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이에요!"
"안녕하세요."
하나같이 쏟아지는 밝은 인사에 일일이 웃음으로 화답하며 사무실 맨 끝에 놓인 내 책상으로 향한다.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습관처럼 컴퓨터를 키면서도 눈으로는 연신 그의 빈자리를 힐끔힐끔.
"좋은 아침입니다!"
역시나 목청이 좋군, 하는 과장님의 필두로 여기저기서 그를 향한 아침 인사가 쏟아져 나온다.
늘 그렇듯 깔끔한 디자인의 수트를 차려 입은 그였지만,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그는 이 안에서 누구보다도 빛나 보인다.
늘 가지런하게 빗어 넘겼던 앞머리를 잔뜩 내린 그가 평소보다 훨씬 산뜻하고 어려 보여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관심과 칭찬에 여유롭게 웃어 보이던 그가 내 쪽을 돌아본다.
흠칫 놀라 고개를 떨구는데 조금씩 가까워지는 바람소리.
"주말 잘 보내셨어요, 세훈씨?"
"아… 네. 찬열씨는요?"
"저는 잘 못 보냈어요.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올라오셨었거든요."
"아…"
"어찌나 잔소리가 심하시던지. 아직까지 저를 무슨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취급하신다니까요."
달콤한 숨을 뱉어내는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가지런히 빛난다.
한 두 번도 아니지만 어쩐지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오늘도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
그래도 감사해야 하겠지.
이렇게 그와 한 공간,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
"주말이 너무 길다는 생각 안 들어요? 토요일, 일요일. 정말 너무 지루했어."
"…그래도, 푹 쉴 수 있어 좋잖아요."
"푹 쉴 수 없었으니 얘기죠. 내 나이가 몇이라고 벌써부터 선보라고 성화에요."
"어머, 찬열씨 선보세요?!"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는 그이지만. 순간적으로 철렁 떨어진 심장을 감출 수는 없는 거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선'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생소하고 두려워서 생각보다 크게 쇼크를 받아버렸나 보다.
멍하니 올려보느라 입술을 벌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돌아보고 피식 웃는 얼굴에 뒤늦게 얼굴이 빨개졌다.
"세훈씨는 집안에서 그런 얘기 안 해요? 우리 집만 유별난 건가?"
자연스럽게 그를 향해 몰려드는 시선 속에 섞여 졸지에 질문을 떠 안은 나는 잠시 당황했다.
모두의 호기심 어린 시선보다도 무심한 듯한 그의 질문이 더욱 어려워서.
"뭐…, 얘기야 예전부터 나오고 있고…. 선이라면 벌써 두어 번은 봤고…."
"어머ㅡ 정말요?!"
"말도 안 돼! 세훈씨 아직 젊다구요! 선이라니 말도 안돼요!"
"어라, 선희씨 왜 그렇게 펄쩍 뛰세요. 벼락이라도 맞은 표정인데?"
"제, 제가 뭘요!"
생각을 거를 겨를도 없이 쏟아져 나온 답변에 놀란 듯한 여직원들의 표정과, 그 속에서도 유독 펄쩍 뛰는 선희씨에 당황하다가.
문득 나를 빤히 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평소와는 달리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지독히도 검은 눈동자와.
"와… 세훈씨는 저보다 어리신데 벌써 두어번 봤다는거죠?"
'나 정말 충격 먹었어요' 라는 표정과 제스처에 괜히 죄지은 기분이 들어버렸다.
그에게 미안해서, 이런 내가 답답하고 한심해서 홧김에 벌인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테지만.
그래도, 이대로 멈춰 있는 것도 당신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으니까. 변화가 필요했던 거라고.
"뒤쳐지지 않으려면 이거, 주말에 선이라도 봐야 하는 걸까요. 하하."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들을 버리실 거예요? 네?"
"멀리서 찾을 거 뭐 있어요, 피곤하고 힘만 들지. 선보기 이전에 주위부터 꼼꼼히 둘러보시라구요."
"두분은 제외하구요?"
"진짜 못됐다니까."
하하하 터지는 웃음소리에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본다.
만약 둘러본다해도 눈에 뜨일 것도 없지. 같은 남자인 내가.
마음이란 게 끊을 수 있는데서 끊을 수 있는 거라면 참 좋겠다.
더 깊어지기 전에, 더 길어지기 전에. 두근거리던 좋은 기억만 남기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찬열씨 이상형을 이제껏 모르고 있었네. 이상형이 뭐에요?"
"음…, 특별히 이상형이랄 것도 없죠 뭐."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요? 꼭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이상형이 더 대단하더라구요."
어쩐지 더는 듣기 힘이 들어 휴게실 가는걸 핑계로 슬그머니 일어서는데, 어디 가시게요? 하는 선희씨의 물음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커피좀 타오려구요.
의식해도, 의식하지 않아도 늘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선 덕에 또 다시 그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지만.
최대한 밝게 보이도록 웃음을 흘리고는 뒤돌아 섰다.
더 듣고 있다간, 존재조차 희미한 그 이상형에게 질투를 느껴버릴 것 같아서, 그러면 내가 너무 우습고 추할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 서둘러 발을 떼는데.
"제 이상형은."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우뚝 발이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