또 다른 책 빌리러 와."
준면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경수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동정 가득한 눈길로 사과를 해왔었다. '미안해.' 그 말이 경수를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든 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그러나 준면은 미안하단 말 없이도 경수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다시 자신을 찾아와도 된다고 말하는 준면은, 경수에게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미 경수가 원래 이 곳에 살던 아이는 아니었음을, 남에게 말 못 할 사정 역시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것을 집적적으로 물어오지도 않았고, 경수를 동정하지도 않았다.
경수는 말없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준면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에게 아무 스스럼 없이 다가오는 준면의 온전한 마음이 그 미소 위에 비춰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경수는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준면이 자신에게 건낸 책의 표지를 들여다 보다 한참만에야 책의 첫장을 펼쳤다. 그러나 첫 구절을 읽기 시작할 무렵, 아랫층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다시 책을 덮은 경수는 방을 나와 1층으로 향했다.
"어, 경수야. 와서 이것 좀 들어서 방으로 좀 옮겨줘."
"일은... 어떻게 됐어?"
엄마의 손에 한가득 들린 쇼핑백을 옮겨 들으며 경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시 잠잠해졌다 떠오른 불안에 가슴이 조금씩 떨려왔다.
"아직도 들어온 신고는 없다 하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가서 조사서 쓰고 신고까지 하고 왔어."
"아..."
못된 마음이 안심하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현관 앞에 서 있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저 아인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걸까.
"그런데 저 아이 이름을 몰라서 한참을 진땀 뺐지. 그러고 보니 우리가 따로 지어준 이름도 없고 말이야."
"...종인이."
"뭐라구?"
"종인이. 김종인. 쟤 이름이야."
경수가 소년과 마주친 시선을 떼지않은 채 대답했다.
"많이도 샀네."
소년의 방에 쇼핑백을 내려놓은 경수가 슬핏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소년은 새로 산 옷을 입고 있는 채였다. 경수가 소년의 모습을 훑었다.
"멋있네."
베이지 색 면바지에 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그 위에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그러다 문득 경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년이 보통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녔다면 어땠을까.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끔은 시험에 힘들어 하기도 하고, 예쁜 여자애에게 고백을 받아 사귀귀도 하는 소년의 모습은, 소년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다. 경수는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미안해."
오전부터 가슴 속에 묻혀둔 말이 새어나왔다. 미안해. 누군가 너를 찾지 않길 바랬어. 그리고 아무런 신고도 들어와있지 않다고 들었을 때 안심했었어. 항상 너에게 이기적이기만한 나라 미안해.
아무 말 없이 그런 경수를 바라만 보고 있던 소년이 경수에게로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잠시 소년을 바라보던 경수는, 이내 웃으며 소년의 머리 위를 쓰다듬었다. 소년과 함께 있으면 우울하다가도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잘했어, 종인아."
오늘 하루 잘 견뎠어. 이것만은 종인에게 하는 말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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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 등장..! 뜨든! 항상 써보고 싶었던 면도... 면도는 픽이 잘 없더라구요ㅠㅠ 됴총 분자인 저는 슬플 따름ㅜ 그런 면도를 드디어 늑소에서 등장시킵니다. 보건소 의사선생님 준멘...+ 머, 머시쪙..! b
여기서 종인이에 대한 호칭은 '소년'으로 이어가려합니다. 아직 어리숙한 '소년'의 모습을 종인이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이 얘기는 완결이 끝나면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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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너무너무 감사해요ㅠㅠㅠㅠㅠ 이런 부끄러운 픽이 뭐라고 다들 그렇게 좋아해주시는지 ㅠㅠㅠㅠ 항상 독자님들 기다리게만 해서 죄송함니다...ㅠ 사랑해요 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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