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트라이앵글
written by. 글리아
다니엘은 티 안나게 속앓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24년을 살면서 여자친구가 없었던 순간이 손에 꼽았지만 가만히 생각만 해도 목이 타는 듯한 느낌은 처음이다.
처음에는 그냥 예쁜 남자애 옆에 있는 예쁜 여자애일 뿐이었다. 군 제대 후 모든 여자를 보고 떨릴 시기인 거라고 친한 형인 성우가 놀려댔지만, 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빠지게 됐는지 다니엘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다니엘의 취향은 연상이었다. 그런데 연하를 보고, 그것도 4살이나 어린 새내기를 보고 설레다니? 지금 다니엘 눈엔 세상 제일 예쁘게 보이지만 처음엔 그냥 평범한 듯 예쁜 후배일 뿐이었다. 그 애의 말투가 좋았던 건가. 무심한 듯한 표정에 이따금씩 저를 보고 붉어지는 볼이 예뻐보였던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에 빠진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스며들어있었다. 자꾸만 보고 싶고.
" 야, 드디어 왕자병이 도진 거냐. "
" 아, 무슨 말이에요 성우 형. 왕자병이라니. "
" 너 아까부터 핸드폰 한 번, 거울 한 번, 번갈아가면서 쳐다보고 있어. 알아? "
다니엘은 양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과 거울을 보고 머쓱하게 웃어보인다. 사실 몇 번이나 본 카톡 대화였다. 대화도 몇 번이나 보고, 여주 프로필 사진도 몇 번이나 보고. 처음엔 변태도 아니고 왜 자꾸 보고 지랄이냐, 스스로 욕도 해봤지만 사진이 너무 예뻤다. 물론 실물이 더 예쁘다고 느끼면서도 사진 보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니다. 남자가 2살이 되는 순간부터 오빠란 말을 듣고 사는 건데 여주가 말하는 오빠는 뭔가 다르게 들렸다. 사내놈들이 오빠란 말 좋아한다고 할 때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그걸 요즘 느끼고 있었다.
오빠에 심쿵, 웃는 이모티콘에 심쿵. 이 놈의 대화는 도대체 몇 번이나 봐야 웃음이 안 날지 모르겠다.
" 내가 네 놈 사랑에 빠진 표정이나 구경하려고 이 시간에 같이 기다려주는 줄 아냐? "
" 아이, 형. 왜 그러세요. "
" 사실 맞아. 재밌거든. "
별로 웃기지도 않은 말에 빵 터진 성우와 다니엘을 비웃기라도 하듯, 저 멀리 개찰구를 통과하는 여주와 지훈이 보인다. 다니엘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와, 여주. 평소엔 가벼운 티와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오늘은 꽃무늬가 그려진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에 청반바지다. 안그래도 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코디였다. 예쁘다. 다니엘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성우는 놀리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여주와 다니엘을 번갈아보다 다니엘의 어깨를 툭 치곤 자리를 피한다. 연애 상담 필요하면 연락해라. 라고 자신만만한 한마디를 남기고.
" 형, 안녕하세요. "
" 오빠.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
다니엘은 괜히 제 손을 만지작거리며 두사람에게 웃어보인다. 학교 밖에서 보니까 더 예뻐 보이네. 다니엘은 먼저 반갑다는 듯 지훈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주고, 여주에게도 손을 뻗다가 멈칫, 손을 내린다.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그 짧은 순간에 묘한 눈빛의 지훈과 눈이 마주쳤기에.
지훈은 OT 때부터 사람 좋은 표정을 하면서도 이따금씩 경계하는 표정을 숨기질 못했다. 그 표정은 여주가 옆에 있을 때만 나오는 표정이었다. 여자 선배들에게 인사를 시킬 땐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이었는데, 남자 선배들이 여주에게 눈길을 준다 싶으면 보호자처럼 여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래서 다니엘의 눈에 더 띄었던 것 같다. 사내들은 안다. 저 사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누군지, 나를 경계하는지. 성격 좋은 다니엘도 잘생긴 신입생의 관심을 독차지 하는 여자가 궁금했다. 그래서 여주와 인사를 나눴던 거였다.
" 어, 우진아. 오빠, 다 모였어요. "
약속 시간에 정확히 나타난 우진을 마지막으로 네 사람은 함께 롯데월드로향했다. 지훈은 아주 자연스럽게 다니엘과 여주 사이에 끼어들어 걸었다. 정작 여주는 모르는 듯 했지만, 다니엘과 지훈, 둘만의 신경전은 시작되었다.
과제를 위한 조사는 일찍 끝내버리고 네 사람은 본격적으로 놀이공원을 즐기기로 했다. 여주는 꼬꼬마 때 온 이후로 처음 왔기 때문에 엄마 손을 붙든 아이의 표정을 하곤 즐거워했다. 줄을 1시간을 서도 신이나 보였다. 물론, 그 옆엔 그녀의 짝사랑 상대인 다니엘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 재밌어, 여주야? "
" 진짜 재밌어요. 이렇게 좋은데 왜 진작 안 와봤을까요? "
" 푸핫, 그 정도야? 귀여워. "
무의식중에 귀엽단 말을 내 뱉고 다니엘은 순간적으로 아차했다. 속으로만 생각하려고 했는데. 여주는 뺨을 붉히며 괜히 제 신발 끝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왠지 지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우진이 놀이공원은 여자친구랑 와야 되는데, 하고 한숨처럼 끼어들었기 때문에 어색해질 뻔한 분위기는 무마가 되었다.
지훈과 다니엘은 겉으로는 무척 친해지고 있었으나 둘의 신경전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둘씩 짝지어 타는 놀이기구에서 여주의 옆자리는 계속해서 지훈이 차지했다. 다니엘은 4살이나 어린 후배랑 유치한 자리다툼을 해야하나 싶으면서도 괜히 여주와 함께 타고 싶어졌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놀이기구를 타기 직전 줄을 설 때 잠깐 지훈이 한눈을 판 사이에 다니 엘이 여주의 옆에 섰다. 여주는 덕분에 놀이기구를 타려는 설렘과 함께 다니엘 덕분에 더 큰 떨림을 느끼며 놀이기구에 올라탔다.
" 김여주. "
" 어? 왜. "
" 이거 되게 깜깜해지니까 조심하라고. 너 어두운 거 싫어하잖아. "
" 괜찮아, 옆에 다니엘 오빠 있으니까. "
아차하는 순간 여주의 옆자리를 빼앗긴 지훈은 뒤에 우진이와 함께 타서도 여주에게 잔소리를한다. 어두운 걸 조심하긴 개뿔. 네 옆에 잘생긴 늑대 조심해라. 이게 지훈의 속마음이었다.
게다가 이 놀이기구는 사이에 칸막이 같은 것도 없고, 원심력을 이용한 놀이기구라서 한쪽으로 반드시 붙게 되어있는 놀이기구였다. (=혜성특급) 아, 왜 방심했지. 이걸 저 형이랑 여주가 타게 만들고. 아, 실수다 진짜. 지훈은 안전벨트를 하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부족한 거 없이 살아와서 질투심, 소유욕 같은 걸 몰랐는데 요즘 아주 심하게 느끼고 있는 지훈이었다.
" 여주는 어두운 거 싫어해? "
" 그냥... 공포영화를 어릴 때 멋모르고 봤다가 무서워하게 됐어요. "
콩닥, 콩닥. 여주는 심장이 터져죽을 맛이었다. 다니엘이 먼저 안쪽으로 타고 뒤이어 제 옆자리에 탄 여주의 안전벨트를 직접해주 었기 때문에. 그리고 다니엘을 알게 된 후로 이렇게 가까이 앉아있어본 적이 없어서 더 떨렸다.
놀이기구가 출발했다. 적당히 시원한 스피드로 열차는 혜성 조형물 사이로 돌기 시작했고, 여주가 다니엘 쪽으로 몸이 쏠리게 되었다. 여주는 괜히 쑥스러워서 다니엘에게 안 붙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다니엘이 자연스럽게 팔을 여주의 어깨에 두르는 바람에 다니엘의 가슴에 기댄 형태가 되어버렸다. 꺄아, 하고 놀이기구가 무서운 척 소리를 질렀지만 사실 여주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비명을 지르는 거였다.
다니엘은 여주가 흔들리지 않게 살짝만 어깨를 감싸 지탱해주었지만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여주에게서 나는 샴푸향이 아찔했다. 어두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 무서웠어? "
" 아니요... 오빠 덕분에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
열차가 도착하고 내리기 직전에 다정한 표정의 다니엘이 물었다. 여주는 바람에 휘날린 머리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붉어진 얼굴이 밖으로 나가기 전까진 진정되길 바라며.
" 자, 조심히 내려. "
근데, 진정 좀 하려고 했더니 다니엘이 먼저 내려 여주에게 손을 내민다. 여주가 그 손을 잡는다. 아프지 않게 살짝 잡아주는 큰 손에 여주의 심장은 여지없이 두근거린다. 손 진짜 작고, 부드럽다. 다니엘은 속으로 생각했다.
잡은 두 손은 소지품을 찾느라 자연스럽게 놓았지만, 두 사람의 손엔 여전히 서로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
썸남과 놀이공원에 가고 싶네요... 다니엘이랑 지훈이랑 우진이랑 성우랑.... 가고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 하 쓰면서 제가 설레고 자꾸 입꼬리 올라가고... 하...ㅠ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 정말 제가 많이 사랑합니댜... 한분한분 답글 너무 달아드리고 싶은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 꼭 시간을 내서 답글 달겠습니댜...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S2
암호닉은 계속 받고 있습니다! ㅎ.ㅎ** 다음 편에 정리해올게요!
좋은 주말 되세용S2S2